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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百濟BC 18 – AD 660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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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7편 백제 강성 朝鮮上古史 第7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83개 · 번역 확정 0개
제7편문단 81번역 대기
원문
장수왕이 도림의 보고를 듣고 크게 기뻐하며 '말치' 제우 ( 齊于 ) 와 백제의 항복한 장수 재증걸루 ( 再曾桀婁 ) · 고이만년 ( 古爾萬年 ) 등을 보내서 3 만의 군사로 백제의 신위례성 ( 新慰禮城 )--- 지금 직산 ( 稷山 ) 부근의 고성을 치니, 근개루왕이 고구려 군사가 공격해온다는 말을 듣고 이에 도림의 간사한 계책에 속은 줄 알고 태자 문주 ( 文周 ) 를 불러 “내가 어리석어서 간사한 자의 말을 믿어 나라가 이 꼴이 되었으니 비록 위급한 환난이 있은들 누가 나를 위하여 힘쓸 이가 있겠느냐? 고구려 군사가 이르면 나는 국가의 희생이 되어 속죄하려니와 네가 나를 따라 부자가 함께 죽으면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너는 빨리 남쪽으로 달아나 의병을 모으고 외국의 원조를 청하여 조상의 업을 이어라.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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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편문단 8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하고 울면서 문주를 떠나 보냈다. 제우 ( 齊于 ) 등이 북성 ( 北城 ) 을 쳐 7 일 만에 함락시키고 군사를 옮겨 남성 ( 南城 ) 을 치니, 온 성중 이 떨고 소동하여 싸울 뜻이 없었다. 근개루왕이 친히 나가서 싸우다가 고구려 군사에게 잡혔다. 결루 ( 桀婁 ) · 만년 ( 萬年 ) 등이 처음에는 전일 군신의 의리를 차려 말에서 내려 두 번 절하더니 갑자기 왕의 얼굴에 세 번이나 침을 뱉어 꾸짖고, 왕을 결박하여 아차성 ( 呵且城 )--- 지금의 광주 ( 廣州 ) 아차산 ( 峨且山 ) 에 이르러 항복을 받으려고 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므로 드디어 해쳤다. 이에 신위례성 지금의 직산 ( 稷山 ) 이북이 모두 고구려의 차지가 되었다.
번역
울면서 문주를 떠나보냈다. 제우 등이 북성을 쳐 7일 만에 함락시키고 군사를 옮겨 남성을 치니, 온 성중이 떨고 소동하여 싸울 뜻이 없었다. 근개루왕이 친히 나가서 싸우다가 고구려 군사에게 잡혔다. 결루와 만년 등이 처음에는 전일 군신의 의리를 갖추어 말에서 내려 두 번 절하더니 갑자기 왕의 얼굴에 세 번이나 침을 뱉어 꾸짖고, 왕을 결박하여 아차성(지금의 광주 아차산)에 이르러 항복을 받으려 하였으나 듣지 아니하므로 드디어 해쳤다. 이에 신위례성 지금의 직산 이북이 모두 고구려의 차지가 되었다.
제7편문단 8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아신왕 ( 阿莘王 ) 이 광개토왕을 피해 신위례성으로 서울을 옮겼음은 이미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정다산 (丁茶山 ) 이 직산을 문주왕 ( 文周王 ) 남천 ( 南遷 ) 후의 잠도 ( 暫都 : 임시로 잠시었던 서울 ) 라 한 것은 그릇 된 판단이다. 사성 (사城 ) 은 직산의 옛 이틈이고 숭산 ( 崇山 ) 은 아산 ( 牙山 ) 의 옛 이름이니, 이 장 ( 章 ) 을 참고하면 직산 위례성이 문주왕 이전 곧 아신왕이 천도한 곳임이 더욱 명백하다.
번역
아신왕이 광개토왕을 피해 신위례성으로 도읍을 옮긴 것은 이미 앞에서 말하였으나, 정다산이 직산을 문주왕 남천 후의 잠도라 한 것은 그릇된 판단이다. 사성은 직산의 옛 이름이고 숭산은 아산의 옛 이름이니, 이 장을 참고하면 직산 위례성이 문주왕 이전 곧 아신왕이 천도한 곳임이 더욱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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