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古朝鮮BC 2333 – BC 108문헌 원문 · 번역
조선상고사 제3편 삼조선 분립
제3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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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장 삼조선(三朝鮮) 총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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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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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조선(三朝鮮)이란 명칭의 유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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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선이라는 명칭의 유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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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래의 각 역사책에 삼조선 분립의 사실이 빠졌을 뿐 아니라, 삼조선이라는 명사까지도 단군·기자·위만의 세 왕조라고 억지 해석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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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선은 신·불 ·말 삼한의 분립을 말한 것이니, `신한'은 대왕 ( 大王 ) 이요, 불·말 두 한은 부왕 ( 副王 ) 이다. 삼한이 삼경 ( 三京 ) 에 나뉘어 있어 조선을 통치하였음은 이미 제 1 편에서 말하였거니와, 삼조선은 곧 삼한이 분립한 뒤에 서로 구별하기 위하여 신한이 통치하는 곳은 신조선이라 하고, 말한이 통치하는 곳은 말조선이라 하고, 불한이 통치하는 곳은 불조선이라 하였다. 신·말·불 삼한은 이두문으로 진한 ( 辰韓 )·변한 ( 弁韓 ) 이라 기록된 것이고, 신·말 ·불 삼조선은 이두문으로 진 ( 眞 ) · 막 ( 莫 ) · 번 ( 番 ) 삼조선이라 기록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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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신·말·불의 음역 ( 音譯 ) 이 어찌하여 하나는 진·마·변이라 하고 또 하나는 진·막·번이라 하여 같지 아니한가? 이는 남북의 이두문의 용자 ( 用字 ) 가 달랐기 때문이거나 혹은 지나인의 한자 음역이 조선의 이두문의 용자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에는 고전 ( 古典 ) 이 거의 다 없어졌으므로 삼조선의 유래를 찾을 길이 없으나, 지나사 ( 支那史 ) 에는 왕왕 보인다. 사기 ( 史記 ), 조선열전 ( 朝鮮列傳 ) 에 `진번조선 ( 眞番朝鮮 ) '이라 한 것은 신·말 두 조선을 함께 말한 것이고, 주 ( 註 ) 에 “번 ( 番 ) 은 일에 막 ( 莫 ) 으로도 쓴다 ( 畵一作莫 ). ”고 하였는데, 번자를 막자로 대신하면 `진막조선 ( 眞莫朝鮮 ) '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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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신·말·불의 음역이 어찌하여 하나는 진·마·변이라 하고 또 하나는 진·막·번이라 하여 같지 아니한가? 이는 남북의 이두문의 용자가 달랐기 때문이거나 혹은 지나인의 한자 음역이 조선의 이두문의 용자와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에는 고전이 거의 다 없어졌으므로 삼조선의 유래를 찾을 길이 없으나, 지나사에는 왕왕 보인다. 사기, 조선열전에 '진번조선'이라 한 것은 신·말 두 조선을 함께 말한 것이고, 주에 "번은 일에 막으로도 쓴다"고 하였는데, 번자를 막자로 대신하면 '진막조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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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막조선은 신·말 두 조선을 함께 말함이니, `진막번조선 ( 眞莫番朝鮮 ) ' 혹은 그대로 써서 신·말·불 삼조선을 다 말하지 않고, 혹은 막자를 빼어버리고 `진번조선 ( 眞番朝鮮 ) '이라 하거나 혹은 번자를 빼어버리고 `진막조선 ( 眞莫朝鮮 ) '이라 기록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지나인이 외국의 인명·지명 등 명사를 쓸 때에 매양 문예 ( 文藝 ) 의 평순 ( 平順 ) 을 위하여 축자 ( 縮字)를 쓰는 버릇으로 그렇게 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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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천자전 ( 穆天子傳 ) 의 한 ( 韓 ) 은 신한을 가리킨 것이요, 관자 ( 管子 ) 의 `발조선 ( 發朝鮮 ) '과 대대례 ( 大戴禮 ) 의 `발식신 ( 發息愼) '은 불조선을 가리킨 것이요, 오직 말조선은 지나와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사기 이외에는 다른 책에 보이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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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조선(三朝鮮)의 위치와 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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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선의 위치와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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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 韓 ) 은 나라 이름이 아니라 왕이란 뜻이니, 삼한이란 삼조선을 나누어 통치한 세 대왕을 말함이고, 삼조선이란 삼한 곧 세 왕이 나누어 통치한 세 지방임은 물론이어니와, 그 세 도읍의 위치와 강역 ( 疆域 ) 의 범위도 기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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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의 도읍은 1) 제 1 편에 말한 '아스라' ----지금의 합이빈, 2) '알티' ----지금의 개평현 ( 蓋平縣 ) 동북쪽 안시 ( 安市 ) 옛 터, 3) '펴 라' ----지금의 평양, 이 셋이다. 삼조선이 분립하기 전에는 신한이 온 조선을 통치하는 대왕이 되고, 불·말 두 한이 그 부왕 ( 副王 ) 이었으므로, 신한이 '아스라'에 머물러 있을 때에는 말·불 두 한은 하나는 '펴라'에, 하나는 '알티'에 머무르고, 신한이 '알티' 혹 '펴라'에 머물러 있을 때는 불·말 두 한은 또한 다른 두 서울을 나누어 지키다가 삼조선이 분립한 뒤에는 삼한이 각기 삼경 ( 三京 ) 의 하나를 차지하고, 조선을 셋으로 나누어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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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삼한이 차지한 부분을 상고하건대, 만주원류고 ( 滿洲原流考 )에, “한서지리지에 요동의 번한현 ( 番汗縣 ), 지금의 개평 등지가 변한 ( 弁韓 ) 의 고도 ( 古都 ) 이다.”라 했는데, 번한과 변한이 음이 같으니 개평 동북쪽의 '알티'가 불한의 옛 서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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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삼한이 차지했던 지역을 살펴보건대, 만주원류고에 “한서지리지에 요동의 번한현, 지금의 개평 등지가 변한의 고도이다.”라고 하였는데, 번한과 변한의 음이 같으니 개평 동북쪽의 '알티'가 불한의 옛 서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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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 三國遺史 ) 에, “마한(馬韓 ) 은 평양의 마읍산 ( 馬邑山 ) 으로 이름한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마한으로 인하여 마읍산이 이름을 얻은 것이요, 마읍 ( 馬邑 ) 으로 인하여 이름을 얻은 것은 아니나, 마한은 곧 평양에 도읍하였다가 뒤에 남쪽으로 옮겼음이 사실이니, 평양 곧 '펴라'가 ( 말한 ) 의 옛 서울일 것이요, 신한은 비록 상고할 곳이 없으나 '알티'와 '펴라'의 두 서울이 불·말 두 한을 나누어 점령하였으니, '삼한'이 합이빈 곧 '아스라'에 도읍하였을 것이 의심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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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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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삼조선의 강역의 윤곽도 대개 그릴 수 있으니, 지금 봉천성 ( 奉天省 ) 의 서북과 동북 ( 開原 이북, 興京 이동 ) 과 지금 길림 ( 吉林 ) ·흑룡 ( 黑龍 ) 두 성 ( 省 ) 과 지금 연해주 ( 沿海州 ) 의 남쪽 끝은 신조선의 소유이고, 요동반도 ( 遼東半島 : 開原 이남 , 興京 이서 ) 는 불조선의 소유이며, 압록강 이남은 말조선의 소유였다. 그러나 전쟁의 세상에 고정된 강역이 있을 수 없으니, 시세를 따라 삼조선의 국토가 많이 늘었다 줄었다 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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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상 삼조선(三朝鮮)의 구별 조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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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전하는 삼조선의 구분 기준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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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역사를 읽는 이들이 귀에 서투른 '신조선' , '불조선' '말조선' 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이미 놀랄 것인데, 하물며 전사 ( 前史 ) 에 아무 구별없이 쓴 '조선 ( 朝鮮 ) '이란 명사들을 가져다 구별하여, 갑의 역사에 쓰인 조선을 신조선이라 하고, 을의 역사에 쓰인 조선을 불조선이라 하고 , 병의 역사에 쓰인 조선을 말조선이라 하면 믿을 사람이 누구랴 ? 그러나 삼국사기를 읽어보면 고구려 본기 ( 本紀 ) 에 동·북 두 부여를 구별치 않고 다만 부여라 씌었고, 신라 본기에는 크고 작은 등 다섯 가야 ( 加耶 ) 를 구별치 않고 다만 가야라 씌어 있으니, 만일 전사 ( 前史 ) 에 구별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여 그대로 구별치 아니하면 두 부여사나 다섯 가야사 ( 加耶史 ) 의 본 면목을 회복할 날이 없을 것이 아닌가? 하물며 삼조선의 분립은 조선 고사에 있어서 유일한 큰 일이니, 이를 구별치 못하면 곧 그 이전에 대단군 왕검의 건국의 결론을 찾지 못할 것이요, 그 이후에 동북 부여와 고구려·신라·백제 등의 문화적 발전 서론 ( 緖論 ) 을 얻지 못할 것이니, 어찌 습견 ( 習見 ) 에 젖은 이의 두뇌에 맞추기 위해 삼조선의 사적 ( 事蹟 ) 을 구별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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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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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선의 사적 ( 史的 ) 재료는 오직 사기 ( 史記 ), 위략 ( 魏略 ), 삼국지 ( 三國志 ) 등 지나사 ( 支那史 ) 뿐이지만 저 지나사의 저작자들이 그들의 유전적인 교오병 ( 驕傲病 ) 이 있어서, 조선을 서술할 때에 조선 그 자체를 위하여 조선을 계통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오직 자기네와 정치적으로 관계되는 조선을 서술하였고, 그나마도 왕왕 피차의 성패와 시비를 뒤바꾸어 놓았음이 그 하나요, 조선의 나라 이름·지명 등을 기록할 때에 왕왕 조선인이 지은 본디의 명사를 쓰지 않고 자의로 딴 명사를 지어, 동부여 ( 東扶餘 ) 를 불내예 ( 不耐濊) 라 하고, 오열홀 ( 烏列忽 ) 을 요동성 ( 遼東省 ) 이라 하는 따위의 필법 ( 筆法 ) 이 많음이 그 둘이요, 조선은 특수한 문화가 발달하여 왔는데, 매양 기자 ( 箕子 ) 나 진 ( 奏 ) 나라 유민에게 공을 돌리려 하여 허다한 거짓 증거를 가짐이 그 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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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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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사마천이 사기를 지을 때에 연 ( 燕 ) 의 멸망이 오래지 않았으니 연과 삼조선에 관계된 사실의 상고할 만한 것이 적지 않았을 것이고, 한무제 ( 漢武帝 ) 가 조선의 일부분이요, 삼경 ( 三京 ) 의 하나인 '알티'의 문화고도 ( 文化故都 ) 를 점령하였으니, 고대의 전설과 기록이 적지 않았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기의 조선전 ( 朝鮮傳 ) 은 조선의 문화적·정치적 사실을 하나도 쓰지 않고, 오직 위만 ( 衛滿 ) 과 한병 ( 漢兵 ) 의 동침 ( 東侵 ) 을 썼을 뿐이니, 이는 조선전이 아니라 위만의 소전 ( 小傳 ) 이요, 한나라의 동방 침략의 약사 ( 略史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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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사마천이 사기를 지을 때에 연(燕)의 멸망이 오래지 않았으니 연과 삼조선에 관련된 사실들을 상고할 만한 것이 적지 않았을 것이고, 한무제가 조선의 일부이자 삼경 중 하나인 '알티'의 문화 고도를 점령하였으니, 고대의 전설과 기록이 적지 않았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기의 조선전은 조선의 문화적·정치적 사실을 하나도 쓰지 않고, 오직 위만과 한나라 군대의 동쪽 침략만을 썼을 뿐이니, 이는 조선전이 아니라 위만의 소전이며, 한나라의 동방 침략에 관한 약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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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략, 삼국지 등의 책은 관구검 ( 母兵檢 ) 이 실어간 고구려의 서적으로 재료를 삼았으나 또한 그 폐습의 심리를 가지기는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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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무엇에 의거하여 저들의 기록에 보인 조선들을 가지고 이것이 신조선이니, 말조선이니, 불조선이니 하는 구별을 내릴 것인가? 사기 조선에는 위만이 차지한 불조선만을 조선 ( 朝鮮 ) 이라 쓰는 대신에 신조선은 동호 ( 東胡 ) 라 일컬어서 흉노전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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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이제 사기, 흉노전에서 신조선의 유사 ( 遺事 ) 를, 조선전에서 불조선의 유사를 초출 ( 抄出 ) 하고, 위략이나 삼국지의 동이열전 ( 東夷列傳 ) 의 기록을 교정하여 이를 보충하고 말조선은 지나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지나사의 필두에 오른 일은 적으나, 마한 ( 馬韓 ) ·백제 ( 百濟 ) 의 선대는 곧 말조선 말엽의 왕조이니, 이로써 삼조선이 갈라진 역사의 대강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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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제 사기 흉노전에서 신조선의 유사(遺事)를, 조선전에서 불조선의 유사를 초출하고, 위략이나 삼국지 동이열전의 기록을 교정하여 이를 보충하였으며, 말조선은 지나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지나사의 필두에 오른 일은 적으나, 마한·백제의 선대는 곧 말조선 말엽의 왕조이니, 이로써 삼조선이 갈라진 역사의 대강을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