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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古朝鮮BC 2333 – BC 108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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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3편 삼조선 분립 朝鮮上古史 第3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96개 · 번역 확정 0개
제3편문단 2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삼조선(三朝鮮) 분립의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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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조선의 분립이 시작되다
제3편문단 22번역 대기
원문
대단군 ( 大檀君 ) 의 정제 ( 定制 ) 에는 비록 삼한이 있어 삼경에 나뉘어 머물렀으나, 신한은 곧 대단군이니 제사장으로서 겸하여 정치상의 원수가 되고, 말·불 두 한은 신한을 보좌하는 두 부왕에 지나지 않는 나라의 체제를 확립하였으므로, 삼조선이라는 명칭이 안는 나라의 체제를 확립하였으므로 삼조선이라는 명칭이 없었는데, 삼한이 분립한 뒤 삼조선이란 명사가 생겼음은 이미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삼한이 어느 시대에 분립하였는가? 사기에 보인 진막벌조선은 전연시 (全燕時 ) 곧 연의 전성 시대라고 하였는데, 연의 전성 시대는 지나 전국시대 ( 戰國時代 ) 초이고, '발조선 ( 發朝鮮 ) '을 기록한 관자 ( 管子 ) 는 관중 ( 管仲 ) 이 지은 것이 아니고 전국시대의 위서 ( 僞書 ) 이며 '발숙신 ( 發肅愼 ) '을 기록한 대대례 ( 大戴禮 ) 는 비록 한인 ( 漢人) 대승 ( 載勝 ) 이 지은 것이지마는, 발식신 ( 發息愼) 운운 한것은 제인 ( 齊人 ) 추연 ( 鄒衍 ) 이 전한 것인데, 추연은 전국시대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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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2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신·말·불 삼조선의 명사가 이같이 지나 전국시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니, 삼조선의 분립은 곧 지나 전국시대의 일이요, 지나 전국시대는 기원전 4 세기경이니 , 그러면 기원전 땅 4세기 경에 신·말·불 삼조선이 분립한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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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말기, 부여 삼조선의 이름이 이와 같이 지나 전국시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니, 삼조선의 분열은 곧 지나 전국시대의 일이며, 지나 전국시대는 기원전 4세기경이니, 그러면 기원전 땅 4세기경에 신라, 말기, 부여 삼조선이 분열한 것이겠다.
제3편문단 2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신조선은 성이 해씨 ( 解氏 ) 니, 대단군 왕검의 자손이라 일컬은 자이고, 불조선은 성이 기씨 ( 箕氏 ) 니 기자 ( 箕子 ) 의 자손이라 일컬은 자이고, 말조선은 성이 한씨 ( 韓氏 ) 니 그 선대의 연원은 알 수 없으나, 왕부 ( 王符 ) 의 잠부론 ( 潛夫論 ) 에, “한 ( 韓 ) 의 서쪽도 역시 성이 한 ( 韓 ) 인데 위만 ( 衛滿 ) 에게 토벌당해 바다 가운데로 옮겨가 살았다 ( 韓西亦姓韓 爲衛滿所伐 遷居海中 ). ”고 하였으니, 한서 ( 韓西 ) 는 대개 말조선에 딸린 곳이므로, 말조선은 성이 한씨 ( 韓氏 ) 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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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선은 성이 해씨(解氏)이며, 대단군 왕검의 자손이라 일컫는 사람이고, 불조선은 성이 기씨(箕氏)이며 기자(箕子)의 자손이라 일컫는 사람이고, 말조선은 성이 한씨(韓氏)인데 그 선대의 연원은 알 수 없으나, 『왕부(王符)』의 「잠부론(潛夫論)」에 "한(韓)의 서쪽도 역시 성이 한(韓)이며 위만(衛滿)에게 토벌당하여 바다 가운데로 옮겨가 살았다"고 하였으니, 한서(韓西)는 대개 말조선에 딸린 곳이므로, 말조선은 성이 한씨(韓氏)인 것이라 한다.
제3편문단 25번역 대기
원문
위략 ( 魏略 ) 에, “기자 ( 箕子 ) 의 후손 조선후 ( 朝鮮候 ) 는 주 ( 周 ) 가 쇠해지고 연 ( 燕 ) 이 자존 ( 自尊 ) 하여 왕이 되서 동쪽으로 땅을 공략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조선후도 역시 스스로 왕을 일컫고 군사를 일으켜 연을 배후에서 쳐 주실 ( 周室 ) 을 높이려고 하다가 대부례 ( 大夫禮 ) 가 간하여 그만두고 대부례로 하여금 연을 설득하여 연은 공격하지 않았다 ( 箕子之後朝鮮候 見周衰 燕自尊爲王 欲東略地 朝鮮候亦自稱爲王 欲興兵逆擊燕 以尊周室 大夫禮 諫之乃止 使禮西說燕以之止 不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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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2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 하였는데, 위략은 곧 서양의 백인종인 대진 ( 大秦 ) ·로마 ( 羅馬 ) 까지도 중국인의 자손이라 기록한 가장 지나식의 자존적 ( 自尊的 ) 병심리 ( 病心理 ) 를 발휘한 글이니, 그 글의 전부를 덮어놓고 믿을 수는 없으나 '신한', '불한'을 당시 조선에서 진한·마한·변한으로 음역한 이외에 '신한'은 혹 의역하여 '진왕 ( 辰王 ) ', '태왕 ( 太王 ) '이라고 하였으니 ( 다만 辰王의 辰은 음역 ) '신한'은 한자로 쓰면 조선왕 ( 朝鮮王 ) 이라 하였을 것이요, '말한', '불한'은 의역하여 좌보 ( 左輔 ) ·우보 ( 右輔 ) 라 하였으니, 한자로 쓰면 조선후 ( 朝鮮候 ) 라 하였을 것이므로 기자가 이 때에 '불한'의 지위에 었었으니 조선후라 일컬음이 또한 옳다.
번역
고하였는데, 위략은 곧 서양의 백인종인 대진과 로마까지도 중국인의 자손이라 기록한 가장 지나친 자존적 병심리를 발휘한 글이니, 그 글 전부를 덮어놓고 믿을 수는 없으나 '신한', '불한'을 당시 조선에서 진한·마한·변한으로 음역한 이외에 '신한'은 혹 의역하여 '진왕', '태왕'이라고 하였으니 (다만 진왕의 진은 음역) '신한'은 한자로 쓰면 조선왕이라 하였을 것이요, '말한', '불한'은 의역하여 좌보·우보라 하였으니, 한자로 쓰면 조선후라 하였을 것이므로 기자가 이때에 '불한'의 지위에 있었으니 조선후라 일컬음이 또한 옳다.
제3편문단 2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불한' 조선후 기씨가 '신한' 조선왕 개씨를 배반하고 스스로 '신한'이라 일컬어서 삼조선 분립의 판국을 열었는데, '불한'이 '신한'을 일컬은 것이 연(燕)이 왕을 일컬은 뒤요, 연이 왕을 일컬은 것은사기 에 주 ( 周 ) 에 신정왕 ( 愼王 ) 46 년, 기원전 323 년이니 신·말·불 삼조선의 분립이 기원전 4 세기 경임을 확증하는 것이고, 대부례는 대개 '불한'의 유력한 모사 ( 謨士 ) 니, '불한'을 권하여 '신한'을 배반하고 역시 '신한'이라 일컫게 하고, 연과 결탁하여 동·서 두 새 왕국을 동맹하게 한 이가 또한 대부례이니 대부례는 삼조선 분립을 주동한 중심 인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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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의 조선 후 기씨가 신한의 조선왕 개씨를 배반하고 스스로 신한이라 칭하여 삼조선의 분립 국면을 열었는데, 불한이 신한을 일컫은 것은 연나라가 왕을 일컫은 뒤이며, 연나라가 왕을 일컫은 것은 사기 주(周)에 신정왕 46년, 기원전 323년이니 신·말·불 삼조선의 분립이 기원전 4세기경임을 확증하는 것이고, 대부례는 대체로 불한의 유력한 모사이며, 불한을 권하여 신한을 배반하고 역시 신한이라 일컫게 하고, 연과 결탁하여 동서 두 새 왕국을 동맹하게 한 이가 또한 대부례이니 대부례는 삼조선 분립을 주동한 중심 인물일 것이다.
제3편문단 28번역 대기
원문
삼조선 분립 이전에는 '신한'이 하나였는데, 삼조선이 분립한 뒤에 는 '신한'이 셋이 되었다. 곧 신조선의 '신한'이 그 하나요, 말조선의 '신한'이 그 둘이요, 불조선의 '신한'이 그 셋이니, 곧 대왕 ( 大王 ) 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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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2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제 2 장 삼조선(三朝鮮) 분립 후의 '신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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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삼조선이 나뉜 후의 '신조선'
제3편문단 3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신朝鮮의 서침(西侵)과 연(燕)· 조(趙)· 진(秦)의 장성(長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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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선의 서쪽 침입과 연나라, 조나라, 진나라의 장성
제3편문단 31번역 대기
원문
삼조선이 분립한 뒤 오래지 않아서 신조선왕 모갑 ( 某甲 ) 이 영특하고 용감하여 마침내 말·불 두 조선을 다시 연합해 지금의 동몽고 ( 東蒙古 ) 둥지를 쳐서 선비를 정복하고 연을 쳐 우북평 ( 右北平 )---- 지금의 영평부 ( 永平府 ) 와 어양 ( 漁陽 )---- 지금의 북경 ( 北京 ) 부근과, 상곡 ( 上谷 )---- 지금의 산서성 ( 山西省 ) 대동부 ( 大同府 ) 등지를 다 차지하여 불리지 ( 弗離支 ) 의 옛 땅을 회복했다. 연왕 ( 燕王 ) 이 크게 두려워서 세폐 ( 歲輪 ) 를 신조선에 바치고 신하를 일걷고 태자를 보내서 볼모를 삼게 하였는데, 모갑이 죽고 모을 ( 某乙) 이 왕이 된 뒤에는 연의 태자가 돌아가서 연왕이 되어 장군 진개 ( 秦開 ) 를 왕자라 속여서 볼모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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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3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모을이 그 속임수를 깨닫지 못하고 진개의 민첩하고 지혜로움을 사랑하여 가까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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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을은 그 속임수를 깨닫지 못하고 진개의 날렵함과 지혜로움을 사랑하여 가깝게 두었다.
제3편문단 3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진개는 나라의 모든 비밀을 탐지해 가지고 도망해 돌아가서 군사를 거느리고 와 신조선을 습격, 신 ·말 ·불 세 나라의 군사를 깨뜨리고 서북 변경, 곧 전자에 신조선 왕 모갑이 점령한 상곡·어양·우북평 등지를 빼앗고 나아가 불조선의 변경을 습격해 요서 ( 遼西 )--- 지금의 노룡현 ( 盧龍縣 ) 과, 요동 ( 遼東 )--- 지금의 요양 ( 遼場 ) 부근을 함락시켜,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의 5 군을 두고, 2 천리 장성을 쌓아 조선을 막으니, 사기 조선열전 ( 朝鮮列傳 ) 에, “연의 전성시대에 일찍이 진번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켰다 ( 全燕時嘗略屬眞番 朝鮮 ).
번역
진개는 나라의 모든 비밀을 알아내고 도망쳐 돌아와 군사를 거느리고 와 신조선을 습격하고, 신·말·불 세 나라의 군사를 깨뜨리며 서북 변경, 즉 전자에 신조선 왕 모갑이 점령했던 상곡·어양·우북평 등의 지역을 빼앗고 나아가 불조선의 변방을 습격하여 요서(遼西)—지금의 노룡현(盧龍縣)과 요동(遼東)—지금의 요양(遼場) 부근을 함락시켰다.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의 다섯 군을 두고, 이천 리 장성을 쌓아 조선을 막았으니, 사기 조선열전에는 “연나라가 전성할 때에 일찍이 진번조선을 침략하여 복속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제3편문단 34번역 대기
원문
”고 한 것과 흉노열전에, “연의 어진 장수 진개 ( 秦開 )가 호 ( 胡 ) 에게 볼모가 되어 호가 깊이 믿었는데, 돌아와서 동호 ( 東胡 ) 를 습격하여 깨뜨리니, 동호는 1 천여 리를 퇴각하였다. 연이 또한 장성을 쌓고 조양 ( 造陽 ) 에서부터 양평 ( 襄平 ) 에까지 상곡·어양·우북평·요서·요동의 군을 설치하였다 ( 燕有賢將秦開 爲質於胡 胡甚信之 歸而襲破東胡 東胡却千餘里 燕亦築長城 自造陽 至襄平 置上谷漁陽 右北平 遼西 遼東郡 ). ”고 한 것과 위략에, 연이 장군 진개를 보내 그 서쪽을 공격하여 땅 2 천여 리를 빼앗아 만반한 ( 滿潘汗 ) 에까지 이르렀다 ( 燕乃遺將 秦開 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潘汗 ). ”고 한 것이 다 이를 가리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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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3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나 진개가 볼모로 갔던 신조선이 아니므로, 사기에는 이를 흉노전과 조선전 두 곳에 나누어 기록하였고, 위략에는 비록 조선전에 기록하였으나, 진개의 볼모되었던 사실을 쓰지 아니하였다. 만반한은 조선의 역사 지리상 큰 문제이므로 다음 장에서 다시 말할 것이다.
번역
그러나 진개가 볼모로 갔던 신조선이 아니었으므로, 사기에는 이를 흉노전과 조선전 두 곳에 나누어 기록하였고, 위략에는 비록 조선전에 기록하였으나, 진개의 볼모되었던 사실을 쓰지 않았다. 만반한은 조선의 역사 지리상 큰 문제이므로 다음 장에서 다시 말할 것이다.
제3편문단 3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때 지나 북쪽의 나라로서 조선을 막기 위하여 장성을 쌓은 자는 연 한 나라뿐 아니다. 조 ( 趙 : 지금의 直匠省 서쪽 절반과 河南省 북쪽 끝과 山西省 ) 의 무령왕 ( 武靈王 ) 의 장성 ( 지금 山西의 북쪽 ) 이 또한 조선과 조선의 속민 ( 屬民 ) 인 담림 ( 澹林 )·누번 ( 樓煩 ) 등 때문에 쌓은 것이고, 진 ( 秦 : 지금의 陝西省 ) 소왕 ( 昭王 ) 의 장성은 의거 ( 義渠 ) 를 토멸하고 흉노를 막기 위하여 쌓은 것이지마는, 의거는 원래 조선 종족으로 지금의 감숙성 ( 甘肅省 ) 에 옮겨가서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다. 농사가 발달하여 문화가 상당히 발달되었고 병력이 강하여 진 ( 秦 ) 을 압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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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지나 북쪽 나라로서 조선을 막기 위해 장성을 쌓은 것은 연 한 나라뿐만이 아니다. 조(지금의 직장성 서쪽 절반과 허난성 북쪽 끝과 산서성) 무령왕의 장성은 (지금 산서의 북쪽) 조선과 조선의 속민인 담림·누번 등 때문에 쌓았으며, 진(지금의 섬서성) 소왕의 장성은 의거를 토벌하고 흉노를 막기 위해 쌓은 것이지만, 의거는 원래 조선 종족으로 지금의 감숙성에 옮겨가 성을 쌓고 대궐을 지었다. 농사가 발달하여 문화가 상당히 발전했고 병력이 강하여 진(秦)을 압박하였다.
제3편문단 37번역 대기
원문
진의 선태후 ( 宣太后 : 秦始星의 高祖母 ) 는 절세의 미인이었는데, 의거가 진을 토멸할까 두려워서 의거왕을 꾀어 간통하여 두 아들을 낳게 하고는 의거왕을 불러다 쳐 죽이고, 두 아들까지 죽여버려 그 나라를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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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3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창해역사(滄海力士)의 철퇴와 진시황의 만리장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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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해력사의 철퇴와 진시황의 만리장성
제3편문단 3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신조선이 연·조와 격전을 벌이는 동안에 진이 강성해져서 마침내 한 ( 韓 )·위 ( 魏 )·조 ( 趙 )·연 ( 燕 )·제 ( 齊 )·초 ( 楚 ) 등 지나의 여러 나라를 다 토멸하니, 한인 ( 韓人 ) 장량 ( 張良 ) 이 망국의 한을 품고 조선에 들어와 구원을 청하였다. 왕 모병 ( 某丙 ) 이 장사 여씨 ( 黎氏 ) 를 소개해 주어, 진시황의 순행 ( 巡幸 ) 을 기회하여 120 근 철퇴를 가지고 양무현 ( 陽武縣 ) 박랑사 ( 博浪沙 ) 가운데서 그를 저격하다가 잘못 부거 ( 副車 ) 를 부수고 성공치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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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조선이 연나라와 조나라와 격전을 벌이는 동안에 진나라가 강성해져 마침내 한, 위, 조, 연, 제, 초 등 지나의 여러 나라를 모두 멸망시키자, 한 사람 장량이 망국의 한을 품고 조선에 들어와 구원을 청하였다. 왕 모병이 장사 여씨를 소개해 주어, 진시황의 순행을 기회로 삼아 120 근 철퇴를 가지고 양무현 박랑사 가운데서 그를 저격하다가 잘못 부거를 부수고 성공하지 못하였다.
제3편문단 40번역 대기
원문
사기에 장량이 창해군 ( 滄海君 ) 을 보고 장사를 구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어떤 이는 창해를 강릉 ( 江陵 ) 이라 하고, 창해군을 강릉의 군장 ( 郡長 ) 이라고 하며, 장사 여씨를 강릉 출생이라 하였지마는, 창해는 동부여의 딴 이름이고, 동부여 두 나라는 1) 북갈사 ( 北曷思 : 지금의 琿春 ) 2) 남갈사 ( 南曷思 : 지금의 咸興 ) 에 도읍했으니, 창해는 이 두 곳 중의 하나요, 강릉이 창해라는 설은 근거없는 말이다. 얼마 안 가서 진시황이 동북쪽의 조선과 서북쪽의 흉노를 염려하여 옛날의 연·조 ·진의 장성을 연결하여 건축하는데, 전 지나의 인민을 동원하여 부역에 종사하게 하고 장군 몽념 ( 寒恬 ) 으로 하여금 30 만 군사를 거느려 감독케 해서 동양 사상 유명한 이른바 만리장성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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