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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古朝鮮BC 2333 – BC 108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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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3편 삼조선 분립 朝鮮上古史 第3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96개 · 번역 확정 0개
제3편문단 4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기원전 210 년에 진시황이 죽고, 이세 ( 二世 ) 가 즉위하매, 이듬해에 진승 ( 陳勝 )·항적 ( 項籍 )·유방 ( 劉邦) 등 혁명 군웅이 봉기하여 진을 멸망시켰다. 이두산 ( 李斗山 ) 이 이를 논하여 말하기를, “진 ( 秦) 의 위력이 태고 이래로 짝이 없도록 팽창하여, 만성 ( 萬成 : 모든 사람 ) 이 바야흐로 시황을 천신 ( 天神 ) 으로 우러러보는데, 난데없이 벽력 같은 철퇴가 시황의 혼백을 빼앗고, 여섯 나라 ( 한 ·위 ·조 ·연 ·제 ·초 ) 의 유민의 적개심을 뒤흔들어 놓았으므로, 시황의 시체가 땅에 들어가기 전에 진을 멸망시키려는 깃발이 사방에 날렸으니, 이는 창해역사의 공이 아니랄 수 없다.”고 하였다 .
번역
기원전 210년에 진시황이 죽고 이세가 즉위하자, 다음 해에 진승, 항적, 유방 등 혁명 군웅들이 봉기하여 진을 멸망시켰다. 이두산이 이를 논하며 말하기를, "진의 위력이 태고 이래로 비할 데 없이 팽창하여 만성이 바야흐로 시황을 천신으로 우러러보는데, 갑자기 벽력 같은 철퇴가 시황의 혼백을 빼앗고, 여섯 나라(한·위·조·연·제·초) 유민들의 적개심을 뒤흔들어 놓았으므로, 시황의 시체가 땅에 묻히기 전에 진을 멸망시키려는 기세가 사방에 날렸으니, 이는 창해역사의 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제3편문단 4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흉노 모돈(冒頓)의 동침(東侵)과 신조선의 위축 ===
번역
흉노 모돈이 동쪽으로 침범하고 신조선이 약해짐
제3편문단 43번역 대기
원문
지나의 항적·유방 등의 8 년 동란이 계속되는 사이에 신조선왕 모정 ( 某丁) 이 서쪽으로 출병하여 상곡 ( 上谷 )·어양 ( 漁陽 ) 등지를 회복하고, 지금의 동부 몽고 일대 선비의 항복을 받아서 국위가 다시 떨치더니, 그 자손의 대에 마침내 흉노 모돈 ( 冒頓 ) 의 난을 만나 국세가 도로 쇠약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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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4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흉노는 제 1 편에서 말한 바와 같이 조선과 어계 ( 語系 ) 가 같고, 조선과 같이 `수두'를 신봉하여 조선의 속민이 되었었는데, 지금의 몽고 등지에 흩어져서 목축과 사냥에 종사하였다. 천성이 침략을 즐겨 자주 지나의 북부를 짓밟고, 신조선에 대하여도 배반과 귀부 ( 歸附 ) 가 무상하였는데, 기원전 200 년경에 두만 ( 頭曼) 이 흉노선우 ( 匈奴單于 : 흉노 大酋長의 호 ) 가 되어, 맏아들 모돈 ( 冒頓 ) 을 미워하고 작은 아들〔小子〕을 사랑하다가 모돈에게 죽고 모돈이 대신 선우가 되었다.
번역
흉노는 제 1 편에서 말한 바와 같이 조선과 어계가 같고, 조선과 같이 '수두'를 신봉하여 조선의 속민이 되었었는데, 지금의 몽골 등지에 흩어져서 목축과 사냥에 종사하였다. 천성이 침략을 즐겨 자주 지나의 북부를 짓밟고, 신조선에 대하여도 배반과 귀부가 무상하였는데, 기원전 200년경에 두만이 흉노 선우가 되어, 맏아들 모돈을 미워하고 작은 아들을 사랑하다가 모돈에게 죽고 모돈이 대신 선우가 되었다.
제3편문단 4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신조선왕은 그가 사납고 음흉함을 모르고 자주 물건을 요구하였는데, 모돈은 짐짓 그 환심을 사기 위해 신조선왕이 천리마를 구하면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말을 주고, 신조선왕이 미인을 구하면 그는 그의 알씨 ( 閼氏 : 선우의 妻妾 ) 를 주니, 신조선왕은 더욱 모돈을 믿어 사자를 보내서 두 나라 중간의 천여리 구탈 ( 脫 ) 을 신조선의 소유로 달라고 하였다.
번역
신조선왕이 그가 사납고 음흉한 것을 모르고 자주 물건을 요구하였는데, 모돈은 일부러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신조선왕이 천리마를 구하면 자신이 아끼는 말을 주고, 신조선왕이 미인을 구하면 자신의 알씨(<0xE9><0x96><0xBC>氏)를 주니, 신조선왕은 더욱 모돈을 믿어 사자를 보내 두 나라 사이의 천여리 구탈(脫)을 신조선의 소유로 달라고 하였다.
제3편문단 46번역 대기
원문
구탈이란 당시 중립 지대 빈 땅을 일컫는 말인데, 모돈이 이 청구를 받고는 크게 노하여, “토지는 나라의 근본인데 어찌 이것을 달라하느냐.” 하고 드디어 사자를 죽이고 전 흉노의 기병을 모두 내어 신조선의 서쪽인 지금의 동부 몽고 등지를 습격하여 주민을 유린하고 선비를 수없이 학살하였다. 신조선은 퇴각하여 장성 밖 수천 리의 땅을 버리고 선비의 남은 무리들은 선비산 ( 鮮卑山 )---- 지금의 내외 흥안령 ( 興安嶺 ) 부근으로 도주하니, 이로부터 신조선이 아주 미약하여 오랫동안 이웃 종족과 겨루지 못하였다. 엄복 ( 嚴復 : 淸末의 학자 ) 이 말하기를, “흉노를 물과 풀을 따라 옮겨다니는 야만족이니, 어찌 토지는 나라의 근본이란 말을 내었으랴? 이는 한갓 사마천의 과장된 글이 될 뿐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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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4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나 사기, 한서 등을 참고해 보면, 흉노가 음산 ( 陰山 ) 의 험한 목을 빼앗긴 뒤엔 그 지방을 지나는 자가 반드시 통곡하였다 하고, 연지 ( 燕脂 ) 가 생산되는 언지산 ( 焉支山 ) 을 빼앗긴 뒤에는 슬픈 노래를 지어 서로 위로하였으니, 흉노의 토지 수요 ( 需要 ) 가 비록 문화적 민족과 같지 못하다 하더라도 아주 토지에 대한 관념이 없다 함은 편벽된 판단인가 한다.
번역
그러나 사기나 한서 등을 참고해 보면, 흉노가 음산의 험한 목을 빼앗긴 뒤에는 그 지방을 지나는 사람이 반드시 통곡했다고 하고, 연지가 생산되는 언지산을 빼앗긴 뒤에는 슬픈 노래를 지어 서로 위로했으니, 흉노의 토지 수요가 비록 문화적 민족과 같지 못하다 하더라도 아주 토지에 대한 관념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편벽된 판단이라고 한다.
제3편문단 4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제 3 장 삼조선(三朝鮮) 분립 후의 '불朝鮮' ==
번역
제 3장 삼조선이 나뉜 뒤의 '불초선'
제3편문단 49번역 대기
원문
=== '불朝鮮'의 서북 변경을 빼앗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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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5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불조선이 신조선과 합작하다가 연에게 패하였음은 이미 앞에서 말했으므로 여기에서는 다만 그 잃은 땅이 얼마나 되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위략에, “진개 ( 秦開 ) 가 그 서쪽을 공격하여 땅 2 천여 리를 빼앗아 만반한에까지 이르렀다 ( 秦開攻其西方 取地二千餘里 至滿播汗爲界 ). ”고 하여, 선유 ( 先儒 ) 들은 조선과 연의 국경을 지금의 산해관 ( 山海關 ) 으로 잡고, 진개가 빼앗은 2 천여 리를 산해관 동쪽의 종선 ( 從線 ) 2 천여 리로 잡아서 만반한을 대동강 이남에서 찾으려고 하였지마는 이는 큰 착오요 억지 판단이다.
번역
불조선이 신조선과 합작하다가 연에게 패하였음은 이미 앞에서 말했으므로 여기에서는 다만 그 잃은 땅이 얼마나 되는가를 말하고자 한다. 위략에, “진개가 그 서쪽을 공격하여 땅 이천여 리를 빼앗아 만반한에까지 이르렀다”고 하여, 선유들은 조선과 연의 국경을 지금의 산해관으로 잡고, 진개가 빼앗은 이천여 리를 산해관 동쪽의 종선 이천여 리로 잡아 만반한을 대동강 이남에서 찾으려고 하였으나 이는 큰 착오요 억지 판단이다.
제3편문단 5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사기나 위략을 참조해보면, 진개가 빼앗은 토지가 분명히 상곡에서 부터 요동까지이니 만반한을 요동 이외에서 찾으려 함은 옳지 못하다.
번역
사기나 위략을 참고해 보면, 진나라가 빼앗은 땅이 분명히 상곡부터 요동에 이르니, 만반의 근원을 요동 밖에서 찾으려는 것은 옳지 않다.
제3편문단 52번역 대기
원문
한서지리지에 의거하면 요동군현 ( 遼東郡縣 ) 중에 '문 ( 汶 ) · 번한 ( 番汗 )'의 두 현이 있으니, 만반한은 곧 이 문번한이다. 문현 ( 汶縣 ) 은 비록 그 연혁이 전해지지 못하였으나, 번한 ( 番汗) 은 지금의 개평 등지 이므로 문현도 개평 부근일 것이니, 반만한은 지금의 해성 · 개평 등의 부근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 만반한을 대동강 이남에서 구하려 함은 무엇에 의거함인가? 대개 만반한은 진개가 침략해왔을 때의 지명이 아니고, 후세 진 ( 秦) 나라 때 혹은 한 ( 漢 ) 나라 때의 명칭임을, 위략의 저작자가 이를 가져다가 진개 침략 때 두 나라의 국경을 입증한 것일 것이며, 번한 ( 番汗 ) 은 '불한'의 옛 서울 부근임으로 하여 이름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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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5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사기의 1 천여 리는 신조선이 잃은 땅만 지적한 것이요, 위략의 2 천 여 리는 신 · 불 두 조선이 잃은 땅을 아울러 지적한 것이니, 상곡 · 어양 일대는 신조선이 잃은 땅이요, 요동 ( 遙東 ) · 요서 ( 遙西 ) · 우북평 ( 右北平 ) 일대는 불조선이 잃은 땅이다. 만반한은 사군 ( 四郡 ) 연혁의 문제와 관계가 매우 깊은 것이니, 이 절 ( 節 ) 은 독자가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번역
사기에서 언급된 천여 리는 신조선이 잃은 땅만을 지적한 것이고, 위략에서 언급된 이천여 리는 신과 불 두 조선이 잃은 땅을 아울러 지적한 것이다. 상곡과 어양 일대는 신조선이 잃은 땅이며, 요동, 요서, 우북평 일대는 불조선이 잃은 땅이다. 만반한은 사군 연혁의 문제와 관계가 매우 깊으니, 이 절은 독자가 잘 기억해 두어야 한다.
제3편문단 5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불朝鮮'의 진(秦)·한(漢)과의 관계 ===
번역
'부조선의 진나라와 한나라와의 관계'
제3편문단 55번역 대기
원문
연왕 ( 燕王 ) 희 ( 喜 ) 가 진시황에게 패하여 요동으로 도읍을 옳기니, 불조선이 지난날 연에 대한 오래된 원한을 잊지 못하여 진과 맹약하고 연을 토벌하였는데, 얼마 안 가서 진시황이 몽념으로 하여금 장성을 쌓아 요동에 이르렀다. 불조선이 진과 국경을 정하는데, 지금의 헌우란 ( ) 이남의 연안 수백 리 땅엔 두 나라의 백성이 들어가 사는 것을 금했다. 사기의 이른바 고진공지 ( 故秦空地 ) 란 이것을 가리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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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5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위략에 의거하면 이때에 불조선왕의 이름을 '부 ( 否 ) '라 하였으나 위략과 마찬가지로 관구검이 실어간 고구려의 문헌으로 자료를 삼은 삼국지와 후한서의 동이열전 ( 東夷列傳 ) 에는 부 ( 否 ) 를 기록하지 아니하였으니, 위략에서 신조선 말엽의 왕 곧 동부여왕 ( 東扶餘王 ) 이 된 부루 ( 夫婁 ) 를 부 ( 否 ) 로 와전함인가 하여 여기에 채용하지 아니한다.
번역
위략에 의거하면 이때 불조선왕의 이름을 '부(否)'라 하였으나, 위략과 마찬가지로 관구검이 실어간 고구려의 문헌으로 자료를 삼은 삼국지와 후한서의 동이열전에는 부(否)를 기록하지 않았으니, 위략에서 신조선의 말엽의 왕 곧 동부여왕이 된 부루(夫婁)를 부(否)로 와전한 것이 아닌가 하여 여기에 채용하지 않는다.
제3편문단 5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기원전 200 여 년경에 기준 ( 箕準 ) 이 불조선왕이 되어서는 진의 진승 · 항적 · 유방 ( 漢高祖 ) 등이 모반하여 지나가 크게 어지러워져서 상곡 · 어양 · 우북평 등지의 조선 옛 백성과 연 ( 燕) · 제 ( 齊 ) · 조 ( 趙 ) 의 지나인들이 난을 피하여 귀화하는 자가 많은지라, 기준이 이들에게 서쪽의 옛 중립 공지 ( 空地 ) 에 들어가 사는 것을 허락하였는데, 한고조 유방이 지나를 통일하자 기준이 다시 한과 약조를 정하여 옛 중립 공지는 불조선의 소유로 하고, 헌우란으로 국경을 삼았다. 사기 조선전 에, “한 ( 漢 ) 이 일어나니 물러나 패수 ( 浿水 ) 로 경계를 삼았다 ( 漢興...至浿水爲界 ).
번역
기원전 200여 년경에 기준이 불조선왕이 되었으나, 진의 진승, 항적, 유방(한고조) 등이 모반하여 지나가 크게 어지러워지자 상곡, 어양, 우북평 등지의 조선 옛 백성과 연나라, 제나라, 조나라의 지나인들이 난을 피해 귀화하는 자가 많아 기준이 이들에게 서쪽의 옛 중립 공지에 들어가 사는 것을 허락하였다. 한고조 유방이 진을 통일하자 기준은 다시 한과 약조를 정하여 옛 중립 공지는 불조선의 소유로 하고, 헌우란으로 국경을 삼았다. 사기 조선전에는 "한나라가 일어나니 패수로 경계를 삼았다"라고 하였다.
제3편문단 58번역 대기
원문
”고 하고, 위략에, “한이 일어나자 노관 ( 盧) 으로 연왕 (燕王) 을 삼고, 조선은 연과 패수를 경계로 하였다 ( 乃漢以盧爲燕王 朝鮮興燕 界於水 ). ”고 한 것 ( 先儒들이 는 浿의 잘못이라 했으므로 이를 쫓는다 ) 이 다 이것을 가리킨 것이니, 대개 불조선과 연이 만반한으로 경계를 정했다가 이제 만반한 이북으로 물러났으니, 두 책의 패수 ( 浿水 ) 는 다 헌우란을 가리킨 것임이 분명하다. 선유들이 왕왕 대동강을 패수라고 고집함은 물론 큰 잘못이거니와, 근일 일본의 백조고길 ( 白鳥庫吉 ) 등이 압록강 하류를 패수라고 하니 또한 큰 망발이다. 위의 패수에 관한 논술은 앞 절의 만반한과 다음 절의 왕검성과 대조하여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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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5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위만(衛滿)의 반란과 '불朝鮮'의 남천(南遷) ===
번역
위만의 난과 '불조선'의 남쪽으로 이동
제3편문단 6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기원전 194 년에 한 ( 漢 ) 의 연왕 ( 鮮王 ) 노관 ( 盧) 이 한을 배반하다가 패하여 흉노로 도망하고, 그의 무리 위만 ( 衛滿 ) 은 불조선으로 들어와 귀화하니, 준왕 ( 準王 ) 이 위만을 신임하여 박사관 ( 博士官 ) 에 임명해서 패수 서쪽 강변 ( 옛 중립 공지 ) 수백 리를 주어 그곳에 이주한 구민 ( 舊民 ) 과 연 · 제 · 조의 사람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번역
기원전 194년에 한나라의 선왕 노관이 한을 배반하다가 패하여 흉노로 도망하였고, 그의 무리 위만은 불조선으로 들어와 귀화하니, 준왕이 위만을 신임하여 박사관에 임명하고 패수 서쪽 강변(옛 중립 공지) 수백 리를 주어 그곳에 이주한 구민과 연·제·조의 사람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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