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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古朝鮮BC 2333 – BC 108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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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3편 삼조선 분립 朝鮮上古史 第3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96개 · 번역 확정 0개
제3편문단 61번역 대기
원문
위만이 이로 인하여 군사를 만들어 더욱 조선과 지나의 망명 죄인을 데려다가 결사대를 만들어, 그 병력이 강대해지자, “한나라 군사가 10도 ( 道 ) 로 침략해 들어온다.”는 거짓 보고를 준왕에게 보고하고 준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들어와 왕을 시위하기를 청하여 허락을 얻어가지고 정병으로 달려와 기준의 서울 왕검성을 습격하니, 준왕이 항거해 싸우다가 전세가 불리하여 좌우 궁인 ( 宮人) 을 싣고 패잔한 군사로 바닷길을 쫓아 마한의 왕도 ( 王都 ) 월지국 ( 月支國 ) 으로 들어가서 이를 쳐 깨뜨리고 왕이 되었는데, 오래지 않아 마한의 여러 나라가 함께 일어나서 준왕을 토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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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6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왕검성은 대단군 ( 大檀君 ) 제 1 세의 이름으로 그 이름을 삼은 것인데, 대단군의 삼경 ( 三京 )---- 지금의 합이빈과 지금의 평양과 앞서 말한 불한의 옛 도읍인 지금의 개평 동북쪽 이 세 곳이다. 왕검성이란 이름을 가졌었을 것이니, 위만이 도읍한 왕검성은 곧 개평 동북쪽 이다. 한서지리지의, “요동군 ( 遼東郡 ) 험독현 ( 險瀆縣 : 註에 滿의 도읍이라 했다 ) ”이 그것이요, “마한의 왕도는 지금의 익산 ( 益山 ) 이다.” 라고 하나, 대개 잘못 전해진 것이다. 다음 장에서 논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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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검성은 대단군 제1세의 이름으로 그 이름을 삼은 것인데, 대단군의 세 경(三京)은 지금의 합이빈과 지금의 평양, 그리고 앞서 말한 불한의 옛 도읍인 지금의 개평 동북쪽 이 세 곳이다. 왕검성이라는 이름을 가졌었을 것이니, 위만이 도읍했던 왕검성은 곧 개평 동북쪽이다. 한서지리지에 기록된 “요동군 험독현(險瀆縣: 주석에 만의 도읍이라 했다)”이 그것이며, “마한의 왕도는 지금의 익산이다”라고 하나, 이는 대개 잘못 전해진 것이다. 다음 장에서 논술할 것이다.
제3편문단 6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제4장 삼조선(三朝鮮) 분립 후의 '말朝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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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삼조선이 나뉜 뒤의 말나라
제3편문단 64번역 대기
원문
=== '말朝鮮'의 천도(遷都)와 마한(馬韓)으로의 국호 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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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6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말조선의 처음 수도가 평양임은 이미 앞에서 말하였는 바, 그 후( 연대는 불명 )에 국호를 말한〔馬韓〕이라 고치고, 남쪽의 월지국으로 천도하였다가, 불조선왕 기준에게 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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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조선의 처음 수도가 평양이었음은 이미 앞에서 말하였으며, 그 후(연대는 불명)에 국호를 말한이라 고치고 남쪽의 월지국으로 천도하다가, 불조선왕 기준에게 망하였다.
제3편문단 6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 천도한 원인이 무엇인지 이전 역사서에 보인 곳이 없으나, 대개 신 · 불 양 조선이 흉노와 중국의 잇따른 침략을 받아서 북방의 전운(戰雲)이 빈번하고 급하므로, 말조선왕이 난리에 염증을 느껴서 마침내 남쪽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천도하는 동시에 모든 침략주의를 가진 역대 제왕들의 칼 끝에서 빛나던 '조선'이라는 명사는 외국인이 시기하고 미워하는 바라 하여, 드디어 말조선이란 칭호를 버리고, 지난날에 왕호 ( 王號 ) 로 쓰던 '말한'을 국호로 써서 이두 로 마한 ( 馬韓 ) 이라 쓰고, 새로 쓰는 왕호인 '신한'은 이두로 진왕 ( 辰王 ) 이라 써서 '마한국 ( 馬韓國 ) 진왕 ( 辰王 ) '이라고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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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천도하게 된 원인이 이전 역사서에 보인 곳이 없으나, 대개 신·불 양 조선이 흉노와 중국의 연달은 침략을 받아 북방의 전운이 빈번하고 급했기 때문에, 말조선왕이 난리에 염증을 느껴 마침내 남쪽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천도하는 동시에 모든 침략주의를 가진 역대 제왕들의 칼끝에서 빛나던 '조선'이라는 명사는 외국인들이 시기하고 미워하는 바라 하여, 드디어 말조선이란 칭호를 버리고, 지난날에 왕호로 쓰던 '말한'을 국호로 써서 이두로 마한이라 쓰고, 새로 쓰는 왕호인 '신한'은 이두로 진왕이라 써서 '마한국 진왕'이라고 일컬었다.
제3편문단 67번역 대기
원문
똑같은 '한'이란 명사를 하나는 음을 따서 한 ( 韓 ) 이라 하여 국호로 쓰고 또 하나는 뜻을 따서 왕이라 하여 왕호로 씀은, 문자상 국호와 왕호의 혼동을 피한 것이다. 국호를 마한이라 쓰는 동시에 왕조는 한씨 ( 韓氏 ) 가 세습하여 국민들이 한씨왕의 존재만 아는 고로, 기준이 그 왕위를 빼앗고는 국민의 불평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본래의 성 기씨 ( 箕氏 ) 를 버리고 한씨 ( 韓氏 ) 로 고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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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6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삼국지에, “준 ( 準 )- - - 달아나 바다로 들어가서 한 ( 韓 ) 의 땅에서 살며 한왕 ( 韓王 ) 이라 이름하였다 ( 準- - - 走入海 居韓地 號韓王 ). ”고 하였고, 위략에는, “준의 아들과 친척으로 나라에 머물러 있는 자는 성을 한씨라 하였다 ( 準子及親 留在國者 冒姓韓氏). ”고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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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는 "준이 바다로 들어가 한나라 땅에 거주하며 한왕이라 불렀다"라고 하였고, 위략에는 "준의 아들과 친척으로 나라에 머무는 자는 성을 한씨라 하였다"라고 하였다.
제3편문단 69번역 대기
원문
월지국을 전사 ( 前史 ) 에는 백제의 금마군 ( 金馬君 : 지금의 益山 ) 이라고 하였지마는, 이것은 속전 ( 俗傳 ) 의 익산군 마한 무강왕릉 ( 武康王陵 ) 이라는 것을 인하여 무강왕을 기준의 시호 ( 諡號 ) 라 하고, 부근 미륵산 ( 彌勒山 ) 의 선화부인 ( 善化夫人)의 유적을 기준의 왕후 선화 ( 善花 ) 의 유적이라 하여, 마침내 기준이 남으로 달아나서 금마군 ( 金馬郡) 에 도읍하였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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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70번역 대기
원문
그러나 무강왕릉은 딴 이름이 말통대왕릉 ( 末通大王陵) 이요, 말통은 백제 무왕 ( 武王 ) 의 어릴 때 이름 ( 무왕의 이름은 '마동'이니 삼국유사의 薯童은 그 의역이고, 고려사 지리지의 末通은 그 음역 ) 이요, 선화는 신라 진평대왕 (眞平大王 ) 의 공주로서, 무왕의 후 ( 后 ) 가 된 아이고, 백제를 왕왕 마한이라 함은 역사에 그 예가 적지 아니하니, 이따위 고적은 한갓 익산 ( 益山 ) 이 백제의 옛 서울임을 증명함에는 부족할뿐더러, 마한 50 여국 중에 월지국과 건마국 ( 乾馬國 ) 이 있으니, 건마국이 금마군 ( 金馬郡) 곧 지금의 익산일 것이므로, 월지국 ----마한의 옛 서울은 다른 나라에서 찾음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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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7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 확실한 지점은 알 수 없으나 마한과 백제 ( 백제 건국 13 년 ) 의 국경이 웅천 ( 熊川 )---- 지금의 공주 ( 公州 ) 이니, 월지국이 대개 그 부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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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확실한 지점은 알 수 없으나 마한과 백제(백제 건국 13년)의 국경이 웅천(熊川)에서 지금의 공주이니, 월지국이 대개 그 부근일 것이다.
제3편문단 7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말한이 비록 국호가 되었지마는, 그 5,6 백 년 후에도 오히려 왕호 ( 王號 ) 로 쓴 이가 있다. 신라의 눌지 ( 訥祗 ) · 자비 ( 慈悲 ) · 소지 ( 炤智 ) · 지증 ( 智證 ) 네 왕은 다 '마립간 ( 麻立干 ) '이라 일컬었는데, 눌지 마립간 ( 訥祗麻立干 ) 의 주에, “마립은 말 ( 말뚝 ) 이다 ( 麻立也 ) ”라 하였으니, 궐 ( 橛 ) 은 글자 뜻이 '말'이므로, 마립 ( 麻立 ) 의 '마 ( 麻 ) '는 그 전성 ( 全聲 ) 을 취하여 '마'로 읽고, '입 ( 立 ) '은 그 초성 ( 初聲 ) 을 취하 여 ' 己 '로 읽고, '간 (干) '은 그 전성을 취하여 '한'으로 읽는 것임이 명백하므로 마립간은 곧 '말한'이요, 말한을 왕호로 쓴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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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한이 비록 나라 이름이 되었으나, 그로부터 오육 백 년 후에도 오히려 왕의 호(號)로 쓴 이가 있다. 신라의 눌지·자비·소지·지증 네 왕은 모두 '마립간'이라 불렀는데, 눌지 마립간의 주석에 "마립은 말뚝이다"라고 하였으니, 궐 자는 글자 뜻이 '말'이므로, 마립의 '마'는 그 전성을 취하여 '마'로 읽고, '입'은 그 초성을 취하여 '기'로 읽으며, '간'은 그 전성을 취하여 '한'으로 읽는 것이 분명하므로 마립간은 곧 '말한'이며, 말한을 왕호로 쓴 증거이다.
제3편문단 73번역 대기
원문
=== 낙랑(樂浪)과 남삼한(南三韓)의 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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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7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마한이 월지국으로 도읍을 옮긴 뒤에 그 옛 도읍 평양에는 최씨 ( 崔氏 ) 가 일어나서 그 부근 25 국을 통속하여 한 대국이 되었으니, 전사 ( 前史 ) 에 이른바 낙랑국 ( 樂浪國 ) 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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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이 월지국으로 도읍을 옮긴 뒤에 옛 도읍 평양에는 최씨가 일어나 그 부근의 스물다섯 나라를 통속하여 한 대국이 되었으니, 전사에 이르러 낙랑국이 그것이다.
제3편문단 7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낙랑이 이미 분리되매, 마한이 지금의 임진강 이북을 잃었으나 오히려 임진강 이남 70여국을 통솔하더니, 오래지 아니하여 북방에서 지나와 흉노의 난리를 피하여 마한으로 들어오는 신 · 불 두 조선의 유민이 날로 많아지므로, 마한이 지금의 낙동강 연안 오른편의 1 백여 리 땅을 떼어 신조선의 유민들에게 주어 자치계 ( 自治: 고대에 모임을 계라 하였음 ) 를 세워서 이름을 '진한부 ( 辰韓部 ) '라 하고, 낙동강 연안 오른편의 땅을 얼마간 떼서 불조선의 유민들에게 주어 또한 자치계를 세워서 '변한부 ( 弁韓部 ) '라 일컬었다. 변한에는 신조선의 유민들도 섞여 살았으므로 변진부 ( 弁辰部 ) 라고도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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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이 이미 분리되자, 마한은 지금의 임진강 이북 지역을 잃었으나 오히려 임진강 이남의 칠십여 국을 통솔하였다. 그리하여 오래지 않아 북방에서 지나와 흉노의 난리를 피해 마한으로 들어오는 신과 불 두 조선의 유민이 날로 많아졌다. 이에 마한은 지금의 낙동강 연안 오른쪽 백여 리 땅을 떼어 신조선의 유민들에게 주어 자치계를 세우고 그 이름을 '진한부'라 하였으며, 낙동강 연안 오른쪽의 땅을 얼마간 떼어 불조선의 유민들에게 주어 또한 자치계를 세우고 '변한부'라 일컫었다. 변한에는 신조선의 유민들도 섞여 살았으므로 '변진부'라고도 일컬었다.
제3편문단 76번역 대기
원문
이것이 남삼한 ( 南三韓 ) 이니 마한이 구태여 진 · 변 두 한을 세운 것은 또한 삼신 ( 三神 ) 에 따라 삼의 수를 채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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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7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대단군 왕검의 삼한이 중심 주권자가 되고 말 · 불 두 한은 좌우의 보상 ( 輔相 ) 이 되었는데, 이제 남삼한은 말한 곧 마한이 가장 큰 나라, 곧 종주국이 되고, 신한 곧 진한과 불한 곧 변한이 두 작은 나라 ( 소속국 ) 가 된 것은, 그 이주민의 계통을 좇아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거니와, 삼한이 다 왕을 '신한'이라 일컬어서 ( 이를테면 마한의 왕은 말한 나라의 신한이라 하고, 진한의 왕은 신한나라의 신한이라 하고, 변한의 왕은 불한나라의 신한이라 하였음 ) 신한이 셋이 되니, 대개 앞의 것 ( 신한 셋 ) 은 삼조선 분립 이후에 세 신한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 며, 진 · 변 두 한의 두 신한은 자립하지 못하고 대대로 마한의 신한이 겸해 가져서 이름만 있고 실제가 없었으니 이는 남삼한의 창례 ( 創例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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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군 왕검의 삼한이 중심 주권자가 되고 말과 불 두 한은 좌우의 보상(輔相)이 되었는데, 이제 남삼한은 마한 곧 마한이 가장 큰 나라, 즉 종주국이 되고, 신한 곧 진한과 불한 곧 변한이 두 작은 나라(소속국)가 된 것은, 그 이주민의 계통을 따라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삼한이 모두 왕을 '신한'이라 일컫기에 (예를 들어 마한의 왕은 말한 나라의 신한이라 하고, 진한의 왕은 신한나라의 신한이라 하고, 변한의 왕은 불한나라의 신한이라 하였음) 신한이 셋이 되니, 대개 앞의 것(신한 셋)은 삼조선 분립 이후에 세 신한의 이름을 그대로 쓴 것이며, 진과 변 두 한의 두 신한은 자립하지 못하고 대대로 마한의 신한을 겸하여 가져 이름만 있을 뿐 실제가 없었으니 이는 남삼한의 창례이다.
제3편문단 7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삼한은 우리 역사상에 비상히 시비가 많은 문제로 되었지마는 종래의 학자들이 다만 삼국지 삼한전(三韓傳)의 삼한 곧 남삼한을 의거하여, 그 강역의 위치를 결정하려 할 뿐이고 1) 삼한의 명칭의 유래와, 2) 삼한의 예제(禮制)의 변혁을 알지 못하여, 비록 공력은 많이 들였으나 북방 원유(原有)의 삼한을 발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남삼한과의 상호 관계도 명백히 알아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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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은 우리 역사상에 매우 논쟁이 많은 문제로 되었지만, 종래 학자들은 다만 『삼국지』 삼한전의 남삼한을 근거로 그 강역의 위치를 정하려 할 뿐이며, 1) 삼한이라는 명칭의 유래와, 2) 삼한의 예제(禮制)의 변화를 알지 못하여, 비록 많은 공력을 들였으나 북방에 원래 있던 삼한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남삼한과의 상호 관계도 분명히 알아내지 못하였다.
제3편문단 79번역 대기
원문
=== 낙랑(樂浪) 25개국과 남삼한(南三韓) 70여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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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문단 8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낙랑의 여러 나라로 역사에 보인 것이 25 이니, 조선 ( 朝鮮 ) · 감한( 邯邯 ) · 패수 ( 浿水 ) · 함자 ( 含資 : 貪資라고도 함 ) · 점선 ( 黏蟬 ) · 수성 ( 遂城 ) · 증지 ( 增地 ) · 대방 ( 帶方 ) · 사망 ( 駟望 ) · 해명 ( 海冥 ) · 열구 ( 列 口 ) · 장잠 ( 長岑 ) · 둔유 ( 屯有 ) · 소명 ( 昭明 ) · 누방 ( 鏤方 ) · 제해 ( 提奚 ) · 혼미 ( 渾彌 ) · 탄렬 ( 呑列 ) · 동이 ( 東𦖮 ) · 불이 ( 不而 : 不耐라고도 함 ) · 잠대 ( 蠶臺 ) · 화려 ( 華麗 ) · 야두미 ( 邪頭味 ) · 전막 ( 前莫 ) · 부조 ( 夫租 ) : 沃沮 의 잘못인 듯 ) 등이니 , 위의 25 국은 한서지리지에 한 ( 漢 ) 낙랑군 ( 樂浪郡) 의 25 현 ( 縣 ) 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한서의 본문이 아니라,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하려고 할 때에 그 신하와 백성 들의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조선이 거의 다 지나의 옛 땅임을 위증 ( 僞證 ) 하고자 전대 지나의 역사책 중에서 조선에 관계되는 것틀을 죄다 가져다가 많이 고칠 때, 조선 고대의 낙랑 25 국을 낙랑군 25 현으로 고쳐 한서지리지에 넣은 것이니, 이는 제 4 편에서 다시 자세히 논술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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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랑의 여러 나라로 역사에 기록된 것이 스물다섯이니, 조선, 감한, 패수, 함자(탐자라고도 함), 점선, 수성, 증지, 대방, 사망, 해명, 열구, 장잠, 둔유, 소명, 누방, 제해, 혼미, 탄렬, 동이, 불이(불내라고도 함), 잠대, 화려, 야두미, 전막, 부조(와거의 잘못인 듯) 등이니, 위의 스물다섯 국은 한서지리지에 한 낙랑군의 스물다섯 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한서 본문이 아니라,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침략하려고 할 때 그 신하들과 백성들의 적개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조선이 거의 다 지나의 옛 땅임을 거짓으로 증거하고자 전대의 지나 역사책 중에서 조선에 관련된 것을 모두 가져다가 많이 고칠 때, 조선 고대의 낙랑 스물다섯 국을 낙랑군 스물다섯 현으로 고쳐 한서지리지에 넣은 것이니, 이는 제 4 편에서 다시 자세히 논술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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