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古朝鮮BC 2333 – BC 108문헌 원문 · 번역
조선상고사 제2편 수두시대
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기 ( 古記 ) 에 이르기를, “단군 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어 하우 ( 夏禹 ) 를 도산 ( 塗山 ) 에서 만났다. ”고 하였고, 또 오월춘추 ( 吳越春秋 ) 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이 있어, “당요 ( 庸寶 ) 때에 9 년 동안 홍수가 져서 당요가 하우에게 명하여 이를 다스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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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古記)에 이르기를, "단군 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어 하우를 도산에서 만났다."라고 하였고, 또 오월춘추(吳越春秋)에도 이와 비슷한 기록이 있어, "당요 때에 9년 동안 홍수가 나서 당요가 하우에게 명하여 이를 다스리라 하였다.
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우 ( 禹 ) 가 8 년 동안이나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매우 걱정하여, 남악 ( 南嶽) ·형산 ( 衝山 ) 에 이르러 흰 말을 잡아 하늘에 제사 드려 성공을 빌었는데, 꿈에 어떤 남자가 스스로 현이 ( 玄夷 ) 의 창수사자 ( 蒼水使者 ) 라 일걷고, 우에게 말 하기를, 구산 ( 九山 ) 동남쪽의 도산 ( 逢山 ) 에 신서 ( 神書 ) 가 있으니, 석달동안 재계 ( 齋戒 ) 하고 그것을 꺼내보라 하므로 우가 그 말에 의하여 금간옥첩 ( 金簡玉牒 ) 의 신서를 얻어 오행통수 ( 五行通水 ) 의 이치를 알아 홍수를 다스려 성공하고, 이에 주신 ( 州愼 ) 의 덕을 잊지 못하여 정전 ( 井田 ) 을 제정하고, 율도량형 ( 律度量衡) 의 제도를 세웠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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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가 8년 동안 공을 이루지 못하고 매우 걱정하여 남악과 충산에 이르러 흰 말을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어 성공을 빌었는데, 꿈에 어떤 남자가 스스로 현이의 창수사자라 일컫고 우에게 말하기를, 구산 동남쪽의 봉산에 신서가 있으니, 석 달 동안 재계하고 그것을 꺼내보라고 하므로 우가 그 말에 의하여 금간옥첩의 신서를 얻어 오행통수의 이치를 알아 홍수를 다스려 성공하고, 이에 주신의 덕을 잊지 못하여 정전을 제정하고, 율도량형의 제도를 세웠다.
제2편번역 대기
원문
현이 ( 玄夷 ) 는 당시 조선의 동 ·남 ·서 ·북 ·중 오부를 남 ( 藍 ) ·적( 未 ) ·백 ( 白 ) ·현 ( 玄: 黑 ) ·황 ( 黃 ) 으로 별칭했는데, 북부가 곧 현부 ( 玄部 ) 이니 지나인이 현부를 가리켜 현이 ( 玄夷 ) 라고 한 것이요, 창수 ( 蒼水 ) 는 곧 창수 ( 擔水 ) 이고, 주신 ( 州愼 ) ·숙신 ( 肅愼 ) ·직신 ( 稷愼 ) 혹은 식신 ( 息愼 ) 으로 번역되었으니, 주신은 곧 조선을 가리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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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옛 기록의 부루는 오월춘추 ( 吳越春秋 ) 의 창수사자이니, 이때 지나에 큰 홍수가 있었음은 여러 가지 옛 역사가 다 같이 증명하는 바인데, 단군 왕검이 그 수재를 구제해주려고 아들 부루를 창해사자 ( 滄海 使者 ) 에 임명하여 도산에 가서 하우를 보고, 삼선오제교 ( 三神五帝敎 ) 의 일부분인 오행설 ( 五行說: 水火金土木 ) 을 전하고 치수 ( 治水 ) 의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므로 우 ( 禹 ) 는 왕이 되자 부루의 덕을 생각하여 삼신오제의 교의를 믿고 이를 지나에 전포 ( 傳布 ) 하였으며, 정전과 율도량형도 또한 지나의 창작이 아니라 조선의 것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꿈에 창수사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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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록의 부루는 『오월춘추』의 창해사자이니, 이때 지남에 큰 홍수가 있었음은 여러 가지 옛 역사가 다 같이 증명하는 바인데, 단군 왕검이 그 수재를 구제해주려고 아들 부루를 창해사자로 임명하여 도산에 가서 하우를 보고, 삼신오제교의 일부분인 오행설(물, 불, 쇠, 땅, 나무)을 전하고 치수의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므로 우는 왕이 되자 부루의 덕을 생각하여 삼신오제의 교의를 믿고 이를 지남에 전포하였으며, 정전과 율도량형도 또한 지남의 창작이 아니라 조선의 것을 모방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꿈에 창해사자를 만났다.
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 하였는가 ? 신성 ( 神聖 ) 을 장식하여 사실을 신화화함이니, 이는 상고에 흔히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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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하였는가? 신성함을 꾸며내어 사실을 신화로 만든 것이니, 이는 옛날부터 흔한 일이다.
제2편번역 대기
원문
=== 기자(箕子)의 동래(東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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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번역 대기
원문
하우가 홍수를 다스린 공으로 왕이 되어 국호를 하 ( 夏 ) 라 하고, ‘수두’의 교를 흉내내어 도산에서 받은 신서 ( 神書 ) 를 홍범구주 ( 洪範九疇 )라 이름하여 신봉하였는데 하가 수백 년만에 망하고 상 ( 商 ) 이 뒤를 이어 또한 수백 년만에 망하고 주 ( 周 ) 가 일어나서는 주무왕 ( 周武王 ) 이 홍범구주를 배척하므로 은 ( 股 ) 의 왕족 기자 ( 箕子 ) 가 새로 홍범구주를 지어 무왕과 변론하고 조선으로 도망하니, 지금 상서 ( 尙書 ) 의 홍범 ( 洪範 ) 이 곧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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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홍범편 ( 洪範篇 ) 가운데, “초일 ( 初一 ) 은 오행 ( 五行 ) 이요, 차이 ( 次 二 ) 는 경용오사 ( 敬用五事 ) 요, 차삼 ( 次三 ) 은 농용팔정 ( 農用八政 ) 이요, 차사 ( 次四 ) 는 협용오기 ( 協用五紀 ) 요, 차오 ( 次五 ) 는 건용황극 ( 建用皇極 ) 이요, 차육 ( 次六 ) 은 예용삼덕 (乂 用三德 ) 이요, 차칠 ( 次七 ) 은 명용계의 ( 明用稽疑 ) 요, 차팔 ( 次八 ) 은 염용서정 ( 念用庶徵 ) 이요, 차구 ( 次 九 ) 는 향용오복 ( 嚮用五福 ) ·위용육극 ( 威用六極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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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일은 오행이며, 다음 둘째는 경건하게 다섯 가지 일을 사용하는 것이고, 다음 셋째는 농사에 필요한 여덟 가지 정치요, 다음 넷째는 함께 사용하여 다섯 가지 기를 세우는 것이며, 다음 다섯째는 황극을 세워 사용하고, 다음 여섯째는 예로써 세 가지 덕을 다스리는 것이며, 다음 일곱째는 밝게 하여 의심하는 것을 사용하는 것이고, 다음 여덟째는 생각하여서 널리 구하는 것을 사용하며, 다음 아홉째는 향하여 다섯 가지 복을 누리고 위엄으로 여섯 가지 극치를 이루는 것이다.
제2편번역 대기
원문
첫째 오행은 일은 수 ( 水 ), 이는 화 ( 火 ), 삼은 목 ( 木 ), 사는 금 ( 金 ), 오는 토 ( 土 ) 요, 둘째 오사 ( 五事 ) 는 일은 모 ( 貌 ), 이는 언 ( 言 ), 삼은 시 ( 視 ), 사는 청( 聽 ), 오는 사 ( 思 ) 요, 셋째 팔정 ( 八政 ) 은 일은 식 ( 食 ), 이는 화 ( 貨 ), 삼은사 ( 祝 ), 사는사공 ( 司空 ), 오는사도 ( 司徒 ), 육은사구 ( 司寇 ), 칠은 빈 ( 賓 ), 팔은 사 ( 師 ) 요, 넷째 오기 ( 五紀 ) 는 일은 세 ( 歲 ), 이는 월 ( 月 ), 삼은 일 ( 日 ), 사는 성진 ( 星辰 ), 오는 역수 ( 歷數 ) 요, 다섯째 황극 ( 皇極 ) 은 황건기유극 ( 皇建其有極 ), 여섯째 삼덕 ( 三德、 ) 은 일은 정직 ( 正直 ), 이는 강극 ( 剛克 ), 삼은 유극 ( 柔克 ) 이요, 일곱째 계의 ( 稽疑 ) 는 택건립복서인 ( 擇建立卜筮人 ) 이요, 여덟째 서징 ( 庶徵 ) 은 우 ( 雨 ) ·양 ( 暘 ) ·오 ( 오 ) ·한 ( 寒 ) ·풍 ( 風 ) 이요, 아홉째 오복 ( 五福 ) 은 일은 수 ( 壽 ), 이는부 ( 富 ), 삼은강녕 ( 康寧 ), 사는 유호덕 ( 攸好德 ), 오는 고종명 ( 考終命 ) 이요, 육극 ( 六極 ) 은 일은 흉단절 (凶短折 ), 이는 질 ( 疾 ), 삼 은 우 ( 憂 ), 사는 빈 ( 貧 ), 오는 악 ( 惡 ), 육은 약 ( 弱 )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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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라고 하였는 테, 이러한 문구는 곧도산 ( 塗山 ) ·신서 ( 神書 ) 의 본문이고, 그 나머지 는 기자 ( 箕子 ) 가 연술 ( 演述 ) 한 것이다. 천내석우 홍범구주 ( 天乃錫禹 洪範 九疇) 는 곧 기자가 단군을 가리켜 천 ( 天 ) 이라 하고 단군으로 부터 전수받은 것을 천이 주었다고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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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문구는 곧 도산(塗山)의 신서 본문이며, 나머지는 기자(箕子)가 연술한 것이다. 하늘이 우에게 홍범 구주를 내리신 것은 기자가 단군을 가리켜 하늘이 주었다고 전수받은 것이라고 함이다.
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는 ‘수두’의 교의에 단군을 하늘의 대표로 보기 때문이고, 기자가 조선으로 도망한 것은 상 ( 商 ) 이 주 ( 周 ) 에게 망하는 동시에 상의 국교 인 ‘수두’교가 압박을 받으므로 고국을 버리고 수두교의 조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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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수두'의 교리에 단군을 하늘의 대표로 보기 때문이며, 기자가 조선으로 도망한 것은 상이 주에게 망하는 동시에 상의 국교인 '수두'교가 압박을 받으므로 고국을 버리고 수두교의 조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제2편번역 대기
원문
한서 ( 漢書 ) 에 거북이 문자를 등에 지고 낙수 ( 洛水 ) 에서 나왔으므로 우 ( 禹 ) 가 홍범 ( 洪範 ) 을 연술하였다 했지마는, 역 ( 易 ) 의 계사 ( 擊辭 ) 에 ,“황하 ( 黃河 ) 에서 그림이 나오고 낙수 ( 洛水 ) 에서 글씨가 나와, 성인이 이것을 본받았다 ( 河出畵 洛出書 聖人則之 ). ”라 하여 분명히 하도 ( 河圖 ) 낙서 ( 洛書 ) 가 다 역괘 ( 易卦) 지은 원인임을 기록하였는데, 이제 낙수 거북의 글씨로 인하여 홍범을 지었다고 함은 어찌 망령된 증명이 아니랴 ( 위 일절은 淸儒 毛奇齡의 설을 채택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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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오월춘추에 의거하여 홍범 오행이 조선에서 전해간 것으로 믿음이 옳고, 또 초사 ( 楚辭 ) 에 의거하여 동황태일 ( 東皇太一 ) 곧 단군 왕검을 제사하는 풍속이 호북 ( 湖北 ) ·절강 ( 浙江 ) 등지에 많이 유행하였음을 보면, 대개 하우가 형산에서는 하늘에 제사하고, 도산에서는 부루에 게서 신서를 받은 곳이므로 가장 ‘수두교’가 유행한 지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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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춘추에 의거하여 홍범 오행이 조선에서 전해진 것이 옳다고 믿을 만하며, 또한 초사(楚辭)에 의거하여 동황태일 곧 단군 왕검을 제사하는 풍속이 호북·절강 등지에 많이 유행했음을 보면, 대개 하우가 형산에서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도산에서는 부루에서 신서를 받은 곳이므로 가장 '수두교'가 유행한 지방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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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노(匈奴)의 휴도(休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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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노의 휴도
제2편번역 대기
원문
‘수두교’가 지나 각지에 퍼졌음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사기, 흉노전에 의거하면, 흉노도 조선과 같이 5 월에 하늘에 제사 지내 는데, 천제를 형상한동인 ( 銅人 ) 을‘휴도 ( 休屠 ) 라 불렀으니, 곧 ‘수두’ 의 번역이요, 휴도의 제사를 맡은 사람을 휴도왕 ( 休掉王 ) 이라하여 또 한 단군이라는 뜻과 비슷하며, 휴도에 삼룡 ( 三龍 ) 을 모시니, 용은 또 한 신을 가리킨 것이다. 삼룡은 곧 삼신이니, 흉노족도 또한 ‘수두교’ 를 수입하였음이 의심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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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대의 종교와 정치가 구별이 없어 종교상의 제사장이 곧 정치상의 원수이며, 종교가 전파되는 곳이 정치상의 속지 ( 屬地 ) 이니, 대단군 이래 조선의 교화가 지나 ·흉노 등의 각 민족에 널리 퍼졌음으로 언하 여 정치상 강역 ( 疆域 ) 이 확대되었음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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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는 종교와 정치가 구별이 없어 종교상의 제사장이 곧 정치상의 원수였으며, 종교가 전파되는 곳이 정치상의 속지였으므로, 대단군 때부터 조선의 교화가 지나 · 흉노 등의 각 민족에 널리 퍼져 언하 여 정치상 강역이 확대되었음을 볼 것이다.
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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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漢字)의 수입(輸入)과 이두문(吏讀文)의 창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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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유입과 이두문의 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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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조선 상고에 조선글이 있었다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아무 증거가 없는 말이니 최초에 쓴 것이 한자일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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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한자가 어느 때 수입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대개 땅이 지나와 이어져 있어서 두 민족은 기록 이전부터 교통이 있었을 것이니, 한자의 수입도 기록 이전의 일이었음이 명백하다. 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어 도산에서 우에게 금간옥첩 ( 金簡玉牒 ) 의 글을 가르쳐주었는데, 이 글자는 곧 한자였을 것이니, 조선이 한자를 익혔음이 이미 오래 되었음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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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가 언제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개 땅이 이어져 있어 두 민족은 기록 이전부터 교류가 있었을 것이므로, 한자의 유입 역시 기록 이전의 일임이 분명하다. 왕검이 아들 부루를 보내 도산에서 우에게 금간옥첩의 글을 가르쳤는데, 이 문자는 곧 한자였을 것이니, 조선이 한자를 익힌 지 이미 오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 뒤에 한자의 음 혹은 뜻을 빌려 이두문을 만들었는데, 이두문은 곧 조선 고대의 국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국서 ( 國書 ) ’ , ‘향 서 ( 獅書 ) ’ 혹은 ‘가명 ( 假名 ) ’이라 일컫고 고려조 이후에 비로소 이두문이라 일컬었으나, 이제 통속 ( 通俗 ) 의 편의를 위하여 고대의 것까지 이두문이라 하거니와, 흔히 이두문을 신라 설총 ( 韓聽 ) 이 지은 것이라고 하지마는 설총 이전의 옛 비석 ( 진흥왕 巡狩碑 따위 ) 에도 가끔 이두문으로 적은 시가 ( 詩歌 ) 가 있으니, 설총 이전에 만든 것임이 의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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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한자의 음이나 뜻을 빌려 이두문을 만들었는데, 이두문은 곧 조선 고대의 국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국서’, ‘향서’ 혹은 ‘가명’이라 일컫고 고려조 이후에 비로소 이두문이라 일컬었으나, 이제 통속의 편의를 위하여 고대의 것까지 이두문이라 하거니와, 흔히 이두문을 신라 설총이 지은 것이라고 하지만 설총 이전의 옛 비석(진흥왕 순수비 따위)에도 가끔 이두문으로 적은 시가(詩歌)가 있으니, 설총 이전에 만든 것임이 의심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