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古朝鮮BC 2333 – BC 108문헌 원문 · 번역
조선상고사 제2편 수두시대
제2편번역 대기
원문
그러면 어느 시대에 만들어진 것일까 ? 임금을 왕검이라 번역하여 왕 ( 王 ) 은 그 글자의 뜻에서 소리의 처음 절반을 취하여 ‘임’으로 읽고 검 ( 檢 ) 은 그 글자의 음에서 소리의 전부를 취하여 ‘금’으로 읽으며, ‘펴라’를 낙랑 ( 樂浪 ) 이라 번역하여 낙 ( 樂 ) 은 글자의 뜻에서 소리의 처음 절반을 취하여 ‘펴’로 읽고, 랑 ( 浪 ) 은 글자의 음에서 소리의 처음 절반을 취하여 ‘라’로 읽은 것이 곧 이두문의 시초니, 적어도 이제부터 3천 년 전 --기원 전 10 세기경에 이두문이 제작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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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림〔圖繪〕이 진보하여 글자 文字가 되고 형자 ( 形字 ) 가 진보하여 음자 ( 音字 ) 가 됨은 인류 문화사의 통칙이니, 형자인 한자를 가져다가 음자인 이두문을 만듬은 페니키아 인이 이집트 형자의 편방 ( 偏 傍: 글 자의 한 부분 ) 을 따라서 알파벳을 만듬과 같은 예로 볼 만한 문자사상의 한 진보라 할 것이요, 후세의 거란문〔契丹文〕 ·여진문 ( 女直文 ) 이 모두 이두문을 모방한 것이므로 인류 문화에 도움을 준 공덕도 적지 아니하다 하겠으나, 다만 그 모자라고 유감스러운 점은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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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진보하여 문자가 되고 형자가 진보하여 음자가 된 것은 인류 문화사의 통칙이니, 형자인 한자를 가져다가 음자인 이두문을 만든 것은 페니키아인이 이집트 형자의 편방을 따라서 알파벳을 만든 것과 같은 예로 볼 만한 문자사상의 한 진보라 할 것이요, 후세의 거란문과 여진문이 모두 이두문을 모방한 것이므로 인류 문화에 도움을 준 공덕도 적지 아니하다 하겠으나, 다만 그 모자라고 유감스러운 점은
제2편번역 대기
원문
자음 모음을 구별하지 못함이니, 예컨대 ‘가’는 자음 ‘ㄱ’과 모음‘ ㅏ ’의 음철 ( 音綴 ) 이요, ‘라’는 자음 ‘ ㄹ’과 모음‘ ㅏ ’의 음철인데, 이를 구별치 아니하여 한 음철이 한 글자가 되어 ‘가’를 ‘加’ 혹‘家’로 쓰고, ‘라’ 는 ‘良’ 혹은 ‘羅’로 써서 음자 ( 音字 ) 의 수효가 너무 많으며, b. 음표 ( 音標 ) 를 확정하지 못함이니, 예컨대 백 ( 白 ) 자 한 자를 ‘백활 ( 白活 ) ’ 이라 쓰고는 ‘발’로 읽고, ‘위백제 ( 爲白齊 ) ’라고 쓰고는 ‘살’로 읽으 며, ‘이 ( 矣 ) ’자 한 자를 ‘의신 ( 矣身 ) ’이라 쓰고는 ‘의’로 읽고, ‘교의 ( 敎矣) ’라 쓰고는 ‘대’로 읽어 아무런 준직 ( 準則 ) 이 없으며,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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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번역 대기
원문
상음 하몽 ( 上音下蒙 ) 의 이치를 획청 ( 劃淸 ) 하지 않음이니, 예컨대 ‘달이’를 ‘월이 ( 月伊 ) ’라 쓰지 않고 ‘윌리 ( 月利 ) ’라 써서 ‘달이’로 읽으며, ‘바람이’를 ‘풍이 ( 風伊 ) ’라 쓰지 않고 ‘풍미 ( 風味 ) ’라 써서 ‘바람이’로 읽어서, 언어의 근간 ( 根幹 ) 과 지엽 ( 技葉 ) 이 서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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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므로 이두문으로 적은 시나 글은 물론이요, 인명이나 지명이나 관명 같은 것도 오직 같은 시대, 같은 지방 사람들이 그 관습에 의하여 서로 해득할 뿐이고, 다른 시대, 다른 지방사람은 입을 벌릴 수가 없으니, 문자가 사회 진화에 도움된다 함은 저 사실과 사상을 이에 전달해주기 때문인데, 이제 이 같은 곤란이 있어 갑 시대, 갑 지방의 기록을 을 시대, 을 지방에서 해득하지 못한다면 어찌 문화 발전의 이기 (利器 ) 가 될 수 있으랴 ? 그런데 옛날 사람이 이두문을 쓴 지 1 천여 년 동안에 그 미비한 점을 개정하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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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이두문으로 적은 시나 글은 물론이고, 인명이나 지명이나 관명 같은 것도 오직 같은 시대, 같은 지방 사람들이 그 관습에 의하여 서로 이해할 뿐이며, 다른 시대, 다른 지방사람은 입을 열 수가 없으니, 문자가 사회 진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저 사실과 사상을 여기에 전달해주기 때문인데, 이제 이와 같은 곤란이 있어 갑 시대, 갑 지방의 기록을 을 시대, 을 지방에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찌 문화 발전의 도구가 될 수 있으랴? 그런데 옛사람이 이두문을 쓴 지 천여 년 동안 그 미비한 점을 고치지 못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당시에는 늘 적국의 외환 ( 外愚 ) 으로 인해서 정치상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일체 글을 적국 ( 敵國 )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이 같이 불통일하고 불확실한 글을 쓴 것이고 삼조선 (三朝鮮) 이 무너지자 여러 나라가 병립하매 한조선 안에도 서로의 적국이 많아서 한 명사나 한 동사나 한 토거리를 더욱 가지각색으로 써서 동부여 사람이 북부여의 이두문을 알지 못하며, 신라 사람이 고구려의 이두문을 알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이두문의 그같이 불통일하고 불확정한 방식으로 되었음이 학적 재지 ( 才智 ) 가 부족하여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거의 정치상의 장애로 말미암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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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늘 적국의 외환으로 인해 정사상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일체의 글을 적국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이와 같이 불통일하고 불확실한 글을 쓴 것이며, 삼조선이 무너지자 여러 나라가 병립하여 한조선 안에도 서로의 적국이 많아 한 명사나 한 동사나 한 토거리를 더욱 가지각색으로 써서 동부여 사람이 북부여의 이두문을 알지 못하고 신라 사람이 고구려의 이두문을 알지 못하였으니, 그러므로 이두문이 그같이 불통일하고 불확정한 방식으로 된 것이 학적 재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거의 정사상의 장애로 말미암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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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신지(神誌)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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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전사 ( 前史 ) 에 단군 때에 신지 ( 神誌 ) 라는 사람이 있어 사관 ( 史官 ) 이 됐다 하였으나, 사실은 신지는 곧 ‘신치’의 번역이요, ‘신치’는 ‘신크 치’의 약자요, ‘신크치’는 ‘신가’의 별칭이요, ‘신가’는 앞에서 말한 다섯 가의 수석 ( 首席 ) 대신이니, ‘신치’ 곧 ‘신가’가 늘 ‘신수두’의 제일 ( 祭日 ) 에 우주 창조의 신화와 영웅 ·용사 등이 행한 일과 예언, 유 의, 경계하는 이야기를 노래하여 역대로 예가 되었는데, 후세에 문사 ( 文士 ) 들이 그 노래를 거두어 한 책을 만들고, 그 벼슬 이름 ‘신치’로 책 이름을 한 것이니, 이른바 신지가 곧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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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에 단군 때에 신지라는 사람이 있어 사관이 되었다 하였으나, 사실은 신지는 곧 '신치'의 번역이며, '신치'는 '신크 치'의 약자이고, '신크치'는 '신가'의 별칭이며, '신가'는 앞에서 말한 다섯 가지 수석 대신이다. 따라서 '신치', 즉 '신가'는 늘 '신수두'의 제일에 우주 창조 신화와 영웅 및 용사 등이 행한 일과 예언, 유교적 가르침, 경계하는 이야기를 노래하여 역대로 예가 되었는데, 후세에 문사들이 그 노래를 모아 한 권의 책을 만들고, 그 벼슬 이름인 '신치'로 책 이름을 지은 것이니, 이른바 신지가 곧 그것이다.
제2편번역 대기
원문
이제 신지의 원서가 없어져서 그 가치의 어떠함을 알 수 없으나, 그 책 이름이 이두문으로 지은 것이니, 그 내용의 기사도 이두문으로 기재한 것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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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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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김위제전 ( 金謂 傳 ) 에 신지비사 ( 神誌秘詞 ) 의 ‘여칭추극기 ( 如秤錘極器 ) ·칭간부소량 ( 秤幹扶蘇樑 ) ·추자오덕지 ( 錘者五德地 ). 극기백아강 ( 極器百牙岡 ) ·조항칠십국 ( 朝降七十國 ) ·뇌덕호선정 ( 賴德 護神精 ) ·수미균평위 ( 首尾均平位 ) ·흥방정태평 ( 興邦定太平 ) ·약폐삼 유지 ( 若廢三 諭地 ) ·왕업유쇠경 ( 王業有衰傾) ’의 1O 구를 싣고, 부소량 ( 扶蘇樑 ) 은 지금의 송도 ( 松都 ), 오덕지 ( 五德地 ) 는 지금의 한양, 백아 강 ( 百牙岡) 은 지금의 평양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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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나 송도 ·한양 ·평양은 고려의 삼경 ( 三京 ) 이고, 단군의 삼경은 하나는 지금의 합이빈이니, 고사에 부소갑 ( 扶蘇岬) ·비서갑 ( 非西岬 ) 혹은 아사달 ( 阿斯達 ) 로 기록한 것이고, 하나는 지금의 해성 ( 海城 ) ·개평 ( 蓋平 ) 등지이니, 고사에 오덕지 ( 五德地 ) ·오비지 ( 五備地 ) ·안지홀 ( 安地忽 ) 혹은 안시성 ( 安市城 ) 으로 기록한 것이고, 또 하나는 지금의 평양이니, 고사에 백아강 ( 百牙岡 ) ·낙랑 ( 樂浪 ) ·평원 ( 平原 ) 혹은 평양 ( 平穰 ) 으로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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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송도와 한양과 평양은 고려의 삼경이며, 단군의 삼경은 하나는 지금의 합이빈이니, 고사에 부소갑이나 비서갑 또는 아사달로 기록하였고, 다른 하나는 지금의 해성과 개평 등지이니, 고사에 오덕지나 오비지나 안지홀 혹은 안시성으로 기록하였으며, 또 하나는 지금의 평양이니, 고사에 백아강이나 낙랑이나 평원 혹은 평양으로 기록한 것이다.
제2편번역 대기
원문
이두문 읽는 법에 부소 ( 扶蘇 ) ·비서 ( 非西 ) ·아사 ( 阿斯 ) 는 ‘ 아스’로 읽고, 오덕 ( 五德 ) ·오비 ( 五備 ) ·안지 ( 安地 ) 안시 ( 安市 ) 는 ‘아리’로 읽고, 백아강 ( 百牙岡 ) ·낙랑 ( 樂浪 ) ·평원 ( 平原 ) ·평양 ( 平穰) 은 ‘펴 라’로 읽는 것이니, 위의 비사 1O 구는 이두문의 신지를 한시로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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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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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삼국 말엽에 한학 ( 漢學 ) 이 흥성하여 한학자들이 전에 이두문 으로 기록된 시와 글을 한시와 한문으로 번역함을 시도하였으니 ( 최치원의 鄕藥雜詠 향약잡영 따위 ), 신지의 한시 번역도 그 한 예이다. 어찌하여 비사 ( 秘詞 ) 라 일컬었는가 ? 고대의 역사 종류를 성서 ( 聖書 ) 라 하여 대궐 안에 비장해두어 민간에 유행함을 허락하지 아니한 때문이다. 신지와 신지비사 따위가 어찌하여 하나도 후세에 전해지지 못하였는가 ? 이는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할 때 왕궁의 비장이 불에 타고 신라의 것이 겨우 전하여 고려조까지도 왕궁에 한 벌이 있어 이조에 와서는 이를 서운관 ( 書雲觀 ) 에 두었었는데, 역시 이조 임진왜란의 불에 타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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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조선의 전성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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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전성시대
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기원전 10 세기 경으로 부터 그 뒤 약 5,6 백 년 동안은 대 단군 조선의 전성시대이다. 수문비고 ( 修文備考 ) 에 고죽국 ( 孤竹國: 지금의 永平府 ) 은 조선종 ( 朝鮮種 ) 이라 하였는데 백이 ( 伯夷 ) ·숙제 ( 寂齊 ) 형제는 고죽국의 왕자로서 왕위 상속권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지나의 주 ( 周: 지금의 陝西省 ) 를 우람하다가 주무왕 ( 周武王 ) 에게 격렬히 비전론 ( 非戰論 ) 을 주장하였으며, 고대 지나의 강회 ( 江淮 ) 지역에 조선인이 많이 옮겨가 살아서 숱한 소왕국을 건설하였는데, 그 중 서언왕 ( 徐偃王 ) 이 가장 두드러지게 일어나서 인의 ( 仁義 ) 를 행하여 지나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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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세기경부터 그 뒤 약 5,6백 년 동안은 대단군 조선의 전성시대였다. 수문비고에 고죽국(지금의 영평부)은 조선종이라 하였는데, 백이와 숙제 형제는 고죽국의 왕자로서 왕위 상속권을 아낌없이 버리고 지나의 주를 거닐다가 주무왕에게 격렬하게 비전론을 주장하였다. 또한 고대 지나의 강회 지역에 조선인이 많이 이주하여 살면서 수많은 소왕국을 건설하였는데, 그중 서언왕이 가장 두드러지게 일어나 인의를 행하여 지나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제2편번역 대기
원문
이상은 조선의 본국과 정치적 관계가 없는 식민 ( 殖民 ) 중의 한두 호걸의 행동이거니와, 기원전 5,6 세기경에 불리지 ( 弗離支 ) 라는 사람이 조선의 군사를 거느리고 지금의 직예 ( 直匠) ·산서 ( 山西 ) ·산동 ( 山東 ) 등지를 정복하고, 대현 ( 代縣 ) 부근에 한 나라를 세워 자기의 이름으로 나라 이름을 삼아 불리지국 ( 弗離支國 ) 이라 하니, 주서 ( 周書 ) 의 ‘불령지 ( 弗令支 ) ’와 사기의 ‘이지 ( 離支 ) ’가 다 불리지국을 가리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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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불리지는 또한 그가 정복한 지방을 그 성 ‘불 ( 弗 ) ’의 음으로써 지명을 지었으니, 요서 ( 遺西 ) 의 ‘비여 (肥如)나 산동 ( 山東 ) 의 ‘부역 ( 鳧繹 ) ’이나, 산서 ( 山西 ) 의 ‘비이 ( 卑耳: 管子라는 책에 보임 ) ’가 ‘불’의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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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지는 또한 그가 정복한 지방을 그 성 '불'의 음으로 지명을 지었으니, 요서의 '비여'나 산동의 '부역', 혹은 산서의 '비이'가 '불'의 번역이다.
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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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에 요동반도와 산동반도가 다 땅이 연이어져 있었고, 발해는 하나의 큰 호수였는데, 발해의 발 ( 渤 ) 도 음이 ‘불’이고, 또한 불리지가 준 이름이니, 불리지가 산동을 정복한 뒤에 조선의 검은 원숭이 〔 〕 ·담비〔짧〕 ·여우〔孤〕 ·삵〔狸〕 등의 털가죽옷과 비단 등 직물을 수출하여 발해를 중심으로 하여 상업이 크게 떨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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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요동반도와 산동반도가 땅으로 이어져 있었고, 발해는 하나의 큰 호수였는데, 발해의 발(渤)은 음이 ‘불’이고, 또한 불리지가 준 이름이다. 불리지가 산동을 정복한 뒤에 조선의 검은 원숭이, 담비, 여우, 삵 등의 털가죽옷과 비단 같은 직물을 수출하여 발해를 중심으로 상업이 크게 번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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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쇠약(衰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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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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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 세기 말에 조선이 고죽 ( 孤竹 ) 을 의거해서 불리지국 ( 弗離支國 ) 과 합하여 연 ( 戀 ) 과 진 ( 晉) 을 치니, 연과 진이 제 ( 齊 ) 에 구원을 청하였다. 이때 제의 환공 ( 桓公 ) 이 어진 재상 관중 ( 管仲 ) 과 이름난 장수 성부 ( 城父 ) 를 얻어 지나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조 ( 曺 ) ·위 ( 衛 ) ·허 ( 許 ) ·노 ( 魯 ) 등 10 여 나라의 군사를 거느리고 연을 구원하고자 태행산 ( 太行山 ) 을 넘어 불리지국을 격파하고, 연을 지나서 고죽과 싸워 이겼으므로 조선은 후퇴하여 불리지의 옛 땅을 다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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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세기 말에 조선이 고죽을 의거하여 불리지국과 합쳐 연과 진을 치니, 연과 진이 제에 구원을 청하였다. 이때 제의 환공이 어진 재상 관중과 이름난 장수 성부를 얻어 지나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조·위·허·노 등 10여 나라의 군사를 거느리고 연을 구원하고자 태행산을 넘어 불리지국을 격파하고, 연을 지나서 고죽과 싸워 이겼으므로 조선은 후퇴하여 불리지의 옛 땅을 다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