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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古朝鮮BC 2333 – BC 108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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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고사 檀奇古史

전(傳) 대야발 · 1986 국역 · 저본 고동영 역(1986)
문단 390개 · 번역 확정 39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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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나 또한 생각하기를, 단기(檀奇) 2천년사가 반드시 실사(實史)가 있을 터 인데 아직 상고할 데가 없는 것은, 여러번 병화(兵火)를 겪으면서 역사를 보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므로 어찌 통탄하지 않으리오 하였더니, 밝은 하늘은 사실로써 헛 되이 돌아가게 아니 하심으로 유(柳)씨로 하여금 이 원본을 얻어 세상에 드러나게 하였다. 유씨가 가져온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며, 그가 평생에 갈망하던 열성 중에 서 얻어온 것이므로 누가 기쁘게 읽지 않으며 누가 말하며 전하지 않겠는가. 실로 우리 단기 2천년사가 다시 이 세상에 밝혀지게 됨은 참으로 천고의 기이한 일이로 다.
번역
나 또한 생각하기를, 단기(檀奇) 2천년사가 반드시 실사(實史)가 있을 터 인데 아직 상고할 데가 없는 것은, 여러번 병화(兵火)를 겪으면서 역사를 보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므로 어찌 통탄하지 않으리오 하였더니, 밝은 하늘은 사실로써 헛 되이 돌아가게 아니 하심으로 유(柳)씨로 하여금 이 원본을 얻어 세상에 드러나게 하였다. 유씨가 가져온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며, 그가 평생에 갈망하던 열성 중에 서 얻어온 것이므로 누가 기쁘게 읽지 않으며 누가 말하며 전하지 않겠는가. 실로 우리 단기 2천년사가 다시 이 세상에 밝혀지게 됨은 참으로 천고의 기이한 일이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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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원저(原著) 주인공 야발(野勃)선생은 13년 성상을 노력하여 친히 고적을 박람하며, 모든 역사를 참고하여 정선(精選)하여 편찬하고, 그 백여년 후에 발해 대 문인 황조 복(皇祚福)이 다시 펴내어 세사에 널리 전하였으니, 이 두 선생이 우리 민족에게 끼 친 공이 대단히 크다. 이것을 다시 전한 일에 관하여는 유·이(柳·李) 두분의 공도 또한 적지 않다. 오호라 ! 대야발(大野勃)·황조복(皇祚福)선생은 마음과 붓으로써 국가를 위하여 뇌 력(뇌력)과 혈성(혈성)을 다한 참 애국자요, 유·이(柳·李) 두분도 심력(심력)과 필력 으로써 애국하기에 정성을 다한 분이니, 후에 사람들이 번역하고 계속 간행하여 세 상에 널리 펼치면 역시 만고에 없어지지 않을 공이 되리로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識
번역
원저(原著) 주인공 야발(野勃)선생은 13년 성상을 노력하여 친히 고적을 박람하며, 모든 역사를 참고하여 정선(精選)하여 편찬하고, 그 백여년 후에 발해 대 문인 황조 복(皇祚福)이 다시 펴내어 세사에 널리 전하였으니, 이 두 선생이 우리 민족에게 끼 친 공이 대단히 크다. 이것을 다시 전한 일에 관하여는 유·이(柳·李) 두분의 공도 또한 적지 않다. 오호라 ! 대야발(大野勃)·황조복(皇祚福)선생은 마음과 붓으로써 국가를 위하여 뇌 력(뇌력)과 혈성(혈성)을 다한 참 애국자요, 유·이(柳·李) 두분도 심력(심력)과 필력 으로써 애국하기에 정성을 다한 분이니, 후에 사람들이 번역하고 계속 간행하여 세 상에 널리 펼치면 역시 만고에 없어지지 않을 공이 되리로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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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간 경로 (출간경로) 지금으로부터 1천3백여년전 고구려가 나당군(羅唐軍)에게 패망한 후 국서고(國書庫) 까지 타 버렸으나, 영걸스러운 옛 신하 대조영(大祚榮)장군이 30년 후에 고구려의 옛 땅에 발해국(渤海國)을 세우고 왕이 되었다. 그 후 타버린 단기고사(檀奇古史)를 문호(文豪) 대야발(大野勃:王弟)에게 다시 편찬하게 하여 수백년간 전해 내려왔다. 고려조에 이르러 모화(慕華) 선비 김부식(金富軾)과 일연(一然)등이 단기고사(檀奇古 史)와 삼국사(三國史) 등 119권을 5권으로 축소하여, 우리나라가 영광될만한 사실 은 전부 지워버리고 중화에 예속국이 될 만한 문구만 추려 내어 좋지 않게 역사를 기록하였다.
번역
출간 경로 (출간경로) 지금으로부터 1천3백여년전 고구려가 나당군(羅唐軍)에게 패망한 후 국서고(國書庫) 까지 타 버렸으나, 영걸스러운 옛 신하 대조영(大祚榮)장군이 30년 후에 고구려의 옛 땅에 발해국(渤海國)을 세우고 왕이 되었다. 그 후 타버린 단기고사(檀奇古史)를 문호(文豪) 대야발(大野勃:王弟)에게 다시 편찬하게 하여 수백년간 전해 내려왔다. 고려조에 이르러 모화(慕華) 선비 김부식(金富軾)과 일연(一然)등이 단기고사(檀奇古 史)와 삼국사(三國史) 등 119권을 5권으로 축소하여, 우리나라가 영광될만한 사실 은 전부 지워버리고 중화에 예속국이 될 만한 문구만 추려 내어 좋지 않게 역사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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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그 후 오늘까지 우리 국민은 시조부터 정치·문화·산업·경제등 각방면에 중화(中華)보다 낙오된 약소국으로만 지내왔다고 잘 못 인식해왔다. 이로써 성조(聖 祖)의 실사(實史)까지 알지 못하게 되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하늘이 도와 우리성조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깊이 감추어 두었던 야발 (野勃)의 역사가 천만 뜻밖에 출현되어 대한광무(大韓光武)시대 학부(學部)에서 출 간하려다가 일본의 내정간섭으로 간행되지 못하고, 그 후 신채호(申采浩) 이관구(李 觀求)가 중국지방에서 출간하려다가역시 간행하지 못했다. 또 해방 후 김두화(金斗 和) 등이 번역 출간하려다가 역시 펴내지 못하고 미뤄오다가, 이번에 유지(有志) 한 재용(韓在龍)씨의 찬조로 펴내게 되었다.
번역
그 후 오늘까지 우리 국민은 시조부터 정치·문화·산업·경제등 각방면에 중화(中華)보다 낙오된 약소국으로만 지내왔다고 잘 못 인식해왔다. 이로써 성조(聖 祖)의 실사(實史)까지 알지 못하게 되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하늘이 도와 우리성조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깊이 감추어 두었던 야발 (野勃)의 역사가 천만 뜻밖에 출현되어 대한광무(大韓光武)시대 학부(學部)에서 출 간하려다가 일본의 내정간섭으로 간행되지 못하고, 그 후 신채호(申采浩) 이관구(李 觀求)가 중국지방에서 출간하려다가역시 간행하지 못했다. 또 해방 후 김두화(金斗 和) 등이 번역 출간하려다가 역시 펴내지 못하고 미뤄오다가, 이번에 유지(有志) 한 재용(韓在龍)씨의 찬조로 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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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이책이 우연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성조 를 다시 찾아뵙게 된 기회이니, 사해(四海)의 여러분께서는 잊지 마시고 애독하시어 정확히 시조의 역사를 아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오자가 많으니 정오표를 보시기 바랍니다, 문구에 근대술어가 많은 것은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한자가 많은 것은 한문을 직역했기 때문이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단기 4282년(1949) 번역 출판인 : 김해암(金海菴) 이화사(李華史) 白 제 1 편 전 단군조선(前檀君朝鮮)
번역
이책이 우연이 된 것이 아니라 우리 성조 를 다시 찾아뵙게 된 기회이니, 사해(四海)의 여러분께서는 잊지 마시고 애독하시어 정확히 시조의 역사를 아시기 바랍니다. 이 책은 오자가 많으니 정오표를 보시기 바랍니다, 문구에 근대술어가 많은 것은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한자가 많은 것은 한문을 직역했기 때문이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단기 4282년(1949) 번역 출판인 : 김해암(金海菴) 이화사(李華史) 白 제 1 편 전 단군조선(前檀君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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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환씨전(桓氏典)에, 동방에 부여족(夫餘族)이 태백산(太白山) 부근에 흩어져 살았는 데, 그중 환인(桓仁)은 관대하고 도량이 커서 가옥의 건축과 의복제도를 시작하고, 아들 황웅(桓雄)을 낳으니, 그 뛰어난 모습을 호걸이라 했다. 아버지의 분부를 받들어 사람을 널리 구제하시니, 풍백(風伯)과 운사(雲師)와 뇌 공(雷公)등을 거느리고 천평(天坪)[주:天坪-길림(吉林)동쪽]에 이르러 음식절차(飮食 節次)와 혼인규례를 창설하시고 천부경(天符經)[주:天符經-우리나라 고대로부터 내 려오는 신묘한 경전, 81자로 되어 있고 우주의 창조원리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의 생 성원리를 적었다. 옛 우리 글로 되어있던 것을 신라의 최치원이 한문으로 옮겼다 함]을 설교하시니, 사방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듣는 자가 많았다.
번역
환씨전(桓氏典)에, 동방에 부여족(夫餘族)이 태백산(太白山) 부근에 흩어져 살았는 데, 그중 환인(桓仁)은 관대하고 도량이 커서 가옥의 건축과 의복제도를 시작하고, 아들 황웅(桓雄)을 낳으니, 그 뛰어난 모습을 호걸이라 했다. 아버지의 분부를 받들어 사람을 널리 구제하시니, 풍백(風伯)과 운사(雲師)와 뇌 공(雷公)등을 거느리고 천평(天坪)[주:天坪-길림(吉林)동쪽]에 이르러 음식절차(飮食 節次)와 혼인규례를 창설하시고 천부경(天符經)[주:天符經-우리나라 고대로부터 내 려오는 신묘한 경전, 81자로 되어 있고 우주의 창조원리 곧 하늘과 땅과 사람의 생 성원리를 적었다. 옛 우리 글로 되어있던 것을 신라의 최치원이 한문으로 옮겼다 함]을 설교하시니, 사방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듣는 자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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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황웅(桓雄)이 아들 환검(桓儉)을 낳으니, 곧 단군왕검(檀君王儉)이시다. 장성하여 비서갑(非西岬)[주:非西岬-만주 할빈근방이라고 함] 하백(河伯)의 딸을 아내로 삼 고, 아들 부루(扶婁=神仙)를 낳으니 이분이 부여족의 시조가 되었다.
번역
황웅(桓雄)이 아들 환검(桓儉)을 낳으니, 곧 단군왕검(檀君王儉)이시다. 장성하여 비서갑(非西岬)[주:非西岬-만주 할빈근방이라고 함] 하백(河伯)의 딸을 아내로 삼 고, 아들 부루(扶婁=神仙)를 낳으니 이분이 부여족의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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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제 1 세 단군왕검 (第一世 檀君王儉) ― 93년간 재위 ―
번역
제 1 세 단군왕검 (第一世 檀君王儉) ― 93년간 재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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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단군왕검은 제 1세 단제(檀帝)시니, 환웅의 아들이며, 환인의 손자이다. 신성(神 聖)하시고 문명(文明)하시며, 인애(仁愛)하시고 자비하셨다. 또한 도(道)는 천지에 통하시고, 덕이 사해(四海)에 미쳤으며, 구이족(九夷族)[주:우리의 옛 환국(桓國)의 아홉족속 곧 견이(畎夷)․우이(嵎夷)․방이(方夷)․황이(黃夷)․백이(白夷)․적이(赤夷)․현이 (玄夷)․풍이(風夷)․양이(暘夷)]과 친하시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가르치셨다. 또한 종 교를 창립하여 삼일신고(三一神誥)[주:三一神誥-단군 이전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 의 경전. 천훈(天訓)․신훈(神訓)․천궁훈(天宮訓)․세계훈(世界訓)․진리훈(眞理訓)의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번역
단군왕검은 제 1세 단제(檀帝)시니, 환웅의 아들이며, 환인의 손자이다. 신성(神 聖)하시고 문명(文明)하시며, 인애(仁愛)하시고 자비하셨다. 또한 도(道)는 천지에 통하시고, 덕이 사해(四海)에 미쳤으며, 구이족(九夷族)[주:우리의 옛 환국(桓國)의 아홉족속 곧 견이(畎夷)․우이(嵎夷)․방이(方夷)․황이(黃夷)․백이(白夷)․적이(赤夷)․현이 (玄夷)․풍이(風夷)․양이(暘夷)]과 친하시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 가르치셨다. 또한 종 교를 창립하여 삼일신고(三一神誥)[주:三一神誥-단군 이전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 의 경전. 천훈(天訓)․신훈(神訓)․천궁훈(天宮訓)․세계훈(世界訓)․진리훈(眞理訓)의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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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신지(神誌)씨가 옛 우리글로 쓴 것을 왕수궁(王受兢)이 번역 한 은문(殷文)은 모두 없어지고, 고구려 때 번역하고 발해 때에 해석해 놓은 한문본 만 남아 있다]를 천하에 널리 알리시고, 366사(事)의 신정(神政)으로 정성스럽게 교 훈하시니, 그 덕은 천지에 견줄 수 있고 그 밝음은 해와 달과 같았다. 그 교화를 받은 모든 백성들이 10월 3일에 총회를 열어 환검을 임금으로 추대하니, 제 1세 단 제(檀帝)시다. 부여길림평양(扶餘吉林平壤)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부여조선(扶餘朝鮮)이 라 하였다. 돌아가신 환웅을 높이 추대하여 지일(地一)이라 하고, 환인(桓仁=王考 公)을 추대하여 천일(天一)이라 하고, 맏아들 부루(扶婁)를 태자(太子)로 삼았다.
번역
신지(神誌)씨가 옛 우리글로 쓴 것을 왕수궁(王受兢)이 번역 한 은문(殷文)은 모두 없어지고, 고구려 때 번역하고 발해 때에 해석해 놓은 한문본 만 남아 있다]를 천하에 널리 알리시고, 366사(事)의 신정(神政)으로 정성스럽게 교 훈하시니, 그 덕은 천지에 견줄 수 있고 그 밝음은 해와 달과 같았다. 그 교화를 받은 모든 백성들이 10월 3일에 총회를 열어 환검을 임금으로 추대하니, 제 1세 단 제(檀帝)시다. 부여길림평양(扶餘吉林平壤)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부여조선(扶餘朝鮮)이 라 하였다. 돌아가신 환웅을 높이 추대하여 지일(地一)이라 하고, 환인(桓仁=王考 公)을 추대하여 천일(天一)이라 하고, 맏아들 부루(扶婁)를 태자(太子)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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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그때에 자부선생(紫府先生)[주:紫府先生-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고도 한다. 신시 (神市)시대의 발귀리(發貴理) 선인(仙人)의 후손이며 동방 청구(靑丘)의 대풍산(大風 山) 삼청궁(三淸宮)에 있었다. 중국 황제(黃帝-軒轅)에게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주 면서 마음을 씻고 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였다. 도교(道敎)를 편 노자(老子)는 황 제(黃帝)에게서 배웠고 황제는 자부선생으로부터 배웠다. 이로서 중국은 하늘의 가 르침과 사람의 도리를 알게 되었다.]이라 하는 도(道)가 높은 분이 있었는데, 위로 는 천문(天文)을 통하고 아래로 지리(地理)를 살피며, 도덕(道德)이 고상하므로 중화 (中華)의 훤원(軒轅)[주:軒轅-중국의 황제(黃帝)를 말한다. 성은 공손(公孫)이다.
번역
그때에 자부선생(紫府先生)[주:紫府先生-자부선인(紫府仙人)이라고도 한다. 신시 (神市)시대의 발귀리(發貴理) 선인(仙人)의 후손이며 동방 청구(靑丘)의 대풍산(大風 山) 삼청궁(三淸宮)에 있었다. 중국 황제(黃帝-軒轅)에게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주 면서 마음을 씻고 의로운 사람이 되라고 하였다. 도교(道敎)를 편 노자(老子)는 황 제(黃帝)에게서 배웠고 황제는 자부선생으로부터 배웠다. 이로서 중국은 하늘의 가 르침과 사람의 도리를 알게 되었다.]이라 하는 도(道)가 높은 분이 있었는데, 위로 는 천문(天文)을 통하고 아래로 지리(地理)를 살피며, 도덕(道德)이 고상하므로 중화 (中華)의 훤원(軒轅)[주:軒轅-중국의 황제(黃帝)를 말한다. 성은 공손(公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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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자부선생(紫府先生)으로부터 상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아 도교(道敎)의 기초를 닦았 다. 치우천황(蚩尤天皇-제14세 慈烏支桓雄)과 싸울 때 치우천황이 그때에 처음으 로 투구와 갑옷을 입고 안개를 일으키니, 사방을 분간할 수 없어 방향을 알리는 지 남거(指南車)를 만들기도 했다]이 와서 수학9修學)한 후에 내황문(內皇文)[주:內皇 文-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아가지고 귀국하였다. 자부선생(紫府先生)을 봉하여 환부제(桓夫帝=光明王)를 삼았다.) 임금께서 신우(神佑)에게 명하시기를 “백성들에게 오류(五倫)을 가르치며 관후(寬 厚)와 박애 (博愛)를 명심하라.”하시고, 또 고시(高矢)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사농 관9司農官)이 되어, 농민에게 농사를 가르쳐 온갖 곡식을 심어 추수하게 하되 때를 놓치지 말라.
번역
자부선생(紫府先生)으로부터 상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아 도교(道敎)의 기초를 닦았 다. 치우천황(蚩尤天皇-제14세 慈烏支桓雄)과 싸울 때 치우천황이 그때에 처음으 로 투구와 갑옷을 입고 안개를 일으키니, 사방을 분간할 수 없어 방향을 알리는 지 남거(指南車)를 만들기도 했다]이 와서 수학9修學)한 후에 내황문(內皇文)[주:內皇 文-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아가지고 귀국하였다. 자부선생(紫府先生)을 봉하여 환부제(桓夫帝=光明王)를 삼았다.) 임금께서 신우(神佑)에게 명하시기를 “백성들에게 오류(五倫)을 가르치며 관후(寬 厚)와 박애 (博愛)를 명심하라.”하시고, 또 고시(高矢)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사농 관9司農官)이 되어, 농민에게 농사를 가르쳐 온갖 곡식을 심어 추수하게 하되 때를 놓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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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하시고, 또 신지(神誌)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사악(司樂)이 되어, 백 성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서 마음과 정신을 화창(和暢)하게 하라.”하시고, 또 해월(海 月)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사공관(司工官)이 되어, 모든 공인9工人=匠人)들에게 각기 기능에 따라 기구를 제조하게 하여 날마다 생활에 쓰이는 물건을 공급하게 하 라.”하셨다. 또 운목(雲牧)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감시관(監時官)이 되어 춘․하․ 추․동 네 계절을 정하되, 72후(候) 24절(節)을 정하여 농업에 때를 놓치는 일이 없 도록 하라.”하시고, 또 마옥(磨玉)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미술관(美術官)이 되어 미술발명품(美術發明品)에 전력을 다하라.
번역
”하시고, 또 신지(神誌)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사악(司樂)이 되어, 백 성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서 마음과 정신을 화창(和暢)하게 하라.”하시고, 또 해월(海 月)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사공관(司工官)이 되어, 모든 공인9工人=匠人)들에게 각기 기능에 따라 기구를 제조하게 하여 날마다 생활에 쓰이는 물건을 공급하게 하 라.”하셨다. 또 운목(雲牧)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감시관(監時官)이 되어 춘․하․ 추․동 네 계절을 정하되, 72후(候) 24절(節)을 정하여 농업에 때를 놓치는 일이 없 도록 하라.”하시고, 또 마옥(磨玉)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미술관(美術官)이 되어 미술발명품(美術發明品)에 전력을 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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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하셨다 또 팽오(彰吳)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개척관(開拓官)이 되어, 치산치수(治山治水)에 전력을 다하여 침수와 도로 가 막히는 일이 없돌고 하여 백성이 살아가는데 안전하도록 하라.”하시고, 또 원보 팽우(元輔彰虞)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신(神)을 섬기는 일을 맡아서 백성을 가르 치되, 하늘은 형체가 없고, 위․아래․사방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으며, 어디 에나 없는 데가 없으신 으뜸가는 신9神)이,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능력이 있어 수 없이 많은 세계를 주관하시며 만물을 창조하셨다. 우주는 무한한 대권(大圈)이요, 하늘의 도(道)는 무한한 정권(正圈)이요, 사람의 도(道)는 무한한 정축(正軸)이요, 물정(物情)은 유한한 횡축(橫軸)이다.
번역
”하셨다 또 팽오(彰吳)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개척관(開拓官)이 되어, 치산치수(治山治水)에 전력을 다하여 침수와 도로 가 막히는 일이 없돌고 하여 백성이 살아가는데 안전하도록 하라.”하시고, 또 원보 팽우(元輔彰虞)에게 명하시기를 “자네는 신(神)을 섬기는 일을 맡아서 백성을 가르 치되, 하늘은 형체가 없고, 위․아래․사방도 없고,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으며, 어디 에나 없는 데가 없으신 으뜸가는 신9神)이,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능력이 있어 수 없이 많은 세계를 주관하시며 만물을 창조하셨다. 우주는 무한한 대권(大圈)이요, 하늘의 도(道)는 무한한 정권(正圈)이요, 사람의 도(道)는 무한한 정축(正軸)이요, 물정(物情)은 유한한 횡축(橫軸)이다.
단기고사문단 35검수 확정
원문
정권(正圈) 에서 정축(正軸)에 직사(直射)하는 것은 모든 사상(思想)이요, 정축(正軸)에서 정권 에 반사(反射)하는 것은 성력(誠力)이니라. 판단하는 주체는 곧 나요 생각하는 실 재(實在)니, 이것이 일신(一身)의 영주(靈主)라. 우주․자연․몸으로 더불어 서로 융회(融會)하여 비정(秘情)을 교환하는 곳이 영대 (靈台)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종교심(宗敎心)을 이곳에서 일으키게 하느니라. 오직 정(精)하고 오직 하나(一)되어 그 중추(中樞)를 잡아야 그 정9正)을 잃지 않는다.“하 셨다.
번역
정권(正圈) 에서 정축(正軸)에 직사(直射)하는 것은 모든 사상(思想)이요, 정축(正軸)에서 정권 에 반사(反射)하는 것은 성력(誠力)이니라. 판단하는 주체는 곧 나요 생각하는 실 재(實在)니, 이것이 일신(一身)의 영주(靈主)라. 우주․자연․몸으로 더불어 서로 융회(融會)하여 비정(秘情)을 교환하는 곳이 영대 (靈台)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종교심(宗敎心)을 이곳에서 일으키게 하느니라. 오직 정(精)하고 오직 하나(一)되어 그 중추(中樞)를 잡아야 그 정9正)을 잃지 않는다.“하 셨다.
단기고사문단 36검수 확정
원문
임금께서 천하를 다스리신지 120년에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안락하며, 비와 바람이 알맞으며 병이 없고 장수하며, 산에 도적이 없고 집에 곡식이 많이 남으니, 밤에 문을 닫지 않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으며, 노인은 영가(詠歌)를 부르고 아이들은 춤을 추었다. 사람마다 임금에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집집마다 천단(天壇)을 만들고 새벽마다 경배하니, 이 때부터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상이 확고하였다. 125년 7월 5일에 셋째 아들 부우(扶虞)를 강화(江華)에 보내 전등산(傳燈山)에 삼랑성(三郞城)을 쌓게 하시며, 제천단(祭天壇)을 마니산(摩尼山)에 쌓고 하느님께 제사하시니, 동방 민족이 하느님께 제사하는 풍속은 시조 단제9檀帝)때부터 시작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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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께서 천하를 다스리신지 120년에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안락하며, 비와 바람이 알맞으며 병이 없고 장수하며, 산에 도적이 없고 집에 곡식이 많이 남으니, 밤에 문을 닫지 않고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으며, 노인은 영가(詠歌)를 부르고 아이들은 춤을 추었다. 사람마다 임금에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집집마다 천단(天壇)을 만들고 새벽마다 경배하니, 이 때부터 하느님을 공경하는 사상이 확고하였다. 125년 7월 5일에 셋째 아들 부우(扶虞)를 강화(江華)에 보내 전등산(傳燈山)에 삼랑성(三郞城)을 쌓게 하시며, 제천단(祭天壇)을 마니산(摩尼山)에 쌓고 하느님께 제사하시니, 동방 민족이 하느님께 제사하는 풍속은 시조 단제9檀帝)때부터 시작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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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천단제도(天壇制度)는 천일지이(天一地二)를 따라 돌을 두 개 세우고 그 위에 돌 하나를 덮었다. 150년에 임금께서 세상을 뜨시니 왕위에 계신 지 57년이며 제위(帝位)는 93년 이다. 백성들이 부모상을 당한 것처럼 사해(四海)가 다 음악을 그치고, 집집마다 시조 단제의 신위9神位)를 세우고, 아침 저녁으로 경배하였다. 태자 부루(扶婁)가 왕위에 오르니 제 2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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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단제도(天壇制度)는 천일지이(天一地二)를 따라 돌을 두 개 세우고 그 위에 돌 하나를 덮었다. 150년에 임금께서 세상을 뜨시니 왕위에 계신 지 57년이며 제위(帝位)는 93년 이다. 백성들이 부모상을 당한 것처럼 사해(四海)가 다 음악을 그치고, 집집마다 시조 단제의 신위9神位)를 세우고, 아침 저녁으로 경배하였다. 태자 부루(扶婁)가 왕위에 오르니 제 2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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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제 2 세 부루(扶婁) ―58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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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세 부루(扶婁) ―58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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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첫해 9월에 가운데 아우 부여(扶餘)를 망구왕(茫球王=遼西)으로 삼고, 셋째아우 부우(扶宇)를 동해와(東海王=東海邊)으로 삼으니 삼한(三韓)은 동해왕의 후세이다. 2년 봄 1월에 대련(大連)으로써 섭사직(攝司職)을 삼고, 소련(小連)으로써 사도 (司徒)를 삼았다. (震檀紀에 大連의 地方은 半島라 했다.) 대련(大連)과 소련(小連)은 단조(檀朝)의 중신(重臣)이다. 충효(忠孝)를 갖춘 사람 으로 친상(親喪)을 당하니 3개월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3년동안 서러워하니, 이것 은 동양윤리(東洋倫理)의 원조(元祖)이다. (이러한 사실은 孔子의 글에도 나온다.) 고수(高叟-漢記에는 瞽瞍)는 중신 고시(高矢)의 친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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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해 9월에 가운데 아우 부여(扶餘)를 망구왕(茫球王=遼西)으로 삼고, 셋째아우 부우(扶宇)를 동해와(東海王=東海邊)으로 삼으니 삼한(三韓)은 동해왕의 후세이다. 2년 봄 1월에 대련(大連)으로써 섭사직(攝司職)을 삼고, 소련(小連)으로써 사도 (司徒)를 삼았다. (震檀紀에 大連의 地方은 半島라 했다.) 대련(大連)과 소련(小連)은 단조(檀朝)의 중신(重臣)이다. 충효(忠孝)를 갖춘 사람 으로 친상(親喪)을 당하니 3개월을 게으름 피우지 않고 3년동안 서러워하니, 이것 은 동양윤리(東洋倫理)의 원조(元祖)이다. (이러한 사실은 孔子의 글에도 나온다.) 고수(高叟-漢記에는 瞽瞍)는 중신 고시(高矢)의 친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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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그 아들 순(舜)[주:舜 -고대 중국의 순(舜)임금]이 단조(檀朝)에서 벼슬을 하지 앟고 이웃 당요조(唐堯 朝)[唐堯朝-요임금 때]에서 벼슬을 하니, 부자(父子)의 의견이 서로 달라 마침내 화 목하지 못하게 되어, 고수는 작은 아들 상(象)을 사랑하고 순은 죽이고자 하였다. 순이 아버지의 듯을 알고 효성으로 섬기며 끝까지 손복하니 당뇨 (唐堯)가 신임하 고 왕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순이 이렇게 되어 중화(中華)의 천자(天子)가 되어 문 명한 정치를 하니, 사농공상(士農工商)에 각기 직업을 주고 우(禹)[주:禹-중국 하 (夏) 왕조의 시조. 순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물려 받음]의 아버지를 익산(翊山)에서 목을 쳐 간악한 무리를 내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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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들 순(舜)[주:舜 -고대 중국의 순(舜)임금]이 단조(檀朝)에서 벼슬을 하지 앟고 이웃 당요조(唐堯 朝)[唐堯朝-요임금 때]에서 벼슬을 하니, 부자(父子)의 의견이 서로 달라 마침내 화 목하지 못하게 되어, 고수는 작은 아들 상(象)을 사랑하고 순은 죽이고자 하였다. 순이 아버지의 듯을 알고 효성으로 섬기며 끝까지 손복하니 당뇨 (唐堯)가 신임하 고 왕의 자리를 물려주었다. 순이 이렇게 되어 중화(中華)의 천자(天子)가 되어 문 명한 정치를 하니, 사농공상(士農工商)에 각기 직업을 주고 우(禹)[주:禹-중국 하 (夏) 왕조의 시조. 순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물려 받음]의 아버지를 익산(翊山)에서 목을 쳐 간악한 무리를 내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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