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古朝鮮BC 2333 – BC 108문헌 원문 · 번역
단기고사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이 때문에 한족(漢族)이 순을 꺼려오다가 우의
덕망이 날로 높어지더니, 순이 왕위에 오른지 61년에 창오야(蒼梧野)에 행차하다가
한족(漢族)에게 해를 다해 승하했다.
이렇게 되니, 순의 아내 아황여영(娥皇女英)이 원한이 사무쳐 수상강(瀟湘江)에
빠져 죽었다. 그 아들 상균(商均)은 다시 고국에 돌아와 단조에서 일을 맡으니 그
관직이 사도(司徒)에 이르렀다.
이보다 앞서, 치우(治尤=蚩尤)[주:蚩尤-배달나라 제14세 자오지(慈烏支)환웅, 재
위 109년 수는 151세]는 이마가 쇠처럼 강하고 능히 크게 안개도 일으켰다.
번역
이 때문에 한족(漢族)이 순을 꺼려오다가 우의
덕망이 날로 높어지더니, 순이 왕위에 오른지 61년에 창오야(蒼梧野)에 행차하다가
한족(漢族)에게 해를 다해 승하했다.
이렇게 되니, 순의 아내 아황여영(娥皇女英)이 원한이 사무쳐 수상강(瀟湘江)에
빠져 죽었다. 그 아들 상균(商均)은 다시 고국에 돌아와 단조에서 일을 맡으니 그
관직이 사도(司徒)에 이르렀다.
이보다 앞서, 치우(治尤=蚩尤)[주:蚩尤-배달나라 제14세 자오지(慈烏支)환웅, 재
위 109년 수는 151세]는 이마가 쇠처럼 강하고 능히 크게 안개도 일으켰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그
때에 자부선생 밑에서 함께 공부하던 중화의 황제(黃帝)가 공연이 염제(炎帝)의 왕
위를 빼앗는 것을 보고 의분을 참지 못하여 황제와 탁록(涿鹿)[주:涿鹿-중국 하북
성(河北省) 탁록현(涿鹿顯)에 있다] 들에서 싸웠는데, 후원병이 오지않아 황제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손자 특명(特明)이 또한 매우 용맹하여, 단조에서
의 벼슬이 사도(司徒)에 이르고, 상균(尙均)과 더불어 단조를 도우니 정치의 문명
(文明)정도가 중화의 우조9禹朝)보다 훨씬 뛰어났다.
임금께서 태자되었을 때에 중화의 백우(伯禹)와 더불어 친선하다가, 임금께서 왕
위에 오르니, 우도 순의 자리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번역
그
때에 자부선생 밑에서 함께 공부하던 중화의 황제(黃帝)가 공연이 염제(炎帝)의 왕
위를 빼앗는 것을 보고 의분을 참지 못하여 황제와 탁록(涿鹿)[주:涿鹿-중국 하북
성(河北省) 탁록현(涿鹿顯)에 있다] 들에서 싸웠는데, 후원병이 오지않아 황제에게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손자 특명(特明)이 또한 매우 용맹하여, 단조에서
의 벼슬이 사도(司徒)에 이르고, 상균(尙均)과 더불어 단조를 도우니 정치의 문명
(文明)정도가 중화의 우조9禹朝)보다 훨씬 뛰어났다.
임금께서 태자되었을 때에 중화의 백우(伯禹)와 더불어 친선하다가, 임금께서 왕
위에 오르니, 우도 순의 자리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그 때에 홍수가 9년동안
천하에 범람하여 중화는 우가 치수(治水)하는데 곤란을 겪고, 조선은 팽오(彭吳)에
게 치수를 맡겨 치수가 완료되니, 우(禹)가 도산회의(塗山會議)[주:塗山會議-큰 홍
수가 있어 우리는 치수(治水)를 잘 하였으나 중국은 큰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도산(塗山-중국 상해 남쪽 절강성에 있다)에서 주변 나라들이 모였는데, 우리는 오
행 치수법(五行治水法)을 가르쳐 주었다. 이로써 우(禹)는 물을 잘 다스리게 되어
순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를 각 나라에 요청하였다. 임금께서는 팽오를
특명대사로 삼아 우에게 보내어 치수하는 법을 설명하셨다.
번역
그 때에 홍수가 9년동안
천하에 범람하여 중화는 우가 치수(治水)하는데 곤란을 겪고, 조선은 팽오(彭吳)에
게 치수를 맡겨 치수가 완료되니, 우(禹)가 도산회의(塗山會議)[주:塗山會議-큰 홍
수가 있어 우리는 치수(治水)를 잘 하였으나 중국은 큰피해를 입게 되었다. 이에
도산(塗山-중국 상해 남쪽 절강성에 있다)에서 주변 나라들이 모였는데, 우리는 오
행 치수법(五行治水法)을 가르쳐 주었다. 이로써 우(禹)는 물을 잘 다스리게 되어
순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를 각 나라에 요청하였다. 임금께서는 팽오를
특명대사로 삼아 우에게 보내어 치수하는 법을 설명하셨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3년 9월에 조서를 내리시어, 백성들에게 머리를 땋고 푸는옷(靑衣)을 입고, 도량형
(度量衡)을 통일하며, 예의를 숭상하게 하여 어진 행정을 하였다.
10년 4월에 정전법(井田法)을 시행하니, 백성은 사전(私田)이 없었다.
18년 6월에 조서를 내리시어 충의열사(忠義烈士)와 효자열부(孝子烈婦)와 현자
(賢者)의 행실을 포상하였다.
아들이 16명이 있었는데, 맏아들 가륵(嘉勒)으로 태자를 삼고, 그 밖에 15명 중
봉건국(封建國)을 얻은 자가 8명이며 나머지는 다 친왕(親王)이 되었다.
이 때에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그 수가 많았다.
번역
3년 9월에 조서를 내리시어, 백성들에게 머리를 땋고 푸는옷(靑衣)을 입고, 도량형
(度量衡)을 통일하며, 예의를 숭상하게 하여 어진 행정을 하였다.
10년 4월에 정전법(井田法)을 시행하니, 백성은 사전(私田)이 없었다.
18년 6월에 조서를 내리시어 충의열사(忠義烈士)와 효자열부(孝子烈婦)와 현자
(賢者)의 행실을 포상하였다.
아들이 16명이 있었는데, 맏아들 가륵(嘉勒)으로 태자를 삼고, 그 밖에 15명 중
봉건국(封建國)을 얻은 자가 8명이며 나머지는 다 친왕(親王)이 되었다.
이 때에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그 수가 많았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국경은 동쪽이 창해(滄海), 서
쪽은 요서(遼西), 남쪽은 남해, 북쪽은 서비로(西非路)[주:西非路-서백리아(西伯利
亞), 곧 시베리아를 말함]에 이르러, 큰 민족이 9부(九部)[주:九部-구이(九夷), 곧
우리의 아홉족속을 말함], 작은 민족이 14부였다. 모두 단군의 덕화(德化)를 입어
위로는 인륜(人倫)이 밝고 아래는 교화(敎化)가 행하여져, 풍속의 선하고 아름다움
이 천하에서 제일이었다.
번역
국경은 동쪽이 창해(滄海), 서
쪽은 요서(遼西), 남쪽은 남해, 북쪽은 서비로(西非路)[주:西非路-서백리아(西伯利
亞), 곧 시베리아를 말함]에 이르러, 큰 민족이 9부(九部)[주:九部-구이(九夷), 곧
우리의 아홉족속을 말함], 작은 민족이 14부였다. 모두 단군의 덕화(德化)를 입어
위로는 인륜(人倫)이 밝고 아래는 교화(敎化)가 행하여져, 풍속의 선하고 아름다움
이 천하에서 제일이었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26년에 석자장(石子丈)이 아뢰기를 “시조의 천부경(天符經)[주:天符經-一始無始
一析三極無盡本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匱化三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生
七八九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一終無終
一]을 참고하여 보면, 하늘이 만물을 지어 그 모양과 색깔이 가지가지이나 각각 그
시작이 있는 것은, 그 중에 한 가지의 영(靈)을 포함했기 때문이니, 이것이 일시무
시(一始無始)인데, 일(一)이 무시(無始)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태초에 무시(無始)로
부터 먼저 이수(理數)가 있어, 일양(一陽)과 이음(二陰)이 도(道)가 된 것입니다. 이
것이 물질(物質)의 도(道)입니다.
번역
26년에 석자장(石子丈)이 아뢰기를 “시조의 천부경(天符經)[주:天符經-一始無始
一析三極無盡本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匱化三天二三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生
七八九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動本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一終無終
一]을 참고하여 보면, 하늘이 만물을 지어 그 모양과 색깔이 가지가지이나 각각 그
시작이 있는 것은, 그 중에 한 가지의 영(靈)을 포함했기 때문이니, 이것이 일시무
시(一始無始)인데, 일(一)이 무시(無始)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태초에 무시(無始)로
부터 먼저 이수(理數)가 있어, 일양(一陽)과 이음(二陰)이 도(道)가 된 것입니다. 이
것이 물질(物質)의 도(道)입니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태극(太極) 이상(以上)의 것을 말하면, 이 도(道)
는 이(理)와 기(氣)를 초월하기 때문에 그 신(神)의 오묘함을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다 도(道)에서 나왔고 또 도에 들어가니, 도의 근원은 하늘(天)에
서 나왔고, 사람의 근원은 신조(神祖)에서 나왔으니, 하늘과 신조(神祖)는 그 사이가
밀접하여 하늘이 곧 신조입니다. 바라옵기는, 신사신전(神社神殿)을 세워, 백성으
로 하여금 경건하고 사모하게 하므로 신앙(信仰)하게 하여 만고(萬古)의 기본을 잊
지 않는 도(道)를 삼으소서.”하니 임금께서 그렇게 하겠다 하시고 천하에 조서를 내
려 삼신전(三神殿)을 세우고, 환인․환웅․단군의 삼신위(三神位)를 봉안(奉安)하여 백
성들에게 경배하게 하였다.
번역
태극(太極) 이상(以上)의 것을 말하면, 이 도(道)
는 이(理)와 기(氣)를 초월하기 때문에 그 신(神)의 오묘함을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다 도(道)에서 나왔고 또 도에 들어가니, 도의 근원은 하늘(天)에
서 나왔고, 사람의 근원은 신조(神祖)에서 나왔으니, 하늘과 신조(神祖)는 그 사이가
밀접하여 하늘이 곧 신조입니다. 바라옵기는, 신사신전(神社神殿)을 세워, 백성으
로 하여금 경건하고 사모하게 하므로 신앙(信仰)하게 하여 만고(萬古)의 기본을 잊
지 않는 도(道)를 삼으소서.”하니 임금께서 그렇게 하겠다 하시고 천하에 조서를 내
려 삼신전(三神殿)을 세우고, 환인․환웅․단군의 삼신위(三神位)를 봉안(奉安)하여 백
성들에게 경배하게 하였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38년에 나함연(邏閻蓮)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 해에 남함지(南閻地)에 건너가서
범경빈(梵經賓)을 만나 말을 들으니 이 쪽은 고해(苦海) 저 쪽은 극락(極樂)인데, 고
해에서 극락에 가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업혹계(業惑界)를 해탈(解脫)한 후에야 거
기에 이를 수 있다 하고, 이런 도(道)를 알지 못하면 공연히 어지러운 생각과 망상
이 일어난다 합니다.
번역
38년에 나함연(邏閻蓮)이 아뢰기를 “신이 지난 해에 남함지(南閻地)에 건너가서
범경빈(梵經賓)을 만나 말을 들으니 이 쪽은 고해(苦海) 저 쪽은 극락(極樂)인데, 고
해에서 극락에 가고자 하면 반드시 먼저 업혹계(業惑界)를 해탈(解脫)한 후에야 거
기에 이를 수 있다 하고, 이런 도(道)를 알지 못하면 공연히 어지러운 생각과 망상
이 일어난다 합니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대개 모든 형상이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어, 늘지도 줄지도
않으며 생기지도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수상행식(受想行識)도 없고 탐하는 것과
눈을 부릅뜸과 어리석음도 없으며, 색(色)과 소리(聲)와 향기(香)와 맛(味)과 찔림
(觸)과 느낌(感)의 육욕(六慾)도 없고, 태어나고 늙고 병에 걸려 죽는 사고(四苦)를
해탈하면, 이것이 더없는 올바른 깨달음이라 하였습니다. 제가 가만히 거듭 생각해
보니 이것은 진실한 공부인데, 마음이 곁길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치에 가
까운 것이 많습니다.
번역
대개 모든 형상이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어, 늘지도 줄지도
않으며 생기지도 없어지지도 않기 때문에, 수상행식(受想行識)도 없고 탐하는 것과
눈을 부릅뜸과 어리석음도 없으며, 색(色)과 소리(聲)와 향기(香)와 맛(味)과 찔림
(觸)과 느낌(感)의 육욕(六慾)도 없고, 태어나고 늙고 병에 걸려 죽는 사고(四苦)를
해탈하면, 이것이 더없는 올바른 깨달음이라 하였습니다. 제가 가만히 거듭 생각해
보니 이것은 진실한 공부인데, 마음이 곁길로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치에 가
까운 것이 많습니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남합니(南閻地)의 성인(聖人)이 있는데 이 말을 지은 듯 하오
니, 원하옵기는, 전하께서 사자를 남함지에 보내시어 그 도덕과 정치를 시찰하고 와
서, 나쁜 점은 버리고 좋은 점은 본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데 시행한다면, 나라가 문
명하고 진보하는 데 좋은 길이 될까 합니다.”하였다.
임금께서 이르기를 “사람의 도(道)에 있어서의 진리는 하나이며, 두 점 간의 직선
도 하나이다. 그 나라와 민족은 설 달라도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바른 도리는 하나이다. 내가 일찍이 선제(先帝)에게 지켜야 될 바를 물으니, 생각
이 맑고(惟精) 오직 하나 (唯一)가 되어 그 중추(中樞)를 잡아야 하는 것은 바른 것
(正)을 일(矢)지 않는 것이라 하셨는데, 하필이면 다른 나라의 도덕과 정치를 빌리
겠는가.
번역
남합니(南閻地)의 성인(聖人)이 있는데 이 말을 지은 듯 하오
니, 원하옵기는, 전하께서 사자를 남함지에 보내시어 그 도덕과 정치를 시찰하고 와
서, 나쁜 점은 버리고 좋은 점은 본받아 백성을 다스리는 데 시행한다면, 나라가 문
명하고 진보하는 데 좋은 길이 될까 합니다.”하였다.
임금께서 이르기를 “사람의 도(道)에 있어서의 진리는 하나이며, 두 점 간의 직선
도 하나이다. 그 나라와 민족은 설 달라도 나라를 다스려 천하를 태평하게 하는
바른 도리는 하나이다. 내가 일찍이 선제(先帝)에게 지켜야 될 바를 물으니, 생각
이 맑고(惟精) 오직 하나 (唯一)가 되어 그 중추(中樞)를 잡아야 하는 것은 바른 것
(正)을 일(矢)지 않는 것이라 하셨는데, 하필이면 다른 나라의 도덕과 정치를 빌리
겠는가.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새와 짐승은 땅에 살고 고기는 물에서 사는 것이니, 물고기를 육지로 옮겨
놓으면 오래 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를 본받고자 하면 반드시
나라가 오래가지 못하리라.”하시니, 모든 신하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5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니 백성들이 슬피울었다. 이 날 일식(日蝕)이 있었고
누런 안개(黃霧)가 사방에 끼어 짐승 떼가 산꼭대기에서 어지러이 울부짖으니, 하늘
과 사람과 만물이 함께 슬퍼한다 하였다.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 3세 단제이시
다.
번역
새와 짐승은 땅에 살고 고기는 물에서 사는 것이니, 물고기를 육지로 옮겨
놓으면 오래 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나라가 다른 나라를 본받고자 하면 반드시
나라가 오래가지 못하리라.”하시니, 모든 신하들이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였다.
5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니 백성들이 슬피울었다. 이 날 일식(日蝕)이 있었고
누런 안개(黃霧)가 사방에 끼어 짐승 떼가 산꼭대기에서 어지러이 울부짖으니, 하늘
과 사람과 만물이 함께 슬퍼한다 하였다.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 3세 단제이시
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제 3 세 가륵(嘉勒) ―45년간 재위―
번역
제 3 세 가륵(嘉勒) ―45년간 재위―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첫 해에 맏아들 오사구(烏斯丘)를 태자로 삼고, 아우 가록(嘉祿)을 사달(斯達=阿
斯達)왕으로 삼고 서울을 구월산(九月山) 당장경(唐藏京)에 정했다.
2년 봄에 을보륵(乙普勒) 박사에게 국문정음(國文正音)[주:國文正音-고대로부터
우리 겨레가 써오던 글인데 이를 가림토(加臨土)라고도 한다. 이것이 한글의 전신
이다. 훈민정음 서문에 보면 한글의 모양은 옛 글자를 모방했다고 전하고 있다]을
정선(精選)하도록 하였다. (白岳馬韓村에 古碑文이 있다.)
3년 가을에 태수관(太修官) 고설(高契)에게 국사(國史)를 편찬하게 하고, 산수가
림다(刪修加臨多)라 하니 이것이 동양사학(東洋史學)의 원조(元祖)로서, 신계성훈(神
誡聖訓)과 칙교유서(勅敎諭書)와 도덕․정치․법률․풍속 등이 모두 이 책에 실려 있다.
번역
첫 해에 맏아들 오사구(烏斯丘)를 태자로 삼고, 아우 가록(嘉祿)을 사달(斯達=阿
斯達)왕으로 삼고 서울을 구월산(九月山) 당장경(唐藏京)에 정했다.
2년 봄에 을보륵(乙普勒) 박사에게 국문정음(國文正音)[주:國文正音-고대로부터
우리 겨레가 써오던 글인데 이를 가림토(加臨土)라고도 한다. 이것이 한글의 전신
이다. 훈민정음 서문에 보면 한글의 모양은 옛 글자를 모방했다고 전하고 있다]을
정선(精選)하도록 하였다. (白岳馬韓村에 古碑文이 있다.)
3년 가을에 태수관(太修官) 고설(高契)에게 국사(國史)를 편찬하게 하고, 산수가
림다(刪修加臨多)라 하니 이것이 동양사학(東洋史學)의 원조(元祖)로서, 신계성훈(神
誡聖訓)과 칙교유서(勅敎諭書)와 도덕․정치․법률․풍속 등이 모두 이 책에 실려 있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野勃이 滿文으로도 간행하였다.)
6년에 태학태사(太學太士) 고신(高辛)이 부모의 3년상(三年喪)을 지내겟다고 하
니, 임금께서 그렇게 하라 하셨다.
애묘(愛苗)씨가 무도(無道)하여 임금께서 실단(悉段)에서 그를 토벌했다.
요동태수(遼東太守) 색정(索靖)의 치적(治積)이 덕스럽지 못하므로, 임금께서 진노
하시어 색정을 약수(弱水=黑水)로 유배시켰더니 나중에 흉노족(匈奴族)[주:匈奴族-
몽고지방에서 활약하던 북적(北狄)의 일파인 유목민족]이 되었다.
7년 초에 임금께서 조서를 내리기를 “천하에서 가장 으뜸가는 근본은 마음이 중
정(中正)[주:中正-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올 바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적당한 정도]에 있는 것이다.
번역
(野勃이 滿文으로도 간행하였다.)
6년에 태학태사(太學太士) 고신(高辛)이 부모의 3년상(三年喪)을 지내겟다고 하
니, 임금께서 그렇게 하라 하셨다.
애묘(愛苗)씨가 무도(無道)하여 임금께서 실단(悉段)에서 그를 토벌했다.
요동태수(遼東太守) 색정(索靖)의 치적(治積)이 덕스럽지 못하므로, 임금께서 진노
하시어 색정을 약수(弱水=黑水)로 유배시켰더니 나중에 흉노족(匈奴族)[주:匈奴族-
몽고지방에서 활약하던 북적(北狄)의 일파인 유목민족]이 되었다.
7년 초에 임금께서 조서를 내리기를 “천하에서 가장 으뜸가는 근본은 마음이 중
정(中正)[주:中正-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올 바름.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
적당한 정도]에 있는 것이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사람이 중정(中正)을 잃으면 일을 성취할 수 없고,
물건이 중정(中正)을 잃으면 형태가 흐트러진다. 인심(人心)은 위험하고 도심(道心)
은 미묘하니, 마음을 정하게 가져 진실로 그 중추(中樞)를 잡아 중정(正中)을 잃지
말라. 중정이 된 후에야 만사를 바르게 하느니라.
번역
사람이 중정(中正)을 잃으면 일을 성취할 수 없고,
물건이 중정(中正)을 잃으면 형태가 흐트러진다. 인심(人心)은 위험하고 도심(道心)
은 미묘하니, 마음을 정하게 가져 진실로 그 중추(中樞)를 잡아 중정(正中)을 잃지
말라. 중정이 된 후에야 만사를 바르게 하느니라.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중정의 도(道)는, 아버지는 마
땅히 자비하며 자식은 마땅히 효도하며, 임금은 마땅히 사람하며 신하는 마땅히 충
성하며, 부부는 마땅히 서로 공경하며, 아이들은 마땅히 어른을 공경하며, 친구는
마땅히 신의가 있어야 하며, 몸가짐은 공손하고 검소하여야 하며, 사랑으로 무리를
맞으며, 학문을 닦으며 업(業)을 단련하여 저능을 계발하며, 덕행과 기량을 키워 공
익(公益)을 넓히며, 세무(世務)를 풀어나가며, 항상 나라의 방침(國是)을 존중하여
국법을 준수하고, 각각 맡은 일을 지켜 증산(增産)에 힘쓰다가 만약 국가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사사로운 일을 버리고 공(公)을 생각하며, 위험한데라도 용감히 나아가
국가의 운명을 붙들어 세워야 할 것이니, 이것을 나와 모든 신민(臣民)들이 함께 마
음에 두고 정성스럽게 지켜, 한 마음으로 나아가면 일체(一體)가 되어 지극히 높은
뜻을 실천하리라.
번역
중정의 도(道)는, 아버지는 마
땅히 자비하며 자식은 마땅히 효도하며, 임금은 마땅히 사람하며 신하는 마땅히 충
성하며, 부부는 마땅히 서로 공경하며, 아이들은 마땅히 어른을 공경하며, 친구는
마땅히 신의가 있어야 하며, 몸가짐은 공손하고 검소하여야 하며, 사랑으로 무리를
맞으며, 학문을 닦으며 업(業)을 단련하여 저능을 계발하며, 덕행과 기량을 키워 공
익(公益)을 넓히며, 세무(世務)를 풀어나가며, 항상 나라의 방침(國是)을 존중하여
국법을 준수하고, 각각 맡은 일을 지켜 증산(增産)에 힘쓰다가 만약 국가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사사로운 일을 버리고 공(公)을 생각하며, 위험한데라도 용감히 나아가
국가의 운명을 붙들어 세워야 할 것이니, 이것을 나와 모든 신민(臣民)들이 함께 마
음에 두고 정성스럽게 지켜, 한 마음으로 나아가면 일체(一體)가 되어 지극히 높은
뜻을 실천하리라.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하셨다.
8년에 강거(康居)가 반란을 일으키니, 임금께서 지백특(支伯特)[주:支伯特-티베
트]에서 톨벌하여 평정하셨다.
13년 봄에 임금께서 이르기를 “화창한 이 봄에 만물이 다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는데, 내 백성 중에 고독한 홀아비와 과부, 그리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은 항상 비
애와 우수(憂愁)에 젖어 눈썹을 펴고 웃어 볼 날이 없으니, 어찌 가련한 일이 아니
겠는가.”하시고, 사람을 시켜 조사하게 하여 불쌍히 여겨 도우니, 중화(中華)사람들
이 그 소문을 듣고 백성되기를 원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이해 여름에 임금께서 태백산(太白山)에 오르시어 민가를 바라보니, 밥 짓는 연기
가 적게 나는 것을 보시고, 세금의 반을 감하셨다.
번역
”하셨다.
8년에 강거(康居)가 반란을 일으키니, 임금께서 지백특(支伯特)[주:支伯特-티베
트]에서 톨벌하여 평정하셨다.
13년 봄에 임금께서 이르기를 “화창한 이 봄에 만물이 다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있는데, 내 백성 중에 고독한 홀아비와 과부, 그리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은 항상 비
애와 우수(憂愁)에 젖어 눈썹을 펴고 웃어 볼 날이 없으니, 어찌 가련한 일이 아니
겠는가.”하시고, 사람을 시켜 조사하게 하여 불쌍히 여겨 도우니, 중화(中華)사람들
이 그 소문을 듣고 백성되기를 원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이해 여름에 임금께서 태백산(太白山)에 오르시어 민가를 바라보니, 밥 짓는 연기
가 적게 나는 것을 보시고, 세금의 반을 감하셨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그 다음 해에 다시 산에 오르시어 연기가 많이 나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다.
20년에 임금께서 동쪽으로 행차하시어 창해(滄海)에 이르러 산천을 바라보시고
“아름답고 아름답다. 산하(山河)의 수려(秀麗)함이여, 내가 장차 동방에 도읍을 옮
기리라.”하셨다.
천하를 다스리신 지 45년에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들의 살림은 안락하니, 이 때
가 3세 단제가 다스리던 시대다.
45년 9월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 4세 단제시다.
번역
그 다음 해에 다시 산에 오르시어 연기가 많이 나는 것을 보시고 기뻐하셨다.
20년에 임금께서 동쪽으로 행차하시어 창해(滄海)에 이르러 산천을 바라보시고
“아름답고 아름답다. 산하(山河)의 수려(秀麗)함이여, 내가 장차 동방에 도읍을 옮
기리라.”하셨다.
천하를 다스리신 지 45년에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들의 살림은 안락하니, 이 때
가 3세 단제가 다스리던 시대다.
45년 9월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 4세 단제시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제 4 세 오사구(烏斯丘) ―38년간 재위―
번역
제 4 세 오사구(烏斯丘) ―38년간 재위―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첫 해에 맏아들 구을(丘乙)을 태자로 삼고, 아우 오사달(烏斯達)을 몽고리(蒙古里)
왕으로 삼으니, 그 자손이 몽고족이 되었다.
그 해 가을에 하(夏) 나라 사절이 입조(入朝)하였다.
2년 봄에 하(夏)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답례하였다.
5년에 원공패전(圓孔貝錢)[주:圓孔貝錢-조개로 둥글게 만들고 가운데 구멍뚫린
돈]을 만들었다.
7년에 조선공장(造船工場)을 살수(薩水) 상류에 세웠다.
10년 봄에 궁전을 크게 세워 건청궁(乾淸宮)이라 하였다. 25년만에 건청궁을
완성하니, 동서가 600간(間), 남북이 100간, 위층은 만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층은
네 길 낚싯대를 세울만 하였다.
20년에 평양성(平壤城)을 쌓았다.
번역
첫 해에 맏아들 구을(丘乙)을 태자로 삼고, 아우 오사달(烏斯達)을 몽고리(蒙古里)
왕으로 삼으니, 그 자손이 몽고족이 되었다.
그 해 가을에 하(夏) 나라 사절이 입조(入朝)하였다.
2년 봄에 하(夏)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답례하였다.
5년에 원공패전(圓孔貝錢)[주:圓孔貝錢-조개로 둥글게 만들고 가운데 구멍뚫린
돈]을 만들었다.
7년에 조선공장(造船工場)을 살수(薩水) 상류에 세웠다.
10년 봄에 궁전을 크게 세워 건청궁(乾淸宮)이라 하였다. 25년만에 건청궁을
완성하니, 동서가 600간(間), 남북이 100간, 위층은 만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층은
네 길 낚싯대를 세울만 하였다.
20년에 평양성(平壤城)을 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