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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古朝鮮BC 2333 – BC 108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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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고사 檀奇古史

전(傳) 대야발 · 1986 국역 · 저본 고동영 역(1986)
문단 390개 · 번역 확정 39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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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제 14 세 다물(多勿) ―45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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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 세 다물(多勿) ―45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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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첫 해에 맏아들 두홀(豆忽)을 태자로 삼았다. 3년에 기자조선 사절이 입조하였다. 8년에 위(魏) 나라 박사 진덕기(陳德基)가 입경하였다. 10년에 정(鄭) 나라 사람 신도회(申屠懷)가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와서 살았다. 15년에 흰 학(鶴)이 궁궐 안의 소나무에 와서 살더니, 음악 소리를 듣고 내려와 춤을 추었다. 18년에 문인(文人) 표상술(表相述)을 오성판윤(五城判尹)으로 삼았다. 20년에 조(趙) 나라 사람 염관(廉冠)이 가족을 거느리고 입국하였다. 26년에 송(宋) 나라 사람 황노술(黃老述)의 딸이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입국하여 태자궁(太子宮) 안에서 함께 살아싿. 30년에 문해광(文海廣)의 필법(筆法)이 매우 뛰어나서 대부열(大夫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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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두홀(豆忽)을 태자로 삼았다. 3년에 기자조선 사절이 입조하였다. 8년에 위(魏) 나라 박사 진덕기(陳德基)가 입경하였다. 10년에 정(鄭) 나라 사람 신도회(申屠懷)가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와서 살았다. 15년에 흰 학(鶴)이 궁궐 안의 소나무에 와서 살더니, 음악 소리를 듣고 내려와 춤을 추었다. 18년에 문인(文人) 표상술(表相述)을 오성판윤(五城判尹)으로 삼았다. 20년에 조(趙) 나라 사람 염관(廉冠)이 가족을 거느리고 입국하였다. 26년에 송(宋) 나라 사람 황노술(黃老述)의 딸이 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입국하여 태자궁(太子宮) 안에서 함께 살아싿. 30년에 문해광(文海廣)의 필법(筆法)이 매우 뛰어나서 대부열(大夫烈)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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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32년에 오추정(吳秋亭)이 그림을 잘 그리므로 문원상서(文院上書)로 삼았다. 33년에 표상술(表相述)이 아뢰기를 “새의 둥지를 뒤집어 놓으면 알이 떨어져 성 할 리 없고, 나라가 망한 속에서는 평안한 백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타는 집과 새 는 배에서 근심을 같이 하지 않을 사람이 없고, 음식이 떨어져 여러날 굶주리면 병 이 나지 않을 몸이 없으니, 국가는 천하의 대기(大器)입니다. 만일 한번 기울면 사 람의 힘으로 갑자기 바로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기에 훌륭한 왕이 기울기 전 에 힘쓰는 것은 앞으로 기울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는 밝게 살피 시기 바랍니다.” 임금께서는 이 말을 따라, 국정을 밝히 살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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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에 오추정(吳秋亭)이 그림을 잘 그리므로 문원상서(文院上書)로 삼았다. 33년에 표상술(表相述)이 아뢰기를 “새의 둥지를 뒤집어 놓으면 알이 떨어져 성 할 리 없고, 나라가 망한 속에서는 평안한 백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타는 집과 새 는 배에서 근심을 같이 하지 않을 사람이 없고, 음식이 떨어져 여러날 굶주리면 병 이 나지 않을 몸이 없으니, 국가는 천하의 대기(大器)입니다. 만일 한번 기울면 사 람의 힘으로 갑자기 바로 세우기는 어렵습니다. 그리기에 훌륭한 왕이 기울기 전 에 힘쓰는 것은 앞으로 기울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는 밝게 살피 시기 바랍니다.” 임금께서는 이 말을 따라, 국정을 밝히 살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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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표상술(表相述) 의 시(詩)에 외로운 등불은 밤바다를 밝히고 가을비 내리는데 병서만 읽네. 칼을 씻어 석벽에 거니 우레 소리 천지를 진동하도다. 孤燈滄海夜 秋雨讀兵書 洗劍掛石壁 雷聲動天地 35년에 진(晋) 나라 사람 김일선(金日善)이 천문지리학(天文地理學)을 가지고 조 정에 참여하였다. 40년에 제(齊) 나라 상인(商人) 노일명(老一明)이 고급 비단을 싣고와 임금께 바 쳤다. 42년 초(楚) 나라에서 망명한 번석문(樊釋文)이 황금(黃金) 40근을 가지고 입국하 였다. 45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15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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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상술(表相述) 의 시(詩)에 외로운 등불은 밤바다를 밝히고 가을비 내리는데 병서만 읽네. 칼을 씻어 석벽에 거니 우레 소리 천지를 진동하도다. 孤燈滄海夜 秋雨讀兵書 洗劍掛石壁 雷聲動天地 35년에 진(晋) 나라 사람 김일선(金日善)이 천문지리학(天文地理學)을 가지고 조 정에 참여하였다. 40년에 제(齊) 나라 상인(商人) 노일명(老一明)이 고급 비단을 싣고와 임금께 바 쳤다. 42년 초(楚) 나라에서 망명한 번석문(樊釋文)이 황금(黃金) 40근을 가지고 입국하 였다. 45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15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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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세 두홀(豆忽) ―36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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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 세 두홀(豆忽) ―36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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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달음(達音)을 태자로 삼았다. 연(燕)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2년에 초(楚)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4년에 슬후(膝侯)의 아들 섭이(攝珥)가 입조하였다. 10년에 송(宋) 사람 정상충(鄭尙忠)이 자기 나라 사람 50명을 거느리고 입국하였 다. 11년에 크게 가뭄이 들었다. 13년에 위(魏) 나라와 제(齊) 나라 사절이 왔다. 15년에 진(晋) 나라와 조(趙) 나라 사절이 왔다. 21년 8월에 일식9日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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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달음(達音)을 태자로 삼았다. 연(燕)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2년에 초(楚)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4년에 슬후(膝侯)의 아들 섭이(攝珥)가 입조하였다. 10년에 송(宋) 사람 정상충(鄭尙忠)이 자기 나라 사람 50명을 거느리고 입국하였 다. 11년에 크게 가뭄이 들었다. 13년에 위(魏) 나라와 제(齊) 나라 사절이 왔다. 15년에 진(晋) 나라와 조(趙) 나라 사절이 왔다. 21년 8월에 일식9日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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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에 진충노(秦忠老)가 아뢰기를 “천하를 다스리는 도(道)는 풍속을 바르게 하 며, 어진 인재를 얻는 것에 있는 것이니, 가장 시급한 일은 각종 학교를 설립하여 영재들을 공부하게 하여, 각 부문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여 그중에서 뽑아쓰면, 나 라를 다스려 천하가 태평하게 될 날을 기다리시옵소서.”하니, 임금께서 그렇다 하시 고 각종 학교를 많이 세워 백성을 교육하였다. 외국 사람도 와서 유학하는 자가 많았다. 36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16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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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에 진충노(秦忠老)가 아뢰기를 “천하를 다스리는 도(道)는 풍속을 바르게 하 며, 어진 인재를 얻는 것에 있는 것이니, 가장 시급한 일은 각종 학교를 설립하여 영재들을 공부하게 하여, 각 부문에 적합한 인재를 양성하여 그중에서 뽑아쓰면, 나 라를 다스려 천하가 태평하게 될 날을 기다리시옵소서.”하니, 임금께서 그렇다 하시 고 각종 학교를 많이 세워 백성을 교육하였다. 외국 사람도 와서 유학하는 자가 많았다. 36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16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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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 세 달음(達音) ―18년간 재위― 첫 해에 맏아들 음차(音次)를 태자로 삼았다. 진(晋) 나라 사절이 왔다. 3년에 윤복지(尹卜地)가 도덕경(道德經)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5년에 초(楚)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6년에 견융(犬戎)이 와서 복종하였다. 10년에 진개(秦開)가 치국요람(治國要覽)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17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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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 세 달음(達音) ―18년간 재위― 첫 해에 맏아들 음차(音次)를 태자로 삼았다. 진(晋) 나라 사절이 왔다. 3년에 윤복지(尹卜地)가 도덕경(道德經)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5년에 초(楚)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6년에 견융(犬戎)이 와서 복종하였다. 10년에 진개(秦開)가 치국요람(治國要覽)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17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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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세 음차(音次) ―20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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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 세 음차(音次) ―20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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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을우지(乙于支)를 태자로 삼았다. 2년에 연(燕)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4년에 공상의(孔尙義)가 종교론(宗敎論)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5년에 한(韓) 나라 사절이 왔다. 20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18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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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을우지(乙于支)를 태자로 삼았다. 2년에 연(燕)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4년에 공상의(孔尙義)가 종교론(宗敎論)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5년에 한(韓) 나라 사절이 왔다. 20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18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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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 세 을우지(乙于支) ―10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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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 세 을우지(乙于支) ―10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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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물리(勿理)를 태자로 삼았다. 정(鄭) 나라 사절이 왔다. 3년에 철인(哲人) 이일선(李一善)이 천리경(天理經)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5년에 백호돈(白好敦)이 지리학(地理學)과 광물학(鑛物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 치고, 아뢰기를 “우리나라 안에 가는 곳마다 지하에 황금이 있습니다.”하였다. 8년에 임금께서 이일선(李一善)에게 묻기를 “지금 이웃나라와 교류가 전보다 복 잡하니, 어떻게 하면 한 눈에 바르고 바르지 앟음을 알아서, 원만하게 교제할 수 있 겠는가.”하시니, 대답하기를 “사람을 안다는 것은 하늘을 아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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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물리(勿理)를 태자로 삼았다. 정(鄭) 나라 사절이 왔다. 3년에 철인(哲人) 이일선(李一善)이 천리경(天理經)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5년에 백호돈(白好敦)이 지리학(地理學)과 광물학(鑛物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 치고, 아뢰기를 “우리나라 안에 가는 곳마다 지하에 황금이 있습니다.”하였다. 8년에 임금께서 이일선(李一善)에게 묻기를 “지금 이웃나라와 교류가 전보다 복 잡하니, 어떻게 하면 한 눈에 바르고 바르지 앟음을 알아서, 원만하게 교제할 수 있 겠는가.”하시니, 대답하기를 “사람을 안다는 것은 하늘을 아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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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음양풍운(陰陽風雲)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사실을 잘 경험해 보면 대 강 예측할 수 있으나, 사람의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변하기 때문에 알기 어렵습니 다. 사람의 성질은 각기 다르니, 상대방의 성질을 확실히 알아내어 교제하면 착오 가 없을 것입니다.”하였다. 10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19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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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는 음양풍운(陰陽風雲)의 변화가 있기 때문에 사실을 잘 경험해 보면 대 강 예측할 수 있으나, 사람의 마음은 아침 저녁으로 변하기 때문에 알기 어렵습니 다. 사람의 성질은 각기 다르니, 상대방의 성질을 확실히 알아내어 교제하면 착오 가 없을 것입니다.”하였다. 10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19세 단제시다.
단기고사문단 234검수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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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세 물리(勿理) ―25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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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 세 물리(勿理) ―25년간 재위―
단기고사문단 235검수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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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구물(丘勿)을 태자로 삼았다. 제 대부(齊大夫) 전굉(田宏)이 망명 하여 입국하였다. 2년에 조(趙) 나라 사람 형필(荊泌)이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살았다. 4년에 기자조선(奇子朝鮮) 사절이 입조하였다. 8년에 장자학(張子學)이 논리학(論理學=原本 說明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5년에 북적(北狄)이 사자를 보내어 입조하였다. 18년에 오곡이 풍년이 들어 정치가 밝아지고 인심이 화목하여짐으로 내외학문이 몰려들어와, 새로운 사상이 많이 일어나 다사(多事)한 시대가 되었다. 25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20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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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구물(丘勿)을 태자로 삼았다. 제 대부(齊大夫) 전굉(田宏)이 망명 하여 입국하였다. 2년에 조(趙) 나라 사람 형필(荊泌)이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살았다. 4년에 기자조선(奇子朝鮮) 사절이 입조하였다. 8년에 장자학(張子學)이 논리학(論理學=原本 說明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5년에 북적(北狄)이 사자를 보내어 입조하였다. 18년에 오곡이 풍년이 들어 정치가 밝아지고 인심이 화목하여짐으로 내외학문이 몰려들어와, 새로운 사상이 많이 일어나 다사(多事)한 시대가 되었다. 25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20세 단제시다.
단기고사문단 236검수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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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세 구물(丘勿) ―40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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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 세 구물(丘勿) ―40년간 재위―
단기고사문단 237검수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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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여루(余婁)를 태자로 삼았다. 2년에 정(鄭)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3년 2월에 일식(日蝕)이 있었다. 5년에 최화덕(崔和德)이 동물학(動物學)과 식물학(植物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 쳤다. 7년에 위(魏) 나라 박사(博士) 소문경(蘇文卿)이 입조하였다. 10년에 서백원(徐伯元)이 태야․태음․소양․소음(太陽 太陰 小陽 小陰)의 사상의학(四 象醫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6년에 국학박사(國學博士) 황운원(黃雲元)이 백과서(百科書)를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8년에 유종득(柳宗得)이 이재학(理財學)을 만들어 바쳤다. 21년에 적우순(狄于順)이 심리학(心理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25년에 홍수가 일어나 밭농사가 크게 흉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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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여루(余婁)를 태자로 삼았다. 2년에 정(鄭)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3년 2월에 일식(日蝕)이 있었다. 5년에 최화덕(崔和德)이 동물학(動物學)과 식물학(植物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 쳤다. 7년에 위(魏) 나라 박사(博士) 소문경(蘇文卿)이 입조하였다. 10년에 서백원(徐伯元)이 태야․태음․소양․소음(太陽 太陰 小陽 小陰)의 사상의학(四 象醫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6년에 국학박사(國學博士) 황운원(黃雲元)이 백과서(百科書)를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8년에 유종득(柳宗得)이 이재학(理財學)을 만들어 바쳤다. 21년에 적우순(狄于順)이 심리학(心理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25년에 홍수가 일어나 밭농사가 크게 흉년이 들었다.
단기고사문단 238검수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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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에 기자조선(奇子朝鮮) 사절이 입조하였다. 40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21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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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에 기자조선(奇子朝鮮) 사절이 입조하였다. 40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21세 단제시다.
단기고사문단 239검수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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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세 여루(余婁) ―55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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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 세 여루(余婁) ―55년간 재위―
단기고사문단 240검수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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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보을(普乙)을 태자로 삼았다. 제(齊)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4년에 법령을개정하여 천하에 공포하엿는데, 이것을 대동율령(大同律令)이라 한 다. 6년에 큰 흉년이 들어 창고의 쌀을 다 풀어 빈민을 구제하였다. 10년에 감천(甘泉)이 대묘(大廟=종묘)앞에서 솟아나왔다. 12년에 곽태원(郭太原)이 양생론(養生論)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5년에 마자은(馬子隱)이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8년에 온천이 성(城)의 남쪽 삼사(三舍=90里)쯤 되는 곳에서 새로 솟아났다. 20년에 정(鄭) 나라 사람 누경(屢景)이 누시계(漏時計)를 가지고 입조하였다. 21년에 기자조선(奇子朝鮮) 사절이 입조하였다. 23년에 대부례(大夫禮)를 대산후(大山侯)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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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보을(普乙)을 태자로 삼았다. 제(齊)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4년에 법령을개정하여 천하에 공포하엿는데, 이것을 대동율령(大同律令)이라 한 다. 6년에 큰 흉년이 들어 창고의 쌀을 다 풀어 빈민을 구제하였다. 10년에 감천(甘泉)이 대묘(大廟=종묘)앞에서 솟아나왔다. 12년에 곽태원(郭太原)이 양생론(養生論)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5년에 마자은(馬子隱)이 이기일원론(理氣一元論)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18년에 온천이 성(城)의 남쪽 삼사(三舍=90里)쯤 되는 곳에서 새로 솟아났다. 20년에 정(鄭) 나라 사람 누경(屢景)이 누시계(漏時計)를 가지고 입조하였다. 21년에 기자조선(奇子朝鮮) 사절이 입조하였다. 23년에 대부례(大夫禮)를 대산후(大山侯)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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