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古朝鮮BC 2333 – BC 108문헌 원문 · 번역
단기고사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25년에 크게 가물어 초목이 말랐다.
28년에 장소부(莊召夫)가 의학대방(醫學大方)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30년에 홍문선(洪文善)이 태학조문(太學條文)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35년에 송(宋) 나라 학사(學士) 오문은(吳文偃)이 입경하였다.
40년에 조문휴(趙文休)가 자본론(資本論)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42년에 노(魯) 나라 학자 소문술(蘇文述)이 예기(禮記)를 가지고 입조하였다.
45년에 노(魯) 나라 사람 안사득(顔思得)이 주역(周易)을 가지고 입경하였다.
48년 8월에 두 개의 해(兩日)가 함께 떴다.
50년에 북견융(北犬戎)이 쳐들어와 군사를 보내어 물리쳤다.
52년에 임금께서 중화(中華)에 행차하시어 열국(列國)의 형세(形勢)를 관찰하시고
환궁하였다.
번역
25년에 크게 가물어 초목이 말랐다.
28년에 장소부(莊召夫)가 의학대방(醫學大方)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30년에 홍문선(洪文善)이 태학조문(太學條文)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35년에 송(宋) 나라 학사(學士) 오문은(吳文偃)이 입경하였다.
40년에 조문휴(趙文休)가 자본론(資本論)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42년에 노(魯) 나라 학자 소문술(蘇文述)이 예기(禮記)를 가지고 입조하였다.
45년에 노(魯) 나라 사람 안사득(顔思得)이 주역(周易)을 가지고 입경하였다.
48년 8월에 두 개의 해(兩日)가 함께 떴다.
50년에 북견융(北犬戎)이 쳐들어와 군사를 보내어 물리쳤다.
52년에 임금께서 중화(中華)에 행차하시어 열국(列國)의 형세(形勢)를 관찰하시고
환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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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55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22세 단제시다.
번역
55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22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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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제 22 세 보을(普乙) ―46년간 재위―
번역
제 22 세 보을(普乙) ―46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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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첫 해에 맏아들 고열가(古列加)를 태자로 삼았다. 기자조선(奇子朝鮮) 사절이 입
조하였다.
4년에 백두산(白頭山)이 밤에 울고, 천지(天池)의 물이 넘쳤다.
6년에 혼서경(混西經)이 쳐들어 왔으나 물리쳤다.
10년에 오성계(吳成桂)가 반역하다가 죽었다.
13년에 장노술(張老術)이 아름다운 옥과 미녀(美女)를 바치니 임금께서 매우 총애
하셨다.
15년에 황충(黃虫)이 밭곡식을 다 먹어 버렸다.
20년에 정(鄭) 나라 사람 정발(鄭拔)이 음악을 가지고 입국하였다.
23년에 북풍이 크게 불어 나무가 꺾어지고 집이 무너졌다.
28년 4월에 적토우(赤土雨)[주:赤土雨-붉은 흙이 섞인 비]가 쏟아졌다.
30년에 국정이 문란하여 정권이 외척(外戚) 환윤(桓允)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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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에 맏아들 고열가(古列加)를 태자로 삼았다. 기자조선(奇子朝鮮) 사절이 입
조하였다.
4년에 백두산(白頭山)이 밤에 울고, 천지(天池)의 물이 넘쳤다.
6년에 혼서경(混西經)이 쳐들어 왔으나 물리쳤다.
10년에 오성계(吳成桂)가 반역하다가 죽었다.
13년에 장노술(張老術)이 아름다운 옥과 미녀(美女)를 바치니 임금께서 매우 총애
하셨다.
15년에 황충(黃虫)이 밭곡식을 다 먹어 버렸다.
20년에 정(鄭) 나라 사람 정발(鄭拔)이 음악을 가지고 입국하였다.
23년에 북풍이 크게 불어 나무가 꺾어지고 집이 무너졌다.
28년 4월에 적토우(赤土雨)[주:赤土雨-붉은 흙이 섞인 비]가 쏟아졌다.
30년에 국정이 문란하여 정권이 외척(外戚) 환윤(桓允)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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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34년에 궁전이 저절로 무너져 깔려죽는 자가 많았다.
38년에 도성에 큰 불이 일어나 집 5천여 호가 타버렸다.
46년에 5월에 반역하는 신하 한 개(韓介)가 임금을 죽이고 자립했다. 태자 고열
가(古列加=시호는 寧禀離王)가 군사를 이끌고 한개를 쳐 죽이고, 8월 15일에 왕위
에 오르니 제23세 단제시다.
번역
34년에 궁전이 저절로 무너져 깔려죽는 자가 많았다.
38년에 도성에 큰 불이 일어나 집 5천여 호가 타버렸다.
46년에 5월에 반역하는 신하 한 개(韓介)가 임금을 죽이고 자립했다. 태자 고열
가(古列加=시호는 寧禀離王)가 군사를 이끌고 한개를 쳐 죽이고, 8월 15일에 왕위
에 오르니 제23세 단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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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제 23 세 고열가(古列加) ―58년간 재위―
2년에 임금께서 국정을 친히 집행하시니, 외척의 권위를 물리치고 어진 이를 기
용하며, 능한 사람에게 일을 맡겨 백성을 다스리셨다.
5년에 견융(犬戎)이 불복(不服)하므로 군사를 보내어 물리쳐 평정하였다.
10년에 기자조선(奇子朝鮮) 사절이 입조하였다.
16년에 위(衛)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20년에 풍년이 들고 동해에서 많은 고기가 잡혔다.
22년에 소정국(蘇定國)이 건축학(建築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25년에 구노선(歐老先)이 종수학(種樹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31년에 각처에 신원함(申寃函)을 설치하여, 억울한 일을 당한자들이 투서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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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 세 고열가(古列加) ―58년간 재위―
2년에 임금께서 국정을 친히 집행하시니, 외척의 권위를 물리치고 어진 이를 기
용하며, 능한 사람에게 일을 맡겨 백성을 다스리셨다.
5년에 견융(犬戎)이 불복(不服)하므로 군사를 보내어 물리쳐 평정하였다.
10년에 기자조선(奇子朝鮮) 사절이 입조하였다.
16년에 위(衛) 나라 사절이 입조하였다.
20년에 풍년이 들고 동해에서 많은 고기가 잡혔다.
22년에 소정국(蘇定國)이 건축학(建築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25년에 구노선(歐老先)이 종수학(種樹學)을 저술하여 임금께 바쳤다.
31년에 각처에 신원함(申寃函)을 설치하여, 억울한 일을 당한자들이 투서하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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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에 어서(御使)를 시켜 백성들의 사회를 몰래다니며, 부정한 사건을 비밀리에
탐지하여 바로 잡았다.
45년에 연9燕) 나라 대부(大夫) 형운(荊雲)이 망명하여 입국하였다.
48년에 선단제묘(先檀帝廟)를 성의 남쪽에 세웠다.
5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대를 이을 후사가 없으므로, 종친(宗親) 해모수(解
慕漱)[주:解慕漱-북부여의 첫 임금.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와의 사이에서 고
구려시조 주몽을 낳았다.]가 옛 도음지 부여9扶餘)에서 반기를 들어 나라를 세우니,
북부여(北扶餘)라 하였다.
번역
40년에 어서(御使)를 시켜 백성들의 사회를 몰래다니며, 부정한 사건을 비밀리에
탐지하여 바로 잡았다.
45년에 연9燕) 나라 대부(大夫) 형운(荊雲)이 망명하여 입국하였다.
48년에 선단제묘(先檀帝廟)를 성의 남쪽에 세웠다.
5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대를 이을 후사가 없으므로, 종친(宗親) 해모수(解
慕漱)[주:解慕漱-북부여의 첫 임금.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와의 사이에서 고
구려시조 주몽을 낳았다.]가 옛 도음지 부여9扶餘)에서 반기를 들어 나라를 세우니,
북부여(北扶餘)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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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후단제(後檀帝)는 이것으로 대가 끊기니, 1세 솔나(率那)로부터 고열가(古列加)
에 이르기까지 23대 875년간이다.
전단조(前檀朝) 1214년, 후단조(後檀朝) 875년 모두 2809년간이다.
※ 위 본문은 전단조 1214년은 1222년이다. 이를 후단조 875년과 합치면 2809년
이 아니라 2096년이다. 이는 환단고기의 단군조선 역년과 일치한다. -
제 3 편 기자조선(奇子朝鮮)
번역
- 후단제(後檀帝)는 이것으로 대가 끊기니, 1세 솔나(率那)로부터 고열가(古列加)
에 이르기까지 23대 875년간이다.
전단조(前檀朝) 1214년, 후단조(後檀朝) 875년 모두 2809년간이다.
※ 위 본문은 전단조 1214년은 1222년이다. 이를 후단조 875년과 합치면 2809년
이 아니라 2096년이다. 이는 환단고기의 단군조선 역년과 일치한다. -
제 3 편 기자조선(奇子朝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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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제 1 세 서여(西余) ―61년간 재위―
번역
제 1 세 서여(西余) ―61년간 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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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기자(奇子)의 성(姓)은 혼(桓)이며 이름은 서여(西余)이다. 전단조(前檀朝) 19세
단제 종년(縱年)의 아우인 청아왕 종선(菁莪王 縱鮮)의 증손(曾孫)이다.
그 성품은 성․철․문․무(聖․哲․文․武)하시며 신지현명(神智賢明)하시고, 덕이 만방을
적시고 인(仁)이 금수에까지 미치고, 모든 백성과 친하며 백성을 사랑하시더니, 전
단조 25세 39년에 보위에 오르시어 평양 왕검성(平壤 王儉城)에 도읍을 정하고, 나
라를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기자(奇子)라는 뜻은 태양의 아들이며 황손(皇孫)이다.>
첫 해에 미서(微西)에게 명을 내려 정전법(井田法)을 만들어 공포하고 백성들에게
농사일에 힘쓰도록 독려하였으며, 납세의 의무를 알게하여 소득의 9분의 1을 바치
게 하였다.
번역
기자(奇子)의 성(姓)은 혼(桓)이며 이름은 서여(西余)이다. 전단조(前檀朝) 19세
단제 종년(縱年)의 아우인 청아왕 종선(菁莪王 縱鮮)의 증손(曾孫)이다.
그 성품은 성․철․문․무(聖․哲․文․武)하시며 신지현명(神智賢明)하시고, 덕이 만방을
적시고 인(仁)이 금수에까지 미치고, 모든 백성과 친하며 백성을 사랑하시더니, 전
단조 25세 39년에 보위에 오르시어 평양 왕검성(平壤 王儉城)에 도읍을 정하고, 나
라를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기자(奇子)라는 뜻은 태양의 아들이며 황손(皇孫)이다.>
첫 해에 미서(微西)에게 명을 내려 정전법(井田法)을 만들어 공포하고 백성들에게
농사일에 힘쓰도록 독려하였으며, 납세의 의무를 알게하여 소득의 9분의 1을 바치
게 하였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맏아들 아락(阿洛)을 태자로 삼고 운양후(雲養侯)를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삼았
다. 그 다음 세 아들에게 각각 성을 내려(賜姓) 한(韓)․선우(鮮于)․기(奇)라 하였다.
4년에 평양에 국립대학을 세우고 백성을 정법(政法)으로 가르쳤다.
5년에 여덟가지 바른 도리를 백성에게 가르치니
1. 살인한 자는 죽이고
2. 사람을 상하게 한 자는 곡식으로 갚고
3. 강도 한 자는 다 그 집에 들어가 노비(奴婢)가 되고
4. 절도한 자는 자기만 노비가 되고
5. 남자는 밖에 나가 농사를 짓고
6. 여자는 안에서 베를 짜고
7. 혼인은, 한 남자가 부인 한 명만을 거느릴 수 있고
8. 명분(名分)을 서로 침해하지 말라.
번역
맏아들 아락(阿洛)을 태자로 삼고 운양후(雲養侯)를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삼았
다. 그 다음 세 아들에게 각각 성을 내려(賜姓) 한(韓)․선우(鮮于)․기(奇)라 하였다.
4년에 평양에 국립대학을 세우고 백성을 정법(政法)으로 가르쳤다.
5년에 여덟가지 바른 도리를 백성에게 가르치니
1. 살인한 자는 죽이고
2. 사람을 상하게 한 자는 곡식으로 갚고
3. 강도 한 자는 다 그 집에 들어가 노비(奴婢)가 되고
4. 절도한 자는 자기만 노비가 되고
5. 남자는 밖에 나가 농사를 짓고
6. 여자는 안에서 베를 짜고
7. 혼인은, 한 남자가 부인 한 명만을 거느릴 수 있고
8. 명분(名分)을 서로 침해하지 말라.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하시니, 한번 노예가 되면 그 후에 풀림을 받았으나 결혼할 때에는 그것을 수치로
여겼다.
10년에 어질고 착하고 품행이 바른 선비를 뽑아 정사에 참여하게 하여, 인덕(仁
德)과 충렬(忠烈)을 가르치니,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았으며 밤에 문을 닫지
않고 살았다.
11년에 전단조(前檀朝) 제5세 단군 능(陵)을 강동(江東)에 개축하였다.
12년에 제1세 국조단군전(國祖檀君殿)을 평양에 세우고 단군의 화상9畵像)을 모
셨다.
23년에 처음으로 종실(宗室)을 봉하여 왕후(王侯)로 삼았다.
34년에 평양 서쪽 성에 보통문(普通門)을 건립하고 버드나무와 뽕나무를 많이 심
었다.
번역
하시니, 한번 노예가 되면 그 후에 풀림을 받았으나 결혼할 때에는 그것을 수치로
여겼다.
10년에 어질고 착하고 품행이 바른 선비를 뽑아 정사에 참여하게 하여, 인덕(仁
德)과 충렬(忠烈)을 가르치니,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았으며 밤에 문을 닫지
않고 살았다.
11년에 전단조(前檀朝) 제5세 단군 능(陵)을 강동(江東)에 개축하였다.
12년에 제1세 국조단군전(國祖檀君殿)을 평양에 세우고 단군의 화상9畵像)을 모
셨다.
23년에 처음으로 종실(宗室)을 봉하여 왕후(王侯)로 삼았다.
34년에 평양 서쪽 성에 보통문(普通門)을 건립하고 버드나무와 뽕나무를 많이 심
었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38년에 은(殷) 나라 상인이 와서 말하기를 “은 나라 정치가 문란하고, 법의 기강
이 해이하여 백성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당을 얻을 수 없으니, 조선에 와서 살면
좋겠다.”하여, 이때부터 은 나라에서 이사 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39년에 소나벌(蘇奈伐)을 수상(首相)으로 삼고 몽득리(蒙得利)를 상장(上將)으로
삼았다.
40년에 후단조(後檀朝) 사절이오니 상국(上國)의 예로써 대우하였다.
41년에 서비리족(叙非利族)이 변경을 침공하니, 몽득리(蒙得利)를 구원병으로 보
내어 물리쳤다.
48년에 양병헌(楊兵憲)이 아뢰기를 “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한 것은 예의가 있
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예의가 없으면 짐승에 가까우니 무엇이 귀하겠습니까.
번역
38년에 은(殷) 나라 상인이 와서 말하기를 “은 나라 정치가 문란하고, 법의 기강
이 해이하여 백성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당을 얻을 수 없으니, 조선에 와서 살면
좋겠다.”하여, 이때부터 은 나라에서 이사 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39년에 소나벌(蘇奈伐)을 수상(首相)으로 삼고 몽득리(蒙得利)를 상장(上將)으로
삼았다.
40년에 후단조(後檀朝) 사절이오니 상국(上國)의 예로써 대우하였다.
41년에 서비리족(叙非利族)이 변경을 침공하니, 몽득리(蒙得利)를 구원병으로 보
내어 물리쳤다.
48년에 양병헌(楊兵憲)이 아뢰기를 “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한 것은 예의가 있
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예의가 없으면 짐승에 가까우니 무엇이 귀하겠습니까.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그
러기에 모든 성조(聖朝)가 천하를 다스리실 때에, 예의로써 백성을 가르치는 요소를
삼아 천년이 넘도록 길이 복지를 누리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원하옵기는, 전하께서는 예의를 극히 중하게 여기시어 백성들이 이것을 익혀 아
름다움을 이루게 하시고, 더욱 나날이 새록베 하여 오래 이어온 이 나라로 하여금
그 명(命)을 유지하게 하옵소서.“하니, 임금께서 그 말을 받아들이시고, 예의로써
백성을 가르치니 이때부터 백성들이 예의에 밝았으며 법을 어기는 자가 적었다.
58년에 세금의 반을 감하고, 백성을 더욱 의와 용맹과 봉공(奉公)하는데 힘쓰게
하니, 백성이 공전(公戰)에는 용맹스럽고 사사로운 다툼에는 겁을 냈다.
61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2세 기자시다.
번역
그
러기에 모든 성조(聖朝)가 천하를 다스리실 때에, 예의로써 백성을 가르치는 요소를
삼아 천년이 넘도록 길이 복지를 누리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원하옵기는, 전하께서는 예의를 극히 중하게 여기시어 백성들이 이것을 익혀 아
름다움을 이루게 하시고, 더욱 나날이 새록베 하여 오래 이어온 이 나라로 하여금
그 명(命)을 유지하게 하옵소서.“하니, 임금께서 그 말을 받아들이시고, 예의로써
백성을 가르치니 이때부터 백성들이 예의에 밝았으며 법을 어기는 자가 적었다.
58년에 세금의 반을 감하고, 백성을 더욱 의와 용맹과 봉공(奉公)하는데 힘쓰게
하니, 백성이 공전(公戰)에는 용맹스럽고 사사로운 다툼에는 겁을 냈다.
61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2세 기자시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제 2 세 아락(阿洛) ―40년간 재위―
번역
제 2 세 아락(阿洛) ―40년간 재위―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첫 해에 맏아들 솔귀(率歸)를 태자로 삼았다.
2년에 대동문(大同門)을 대동강(大同江) 변에 세우고 평양성을 개축하였다.
5년에 토목(土木)공사를 크게 일으켜 신청궁(新淸宮)을 만드니, 많은 사람들이 고
역에 눌려 원성이 나라 안에 가득하였다.
10년에 나라의 경계를 정하였는데, 북은 후단조(後檀朝)에 정하고, 동쪽․남쪽․서쪽
은 큰 바다가 있었다.
13년에 이선간(李仙干)를 보내어 동북쪽에 있는 오랑캐(胡)를 쳐서 꺾었다.
18년에 마이서(馬以西)를 보내어 북적(北狄)을 쳤다.
20년에 정벌(征伐)에 힘쓰며, 토목(土木)을 크게 일으키니 백성들의 부역이 과중
하여지고, 세금을 미납하는 일이 있으므로 엄부․진상(嚴父․陳祥=收金者)을 보내어,
그 미납된 세금을 독촉하여 징수하였다.
번역
첫 해에 맏아들 솔귀(率歸)를 태자로 삼았다.
2년에 대동문(大同門)을 대동강(大同江) 변에 세우고 평양성을 개축하였다.
5년에 토목(土木)공사를 크게 일으켜 신청궁(新淸宮)을 만드니, 많은 사람들이 고
역에 눌려 원성이 나라 안에 가득하였다.
10년에 나라의 경계를 정하였는데, 북은 후단조(後檀朝)에 정하고, 동쪽․남쪽․서쪽
은 큰 바다가 있었다.
13년에 이선간(李仙干)를 보내어 동북쪽에 있는 오랑캐(胡)를 쳐서 꺾었다.
18년에 마이서(馬以西)를 보내어 북적(北狄)을 쳤다.
20년에 정벌(征伐)에 힘쓰며, 토목(土木)을 크게 일으키니 백성들의 부역이 과중
하여지고, 세금을 미납하는 일이 있으므로 엄부․진상(嚴父․陳祥=收金者)을 보내어,
그 미납된 세금을 독촉하여 징수하였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36년에 상(商) 나라 사절이 오니, 사자를 보내어 사례하였다
40년에 소문라(召文羅)가 아뢰기를 “중화(中華)의 상(商)나라 임금 수(受=紂王)가
무도(無道)하여 백성들의 신망을 크게 잃었으니, 멀지 않아 망할 것입니다. 원하옵
기는, 전하께서는 의사(義師)를 들어 토벌한다면 대업(大業)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
다.”하니, 임금께서 “생각하고 있는지 오래되었다.”하시고, 더욱 병사를 훈련하여
각종 병기를 준비하였는데, 그해 8월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3세 기자시다.
번역
36년에 상(商) 나라 사절이 오니, 사자를 보내어 사례하였다
40년에 소문라(召文羅)가 아뢰기를 “중화(中華)의 상(商)나라 임금 수(受=紂王)가
무도(無道)하여 백성들의 신망을 크게 잃었으니, 멀지 않아 망할 것입니다. 원하옵
기는, 전하께서는 의사(義師)를 들어 토벌한다면 대업(大業)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
다.”하니, 임금께서 “생각하고 있는지 오래되었다.”하시고, 더욱 병사를 훈련하여
각종 병기를 준비하였는데, 그해 8월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3세 기자시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제 3 세 솔귀(率歸) ―48년간 재위―
번역
제 3 세 솔귀(率歸) ―48년간 재위―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첫 해에 맏아들 임나(任那)를 태자로 삼았다. 임금께서는 여러해동안 백성들이
궁하고 병력이 약해진 것을 아시고, 나라 안을 다스리는데 힘써 농업과 상업을 권
장하며 산업을 장려하며 세금을 낮추니, 그 동안 궁핍하던 백성들이 점점 넉넉해졌
다.
43년에 서주(西周) 무왕(武王)이 강자아(姜子牙=姜太公)을 얻은 후에 상(商)의 수
(受)를 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제후(諸侯)를 기산(岐山) 아래에 모으니, 기약없이
모인자가 800명이었다. 다 주(紂)를 치는 것이 옳다는 결의를 하고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백성들이 그 정세를 알고 피난하여 입국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더니 몇
해 만에 주 무왕(周 武王)에게 멸망하였다.
번역
첫 해에 맏아들 임나(任那)를 태자로 삼았다. 임금께서는 여러해동안 백성들이
궁하고 병력이 약해진 것을 아시고, 나라 안을 다스리는데 힘써 농업과 상업을 권
장하며 산업을 장려하며 세금을 낮추니, 그 동안 궁핍하던 백성들이 점점 넉넉해졌
다.
43년에 서주(西周) 무왕(武王)이 강자아(姜子牙=姜太公)을 얻은 후에 상(商)의 수
(受)를 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제후(諸侯)를 기산(岐山) 아래에 모으니, 기약없이
모인자가 800명이었다. 다 주(紂)를 치는 것이 옳다는 결의를 하고 공격할 계획을
세웠다. 백성들이 그 정세를 알고 피난하여 입국하는 자가 많았다. 그러더니 몇
해 만에 주 무왕(周 武王)에게 멸망하였다.
단기고사검수 확정
원문
45년에 은(殷) 나라 주(紂)의 친척인 기자(箕子=子胥餘)가 주(周) 나라의 신하될
마음이 없어 동쪽으로 나오니, 강달(姜達)․궁흠(弓欽) 등 50명이 따라와 요수(遼水=
西遼河)변에 이르러 머물렀다. 임금께서 그 사정을 가련하게 여기시고 요서(遼西)
의 한 모퉁이에 거주하게 하셨다. 은(殷) 백성들 중에는 기자(箕子)를 우러러 받드
는 자들이 모여 살면서 기자정(箕子井)과 기자경(箕子畊)이라 하였다.
46년에 주(周)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우방으로서의 우의(友誼)를 맺었다.
4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4세 기자시다.
번역
45년에 은(殷) 나라 주(紂)의 친척인 기자(箕子=子胥餘)가 주(周) 나라의 신하될
마음이 없어 동쪽으로 나오니, 강달(姜達)․궁흠(弓欽) 등 50명이 따라와 요수(遼水=
西遼河)변에 이르러 머물렀다. 임금께서 그 사정을 가련하게 여기시고 요서(遼西)
의 한 모퉁이에 거주하게 하셨다. 은(殷) 백성들 중에는 기자(箕子)를 우러러 받드
는 자들이 모여 살면서 기자정(箕子井)과 기자경(箕子畊)이라 하였다.
46년에 주(周) 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우방으로서의 우의(友誼)를 맺었다.
48년에 임금께서 승하하시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제4세 기자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