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高句麗BC 37 – AD 668문헌 원문 · 번역
조선상고사 제8편 삼국 혈전
제8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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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 장 네 나라 연합군의 합전(合戰)과 고구려의 퇴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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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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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新羅) · 백제(百濟) 양국의 관계와 비밀동맹의 성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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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백제의 관계 및 비밀 동맹의 성립
제8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장수왕의 남진정책(南進政策)이 비록 한때 백제를 무너뜨렸으나 마침내 남쪽 세 나라---신라· 백제·가라의 연맹(聯盟)을 이루게 한 원인이 되어 역사상 초유의 대변국(大變局)을 이루었다. 이 연맹의 주력이 신라에 있었으므로 이제 그 경과를 서술함에 있어, 먼저 신라 대 백제·고구려 관계의 유래부터 대략 말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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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의 남진정책이 비록 한때 백제를 무너뜨렸으나 마침내 남쪽 세 나라, 즉 신라와 백제, 가라가 연맹을 이루게 된 원인이 되어 역사상 초유의 대변국을 이루었다. 이 연맹의 주력이 신라에 있었으므로 이제 그 경과를 서술함에 있어, 먼저 신라와 백제·고구려 관계의 유래부터 대략 말하려 한다.
제8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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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원래 그 지방이 고구려와 멀고 백제와 가까워서 고구려보다 백제와의 관계가 더욱 복잡하였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신라 · 백제 관계의 기록은 믿을 것이 적으니 그 한두 예를 들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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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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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신라가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이후로 백제와 서로 2백 명 정도의 적은 군사로 연혁(沿革)도 전하지 않는 와산(蛙山) 봉산(烽山) 등지를 거의 해마다 빼앗고 빼앗기곤 하였으나, 신라는 당초 경주 한 귀퉁이의 조그만 나라이고, 백제는 온조왕(溫祚王) 당년에 벌써 마한(馬韓) 50여 나라를 차지하였으니 어찌 신라와 똑같이 해마다 2백 명정도의 군사를 내었으랴? 또 한 가지, 두 나라가 간혹 화호(和好)한 일이 있으나 늘 백제가 먼저 신라에 향하여 화의를 빌었다고 하였는데, 백제가 신라보다 몇 갑절 되는 큰 나라로서 어찌 늘 먼저 굴복하였으랴? 백제와 신라 사이에 가라(加羅) 6나라와 사벌(沙伐)·감문(甘文) 등 완충국(緩衝國)이 있었는데 어찌 백제가 가라 등의 나라들과는 한 번의 충돌도 없고 도리어 신라를 침범하였으랴? 대개 신라가 백제를 원망함이 심하였으므로 백제가 망한 뒤에 그와 관계된 사적을 많이 고치거나 혹은 위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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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신라가 탈해이사금 이후로 백제와 서로 이백 명 정도의 적은 군사로 연혁도 전하지 않는 와산 봉산 등의 지역을 거의 해마다 빼앗고 빼앗기곤 하였으나, 신라는 당초 경주 한 귀퉁이의 조그만 나라이고, 백제는 온조왕 당년에 벌써 마한 오십여 나라를 차지하였으니 어찌 신라와 똑같이 해마다 이백 명 정도의 군사를 내었으랴? 또 한 가지, 두 나라가 간혹 화호한 일이 있으나 늘 백제가 먼저 신라에 향하여 화의를 빌었다고 하였는데, 백제가 신라보다 몇 갑절 되는 큰 나라로서 어찌 늘 먼저 굴복하였으랴? 백제와 신라 사이에 가라 육나라와 사벌·감문 등 완충국이 있었는데 어찌 백제가 가라 등의 나라들과는 한 번의 충돌도 없고 도리어 신라를 침범하였으랴? 대개 신라가 백제를 원망함이 심하였으므로 백제가 망한 뒤에 그와 관계된 사적을 많이 고치거나 혹은 위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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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의 삼국지(三國志)·남사(南史)·북사(北史) 등에 보인 기록을 보면 신라가 처음에 백제의 결제를 받았다 하였으니 이것이 도리어 믿을 만한 기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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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의 삼국지, 남사, 북사에 보이는 기록에 따르면 신라는 처음에는 백제의 승낙을 받았다고 하니, 오히려 이 기록이 믿을 만할 것이다.
제8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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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구수왕 ( 近仇首王 ) 이후 백제가 고구려와 혈전을 벌이는 동안에 신라는 비로소 자립하여 백제와 대항하다가 오래지 않아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나와 국위가 크게 떨치자 백제의 아신왕 ( 阿莘王 ) 이 왜병 ( 倭兵 ) 을 불러 북으로 고구려를 막고 남으로 신라를 치니, 신라의 내물이사금 ( 奈勿尼師今 ) 은 고구려의 구원병을 얻어 왜를 물리치고 몸소 광개토왕에게 조알 ( 朝謁 ) 하고 왕족 실성 ( 實聖 ) 으로 볼모를 삼았다. 내물이사금이 돌아가자 내물의 아들 눌지 ( 訥祗 ) 가 아직 어리므로 실성이 귀국하여 왕위를 잇고, 눌지 · 복호 ( 卜好 ) 형제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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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실성왕이 고구려의 귀인 ( 貴人 ) 과 결탁하여 눌지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고구려 사람이 듣지 않고 눌지를 돌려보내서 실성왕을 죽이고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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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실성왕이 고구려의 귀인과 결탁하여 눌지를 죽이려 하였으나, 고구려 사람들이 듣지 않아 눌지를 돌려보냈고, 그로 인해 실성왕은 죽임을 당하고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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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지이사금 ( 訥祗尼師今 ) 이 이와 같이 고구려로 하여 왕위를 얻었으나 고구려가 백제를 아우르면 신라도 홀로 견디어내지 못할 것을 알고, 박제상 ( 朴堤上 ) 을 보내서 신라의 고구려에 대한 정성이 한낱 볼모의 있고 없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다는 말로 고구려의 군신을 꾀어 왕의 사랑하는 아우 복호 ( 卜好 ) 를 돌려오고 비밀히 백제와 통하여 고구려를 막으려 하였으며, 백제도 왜 ( 倭 ) 는 멀고 신라는 가까우므로 왜를 끊고 신라와 사귀어 고구려를 막기로 결정하여 신라와 백제 두 나라의 동맹이 성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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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지이사금이 이와 같이 고구려로 왕위를 얻었으나, 고구려가 백제를 아우르면 신라도 홀로 감당하지 못할 것을 알고 박제상을 보내어 신라가 고구려에 대한 정성이 단지 볼모의 유무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말로 고구려의 군신을 꾀어 왕이 사랑하는 아우 복호를 돌려오고 비밀히 백제와 통하여 고구려를 막으려 하였다. 또한 백제도 왜가 멀고 신라가 가까우므로 왜를 끊고 신라와 사귀어 고구려를 막기로 결정하여, 신라와 백제 두 나라의 동맹이 성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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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에, 눌지이사금 39 년, 기원후 455 년에 고구려가 백제를 침범하니 눌지 이사금이 군사를 보내 백제를 구원하였다 하였으니 이는 곧 위에 말한 두 나라 동맹의 결과이거니와 이 밖에도 고구려 대 동맹 양국의 침략전과 동맹 양국 대 고구려의 방어전이 잦았을 것인데 기록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은 사문 ( 史文 ) 이 떨어져나가 없어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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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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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라·백제 ·임나(任那)·아라(阿羅) 네 나라의 대 고구려동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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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와 백제, 임나, 아라 네 나라가 고구려에 동맹을 맺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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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이 신위례성 ( 新慰禮城 ) 을 침노하자 근개루왕 ( 近蓋屢王 ) 의 태자문주 ( 文周 ) 가 신라에 와서 급함을 고하니, 신라는 동맹의 의리로뿐 아니라 그 자위상 ( 自衛上 ) 부득이 출병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비마립간 ( 慈悲麻立干 ) 이 군사 1 만으로 구원에 나섰으나 근개루왕은 이미 죽고 신위례성은 벌써 무너졌으므로, 문주왕 ( 文周王 ) 은 서울을 회복하지 못하고 물러나 웅진 ( 熊津 ) 에 도읍하니 웅진은 광개토왕의 비문에 고모나라 ( 古模那羅 ) 라고 한 곳이다. 둘 다 '곰나루'로 읽을 것이니 전자는 뜻으로 쓴 이두자요, 후자는 음으로 쓴 이두자이다. 지금의 공주 ( 公州 ) 가 당시의 '곰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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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이 신위례성을 침공하자 근개루왕의 태자 문주가 신라에 와서 급함을 알렸고, 신라는 동맹의 의리뿐 아니라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부득이 출병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비마립간이 군사 만 명으로 구원에 나섰으나 근개루왕은 이미 죽었고 신위례성은 벌써 무너졌으므로, 문주왕은 서울을 회복하지 못하고 물러나 웅진에 도읍하였으니 웅진은 광개토왕의 비문에 기록된 고모나라이다. 둘 다 '곰나루'로 읽을 것이니 전자는 뜻으로 적은 이두자요, 후자는 소리로 적은 이두자이다. 지금의 공주가 당시의 '곰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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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지금의 한강 ( 漢江 ) 이남에 신라 · 백제 이외에 가라 ( 加羅 ) 등 여섯 나라가 있어서 지금의 경상남도를 나누어 웅거하였음은 제 3 편에서 말하였거니와 최초에는 신가라가 종주국 ( 宗主國 ) 이고 임나 ( 任那 ) · 아라 ( 阿羅 ) · 고자 ( 古自 ) · 고령 ( 古寧 ) · 벽진 ( 碧珍 ) 의 다섯 가라는 이에 딸려 있었는데 그 뒤에 신가라와 다른 세 가라는 미약해져서 정치문제에 관여할 권리를 잃고 오직 임나와 아라 두 가라만이 강성해져 신라와 맞섰다. 그래서 광개토왕이 왜를 칠 때에도 상당한 군사를 내어 신라와 함께 고구려를 도와서 왜와 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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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때에 이르러 신위례성이 무너지고 백제가 웅진 ( 熊津 ) 으로 천도하니 두 가라가 다 크게 놀라 스스로 보전하기를 도모하는 동시에, 신라와 백제도 그 두 나라의 힘이 고구려를 막아냄 에 부족함을 느끼고 드디어 두 가라의 동맹가입을 권유하여, 이에 신라 · 백제 두 나라 대 고구려의 공수동맹이 신라 · 백제 · 임나 · 아라 네 나라 대 고구려 공수동맹으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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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때에 이르러 신위례성이 무너지고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니 두 가라가 모두 크게 놀라 스스로 보전하기를 도모하는 동시에, 신라와 백제도 그 두 나라의 힘이 고구려를 막아내는 데 부족함을 느끼고 드디어 두 가라의 동맹 가입을 권유하여, 이에 신라·백제 두 나라 대 고구려의 공수동맹이 신라·백제·임나·아라 네 나라 대 고구려 공수동맹으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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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은 신라가 전번의 고구려의 큰 은혜 ---광개토왕이 왜군을 정벌한 일을 잊고 백제와 연합함을 크게 분하게 여겨 기원후 481 년에 대병을 일으켜 신라의 동북부를 침공하니, 신라의 소지마립간 ( 炤智麻立干 ) 이 몸소 비열홀 ( 比列忽 )--- 지금의 안변 ( 安邊 ) 에 이르러 방어하다 크게 패하여 고구려 군사가 이긴 기세를 타서 남으로 나와 고명 ( 孤鳴 ) 지금의 회양 ( 淮陽 ) 등 일곱 성을 함락시키니, 백제의 동성대왕 ( 東城大王 : 다음 장 참조 ) 이 두 가라국 ( 加羅國 ) 과 연합하여 길을 나누어 응원해서 고구려 군사를 격파하고 그 잃은 땅을 회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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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은 신라가 전번의 고구려의 큰 은혜, 즉 광개토왕이 왜군을 정벌한 일을 잊고 백제와 연합하는 것을 크게 분하게 여겨 기원후 481년에 대병을 일으켜 신라의 동북부를 침공하니, 신라의 소지마립간(炤智麻立干)이 몸소 비열홀(比列忽) 지금의 안변에 이르러 방어하다 크게 패하여 고구려 군사가 이긴 기세를 타서 남으로 나와 고명 지금의 회양 등 일곱 성을 함락시키니, 백제의 동성대왕(東城大王: 다음 장 참조)이 두 가라국과 연합하여 길을 나누어 응원해서 고구려 군사를 격파하고 그 잃은 땅을 회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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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계속된 네 나라 동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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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라 동맹으로 인하여 장수왕의 남진 철편 ( 鐵鞭 ) 이 꺾이고 백제와 신라가 다 스스로 보전함을 얻었으니, 그러므로 이것은 당시 조선 정치사상 큰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백제 동성대왕이 해외를 경략 ( 經略 : 다음 장 참조 ) 하여 백제가 고구려 이상의 강국임을 자랑하던 때까지도 이 동맹이 오히려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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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나라의 연합으로 인해 장수왕의 남진하는 철편이 부러졌고, 백제와 신라가 스스로 보전함을 얻었으니, 이는 당시 조선 정치사상에 큰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백제 동성대왕이 해외를 경략하여 백제가 고구려 이상으로 강국임을 자랑하던 때까지도 이 연맹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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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494 년에 신라가 살수 ( 薩水 ) 지금의 대동강 상류 부근에서 고구려와 싸우다가 견 아성 ( 犬牙城 ) 에서 포위당하여 구원을 청하므로 백제의 동성대왕이 군사 3 천을 보내 고구려를 격퇴하고 포위를 풀었으며, 이듬해 고구려가 백제의 반걸양 ( 半乞壞 ) 을 치자 신라 소지마립간이 또한 구원병을 보내 고구려 군사를 격퇴하였으니, 이 동맹이 대개 40 여 년 계속되었음이 분명하며, 이 동맹이 해체된 뒤에야 신라가 가라 ( 加羅 ) 침략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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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 장 백제의 위(魏) 침입 격퇴와 해외 식민지 획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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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대왕(東城大王) 이후 다시 강성해진 백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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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대왕 이후 다시 강성해진 백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