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高句麗BC 37 – AD 668문헌 원문 · 번역
조선상고사 제10편 고구려 대당전쟁
제10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고구려군의 패강(浿江) 승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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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군이 패강에서 이긴 전투
제10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을지문덕이 수의 군사를 깊이 꾀어들이려고 요하(遼河) 서북쪽에 있던 군사를 거두어들여 요하를 지키니, 그 해 3월에 수의 군사가 요하에 이르러 서쪽 연안 수백 리에 진을 쳤다. 마치 벌떼처럼 우글우글하고 군사의 장비와 군기가 울긋불긋 햇빛에 빛났다. 수의 군사중 첫째가는 용장 선봉의 맥철장(麥鐵杖)이 부교(浮橋)를 매어 동쪽 언덕에 대려고 하므로 을지문덕이 여러 장수들로 하여금 맡아 치게 해서 맥철장 등 장사 수십 명과 군졸 1만여 명을 목베고 부교를 끊어버리니, 수의 군사중에서 잠수 잘하는자와 헤엄 잘치는 자가 상을 탐내서 다투어 물에 뛰어들어 격전을 벌이면서 부교를 다시 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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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이 수나라 군사를 깊숙이 유인하려 요하 서북쪽에 있던 군대를 거두어 요하를 지켰는데, 그해 3월에 수나라 군사가 요하에 이르러 서쪽 연안 수백 리에 진을 쳤다. 마치 벌떼처럼 우글거렸고 군사들의 장비와 군기가 햇빛에 다채롭게 빛났다. 수나라 군사 중 가장 용맹한 선봉의 맥철장이 부교를 매어 동쪽 언덕에 놓으려 하자, 을지문덕이 여러 장수들을 시켜 맡게 하여 맥철장 등 장사 수십 명과 군졸 만여 명을 목매고 부교를 끊어버렸다. 이에 수나라 군사들 중 잠수 잘하는 자와 헤엄 잘치는 자들이 상을 탐내 다투어 물에 뛰어들어 격전을 벌이면서 부교를 다시 매었다.
제10편번역 대기
원문
문덕이 예정한 계획에 따라 거짓 패하여 퇴군하니, 수의 양제가 그 전군을 휘몰아 요하를 건너와서 어영군(御營軍)과 좌익위대장군 등으로 하여금 요동성을 포위 공격하게 하고, 좌둔위대장군 토우서(吐禹緖) 등 10 여 군단으로 하여금 그 부근의 성들을 포위 공격하게 하고 좌익위대장군 우문술(宇文述) 등 9군단은 을지문덕을 추격하여 평양을 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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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보다 앞서 우익위대장군 내호아(來護兒)가 강회(江淮)의 수군 10 여만 명을 거느리고 양식 실은 배를 호위하여 동래(東萊)---지금의 연대(烟帶)에서 출발, 창해(滄海:渤海)를 건너 패강(浿江:대동강) 어귀로 들어오므로, 왕제 건무가 비밀히 수군(水軍) 장졸을 후미진 항구에 숨겨두고 평양성 아래 인가에는 집집마다 재물을 내놓고 수의 군사가 상륙하는 것을 내버려두니, 내호아가 정병 4만 명을 뽑아서 패강을 거슬러 올라와 성 아래로 돌진하였다. 재물을 노략질하느라 대오가 어지럽게 무너지니, 이때 건무가 결사대 5백 명을 뽑아 성곽과 빈 절에서 내달아 돌격해서 깨뜨리고 모든 군사에게 호령하여 수의 군사를 추격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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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앞서 우익위대장군 내호아가 강회 지역의 수군 십만 명을 거느리고 양식과 곡식을 실은 배를 호위하며 동래, 즉 지금의 연대에서 출발하여 창해를 건너 패강 어귀로 들어왔다. 이에 왕제 건무는 비밀리에 수군 장졸들을 후미진 항구에 숨겨두고 평양성 아래 인가에는 집집마다 재물을 내놓았으며, 수나라 군사가 상륙하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 그러자 내호아가 정병 사만 명을 뽑아 패강을 거슬러 올라와 성 아래로 돌격하였다. 적들이 재물을 약탈하느라 대열이 어지럽게 무너지자, 건무는 결사대 오백 명을 뽑아 성곽과 빈 절에서 뛰쳐나가 돌격하여 부수고 모든 군사에게 명령하여 수나라 군사를 추격하게 하였다.
제10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여기저기 숨어 있던 수군들도 일시에 내달아 함께 공격하니 수의 군사가 강 어귀에 이르러 배를 다투어 서로 짓밟아 죽는 자가 수없이 많았고 양식 실은 배가 모두 바다 속에 가라앉아서 내호아는 단신으로 조그만 배를 타고 도망하였다. 양식 실은 배가 다 없어지니 이미 평양성에 침입해 있던 우문술 등의 대군이 무엇을 먹고 싸우랴? 고구려가 이때에 이미 이길 지위를 차지하였으니 만일 전공의 차례를 따진다면 왕제 건무가 을지문덕보다 앞섰다고 할 것이다. 왕제 건무의 공이 이같이 컸지마는 역사를 읽는 사람들이 흔히 을지문덕만 아는 것은 무슨 연고인가? 사마온공(司馬溫公)의 통감고이(通鑑考異)에 내호아가 양식 배를 잃지 아니했더라면 우문술의 살수의 패전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으니 대개 옳은 말인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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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숨어 있던 수군들도 일시에 내달아 함께 공격하니 수의 군사가 강 어귀에 이르러 배를 다투어 서로 짓밟아 죽는 자가 수없이 많았고 양식 실은 배가 모두 바다 속에 가라앉아서 내호아는 단신으로 조그만 배를 타고 도망하였다. 양식 실은 배가 다 없어지니 이미 평양성에 침입해 있던 우문술 등의 대군이 무엇을 먹고 싸우랴? 고구려가 이때에 이미 이길 지위를 차지하였으니 만일 전공의 차례를 따진다면 왕제 건무가 을지문덕보다 앞섰다고 할 것이다. 왕제 건무의 공이 이같이 컸지마는 역사를 읽는 사람들이 흔히 을지문덕만 아는 것은 무슨 연고인가? 사마온공의 통감고이에 내호아가 양식 배를 잃지 아니했더라면 우문술의 살수의 패전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으니 대개 옳은 말인가 한다.
제10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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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군의 살수(薩水) 전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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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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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이 요하에서 퇴군하여 수의 군사의 허실(虛實)을 탐지해보고자 하여 거짓 항복을 청하는 사자가 되어, 수의 진중(陣中)에 들어가서 그 내부 형편을 살펴보고 돌아오는데, 우문술 등이 그의 용모와 체구가 위엄있고 건장함을 보고 놀라 이 사람이 고구려의 대왕이나 대 대로(大對盧)인가 보다 하고 사로잡지 못했음을 후회하고 사람을 보내서 다시 만나기를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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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이 요하에서 퇴군하여 수나라 군사의 허실을 살피고자 거짓 항복하는 사자가 되어, 수나라 진중에 들어가 내부 형편을 살펴보고 돌아왔는데, 우문술 등이 그의 용모와 체구가 위엄 있고 건장함을 보고 놀라 이 사람이 고구려의 대왕이나 대대로일 것이라 여겼고, 그를 사로잡지 못한 것을 후회하여 사람을 보내 다시 만나기를 청하였다.
제10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문덕은 이때 이미 패강의 승전을 듣고, 우문술 등의 모든 군사들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음을 눈치채었으므로, 이미 반드시 이길 기틀을 잡았는데 어찌 다시 범의 굴에 들어가랴? 달려 돌아오면서 수의 군사를 유인하기 위해 요새 (要塞)를 만나면 가끔 머물러 접전하다가 거짓 패하여 하루 동안에 일곱 번 패하니 우문 술 등이 크게 기뻐하여 고구려 군사는 하잘것이 없다고 내쳐 달려와 살수(薩水 : 지금의 천청강)를 건너 평양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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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덕은 이때 이미 패강에서의 승전을 듣고, 우문술 등의 모든 군사들에게 굶주린 기색이 있음을 눈치<0xEC><0xB1><0x98>으므로, 이미 반드시 이길 기틀을 잡았는데 어찌 다시 범의 굴에 들어가겠는가? 달려 돌아오면서 수나라 군사를 유인하기 위해 요새를 만나면 가끔 머물러 접전하다가 거짓 패하여 하루 동안 일곱 번이나 패하니 우문술 등이 크게 기뻐하여 고구려 군사는 하잘것없다고 내치고 달려와 살수(지금의 천청강)를 건너 평양에 이르렀다.
제10편번역 대기
원문
평양에 이르니 성 안과 성 밖의 인가가 고요하여 사람이란 그림자도 볼 수 없고, 개소리 닭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므로 우문술이 의심이 나 서 바로 나가지 못하고 사람을 보내서 닫힌 성문을 두드리니 성중에서 대답하기를 “우리가 곧 항복하려고 땅과 인구의 문서와 장부를 조사 하는 중이니 대군은 성 밖에서 닷새만 기다리시오.” 했다. 전보 같은것이 없던 고대이므로 우문술 등은 내호아가 패전한 것을 까맣게 모르 고 내호아가 오기를 기다려서 함께 공격하려고 성 안에서의 요구를 승낙하고 성 부근에 진을 쳤다. 군사들이 시장하여 약탈하려고 하되 집 집이 다 텅 비어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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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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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가 지나 열흘이 되어도 성 안에서는 아무런 동정이 없으므로 우문술이 군사를 지휘하여 성을 공격 하니, 성 위 사변에 고구려의 깃발이 일시에 꽂히고 화살과 돌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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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가 지나 열흘이 되었는데도 성 안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자 우문술이 군사를 이끌고 성을 공격하니, 성 위 사변에 고구려의 깃발이 일시에 꽂히고 화살과 돌이 비처럼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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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이 통역으로 하여금 큰소리로 “너의 양식 실은 배가 바다에 가라앉아 먹을 양식은 끊어지고 평양성은 높고 튼튼하여 넘어올 수 없으니 너희들이 어떻게 하겠느냐?” 하고 외치게 하고 포로로 한 수의 수군(水軍) 장졸들의 도장과 깃발을 던져주었다. 수의 군사가 그제 야 내호아가 패했음을 알고 군심이 갑자기 소란해져 싸울 수가 없어서 우문술 등이 물러나 돌아가는데, 을지문덕은 미리 사람을 보내서 모래 주머니로 살수의 상류를 막고 정병 수만 명을 뽑아서 천천히 한가롭게 수의 군사를 뒤쫓게 하였다. 살수에 이르니 배가 하나도 없어서 우문술 등이 물의 깊고 얕은 데를 알지 못하여 머뭇거리는데 돌연 일곱 사람의 고구려 중이 다리를 걷고 물에 들어서면서 “오금에도 차지 않는 물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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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이 통역으로 하여금 큰 소리로 "너희들의 양식은 배가 바다에 가라앉아 먹을 것이 끊어졌고, 평양성은 높고 튼튼하여 넘어올 수 없으니 너희들이 어찌하겠느냐?" 하고 외치게 하고 포로로 잡은 수의 수군 장졸들의 도장과 깃발을 던져주었다. 수나라 군사들은 그제 야내호아가 패했음을 알고 군심이 갑자기 소란해져 싸울 수가 없어서 우문술 등이 물러나 돌아가는데, 을지문덕은 미리 사람을 보내 모래 주머니로 살수의 상류를 막고 정병 수만 명을 뽑아 천천히 한가롭게 수의 군사를 뒤쫓게 하였다. 살수에 이르니 배가 하나도 없어서 우문술 등이 물의 깊고 얕은 곳을 알지 못하여 머뭇거리는데 돌연 일곱 사람의 고구려 중이 다리를 건너 물에 들어서면서 "오금에도 차지 않는 물이오."
제10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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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건너가니 수의 군사가 크게 기뻐하며 다투어 물에 들어섰다. 채 중류에 미치지 못했을 때 상류의 모래주머니로 막은 물을 터놓아 물이 사납게 내리닥치는데 문덕의 군사가 뒤쫓아와서 맹렬히 공격하니, 수의 군사는 거의가 칼과 화살에 맞아 죽고 물에 빠져 죽고 목숨을 건진 자는 하루 낮 하루 밤 사이에 450리나 도망가 압록강을 건너 달아나 요동성에 이르렀을 때는 우문술 등 아흡 군단 30만 5천 명이 다 죽고 겨우 2천7백 명밖에 안 되었으니 백에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고 무기와 그 밖의 몇만 수레의 물건들이 죄다 고구려의 노획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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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군의 오열홀(烏列忽) 대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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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군이 오열홀에게 크게 패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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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제(揚帝)의 어영군과 그 밖의 10여 군단 수십만 명 군사가 오열홀과 요동 각지의 성들을 공격하였으나 하나도 함락시키지 못했을 뿐 아 니라 3월로부터 7월까지 무릇 4, 5달 동안에 고구려 사람들의 화살에 맞아 죽어서 성 아래에는 해골이 산을 이루었고, 또 양식을 얻지 못하 여 장졸이 굶주리다가 우문술 등이 패하여 돌아감을 보자 더욱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양제는 오히려 최후의 요행을 얻을까 하여 모 든 군사들을 오혈홀 성 아래에 집합시켰는데 을지문덕이 이를 깨뜨려 사람과 말을 수없이 죽이고 노획한 물건이 한없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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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제의 어영군과 그 밖의 열여 군단 수십만 명의 군사가 오열홀과 요동 각지의 성들을 공격했으나 하나도 함락시키지 못했을 뿐이다. 삼월부터 칠월까지 무려 사오 개월 동안 고구려 사람들의 화살에 맞아 죽어 성 아래에는 해골이 산을 이루었고, 또 양식을 얻지 못하여 장졸들이 굶주리다가 우문술 등이 패하여 돌아감을 보자 더욱 싸울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양제는 오히려 최후의 요행을 얻으려고 모든 군사들을 오혈홀 성 아래에 집합시켰는데 을지문덕이 이를 깨뜨려 사람과 말을 수없이 죽이고 노획한 물건이 한없이 많았다.
제10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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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고구려가 망하매 당(唐)의 장수 설인귀(薛仁貴)가 그 경관(京觀)을 헐고 백탑(白搭)을 세웠는데, 세상 사람들이 이를 당태종(唐太宗)이 안시성(安市城)을 침공할 때 당의 장수 울지경덕(尉遲敬德)이 세운 것이라 하지마는 이는 잘못 전해진 말이다. 수의 24군단 수백 명이 이에 전멸하고, 오직 호분낭장(虎奔郞將) 위문승(衛文昇)의 패잔군 수천이 남아 있어 양제를 보호해가지고 도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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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隋書)에 살수에서의 우문술의 패전을 기록하고 오열홀에서의 양제의 패전은 기록하지 아니한 것은 이른바 높은 이의 수치를 숨기기 위한 춘추필법(春秋筆法)이니, 춘추필법을 알아야만 지나 역사를 읽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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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서에 살수에서의 우문술의 패전은 기록하였으나 오열홀에서의 양제의 패전은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이른바 높은 이의 수치를 감추기 위한 춘추필법이니, 춘추필법을 알아야만 지나 역사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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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를 건너 OO리에 발착수(渤錯水)가 있는데, 이것을 수(水)라 이름하였지마는, 실은 수(강물)가 아니라 유명한 요동의 200리 진수렁이요 그 일명을 요택(遼澤)이라 하는 것으로, 당태종 요택 매골(遼澤 埋骨)의 조서를 보면, 당시 수의 군사가 이 땅에서 매우 많이 죽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도 대개 고구려 군사의 추격에 죽은 것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 전쟁은 패강(浿江) · 살수(薩水) · 오혈홀(烏列忽) 3대전(大戰)을 포함한 것으로 으뜸가는 공(功)은 패강의 싸움이고 다음은 살수의 싸움이고 마지막은 비열홀의 싸움이었는데 모두 통틀어서 살수 대첩(薩水大捷)이라 일컬음이 옳지 않지마는, 오랜 동안 씌어온 것이므로 그대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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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를 건너 OO리에 발착수가 있는데, 이것을 수라 이름하였으나 실은 강물이 아니라 유명한 요동의 이백 리 진수렁이며 그 일명을 요택이라 한다. 당태종의 요택 매골 조서에 따르면 당시 수나라 군사가 이곳에서 매우 많이 죽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 또한 대개 고구려 군사의 추격으로 죽은 것일 것이다. 말하자면 이 전쟁은 패강, 살수, 오열홀 세 번의 큰 전투를 포함한 것으로 으뜸가는 공은 패강에서의 싸움이고 다음은 살수에서의 싸움이며 마지막은 비열홀에서의 싸움이었는데 모두 통틀어 살수대첩이라 일컫는 것이 옳지 않으나 오랜 동안 그렇게 쓰여 왔기에 그대로 쓴다.
제10편번역 대기
원문
== 제3장 오열홀(烏列忽)·회원진(懷遠鎭)에서의 전쟁과 수(隋)의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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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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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양제(隋煬帝)의 재침(再侵)과 오열홀(烏列忽) 성주(城主)의 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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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제의 재차 침입과 오열홀 성주의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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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양제가 패해 돌아가서는 그 패전의 죄를 우문술(宇文述) 등 여러 장수들에게 돌려 파면하여 옥에 가두고, 패전의 치욕을 씻으려고 이듬해 정월에 다시 전국의 군사와 말을 탁군(啄郡)으로 소집해서 요동의 옛성(지금의 永平府니 곧 고구려 태조왕이 요동을 차지한 뒤에 漢이 이 땅에 옮겨다 설치한 것)을 수축하여 군량을 저축해놓게 하고 “제장(諸將)의 전번 패전은 군량이 모자란 때문이요 싸움을 잘못한 죄 가 아니다. ” 하여 전국에 알리고, 다시 장군들의 직위를 복직시켜서 고구려 칠 계획을 세우는데 “작년에 요동을 평정하지 못하고 평양을 공격한 것이 실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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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 양제가 패하여 돌아가자 그 패전의 죄를 우문술 등 여러 장수들에게 돌려 파면하고 옥에 가두었으며, 패전의 치욕을 씻으려고 이듬해 정월에 다시 전국의 군사와 말을 탁군으로 소집하여 요동의 옛성(지금의 영평부로 곧 고구려 태조왕이 요동을 차지한 뒤 한나라가 이 땅에 옮겨다 설치한 곳)을 수축하고 군량을 저축하게 하며, "제장들의 전번 패전은 군량이 모자란 탓이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니다."라고 전국에 알리고, 다시 장군들의 직위를 복직시켜 고구려를 치는 계획을 세우는데 "작년에 요동을 평정하지 못하고 평양을 공격한 것이 실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