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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高句麗BC 37 – AD 668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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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6편 고구려 중쇠 朝鮮上古史 第6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91개 · 번역 확정 0개
제6편문단 1번역 대기
원문
== 제 1 장 고구려의 대(對) 중국과의 전쟁에서의 패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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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문단 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발기(發技)의 반란과 제1의 환도(丸都) - 현 개평(蓋平)의 잔파(殘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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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發技)의 난동과 첫 번째 도읍지 이동 - 지금의 개평이 폐허가 되다
제6편문단 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기원후 197년에 고국천왕이 돌아가고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왕후 우씨 ( 于氏 ) 가 좌가려 ( 左可慮 ) 의 난리 이후로 정치에 입을 벌리지 못 하고 답답하게 대궐 안에 있다가, 왕이 돌아가니 정치무대에 다시 나타날 열망을 품게 되자, 애통보다 기쁨이 앞서 국상을 숨겨 발표하지 아니하고 그 밤에 미복으로 비밀히 왕의 큰아우 발기 ( 發岐 ) 에게 가서 발기더러, “대왕은 뒤를 이을 아들이 없으니 그대가 뒤를 이을 사람이 아닌가” 하고 유혹하는 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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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197년에 고국천왕이 돌아가셨고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왕후 우씨(于氏)는 좌가려의 난리 이후로 정치에 발언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답답하게 궁궐 안에 머물다가, 왕이 돌아가자 다시 정치 무대에 나타날 열망을 품게 되었다. 애통함보다 기쁨이 앞서 국상(國喪)을 숨기고 발표하지 않았고 그날 밤 미복으로 비밀리에 왕의 큰아우 발기에게 가서 "대왕께서는 뒤를 이을 아들이 없으니, 그대가 뒤를 이을 사람이 아니겠느냐" 하고 유혹하는 말을 하였다.
제6편문단 4번역 대기
원문
그러나 발기는 순나 ( 順那 ) 의 고추가 ( 古鄒加 ) 로서 환도성간 ( 丸都城干) 을 겸하여 요동 전체를 관리하고 있어서 그 위엄과 권세가 혁혁할 뿐더러 또한 고국천왕이 돌아가면 왕위를 이을 권리가 당당하므로 우씨의 말을 새겨듣지 않고, 엄정한 말씨로 우씨를 나무랐다. “왕위는 하늘이 명하는 것이니 부인이 물을 바가 아니고, 부인의 밤나들이는 예가 아니니 왕후의 행할 일이 아닙니다.” 우씨는 크게 부끄럽고 분하여, 그 길로 곧 왕의 둘째 아우 연우 ( 延優 ) 를 찾아가서, 왕이 돌아간 일과 발기를 찾아갔다가 핀잔 본일을 낱낱이 호소하였다. 연우는 크게 기뻐하고 우씨를 맞아들여 밤잔치를 베풀었다. 연우가 친히 고기를 베다가 손가락을 다치니 우씨가 치마끈을 잘라서 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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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문단 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손목을 마주 잡고 대궐로 들어가 함께 자고 이튿날 고국천왕이 돌아간 것을 발표하는 동시에 왕의 유조 ( 遺詔 ) 를 꾸며 연우로 왕의 후계를 삼아서 즉위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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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목을 맞잡고 궁궐에 들어가 함께 잠자리를 가진 뒤, 다음 날 고국천왕이 돌아간 것을 알리는 동시에 왕의 유조를 꾸미어 연우를 왕의 후계로 삼아 즉위하게 하였다.
제6편문단 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발기는 연우가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격문을 띄워서, 연우가 우씨와 몰래 통하고 차례를 건너뛰어 왕위를 빼앗은 죄를 폭로하고 순나의 군사를 일으켜서 왕궁을 포위 공격하였다. 사흘 동안 격전이 벌어졌으나 나라 사람들이 발기를 돕지 아니하므로 패하여, 순나의 인민 3만 명을 거느리고 요동 전토 ( 全土 ) 를 들어 한의 요동태수 공손도에게 항복하고 구원을 청하였다.
번역
발기는 연우가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격문을 띄워, 연우가 우씨와 몰래 통하고 차례를 건너뛰어 왕위를 빼앗은 죄를 폭로하고 순나의 군사를 일으켜 왕궁을 포위 공격하였다. 사흘 동안 격전이 벌어졌으나 나라 사람들이 발기를 돕지 아니하므로 패하여, 순나의 인민 삼만 명을 거느리고 요동 전토 전체를 들어 한나라의 요동태수 공손도에게 항복하고 구원을 청하였다.
제6편문단 7번역 대기
원문
공손도는 한말 ( 漢末 ) 의 효웅 ( 梟雄 ) 이니, 기원190 년에 한이 어지러워지는 징조를 보고 요동태수가 되기를 자청하여 요동에서 왕노릇 하기를 꿈꾸었는데, 이때 요동의 본토는 차대왕이 점령한 뒤였으므로 고구려의 땅이었고, 한의 요동은 지금의 난주에 옮겨다 설치하여, 땅이 매우 좁아서 공손도는 항상 고구려의 요동을 엿보고 있던 참이라, 발기의 투항을 받자 크게 기뻐하며 마침내 정병 3 만을 일으켜서 발기의 군사로 선봉을 삼아 고구려에 침입하여, 차대왕의 북벌군 ( 北伐軍 ) 의 본거지이던 환도성 ---제 1 의 환도에 들어가 마을을 불태우고 비류강 ( 沸流江 ) 으로 향하여 졸본성 ( 卒本城 ) 을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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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문단 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연우왕 ( 延優王 ) 이 계수 ( 계須 ) 로 '신치 ( 전군 총사령관 )'를 삼아서 항거해 싸워 한의 군사를 크게 격파하고 좌원 ( 左原 ) 까지 추격하였다. 발기가 다급하여 계수를 돌아보고, “계수야, 네가 차마 너의 맏형을 죽이려 하느냐? 불의의 연우를 위해 너의 맏형을 죽이려는냐? ”고하자 계수가 말했다. “연우가 비록 불의 하지만 너는 외국에 항복하여 외국 군사를 끌고와서 조상과 부모의 나라를 유린하니, 연우보다 더 불의하지 않느냐? ” 발기가 크게 부끄러워 뉘우치고 배천 ( 裵川 : 곧 沸流江 ) 에 이르러 자살하였다.
번역
연우왕이 계수를 '전군 총사령관'으로 삼아 항거하여 싸워 한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하고 좌원까지 추격했다. 발기가 다급하여 계수를 돌아보며 "계수야, 네가 차마 너의 맏형을 죽이려 하느냐? 불의한 연우를 위해 너의 맏형을 죽이려는 것이냐?"라고 하자 계수가 말했다. "연우가 비록 불의하지만 너는 외국에 항복하여 외국 군사를 끌고 와서 조상과 부모의 나라를 유린하니, 연우보다 더 불의하지 않느냐?" 발기가 크게 부끄러워 뉘우치고 배천에 이르러 자살했다.
제6편문단 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발기가 한때 분함을 참지 못하여 나라를 판 죄를 지었으나 계수의 말에 양심이 회복되어 자살함에 이르렀지마는, 그 팔아버린 오열홀 ( 烏列忽 ) ---요동은 회복하지 못하고, 공손도의 차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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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기가 한때 분함을 참지 못하여 나라를 판 죄를 지었으나 계수의 말에 양심이 회복되어 자살함에 이르렀지만, 그 팔아버린 오열홀은 요동을 회복하지 못하고 공손도의 차지가 되었다.
제6편문단 10번역 대기
원문
이리하여 공손도는 드디어 요동왕이라 자칭하고 요동 전역을 나누어, 요동 ( 遼東 ), 요중 ( 遼中 ), 요서 ( 遼西 ) 의 셋으로 만들고 바다를 건너 동래 ( 東萊 ) 의 여러고을 ---지금의 연태 ( 煙台 ) 등지를 점령하여 한때 강력한 위염을 자랑하였다. 이에 연우왕은 지금의 환인현 ( 桓仁縣 ) 혼강 ( 渾江 ) 상류 ( 지금의 安古城 ) 에 환도성을 옮겨 설치하고 그곳으로 서울을 옮기니 , 이것이 곧 제2의 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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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문단 1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동천왕(東川王)의 제1 환도성(丸都城) 회복과 오(吳)·위(魏)와의 외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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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왕이 원도성을 되찾고 오나라와 위나라와 외교를 하다.
제6편문단 1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연우왕이 형수 우씨의 손에 왕위를 얻고 우씨로 왕후를 삼았는데, 오래지 않아 우씨가 나이가 많음을 싫어하여 주통촌 ( 酒補村 ) 의 아름다운 처녀 후녀 ( 后女 : 이름 ) 에게 몰래 장가들어 소후 ( 小后 ) 를 삼아서 동천왕 ( 東川王 ) 을 낳았다.
번역
연우왕이 형수 우씨의 손에 왕위를 얻고 우씨를 왕후로 삼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씨가 나이가 많음을 싫어하여 주통촌의 아름다운 처녀 후녀에게 몰래 시집가 소후를 삼아 동천왕을 낳았다.
제6편문단 13번역 대기
원문
기원후 227년에 연우왕이 돌아가고 동천왕이 왕위에 올랐다. 이때 지나가 네 세력을 나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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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문단 1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1) 은 위(魏)의 조씨(曹氏)니 업--- 지금의 직예성(直匠省) 업현에 도읍하여 지금의 양자강(揚子江) 이북을 차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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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조씨 가문으로, 현재의 직장성 업현에 도읍하고 현재의 양자강 북쪽 지역을 차지하였다.
제6편문단 1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2) 는 오(吳)의 손씨(孫氏)니 건업(建業) --- 지금의 강소성(江蘇省) 남경(南京)에 도읍하여 양자강 이남을 차지하고,
번역
오나라의 손씨로, 건업(建業)이라 불리며 현재 장쑤성 난징에 도읍하여 양쯔강 이남 지역을 차지하였다.
제6편문단 16번역 대기
원문
3) 은 촉(蜀)의 유씨(劉氏)니 성도(成都) --- 지금의 사천성(泗川省) 성도(成都)에 도읍하여 지금의 사천성을 차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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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문단 1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4) 는 요동의 공손씨(公孫氏)니 양평(襄平) --- 지금의 요양(遼陽)에 도읍하여, 지금의 난하 동쪽과 요동반도를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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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씨는 요동에 살았으며, 현재의 요양에 도읍하고 현재의 난하 동쪽과 요동반도를 차지하였다.
제6편문단 1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구려는 공손씨와는 적국이었고, 촉과는 길이 너무 멀어서 교통할 수 없었거니와, 위 ( 魏 ) · 오 ( 吳 ) 두 나라와도 왕래가 없었는데, 기원후 233년에 공손연 ( 公孫淵 : 공손도의 손자 ) 이 간사한 꾀로 위 · 오 두 나라 사이에서 이익을 취하려고, 오의 임금 손권 ( 孫權 ) 에게 사신을 보내 표 ( 表 ) 를 올려 신하라 일컫고, 함께 위를 공격하기를 청했다. 그러니까 손권이 크게 기뻐하고 사신 허미 ( 許彌 ) 등으로 하여금 수천의 군사를 주어 공손연에게 보냈다. 공손연이 허미로 위와 사귀는 미끼를 삼으려고, 먼저 허미의 보호 장사 진단 ( 秦旦 ) 등 60 여 명을 잡아서 현도군 지금의 봉천성성 ( 奉天省城 ) 에 가두어 죽이려 하였다.
번역
고구려는 공손씨와는 적국이었고, 촉과는 길이 너무 멀어 교류할 수 없었으며, 위나라와 오나라와도 왕래가 없었는데, 기원후 233년에 공손연이 간사한 계략으로 위와 오 두 나라 사이에서 이익을 취하려 하여, 오의 임금 손권에게 사신을 보내 표를 올리며 자신을 신라라 칭하고 함께 위를 공격하기를 청했다. 이에 손권이 크게 기뻐하여 사신 허미 등으로 수천의 군사를 주어 공손연에게 보냈다. 공손연은 허미로 위와 관계하는 미끼를 삼으려고, 먼저 허미의 보호 장사 진단 등 60여 명을 잡아 현도군 지금의 봉천성성에 가두어 죽이려 하였다.
제6편문단 19번역 대기
원문
진단 등이 성을 넘어 도망하여 고구려로 들어가서 거짓말로, “오제 ( 吳帝 ) 손권 ( 孫權 ) 이 고구려 대왕께 올리는 공물이 적지 않았고 또한 고구려와 맹약하여 공손연을 쳐 그 토지를 나누어 가지자는 도서 ( 圖書 ) 도 있었는데, 불행히 배가 큰 바람을 만나 바닷길의 방향을 잃고 요동의 바닷가에 도착하였다가 공손연의 관리에게 알려져서 공물과 도서는 다 빼앗기고 일행이 다 잡혀서 갇혔습니다. 다행히 틈을 얻어 범의 입을 벗어나 이렇게 왔습니다.”고 하였다. 동천왕이 크게 기뻐하여 진단 등을 불러 보고 조의 25 명에게 명해 바닷길로 진조 등을 호송하였는데? 초피(貂皮)의 1천 장과 갈계피 10 장 등을 손권에게 선사하고, 고구려의 육군과 오의 수군으로 공손연을 함께 쳐서 멸망시키자는 조약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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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문단 2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듬해 3년에 손권이 사굉 ( 謝宏 ) · 진굉 ( 陳宏 ) 등을 사신으로 보내서 많은 옷과 보배를 바치니 동천왕이 또'일치' 착자 ( 窄咨 ) · 대고 ( 帶固 ) 등을 보내 약간의 예물로 답사했는데, 착자가 오에 이르러 1)오의 수군이 약하여 바닷길로 공손연을 습격 할 수 없으면서 오가 다만 큰소리로 자랑하여 고구려로부터 후한 물건을 받고자하고, 2)손권이 고구려를 볼 때에는 비록 공손하였으나 그 내용을 그 국내에 선포할 때에는 동이 ( 東夷 ) 를 정복하여 그 신민 ( 臣民 ) 을 속이고 있음을 발견하고,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번역
다음 해 3년에 손권이 사굉과 진굉 등을 사신으로 보내 많은 옷과 보물을 바치자 동천왕이 또 착자와 대고 등을 보내 약간의 예물로 답사하였다. 그런데 착자가 오에 이르러 보니, 첫째, 오나라 수군이 약하여 바닷길로 공손연을 습격할 수 없으면서도 오나라는 다만 큰소리로 자랑하며 고구려로부터 후한 물건을 받고자 했고, 둘째, 손권이 고구려를 볼 때에는 비록 공손하였으나 그 내용을 국내에 선포할 때는 동이를 정복하여 그 신민을 속이고 있음을 발견하고 돌아와 왕에게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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