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高句麗BC 37 – AD 668문헌 원문 · 번역
조선상고사 제9편 고구려 대수전쟁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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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平壞者 仙人 王儉之宅 ) ”이라 한 것이 곧 선사 본문의 한 구절일 것이고, 선랑고사 · 화랑세기 등은 곧 신라 이래의 선배를 적은 것이다. 삼국사기 열전(列傳)에 간혹 그것을 초록(抄錄) 한 것이 있으나 이는 모두 의로운 다툼에 공이 있는 화랑의 졸도(卒徒) 들뿐이고, 3백여 화랑, 낭도(郞徒) 의 스승들은 하나도 적지 아니하였으니 여기서도 김부식이 화랑을 말살하려는 심리가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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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괴하는 곳은 신선의 왕검의 집이라고 한 것이 곧 선사 본문의 한 구절일 것이고, 선랑고사 · 화랑세기 등은 곧 신라 이래의 선배를 적은 것이다. 삼국사기 열전에는 간혹 그것을 초록한 것이 있으나 이는 모두 의로운 다툼에 공이 있는 화랑들의 졸도들뿐이고, 3백여 화랑과 낭도들의 스승들은 하나도 적지 아니하였으니 여기서도 김부식이 화랑을 말살하려는 심리가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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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 가라(加羅)의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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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 ( 金首露 ) 여섯 형제가 신가라 ( 지금의 金海 ) · 밈라가라 ( 지금의 高靈 ) · 안라가라 ( 지금의 咸安 ) · 구지가라 ( 지금의 固城 ) · 별뫼가라 ( 지금의 星州 ) · 고링가라 ( 지금의 咸昌 ) 에 나뉘어 왕노릇을 하였음과 밈라 · 안라 두 가라가 네 나라 동맹에 참가하여 백제를 도와 고구려를 방어했음은 이미 제4편과 제8편에서 말하였거니와 , 신라의 지증 ( 智 證 ) · 법흥 ( 法興 ) · 진흥 ( 眞興 ) 세 왕이 연이어 여섯 가라를 잠식해 들어가서 진흥왕 때에 이르러는 여섯 나라가 다 신라의 차지가 되어 지금 경상도가 완전히 통일되었다 . 이제 여섯 가라흥망의 약사 ( 略史 ) 를 말하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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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와 여섯 형제가 신가라(지금의 금해), 밈라가라(지금의 고령), 안라가라(지금의 함안), 구지가라(지금의 고성), 별<0xEB><0xAB><0xBC>가라(지금의 성주), 고링가라(지금의 함창)에 나뉘어 왕 노릇을 하였고, 밈라와 안라 두 가라가 네 나라 동맹에 참가하여 백제를 도와 고구려를 방어한 것은 이미 제4편과 제8편에서 말하였거니와, 신라의 지증, 법흥, 진흥 세 왕이 연이어 여섯 가라를 잠식해 들어가서 진흥왕 때에 이르러는 여섯 나라가 모두 신라의 땅이 되어 지금 경상도가 완전히 통일되었다. 이제 여섯 가라 흥망의 약사를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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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가라는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금관국 ( 金官國 ) 이라 한 것인데 , 시조 수로왕 ( 首露王 ) 때에는 신라보다 강성하여 신라의 파사이사금 ( 婆娑尼師今 ) 이 그 이웃의 조그만 나라인 음집벌 ( 音집伐 : 지금 경주 북쪽 ) 과 실직 ( 悉直 : 지금 三陟 ) 과의 국토 분쟁을 해결짓지 못하여 수로 왕의 중재를 청했는데 , 수로왕이 말 한 마디로 해결을 지으니 세 나라가 다 기꺼이 복종하였다 . 그 결과로 파사왕이 수로왕에게 잔치를 베풀어 사례하는데 , 신라 육부 ( 六部 ) 의 우두머리의 한 사람인 한기부장 (漢祇部長 ) 보제 ( 保齊 ) 가 지위가 낮은 사람으로 손을 접대하게 하였으므로 수로왕이 노하여 종 탐하리 ( 耽下里 ) 에게 명하여 보제를 죽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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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가라는 삼국사기 신라 본기에 금관국이라 한 것인데, 시조 수로왕 때에는 신라보다 강성하여 신라의 파사니시금이 그 이웃의 작은 나라 음집벌(지금 경주 북쪽)과 실직(지금 삼척)과의 국토 분쟁을 해결하지 못하여 수로왕의 중재를 청했으나, 수로왕이 말 한마디로 해결하니 세 나라가 모두 기꺼이 복종하였다. 그 결과 파사왕이 수로왕에게 잔치를 베풀어 사례하는데, 신라 육부의 우두머리 중 한 사람인 한기부장 보제가 지위가 낮은 사람으로 손을 접대하게 하였으므로 수로왕이 노하여 종 탐하리에게 명하여 보제를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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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사왕은 감히 수로왕과는 맞서지 못하고 다만 탐하리를 죄주려 하여 , 탐하리를 숨긴 음집벌국을 쳐 멸망시킬 뿐이었다 . 그러나 수로왕 이후에는 나라의 형세가 날로 미약해져서 밈라가라의 침노를 받다가 신라 법흥왕 19 년 , 기원후 532 년에 그 제 10 대 구해왕 (仇亥王 ) 이 국탕 ( 國帑 : 나라의 재물 ) 과 처자를 데리고 신라에 투항해버렸다 . 안라가라는 그 연대와 사실을 거의 모르게 되었으나 ,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남정 ( 南狂 ) 할 때에 신라와 함께 고구려에 붙어 백제에 대항하고 , 백제 문주왕 ( 文周王 ) 이 구원을 빌었을 때에는 신라 네 나라 동맹에 참가하여 고구려를 방어했으니 , 비록 작은 나라였지마는 당시 정치문제에 빠지지 아니하는 나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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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 ( 前史 ) 에 안라가라가 멸망한 연조를 기록하였으나 삼국사기 신라 본기 지증왕 ( 智證王 ) 15 년에 “소경 ( 小京 ) 을 아시촌 ( 阿尸村 ) 에 두었다 .”고 하였는데 , 안라의 이두자가 아시촌이니 , 지증왕 15 년 이전에 안라가라가 이미 멸망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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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前史)에 안라가라가 멸망한 연도를 기록하였으나, 삼국사기 신라 본기 지증왕 15년에 "소경을 아시촌에 두었다"고 하였는데, 안라의 이두자가 아시촌이니, 지증왕 15년 이전에 안라가라가 이미 멸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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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지리지 ( 地理志 ) 에는 “법흥왕이 대병으로 아시량국 ( 阿尸良國 ) 을 멸망시켰다 . ”고 했는데 , 먼저 임금이 돌아간 해를 새 임금의 원년으로 잘못 기록함은 삼국사기에 여러 군데 보이는 일이라 지증왕 15 년 지증왕이 돌아간 해는 곧 법흥왕의 원년일 것이니 , 안라가라가 법흥왕 원년에 망한 것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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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지리지에는 "법흥왕이 대병으로 아시량국을 멸망시켰다"고 했는데, 먼저 임금이 돌아간 해를 새 임금의 원년으로 잘못 기록한 것은 삼국사기에 여러 군데 보이는 일이다. 지증왕 15년 지증왕이 돌아간 해는 곧 법흥왕의 원년일 것이니, 안라가라가 법흥왕 원년에 망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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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 장 조령과 죽령 이북의 10개 군 쟁탈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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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 신라 · 백제 세 나라 사이의 100 년 전쟁과 지나 隋 · 唐(수·당) 침입의 끄나풀이 된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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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신라, 백제 세 나라 사이의 100년간의 전쟁과 지나 수·당의 침입으로 인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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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령왕(武寧王)의 북진(北進)과 고구려의 쇠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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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의 북진과 고구려의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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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동성왕 ( 東城王 ) 이 비록 반신 ( 叛臣 ) 백가 ( 백加 ) 에게 암살당했으나 그 아들 무령왕이 또한 영특하고 용감하여 곧 백가의 난을 쳐 평정하고 , 같은 해 고구려의 방비없음을 틈타 달솔 ( 達率 ) 부여우영 ( 扶餘優永 ) 으로 하여금 정병 5 천으로 고구려의 수곡성 ( 水谷城 )---지금의 신계( 新溪 ) 를 습격하여 깨뜨리고서 그 뒤 수년 동안에 장령 ( 長嶺 )---지금 서흥 ( 瑞興 ) 의 철령 ( 鐵嶺 ) 을 차지하여 성책 ( 城柵 ) 을 쌓아서 예 (濊 ) 를 방비하니 이에 백제의 서북쪽이 지금의 대동강에까지 미쳐 근구수왕 ( 近仇首王 ) 때의 옛 모습을 회복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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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505 년에 고구려 문자왕 ( 文咨王 ) 이 그 치욕을 씻으려고 대병으로 침입하여 가불성 ( 加弗城 : 지금 어디인지 미상 ) 에 이르니 , 무령왕이 정병 3 천으로 나가 싸웠다 . 고구려 사람들이 그 군사가 적음을 보고 방비를 베풀지 아니하는지라 왕이 기묘한 계교로 이를 갑자기 공격 , 크게 깨뜨려서 10 여 년 동안 고구려가 다시 남쪽으로 침범해오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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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505년에 고구려 문자왕이 그 치욕을 씻으려고 대병으로 침입하여 가불성에 이르니, 무령왕이 정병 삼천으로 나가 싸웠다. 고구려 사람들이 그 군사가 적음을 보고 방비를 베풀지 아니하는지라 왕이 기묘한 계교로 이를 갑자기 공격하여 크게 깨뜨렸고, 십여 년 동안 고구려가 다시 남쪽으로 침범해 오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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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그 틈을 타서 안팎의 놀고 먹는 자들을 모아 농토에서 일하게 하고 , 둑을 쌓아 논을 만들게 하여 나라의 창고가 더욱 충실해지고 , 서쪽으로 지나와 서남으로 인도 ( 印度 ) · 대식 ( 大食 ) 등의 나라와 통상 하여 문화도 상당히 발달하니 왕의 재위 24 년은 또한 백제의 황금 시대라 일컬을 만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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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장왕(安藏王)의 연애(戀愛) 전쟁과 백제의 패퇴(敗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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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안장왕은 문자왕 ( 文咨王 ) 의 태자이다 . 그가 태자로 있을 때 한 번은 상인 차림을 하고 개백 ( 皆伯 ) ---지금 고양 ( 高陽 ) 의 행주 ( 幸州 ) 에 가서 노는데 , 그곳 장자 ( 長者 ) 한씨 ( 韓氏 ) 의 딸 주 ( 珠 ) 가 절세 의 미인이었다 . 안장이 백제의 감시원의 눈에 띄어 한씨의 집으로 도망해 숨었다가 주를 보고 주의 아름다움에 반해 마침내 몰래 정을 통하고 , 부부의 약속을 맺고는 가만히 주에게 “난 고구려 대왕의 태자이니 , 귀국하면 많은 군사를 몰아 이곳을 차지하고 그대를 맞아 가리라 . ” 하고 달아나 돌아왔다 . 문자왕이 죽고 안장왕이 왕위를 이어 자주 장사를 보내 백제를 쳤으나 늘 패하고 , 왕이 친히 나서서 정벌하였으나 또한 성공하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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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안장왕은 문자왕의 태자이다. 그가 태자로 있을 때 한 번은 상인 차림을 하고 개백지금 고양의 행주에 가서 노는데, 그곳 장자인 한씨의 딸 주가 절세의 미인이었다. 안장이 백제의 감시원의 눈에 띄어 한씨의 집으로 도망해 숨었다가 주를 보고 주의 아름다움에 반하여 마침내 몰래 정을 통하고 부부의 약속을 맺은 뒤, 가만히 주에게 “나는 고구려 대왕의 태자이니, 귀국하면 많은 군사를 몰아 이곳을 차지하고 그대를 맞아 가리라.” 하고 달아나 돌아왔다. 문자왕이 죽고 안장왕이 왕위를 이어 자주 장사를 보내 백제를 쳤으나 늘 패하고, 왕이 친히 나서서 정벌하였으나 또한 성공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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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곳 태수가 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주의 부모에게 청하여 결혼하려고 하였다 . 주는 하는 수 없이 “난 이미 정을 준 남자가 있는데 멀리 가서 돌아오지 못하였으니 그 남자의 생사나 안 뒤에 결혼 여부를 말하겠다 .”고 하였다 . 태수가 크게 노하여 “그 남자가 누구냐 ? 어찌하여 바로 말하지 못하느냐 ? 고구려의 첩자라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냐 ? 적국의 첩자와 정을 통하였으니 너는 죽어도 죄가 남겠다 .” 하고 옥에 가두어 사형에 처하리라 위협하고 일변 온갖 달콤한 말로 꾀었다 . 주가 옥중에서 노래를 지어 “죽어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 백골이 진토되고 넋이야 있건없건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 .” 하고 노래부르니 듣는 이가 다 눈물을 흘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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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는 그 노래를 듣고 더욱 주의 뜻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죽이기로 작정하였다 . 안장왕이 주가 갇혀 있음을 몰래 탐지하여 알고 짝없이 초조하나 구할 길이 없어 여러 장수를 불러 “만일 개백현 ( 皆伯縣 ) 을 회복하여 한주를 구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천금과 만호후 ( 萬戶候 ) 의 상을 줄 것이다 .”라고 하였으나 아무도 응하는 자가 없었다 . 왕에게 친누이동생이 있어 이름을 안학 ( 安鶴 ) 이라고 했는데 또한 절세의 미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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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장군 을밀 (乙密 ) 에게 시집가고자 하고 을밀도 또한 안학에게 장가들고자 하였으나 왕이 을밀의 문벌이 한미하다고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 을밀은 병을 일컬어 벼슬을 버리고 집에 들어앉아 있었는데 , 이에 이르러 왕이 한 말을 듣고는 왕에게 나아가 뵙고 “천금과 만호후의 상이 다 신의 소원이 아니라 , 신의 소원은 안학과 결혼하는 것뿐입니다 . 신이 안학을 사랑함이 대왕께서 한주를 사랑하심과 마찬가지입니다 . 대왕께서 만일 신의 소원대로 안학과 결혼케 하신다면 신이 대왕의 소원대로 한주를 구해오겠습니다 .”라고 하니 , 왕은 안학을 아끼는 마음이 마침내 한주를 사랑하는 생각을 대적하지 못하여 드디어 을밀의 청을 허락하고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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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장군 을밀에게 시집가기를 원했고 을밀 또한 안학에게 장가들기를 바랐으나, 왕이 을밀의 문벌이 한미하다고 허락하지 않자, 을밀은 병을 핑계로 벼슬을 버리고 집에 머물렀다. 이에 이르러 왕이 한 말을 듣고는 왕에게 나아가 뵙고 "천금과 만호후의 상이 모두 신의 소원이 아니라, 신의 소원은 안학과 결혼하는 것뿐입니다. 제가 안학을 사랑함은 대왕께서 한주를 사랑하시는 마음과 같습니다. 대왕께서 만일 신의 소원대로 안학과 결혼하게 하신다면, 제가 대왕의 소원대로 한주를 구해오겠습니다."라고 아뢰니, 왕은 안학을 아끼는 마음이 마침내 한주를 사랑하는 생각을 거스르지 못하여 드디어 을밀의 청을 허락하고 하늘을 가리켜 맹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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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이 수군 ( 水軍 ) 5 천을 거느리고 바닷길을 떠나면서 왕에게 아뢰기를 “신이 먼저 백제를 쳐서 개백현을 회복하고 한주를 살려낼 것이 니 대왕께서 대군을 거느리고 천천히 육로로 쫓아오시면 수십 일 안에 한주를 만나실 겁니다 .”하고 비밀히 결사대 20 명을 뽑아 평복에 무기를 감추어가지고 앞서서 개백현으로 들여보냈다 . 태수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그 생일에 관리와 친구들을 모아 크게 잔치를 열고 오히려 한주가 마음을 돌리기를 바라 사람을 보내 꾀었다 . “오늘은 내 생일 이다 . 오늘 너를 죽이기로 정하였으나 네가 마음을 돌리면 곧 너를 살 려줄 것이니 , 그러면 오늘이 너의 생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 한주가 대답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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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이 수군 오천을 거느리고 바닷길로 떠나면서 왕에게 아뢰기를, "신이 먼저 백제를 쳐서 개백현을 회복하고 한주를 살려낼 것이니, 니 대왕께서 대군을 거느리고 천천히 육로로 쫓아오시면 수십 일 안에 한주를 만나실 겁니다."라고 하고 비밀리에 결사대 스무 명을 뽑아 평복에 무기를 감추어 가지고 앞서 개백현으로 들여보냈다. 태수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그 생일에 관리와 친구들을 모아 크게 잔치를 열고 오히려 한주가 마음을 돌리기를 바라 사람을 보내 꾀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오늘 너를 죽이기로 정하였으나 네가 마음을 돌리면 곧 너를 살려줄 것이니, 그러면 오늘이 너의 생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라고 한주가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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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수가 내 뜻을 빼앗지 않으면 오늘이 태수의 생일이 되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태수의 생일이 곧 내가 죽는 날이 될 것이요 , 내가 사는 날이면 곧 태수의 죽는 날이 될 것입니다 .” 태수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빨리 처형하기를 명하였다 . 이때 을밀의 장사들이 무객 ( 舞客 ) 으로 가장하고 잔치에 들어가 칼을 빼어 많은 손님을 살상하고 고구려의 군사10 만이 입성하였다고 외치니 성안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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