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高句麗BC 37 – AD 668문헌 원문 · 번역
조선상고사 제9편 고구려 대수전쟁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따님은 나올 때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 다만 금팔찌 〔金臂環〕 수십 개를 팔에 끼워가지고 나와서 벽도 다 무너지고 네 기 둥만 남은 온달의 집을 찾아들어 갔다 . 온달은 어디 가고 노모만 있는 지라 그의 앞에 절하고 온달이 간 곳을 물었다 . 노모가 눈은 멀었지만 코가 있어 그 귀한 따님에게서 나는 향내를 맡고 귀가 있어 그 아리따운 미인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그 명주같이 보드랍고 고운 손을 만지며 , “어디서 오신 귀하신 처녀인지 모르지만 어찌하여 빌어먹고 헐벗은 내 아들을 찾습니까 ? 내 아들은 굶다굶다 못하여 산으로 느릅나무 껍질이나 벗겨다가 먹으려고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였다 .
번역
따님은 나올 때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다만 금팔찌 수십 개를 팔에 끼고 나와 벽도 다 무너지고 네 기둥만 남은 온달의 집을 찾아 들어갔다. 온달은 어디 가고 노모만 있는지라 그의 앞에 절하고 온달이 간 곳을 물었다. 노모가 눈은 멀었지만 코가 있어 그 귀한 따님에게서 나는 향기를 맡고, 귀가 있어 그 아리따운 미인의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그 명주같이 보드랍고 고운 손을 만지며, “어디서 오신 귀하신 처녀인지 모르지만 어찌하여 빌어먹고 헐벗은 내 아들을 찾습니까? 내 아들은 굶다 못하여 산으로 느릅나무 껍질이나 벗겨다가 먹으려고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제9편번역 대기
원문
따님이 온달을 찾아 산 아래로 가서 느릅나무 껍질을 벗겨 짊어지고 오는 사람을 만나 곧 온달인 줄 알고 그 이름을 물은 다음 자기가 찾아온 이유---혼인하고자 하는 생각을 말하였다 . 온달이 생각하기를 사람으로서야 어찌 부귀한 집의 아름다운 여자로서 빈천한 거지의 남편을 구할 리 있으랴 하고 소리 쳤다 . “너는 사람 흘리는 여우나 도깨비지 사람은 아닐 것이다 . 해가 졌으니 네가 나에게 덤비는구나 .”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달려 돌아와서 사립문을 꼭 닫아 걸고 들어갔다 . 따님이 뒤쫓아와서 그 문밖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이튿날 또다시 들어가 간청하였다 . 온달이대답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기만 하자 노모가 말하였다 .
번역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내 집같이 가난한 집이 없고 내 아들보다 더 천한사람이 없는데 그대가한나라의 귀인으로서 어찌 가난한 집에서 남편을 섬기려고 하오 ? ” 그러나 따님은 “종잇장도 마주 들면 가볍다고 하였으니 , 마음만 맞으면 가난하고 천한 것이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 ” 하고 , 드디어 금팔찌를 팔아 집과 밭과 논이며 종과 소며 그 밖의 모든 것을 다 사들여서 빌어먹던 온달이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되 었다 .
번역
"내 집처럼 가난한 집도 없고 내 아들보다 더 천한 사람도 없는데, 당신이 한나라의 귀인으로서 어찌 가난한 집에서 남편을 섬기려고 하오?" 그러나 따님은 "종잇장조차 마주 들면 가볍다고 하였으니, 마음만 맞으면 가난하고 천한 것이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며, 마침내 금팔찌를 팔아 집과 밭과 논이며 종과 소와 그 밖의 모든 것을 다 사들여 빌어먹던 온달이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었다.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나 따님은 온달을 한갓 부자로 만들려 함이 아니었으므로 온달 더러 말타고 활쏘기를 배우기 위해 말을 사오라 하였다 . 이때는 전국 시대 ( 戰國時代 ) 였으므로 고구려에서도 마정 ( 馬政 ) 을 매우 중히 여겨 대궐의 말을 국마 ( 國馬 ) 라 하여 잘 먹여 잘 기르고 화려한 굴레를 씌웠는데 , 다만 왕이 말을 타다가 다치면 말먹이와 말몰이를 죄주었으므로 , 말먹이와 말몰이들이 매양 날래고 굳센 준마가 있으면 이를 굶기고 때려서 병든 말을 만들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 따님은 비록 깊은 대궐 안의 처녀였지마는 이런 폐단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 말을 살 때에 온달에게 “시장의 말을 사지 마시고 버리는 국마를 사오십시오 .”해서 사다가 따님이 몸소 먹이고 다듬어 말이 날로 살찌고 웅장해졌다 .
번역
그러나 따님은 온달을 그저 부자로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온달에게 말 타고 활쏘기를 배우기 위해 말을 사 오라고 하였다. 이때는 전국 시대였으므로 고구려에서도 마정을 매우 중히 여겨 대궐의 말을 국마라 하여 잘 먹이고 잘 기르며 화려한 굴레를 씌웠는데, 다만 왕이 말을 타다가 다치면 말먹이와 말몰이를 죄주었기 때문에, 말먹이와 말몰이들이 매번 날래고 굳센 준마가 있으면 이를 굶기고 때려서 병든 말을 만들어버리는 일이 많았다. 따님은 비록 깊은 대궐 안의 처녀였으나 이런 폐단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말을 살 때에 온달에게 “시장의 말을 사지 마시고 버려지는 국마를 사 오십시오.” 하여 사다가 따님이 몸소 먹이고 다듬어 말이 날로 살찌고 웅장해졌다.
제9편번역 대기
원문
온달의 말타고 활쏘는 재주도 날로 진보하여 이름난 사람이 온달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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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3월 3일 신수두 대제 ( 大祭 ) 의 경기회에 온달이 참예하여 말타기에 우등을 하고 사냥해 잡은 사슴도 가장 많았다 . 평원왕이 그를 불러 이 름을 물어보고 크게 놀라며 감탄하였으나 따님에 대한 분노가 아주 풀리지를 아니하여 아직 사위로 인정하지 아니하였다 . 그 뒤에 주 ( 周 : 于文氏) 의 무제 ( 武帝 ) 가 지나 북쪽을 통일하여 위염을 떨치고 , 고구려의 강함을 시기하여 요동 ( 遼東 ) 에 침입해와서 배산 ( 拜山 ) 의 들에서 맞아 싸우는데 , 어떤 사람이 혼자서 용감하게 나가 싸웠다 . 칼 쓰는 솜씨가 능란하고 활 쏘는 재주도 신묘하여 수백 명 적의 군사를 순식 간에 목베었다 . 알아보니 그는 곧 온달이 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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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 신수두 대제(大祭) 경기회에 온달이 참여하여 말타기에서 우등을 했고 사냥해 잡은 사슴도 가장 많았다. 평원왕이 그를 불러 이름을 물어보고 크게 놀라 감탄했으나 따님에 대한 분노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 아직 사위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뒤에 주(周)의 무제가 지나 북쪽을 통일하여 위세를 떨치고, 고구려의 강함을 시기하여 요동에 침입해와 배산의 들에서 맞서 싸우는데, 어떤 사람이 혼자 용감하게 나가 싸웠다. 칼 쓰는 솜씨가 능란하고 활 쏘는 재주도 신묘하여 수백 명 적의 군사를 순식간에 베었다. 알아보니 그는 곧 온달이었다.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왕이 탄식하며 “이는 진정 내 사위로다 .”하고 이에 온달을 불러 대 형 ( 大兄 : 五品쯤 되는 벼슬 이름 ) 에 임명하고 총애가 극진하였다 . 평원왕이 돌아가고 영양왕 ( 영陽王 ) 이 즉위하자 온달이 아뢰었다 . “계립령 ( 鷄立嶺 ) 과 죽령 ( 竹嶺 ) 서쪽의 땅은 본래 우리 고구려의 땅이었는 데 신라에게 빼앗겨 그 땅의 인민들이 항상 원통하게 여기고 부모의 나라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 대왕께서는 신을 불초하다 마시고 군사를주시면 한번에 그땅을 회복하겠습니다 .” 영양왕이 이를허락하 여 출발하게 되었는데 , 온달은 군중에서 맹세하기를 “신라가 한수 ( 漢 水 ) 이북의 우리 땅을 빼앗았으니 이번 싸움에 만일 그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나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 하였다 .
번역
왕이 탄식하며 "이는 진정 내 사위로다." 하고 이에 온달을 불러 대형(五品쯤 되는 벼슬 이름)에 임명하고 총애가 극진하였다. 평원왕이 돌아가고 영양왕이 즉위하자 온달이 아뢰었다. "계립령과 죽령 서쪽의 땅은 본래 우리 고구려의 땅이었는데 신라에게 빼앗겨 그 땅의 인민들이 항상 원통하게 여기고 부모의 나라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신을 불초하다 마시고 군사를 주시면 한 번에 그 땅을 회복하겠습니다." 영양왕이 이를 허락하여 출발하게 되었는데, 온달은 군중에서 맹세하기를 "신라가 한수 이북의 우리 땅을 빼앗았으니 이번 싸움에 만일 그 땅을 회복하지 못하면 나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제9편번역 대기
원문
온달은 아차성 ( 阿且城: 지금 서울 부근 廣律의 峨嵯山 ) 아래 이르러 신라 군사와 접전하다가 흐르는 화살에 맞아 죽었다 . 환장 ( 還葬 ) 하려고 하자 관 ( 棺 ) 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아니하므로 따님이 친히 가서 울면서 “국토를 못 찾고야 임이 어찌 돌아가시랴 . 임이 아니 돌아가시니 이첩이 어찌 홀로 돌아가랴 .” 하고 역시 까무러쳐서 깨어나지 않았다 . 그래서 고구려 사람들은 따님과 온달을 그 땅에 나란히 장사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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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관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을 리가 있을까 ? 당시에 치상 ( 治喪 ) 하는 사람들이 온달의 관을 가지고 돌아가려 하다가 온달의 애국충렬에 감동하고 , 또 전날 온달이 계립령과 죽령 이서를 회복하지 않으면 나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 말을 생각하고 차마 관을 들 수가 없어 관이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현상을 말한 것이다 . 삼국사기 온달전 ( 溫達傳 ) 끝에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사생은 이미 결정났습 니다 . 돌아가십시다 . ' 하니 마침내 관이 떨어져 장사를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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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이 땅에 붙어 떨어지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당시 상을 치르던 사람들이 온달의 관을 가지고 가려다가 온달의 애국충렬에 감동하고, 또 전날 온달이 계립령과 죽령 이서를 회복하지 않으면 나도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 말을 생각하여 차마 관을 들 수 없어 관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현상을 말한 것이다. 삼국사기 온달전 끝에는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며 '사생은 이미 결정났습니다. 돌아가십시다.' 하니 마침내 관이 떨어져 장사를 지냈다."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公主來 撫棺曰 死生決牟 嗚乎歸牟 遂擧而 ? ) '고 하였는데 , 그러나 만일 이 같이 공주가 그렇게 말하고 울었다면 공주는 국토에 대한 열정이 없을 뿐 아니라 남편에 대한 사랑도 담박 ( 淡薄 ) 하다고 할 것이고 , 온달의 관이 이 말에 떨어졌다면 온달은 국토의 회복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고 상사병에 걸려 죽은 것이니 , 공주가 전날에 말을 사다가 온달을 가르친 본의가 무엇이며 온달이 편안한 부귀를 버리고 전쟁에 나선 진정 ( 眞情 ) 이 어디에 있는가 ? 조선사략 ( 朝解史略 ) 에 “국토가 회복되지 않았으니 공이 어찌 돌아가실 수 있으랴 ? 공이 돌아가지 못하시는데 내가 어찌 흔자 돌아갈 수 있으랴 하며 통곡하고 기절하니 , 마침내 고구려 사람들이 공주를 나란히 그곳에 장사지냈다 .
번역
공주가 와서 관을 애도하며 말하기를, 죽음과 삶이 결정하는 것이니 아아 돌아가라 하였는데, 만약 이와 같이 공주가 말하고 울었다면 공주는 국토에 대한 열정이 없을 뿐 아니라 남편에 대한 사랑 또한 옅다고 할 것이며, 온달의 관이 이 말을 듣고 떨어진 것이라면 온달은 국토 회복을 위해 죽은 것이 아니고 상사병으로 죽은 것이니, 공주가 전날 말을 사다가 온달을 가르친 본래 의도가 무엇이며 온달이 편안한 부귀를 버리고 전쟁에 나선 진실한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 조선사략에는 "국토가 회복되지 않았으니 어찌 돌아가실 수 있겠습니까? 당신께서 돌아가지 못하시는데 제가 어찌 흔자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라며 통곡하다 기절하니, 마침내 고구려 사람들이 공주를 나란히 그곳에 장사지냈다.
제9편번역 대기
원문
( 國土未還 公能還 公旣未還 妾安能獨還 一慟而絶 高句麗人 遂竝葬公主於其地 ) ”고 하였으니 , 조선사략은 물론 시대의 차이로 보아 그 믿음성이 삼국사기만 못하지마는 이 대문의 문구는 군국시대 ( 軍國時代 ) 의 사상을 그린 것이므로 본서에서는 이를 채택한다 . 정다산 · 한진서 등의 선생이 온달의 한수 이북 운운한 말에 의하여 고구려가 한수 이남을 차지해본 때가 없음을 증명하였지마는 그렇다면 온달의 계립령 이서가 우리 땅이라고 한 말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 고구려가 장수왕 몇 해와 안장왕 이후의 몇 해에 한수 이남을 점령하였던 것은 분명하니 온달이 말한 한수 ( 漢水 ) 는 지금의 한수〔漢江〕가 아니라 지금 양성 ( 陽城 ) 의 '한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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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연전에 일본인 금서룡 ( 今西龍 ) 이 북경대학에서 조선사를 강연할 때에 온달전은 역사로 볼 가치가 없다고 하였는데 , 이것은 참으로 문맹 ( 文盲 ) 의 말이다 . 온달의 죽음으로 인하여 고구려 · 신라 강화의 길이 끊어지고 백제가 고구려와 동맹하여 삼국 흥망의 판국을 이루었으니 , 온달전은 삼국시대의 두드러지게 중요한 문자이다 . 그러나 김부식의 첨삭 ( 添削) 을 지나 그 가치가 얼마만큼 줄어졌음은 올바른 독사자 ( 讀史者 ) 만이 이해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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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일본인 금서룡(今西龍)이 북경대학에서 조선사를 강연했을 때 온달전은 역사로 볼 가치가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문맹의 말이다. 온달의 죽음으로 인해 고구려와 신라가 강화의 길이 끊어지고 백제가 고구려와 동맹하여 삼국 흥망의 판국을 이루었으니, 온달전은 삼국시대에 두드러지게 중요한 문자이다. 그러나 김부식의 첨삭을 거치면서 그 가치가 얼마만큼 줄어졌는지는 올바른 독사자만이 이해할 뿐이다.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제 3 장 동서전쟁(同壻戰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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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장 동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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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백제 왕손(王孫) 서동(薯童)과 신라 공주 선화(善花)의 결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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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6 세기 하반에 백제 위덕왕 ( 威德王 ) 의 증손 서동 ( 薯童 ) 은 준수한 도련님으로 삼국 중에 크게 이름이 났었고 , 신라 진평왕 ( 眞平王 ) 의 둘째 따님은 삼국 중에 가장 이름난 어여쁜 아가씨였다 . 그런데 진평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몇을 낳은 가운데 선화가 꽃같이 어여 쁘므로 가장 사랑하여 “신라의 왕 된 것이 나의 자랑이 아니라 , 선화의 아버지된 것이 나의 자랑이다 .”라고 하며 늘 선화를 위해 사윗감을 구했는데 , 서동의 이름을 듣고는 선화의 남편으로 희망하였고 , 위덕왕은 그 증손 서동을 위해 증손부 ( 曾孫歸 ) 감을 구하였는데 , 또한 선화의 이름을 듣고 서동의 아내로 희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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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6세기 하반에 백제 위덕왕의 증손 서동은 준수한 도련님으로 삼국 중에 크게 이름이 났었고, 신라 진평왕의 둘째 따님은 삼국 중에 가장 이름난 어여쁜 아가씨였다. 그런데 진평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몇을 낳은 가운데 선화가 꽃같이 예쁘므로 가장 사랑하여 “신라의 왕 된 것이 나의 자랑이 아니라, 선화의 아버지된 것이 나의 자랑이다.”라고 하며 늘 선화를 위해 사윗감을 구했는데, 서동의 이름을 듣고는 선화의 남편으로 희망하였고, 위덕왕은 그 증손 서동을 위해 증손부감을 구하였는데, 또한 선화의 이름을 듣고 서동의 아내로 희망하였다.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가족 제도의 시대라 한 가정의 어른 , 양편의 주혼자 ( 主婚者 ) 로서 하물며 각기 한 나라의 대왕으로서 이렇게 생각했다면 그 결혼이 물론 쉬웠을 것이지마는 그 결혼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대로 되지 않을 사정이 있었다 . 설혹 누가 그 결혼을 제의한다고 하더라도 진평왕이나 위덕왕이 반드시 크게 노하여 역적놈이라고 처벌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 . 그것은 무슨 사정인가 하면 신라는 여러 대 이래로 박 ( 朴 ) · 석 ( 昔 ) · 김 ( 金 ) 세 성이 서로 결혼 하여 그 아들이나 사위 중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왕위를 잇게 하여 왔으므로 , 타성의 딸은 혹 세 성의 집으로데려올수 있으나 , 세 성 집안의 딸은 타성에게로 시집가지 못하는 터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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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제도의 시대라 한 가정의 어른이 양쪽의 주혼자로서 하물며 각기 한 나라의 대왕으로서 이렇게 생각했다면 그 결혼이 물론 쉬웠을 것이지만, 그 결혼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절대로 되지 않을 사정이 있었다. 설혹 누가 그 결혼을 제의한다고 하더라도 진평왕이나 위덕왕이 반드시 크게 노하여 역적놈이라고 처벌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것은 무슨 사정인가 하면 신라는 여러 대에 걸쳐 박, 석, 김 세 성씨가 서로 결혼하여 그 아들이나 사위 중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으로 왕위를 잇게 해 왔으므로, 타성의 딸은 혹 세 성의 집으로 데려올 수는 있으나, 세 성씨 가문의 딸은 타성에게로 시집가지 못하는 터였다.
제9편번역 대기
원문
그렇기 때문에 소지왕 ( 炤知王 ) 이 백제의 동성왕 ( 東城王 ) 에게 딸을 주었다고 하고 , 법흥왕 ( 法興王 ) 이 밈라가라의 가실왕 ( 嘉實王 ) 에게 누이동생을 주었다고 한 것은 실은 친딸 친누이동생이 아니라 , 육부 ( 六部 ) 귀골 ( 貴骨 ) 의 딸이나 누이동생을 준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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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므로 김씨인 진평의 딸 선화의 장래 남편은 박씨가 아니면 석씨 , 석씨가 아니면 그 동성 김씨라야 하였으니 어찌 신라 사람도 아닌 백제의 부여씨 ( 扶餘氏 ) 서동의 아내가 될 수 있으랴 ? 이는 선화 편의 사정이거니와 , 백제는 신라처럼 결혼에 관하여 성자 ( 姓字 ) 에 엄격한 제한은 없으나 위덕왕의 아버지 성왕 ( 聖王 ) 을 죽인자가 누구인가 하면 , 곧 진평왕의 아버지인 진흥왕 ( 眞興王 ) 이요 , 진흥왕은 누구인가 하면 성왕의 사위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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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김씨인 진평의 딸 선화의 장래 남편은 박씨가 아니면 석씨, 석씨가 아니면 그 동성 김씨라야 하였으니 어찌 신라 사람이 아닌 백제의 부여씨 서동의 아내가 될 수 있겠는가? 이는 선화 편의 사정이거니와, 백제는 신라처럼 결혼에 관하여 성(姓)이나 자(字)에 엄격한 제한은 없으나 위덕왕의 아버지인 성왕을 죽인 사람이 누구인가 하면 곧 진평왕의 아버지인 진흥왕이고, 진흥왕은 누구인가 하면 성왕의 사위였다.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증손부 며느리 를 어디서 데려오지 못하여 아버지 죽인 원수의 5 녀를 데려오랴 ? 장인을 죽인 괴악한 사위의 손녀를 데려오랴 ? 엄중한 심리상 ( 心理上 ) 의 꾸중이 있으니 , 서동의 장래 아내가 백제의 목씨 ( 木氏 ) · 국씨 ( 國氏 ) 등 8 대성 (八大姓 ) 의 여자이거나 , 그렇지 않으면 민가의 여자는 될지언정 어찌 전대의 원수인 진흥왕의 자손이 될 수 있으랴 . 이것은 서동 편의 사정이었다 . 백제나 신라의 여러 신하들이 거의가 전쟁에서 서로 죽이던 이의 자손이라 모두 그 결혼을 반대할 것이었다 . 이것도 양편이 결혼할 수 없는 부속된 사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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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손부 며느리를 어디서 데려오지 못하여 아버지 죽인 원수의 다섯 딸을 데려오랴? 장인을 죽인 괴악한 사위의 손녀를 데려오랴? 엄중한 심리상의 꾸중이 있으니, 서동의 장래 아내가 백제의 목씨나 국씨 등 여덟 대성(八大姓)의 여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민가의 여자는 될지언정 어찌 전대의 원수인 진흥왕의 자손이 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서동 편의 사정이었다. 백제나 신라의 여러 신하들이 거의 전쟁에서 서로 죽이던 이의 자손이라 모두 그 결혼을 반대할 것이었다. 이것도 양편이 결혼할 수 없는 부속된 사정이었다.
제9편번역 대기
원문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서동은 커갈수록 백제 왕가에 태어나지 않고 신라의 민가 자제로나 태어났더라면 선화의 얼굴이라도 한 번 바라볼 수 있을 것을 , 선화의 눈에 내 모습이라도 한 번 보여줄 수 있을 것을 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마침내 백제 왕궁에서 탈출하여 신라 동경 ( 東京 ), 지금의 경주 ( 慶州) 를 찾아갔다 . 가서는 머리를 깎고 어느 대사 ( 大師 ) 의 제자가 되었다 . 이때 신라에서는 불교를 존중하여 왕이나 왕의 가족들이 궁중에 중을 청하여 재도 올리고 백고좌 ( 百高座 ) 도 베풀고 이름난 중의 설법도 듣고 하는 때였으므로 , 서동은 법연 ( 法筵 ) 을 기회하여 오래 그리던 선화와 만날 길을 얻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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