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高句麗BC 37 – AD 668문헌 원문 · 번역
조선상고사 제9편 고구려 대수전쟁
제9편번역 대기
원문
이에 을밀이 군사를 몰아 성을 넘어 들어가서 감옥을 부수어 한주를 구해내고 , 부고 ( 府庫 ) 를 봉하여 안장왕이 오기를 기다리고 , 한강 일대의 각 성읍을 쳐서 항복받으니 백제가 크게 동요하였다 . 이에 안장왕이 아무런 장애 없이 백제의 여러 고을을 지나 개백현에 이르러 한주를 만나고 , 안학을 을멸에게 시집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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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상은 해상잡록 ( 海上雜錄 ) 에 보인 것인데 , 삼국사기 본기에는 비록 안장왕이 개백현을 점령했다는 기록이 없으나 그 지리지의 개백현 주 ( 註 ) 에는 “왕봉현 ( 王逢縣 ) 은 일명 개백현이니 한씨 미녀가 안장왕을 만난 곳이다 . ( 王逢縣 一云皆伯 漢氏美女 迎安藏王之地 ) ”라고 하였 고 , 달을성현 ( 達乙省縣 ) 주에는“한씨 미녀가높은산에서 봉화 ( 峰火 ) 를 들어 안장왕을 맞이한 곳이므로 뒤에 이름을 고봉 ( 高隆 ) 이라 하 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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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해상잡록에 보인 것인데, 삼국사기 본기에는 비록 안장왕이 개백현을 점령했다는 기록이 없으나 그 지리지의 개백현 주(註)에는 “왕봉현은 일명 개백현이니 한씨 미녀가 안장왕을 만난 곳이다.”라고 하였고, 달을성현 주에는 “한씨 미녀가 높은 산에서 봉화를 들어 안장왕을 맞이한 곳이므로 뒤에 이름을 고봉이라 하였다.”
제9편번역 대기
원문
( 漢氏美女 於高山頭 點烽火 迎安藏王之處 故後名 高峰 ) ”고 했으니 , 한씨 ( 漢氏 ) 는 곧 해상잡록의 한씨 ( 韓氏 ) 일 것이고 한씨 미녀는 곧 한주일 것이며 달을성현은 지금의 고양 ( 高陽 ) 이니 , 곧 을밀이 개백현 을 점령하고 대왕으로 하여금 한주를 만나게 한 곳일 것이다 . 그리고 개백은 '가맛'으로 읽을 것이니 , '가'는 고구려에서 왕이나 귀족을 일컫는 명사요 , '맛'은 만나본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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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번역 대기
원문
개 ( 皆 ) 는 음이 '개'이므로 그 음의 상 · 중성 ( 上中聲 ) 을 빌려 '가맛'의 '가'로 쓴 것이니 , 아래글의 '왕기현 ( 王岐縣 ) 일명 개차정 ( 皆次丁 ) '이라 한 것이 더욱 '개'가 왕의 뜻임을 증명하고 , 백 ( 伯 ) 은 뜻이 '맛'이므로 그 뜻의 소리 전부 를 빌려 '가맛'의 '맛'으로 쓴 것이다 . 그러니까 개백 ( 皆伯 ) 은 이두자 ( 更讀子 ) 로 쓴 '가맛'이요 , 왕봉 ( 王逢 ) 은 한자로 쓴 '가맛'이다 . 가맛 은 곧 한주가 안장왕을 만나본 뒤의 이름인데 , 역사가들이 그 본명을 잊고 또 이두문의 읽는 법을 몰라서 마침내 개백을 안장왕 이전의 이름으로 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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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번역 대기
원문
백제 본기 성왕 ( 聖主 ) 7 년 ( 안장왕 11 년 , 기원후 529 년 ) 에 고구려가 북쪽 변방 혈성 ( 穴城 ) 을 빼앗았다고 하였는데 , 혈성은 혈구 ( 穴口 ) ---지금의 강화 ( 江華 ) 니 이것이 곧 을밀이 행주를 함락하는 동시에 점령한 곳으로 생각된다 . 단심가 ( 丹心歌 ) 는 정포은 ( 鄭圃隱 ) 이 지은 것이라고 하지마는 위의 기록으로 보면 대개 옛 사람이 지은 것 , 곧 한주가 지은 것을 정포은이 불러서 이조 태종 ( 太宗 ) 의 노래에 대답한 것이며 포은의 자작이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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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번역 대기
원문
=== 이사부(異斯夫) · 거칠부(居柒夫) 등의 집권과 신라(新羅) · 백제(百濟) 두 나라의 동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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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구려와 백제가 한창 혈전 ( 血戰 ) 을 하는 동안에 신라에 두 정략가가 나왔으니 , 하나는 김이사부 ( 金異斯失 ) 요 또 하나는 김거칠부 ( 金 居柒夫 ) 다 . 삼국사기 열전에 '이사부는 일명 태종 ( 苔宗 ) '이라고 하였 으나 훈몽자회 ( 訓蒙字會 ) 에 '태 ( 苔 ) '를 '잇'으로 풀이하였으니 , '이사(異斯)'는 음으로 , '태(苔)'는 뜻으로 '잇'을 쓴 것이고 , '황 ( 荒 ) '은 지금도 '거칠황'으로 읽으니 , '거칠 ( 居柒 ) '은 음으로 , '황 ( 荒 ) '은 뜻 으로 '거칠'을 쓴 것이다 . 부 ( 夫 ) 는 칠서언해 ( 七書諺解 ) 에 사대부 ( 士大夫 ) 를 '사태우'로 음해 ( 音解 ) 하였으니 , 그 음이 '우'이고 , '종 ( 宗 ) ' 은 뜻이 '마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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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백제가 한창 혈전을 벌이는 동안에 신라에 두 정략가가 나왔는데, 하나는 김이사부요 또 하나는 김거칠부다. 삼국사기 열전에는 이사부를 일명 태종이라고 하였으나 훈몽자회에서는 '태'를 '잇'으로 풀이하였으니, '이사(異斯)'는 음으로, '태(苔)'는 뜻으로 '잇'을 쓴 것이고, '황(荒)'은 지금도 '거칠황'으로 읽으니, '거칠(居柒)'은 음으로, '황(荒)'은 뜻으로 '거칠'을 쓴 것이다. 부(夫)는 칠서언해에 사대부를 '사태우'로 음해하였으니, 그 음이 '우'이고, '종(宗)'은 뜻이 '마루'이다.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니까 이두자 읽는 법으로 '이사부 ( 異斯夫 ) ' 나 태종 ( 苔宗 ) 은 '잇우'로 , 거칠부 ( 居柒夫 ) 와 황종 ( 荒宗 ) 은 '거칠우' 로 읽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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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사부는 '이사부'로, 태종은 '잇우'로, 거칠부는 '거칠부'로, 황종은 '황종'으로 읽을 것이다.
제9편번역 대기
원문
이사부는 기지 ( 機智 ) 가 대단하여 젊어서 가슬라 ( 迎瑟羅 ) 의 군주 ( 軍主 : 각 고을 군사의 장관 , 뒤의 都督 ) 가 되었는데 , 우산국 ( 于山國 ) 지금의 울릉도가 모반하니 모두 군사를 내어 토벌하자고 하였으나 이사부는 “우산국은 조그만 섬이지마는 습속 ( 習俗 ) 이 우둔하고 사나워서 힘으로 굴복시키려면 많은 군사를 가져야 할 것이니 계책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라고 하고는 나무로 사자를 만들어 배에 싣고 가서 우산국 부근에 배를 멈추고 “너희들이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이 짐승을 놓아 죄다 밟아 죽일 것이다 . ”하니 , 우산국이 두려워 항복하였다 . 그 뒤에 '안라' '밈라' 등 가라를 정복하고 지증 ( 智證 ) · 법홍 ( 法興 ) 두 왕조를 섬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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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진흥왕 ( 眞興王 ) 원년 ( 기원후 540 년 ) 에는 진흥왕이 7 살 된 어린아이로 즉위하여 모태후 ( 母太后 ) 가 섭정하고 , 이사부는 병부령 ( 兵部令 ) 이 되어 전국의 병마 ( 兵馬 ) 를 도맡고 , 모든 내정과 외교에 다 참여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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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왕 원년(기원후 540년)에는 진흥왕이 일곱 살의 어린아이로 즉위하여 모태후가 섭정하고, 이사부는 병부령이 되어 전국의 병마를 맡아 모든 내정과 외교에 다 참여하였다.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거칠부의 할아버지 내숙 ( 乃宿 ) 은 쇠뿔한 ( 신라 宰相의 일컬음 ) 이고 , 아버지 물력 ( 勿力 ) 은 아찬 ( 阿찬 ) 이었으니 , 왕족으로서 대대로 장상 ( 將相 ) 집안이었다 . 거칠부는 젊을 때 큰 뜻을 품고 고구려를 정찰하려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고구려에 들어가서 각지를 정탐하고 법사 ( 法師 ) 혜량 ( 惠亮 ) 의 강당 ( 講堂 ) 에 참석하여 강의를 들었는데 , 혜량은 눈치 빠른 중이었으므로 거칠부를 달리 보고 사미 ( 沙彌 : 새로 중이 된사람 ) 는어디서 왔느냐고물었다 . 거칠부가“저는신라사람으로서 법사의 이름을 듣고 불법을 배우려고 왔습니다 .”라고 하니 , 혜량은 “노승이 불민하지마는 또한 그대를 알아보오 . 고구려 국내에 어찌 그 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겠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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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부의 할아버지 내숙은 쇠뿔한(신라 재상의 일컬음)이었고, 아버지 물력은 아찬이었으니, 왕족으로서 대대로 장상 집안이었다. 거칠부는 젊을 때 큰 뜻을 품고 고구려를 정찰하려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고구려에 들어가 각지를 정탐하고 법사 혜량의 강당에 참석하여 강의를 들었는데, 혜량은 눈치 빠른 중이었으므로 거칠부를 달리 보고 사미는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거칠부가 "저는 신라 사람으로서 법사의 이름을 듣고 불법을 배우려고 왔습니다."라고 하니, 혜량은 "노승이 불민하지마는 또한 그대를 알아보오. 고구려 국내에 어찌 그 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겠소."
제9편번역 대기
원문
빨리 돌아가오 . ”하고 후일에 거칠부의 소개로 신라에 투항하기를 희망하였다 . 거칠부는 돌아와 한아찬〔大阿찬 : 大官의 이름〕이 되어 이사부와 함께 국정에 참여하여 먼저 백제와 동맹해서 고구려를 깨뜨리고 또 시기를 보아 백제를 습격하여 국토를 늘리기를 꾀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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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때 백제의 성왕 ( 聖王 ) 이 한강 ( 漢江 ) 일대를 고구려에게 빼앗기고 신라와 동맹하려고 하였는데 , 신라가 동맹하였던 여섯 가라 ( 加羅 ) 를 합쳐버렸으므로 성왕은 동행하는 것이 달갑지 아니하였지마는 당시에 가라가 이미 망하여 동맹할 만한 제삼국이 없으므로 사신을 신라에 보내니 , 이사부가 흔연히 이를 승낙하여 신라 · 백제의 대 고구려 공수 동맹 ( 攻守同盟 ) 이 성립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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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백제 성왕이 한강 일대를 고구려에게 빼앗기고 신라와 동맹하려고 하였는데, 신라가 동맹했던 여섯 가라를 합쳐버렸으므로 성왕은 함께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당시에 가라가 이미 망하여 동맹할 만한 제삼국이 없었기에 사신을 신라에 보내니, 이사부가 흔연히 이를 승낙하여 신라와 백제는 대 고구려 공수동맹이 성립되었다.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신라의 10개 군 탈취와 신라·백제 공수동맹(攻守同盟)의 결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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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열 개 군을 빼앗고 신라와 백제의 공수 동맹이 깨지다
제9편번역 대기
원문
기원후 548년에 고구려의 양원왕 ( 陽原王 ) 이 예 ( 濊 ) 의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 한북 ( 漢北 ) 독산성 ( 獨山城 ) 을 공격하니 진흥왕이 백제와의 동맹에 따라 장군 주진 ( 朱珍 ) 을 보내 정병 3 천으로 응원해서 고구려 군사 를 격퇴하였다 . 이때에 한강 이북은 안장왕의 연애전 ( 戀愛戰 ) 으로 인하여 모두 고구려의 차지가 되어 있었는데 , 이 한북이란 어느 곳인 가 ? 이는 대개 지금 양성 ( 陽城 ) 한래 ( 한자로 번역하면 역시 漢江 ) 의 북쪽을 가리킨 것이요 , 독산성은 지금 수원 ( 水原 ) 과 진위 ( 振威 : 平澤郡 ) 사이의 독산 ( 禿山 ) 고성 ( 古城 ) 으로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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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양원왕이 이 보고를 받고 다시 대병을 내어 더욱 깊이 들어가서 이듬해에는 지금의 충청도 동북쪽 일대를 들어왔다 . 고구려는 도살성 ( 道薩城 )--- 지금의 청안 ( 淸安 ) 에 웅거하고 백제는 금현성 ( 金峴城 )--- 지금의 진천 ( 鎭川)에 웅거하여 한 해 남짓 혈전을 벌였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 , 신라는 백제의 동맹국이었지마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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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왕이 이 보고를 받고 다시 대병을 내어 더욱 깊이 들어가서 이듬해에는 지금의 충청도 동북쪽 일대를 들어왔다. 고구려는 도살성(道薩城) 즉 지금의 청안에 웅거하고 백제는 금현성(金峴城) 즉 지금의 진천에 웅거하여 한 해 남짓 혈전을 벌였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 신라는 백제의 동맹국이었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듬해 기원후 551 년에 돌궐족 ( 突厥族 ) 이 지금의 몽고로부터 동침 ( 東侵 ) 해와서 고구려의 신성 ( 新城 ) 과 백암성 ( 白岩城 ) 을 공격하므로 , 양원왕이 군사를 나누어 장군 고흘 ( 高紇 ) 을 보내 돌궐을 격퇴하는 동안에 백제의 달솔 ( 達率 ) 부여달기 ( 扶餘達己 ) 가 정병 1 만으로 평양을 급습하여 점령 하니 , 양원왕은 달아나 장안성 ( 長安城 ) 을 신축하고 서울을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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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해 기원후 551년에 돌궐족이 지금의 몽골에서 동쪽으로 침범하여 고구려의 신성과 백암성을 공격했으므로, 양원왕이 군사를 나누어 장군 고흘을 보내 돌궐을 격퇴하는 동안에 백제의 달솔 부여달기가 정예병 만 명으로 평양을 급습하여 점령하니, 양원왕은 도망쳐 장안성을 신축하고 서울을 옮겼다.
제9편번역 대기
원문
장안성은 지금의 평양이라고도 하지마는 만일 평양이라고 한다면 이는 양원왕이 평양에서 평양으로 달아난 것이 되니 어떻게 말이 되는 가 ? 장안성은 대개 지금의 봉황성 ( 鳳凰城 ) 이요 , 당시의 신평양 ( 新平壞 ) 이니 안동도호부 ( 安東都護府 : 지금의 遼陽 ) 에서 남쪽으로 평양까지 8백 리 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 고구려 본기 평원왕 ( 平原王 ) 28 년에 장안성으로 서울을 옮겼다고 하였으니 양원왕이 한때 이곳에 천도하였다가 곧 평양으로 환도하고 , 뒤에 평원왕에 이르러 다시 장안성 , 곧 신평양으로 서울을 옮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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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신라가 만일 그 동맹의 의를 다하여 백제와 협력해서 고구려를 쳤더라면 , 고구려를 멸망시켰을지도 모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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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신라가 그 동맹의 의리를 다하여 백제와 협력해 고구려를 공격했더라면, 고구려를 멸망시켰을지도 모른다.
제9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나 신라는 가까운 백제를 먼 고구려보다 더 미워하는 터였고 , 또한 백제를 위해 고구려를 토멸하면 그 결과로 백제가 강성해져서 신라로서 대적하기 어려울 것을 아는 터이므로 , 진흥왕이 가만히 백제의 뒤를 습격하여 새로 얻은 땅을 빼앗기로 작정하고 , 병부령 ( 兵部令 ) 이사부 ( 異斯夫 ) 로 하여금 지금의 충청도 동북으로 진군하게 하고 , 한아찬[大阿찬]· 거칠부 ( 居柒夫 ) 로 하여금 구진 ( 仇珍 ) · 비태 ( 比台 ) · 탐지 ( 耽知 ) · 비서 ( 非西 ) · 노부 ( 奴夫) · 서력부 ( 西力夫 ) · 비차부 ( 比次夫 ) · 미진부 ( 未珍夫 ) 등 팔로 ( 八路 ) 의 군사를 거느리고 죽령 ( 竹嶺 ) 이북으로 진군하게 하니 , 백제는 이를 동맹국의 출병 ( 出兵 ) 이라 하여 크게 환영하였다 .
번역
그러나 신라는 가까운 백제를 먼 고구려보다 더 미워하는 터였고, 또한 백제를 위해 고구려를 멸하면 그 결과로 백제가 강성해져서 신라로서 대적하기 어려울 것을 아는 터이므로, 진흥왕이 가만히 백제의 뒤를 습격하여 새로 얻은 땅을 빼앗기로 작정하고, 병부령 이사부로 하여금 지금의 충청도 동북으로 진군하게 하고, 한아찬·거칠부로 하여금 구진·비태·탐지·비서·노부·서력부·비차부·미진부 등 여덟 갈래의 군사를 거느리고 죽령 이북으로 진군하게 하니, 백제는 이를 동맹국의 출병이라 하여 크게 환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