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수집 가동 중 · 마지막 갱신 2026-07-24 17:43사이트 소개
한국고대사 아카이브HONGSHAN · LIAOHE · GOJOSEON — GORYEO

고구려

高句麗BC 37 – AD 668

문헌 원문 · 번역

원문은 편·권·조 단위 문단으로 저장되고, 문단마다 번역이 붙습니다. 자동 번역본은 검수를 거쳐 확정본으로 승격됩니다.

조선상고사 제5편 고구려 전성 朝鮮上古史 第5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138개 · 번역 확정 0개
제5편문단 10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1. 차대왕(次大王)의 20년 전제(專制)
번역
차대왕의 20년간의 독재
제5편문단 102번역 대기
원문
차대왕이 양위를 받아 20 년 동안 고구려에 군림하여 전제를 하다가 연나 ( 緣那 ) 의 조의 ( 조衣 ) 명림답부 ( 明臨答夫 ) 에게 살해당하였다. 그러나 차대왕의 본기 ( 本紀 ) 가 간략하고 허술하여, 그 전제 ( 專制 ) 의 정도와 살해당한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기 어렵다. 이에 본기의 전문을 여기에 번역해 싣고 나서 논평하고자 한다.
번역
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제5편문단 10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차대왕의 이름은 수성 ( 遂成 ) 이니, 태조왕의 동모제 ( 同母弟 : 동모 제 3 字는 서자로 고칠 것임 ) 로 용감하고 위엄이 있었으나, 인자 ( 仁慈 ) 가 적었다. 태조왕의 양위 ( 讓位 ) 로 왕위에 오르니, 나이 76 살이었다. 2 년 봄 정월에 관나 ( 貫那 : 灌那 ) 의 패자 ( 沛者 ) 미유 ( 彌儒 ) 로 우보 ( 右輔 ) 를 삼았다. 3 월에는 우보 고복장 ( 高福章 ) 을 죽였는데, 그가 죽을 때에, “원통하고 원통하다.
번역
차대왕의 이름은 수성이라 하니, 태조왕의 동모제로 용감하고 위엄이 있었으나 인자함이 적었다. 태조왕의 양위로 왕위에 오르니 나이가 76세였다. 2년 봄 정월에 관나의 패자인 미유를 우보로 삼았다. 3월에는 우보 고복장을 죽였는데, 그가 죽을 때 “원통하고 원통하다.”
제5편문단 10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내가 당시에 선조 ( 先朝 ) 의 근신이 되어 어찌 난을 일으킬 사람을 보고 말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선군께서 나의 말을 듣지 않으시어 이에 이르렀거니와, 지금 임금이 왕위에 올라 마땅히 정 ( 政 ) 과 교 ( 敎 ) 를 새로이 하여 백성에게 보여야 할 것인데, 이제 불의로 충신을 죽이니 내가 무도한 세상에서 사느니보다 죽는 것이 낫다.” 하고 형을 받으니, 모두들 이 소식을 듣고 분해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가을 7 월에 좌보 목도루가 병을 일컫고 늙어서 물러가니, 환나 (桓那 : 椽那로 고칠 것임 ) 의 우태 어지류로 좌보를 삼아서 작위를 더하여 대주부 ( 大主簿 ) 를 삼았다.
번역
내가 당시 선조의 근신이 되어 어찌 난을 일으킬 사람을 보고 말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선군께서 나의 말을 듣지 않으셔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지금 임금이 왕위에 올라 마땅히 정사와 교화를 새로이 하여 백성에게 보여야 할 것인데, 이제 불의로 충신을 죽이니 내가 무도한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낫다” 하고 형을 받으니, 모두들 이 소식을 듣고 분개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가을 7월에 좌보 목도루가 병을 앓아 늙어 물러나자, 환나의 우태 어지류로 좌보를 삼아 작위를 더하여 대주부를 삼았다.
제5편문단 105번역 대기
원문
겨울 10 월에 비류나 ( 沸流那 ) 의 조의 ( 조衣 ) 양신 ( 陽神 ) 으로 중외대부 ( 中畏大夫) 를 삼아서 작위를 더하여 우태를 삼았다. 이상은 다 왕의 옛날 친구였다. 11 월에 지진이 있었다.
번역
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제5편문단 10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3 년 여 름 4 월에 왕이 사람을 시켜 태조왕의 원자 ( 元子 ) 막근을 죽이니, 그 아우 막덕이 장차 화가 미칠까 두려워서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가을 7 월에 왕이 평유원 ( 平偏原 ) 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흰 여우가 따라오며, 울므로 왕이 이를 쏘았으나 맞지 않았다. 왕이 무사 ( 巫師 ) 에게 물으니, “여우는 요망한 짐승이니, 길한 상서가 아닌데 게다가 흰 여우니 더욱괴이한 변입니다. 천제 ( 天帝 ) 께서 인간의 임금에게 맞대해서 순수히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요괴를 보여 임금으로 하여금 두려워하여 반성하게 함이니 대왕께서 만일 덕을 닦으시면 화를 돌려 복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고 하였다.
번역
3년 여름 4월에 왕이 사람을 시켜 태조왕의 원자 막근을 죽였으니, 그 아우 막덕이 장차 화가 미칠까 두려워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가을 7월에 왕이 평유원에서 사냥을 하였는데, 흰 여우가 따라오며 울므로 왕이 이를 쏘았으나 맞지 않았다. 왕이 무사에게 물으니, “여우는 요망한 짐승이니, 길한 상서가 아닌데 게다가 흰 여우니 더욱 괴이한 변입니다. 천제께서 인간의 임금에게 맞대하여 순수히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요괴를 보여 임금으로 하여금 두려워하여 반성하게 함이니 대왕께서 만일 덕을 닦으시면 화를 돌려 복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제5편문단 10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왕이, “흉한 것이면 흉할 것이고 길한 것이면 길할 것인데, 이제 이미 흉하다고 하고 또 길하다고 하니 어찌 속이는 말이 아니냐? ” 하고 드디어 무사를 죽였다.
번역
왕이 "흉하다면 흉하고 길하다면 길할 터인데, 이제 와서 흉하다고 했다가 또 길하다고 하니 어찌 속이는 말이 아니겠느냐?" 하며 마침내 무사를 죽였다.
제5편문단 108번역 대기
원문
4 년 여름 4 월 정묘 (丁卯 ) 그믐날 일식 ( 日食 ) 이 있었다. 5 월에 다섯 별이 동쪽에 모였는데, 일관 ( 日官 ) 은 왕의 노함을 두려워하여 거짓말로, “이는 임금의 덕이요 나라의 복입니다.”고 하니, 왕이 크게 기뻐하였다. 겨울 12 월에 얼음이 얼지 않았다.
번역
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제5편문단 10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8 년 여름 6 월에 서리가 내려 쌓였다. 겨울 12 월에 천둥하고 지진이있었다. 그음날 객성 ( 客星 : 彗星 ) 이 달을 범하였다.
번역
8년 여름 6월에 서리가 내리 쌓였고, 겨울 12월에는 천둥과 지진이 있었다. 그 다음 날 객성이 달을 가렸다.
제5편문단 11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13 년 봄 2 월에 꼬리별 〔패星 ) 이 북두 ( 北斗 ) 를 범하였고 5 월 갑술 ( 甲戌 ) 그믐날에는 일식이 있었다.
번역
13년 봄 2월에 꼬리별이 북두를 가렸고, 5월 갑술그<0xEB><0xAF><0x90>날에는 일식이 있었다.
제5편문단 111번역 대기
원문
20 년 봄 정월에 일식이 있었다. 3 월에 태조왕이 별궁에서 돌아가니, 나이 119 살이었다. 겨울 l0 월에 연나의 조의 명림답부가 왕이 백생들 에게 차마 하지 못할 일을 하므로 왕을 죽이고, 그 호 ( 號 ) 를 차대왕이라 하였다.”
번역
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제5편문단 11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상이 차대왕 본기의 전부다. 맨 끝에, “명림답부가 백성들에게 차마 하지 못할 일을 하므로 왕을 죽였다.”고 했으나, 그 이전의 기록을 상고해보면, 차대왕이 백성에게 차마 하지 못할 정사를 한 일이 하나도 없다.
번역
이상은 차대왕 본기의 전부이다. 맨 끝에 "명림답부가 백성들에게 차마 하지 못할 일을 하므로 왕을 죽였다"고 했으나, 그 이전의 기록을 살펴보면, 차대왕이 백성에게 차마 하지 못할 정사를 한 일이 하나도 없다.
제5편문단 11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복장 ( 高福章 ) 은 차대왕의 음모를 고발한 사람이므로 죽인 것이고, 목도루는 차대왕과 막근의 중간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한 사람이므로 내쫓은 것이고, 무사는 태조왕의 꿈을 야릇하게 풀어 차대왕을 해치려 한 사람이므로 죽인 것이고, 막곤 형제는 차대왕과 맞선 적이므로 죽인 것이니, 이것을 아무리 참혹하고 불인 ( 不仁 ) 한 것이라 하더라도 사사로운 원한의 보복이고, 인민에게는 이해 관계가 없는 일일 뿐더러, 또 이것이 모두 차대왕 2 년 내지 3 년까지의 일이니, 18년 후인 차대왕 20 년에 반란을 일으킨, 명림답부의 유일한 구실이 될 수 없으며, 그 이외의 기사는 일식 · 지진 · 성변 ( 星變 ) 등뿐이니, 이 같은 천문 지리의 변화는 차대왕의 정치의 잘잘못에 관계가 없는 일이라 이로써 인민에게 차마 못할 일을 한 증거로 삼을 수 없다.
번역
고복장은 차대왕의 음모를 고발했기 때문에 죽였으며, 목도루는 차대왕과 막근 사이에서 모호한 태도를 취했기 때문에 내쫓았고, 무사는 태조왕의 꿈을 야릇하게 풀어 차대왕을 해치려 했기 때문에 죽였으며, 막곤 형제는 차대왕과 맞섰기 때문에 죽였다. 이것이 아무리 참혹하고 불인(不仁)하다고 하더라도 사사로운 원한의 보복일 뿐이며, 백성들에게는 이해관계가 없는 일이고, 또 이것들이 모두 차대왕 2년에서 3년 사이의 일이니, 18년 후인 차대왕 20년에 반란을 일으킨 명림답부의 유일한 구실이 될 수 없으며, 그 이외의 기사는 일식·지진·성변(星變) 등에 불과하니, 이러한 천문 지리의 변화는 차대왕 정치의 잘잘못과 관계없는 일이므로 이것으로 백성들에게 감히 못할 일을 한 증거로 삼을 수 없다.
제5편문단 114번역 대기
원문
그러면 차대왕이 패망하고 명림답부가 성공한 원인이 어디에 있었는가? 차대왕이 패한 뒤에 좌보 어지류가 여러 중신과 더불어 차대왕의 아우 백고 신대왕에게 왕위 계승을 권진 ( 勸進 ) 하였는데, 어지류는 처음부터 차대왕을 도와 왕위 찬탈을 계획한 괴수요, 그 여러 중신이 란 대개 미유 · 양신 등일 것이니, 이로 미루어보면 차대왕의 패망은 곧 자기 당의 이반 ( 離反 ) 에 의한 것일 것이다. 차대왕의 즉위 이전 10여 년 동안에 차대왕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왕위 찬탈을 계획한 그 무리들이 차대왕과 20 년 동안 부귀를 누리다가 도리어 왕을 배반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원인은 찾기 쉬운 것이다.
번역
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제5편문단 11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구려는 원래 일인전제 ( 一入專制 ) 의 나라가 아니라 벌족공치 ( 閔族共治 ) 의 나라이니, 국가의 기밀 대사는 왕이 전결 ( 專決 ) 하지 못하고, 왕과 5 부의 대관들이 대회의를 열어 결정하고, 형별로 사람을 죽이는 일 같은 것도 회의를 열어 결정하고, 형벌로 사람을 죽이는 일 같은 것도 회의의 결정으로 행하였다.
번역
고구려는 본래 한 사람이 독점하여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민족이 함께 다스리는 나라이니, 국가의 중대한 대사는 왕이 전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왕과 오 부의 대관들이 회의를 열어 결정하였으며, 형별로 사람을 죽이는 일 같은 것도 회의를 열어 결정하고, 형벌로 사람을 죽이는 일 같은 것도 회의의 결정으로 행하였다.
제5편문단 11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런데 차대왕은 부왕을 가두고 당시 신앙의 중심인 무사를 죽인 사람으로서, 비록 어지류 등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올랐으나 왕위에 오른 뒤에는 이 무리들을 안중에 두지 않고 군권 ( 君權 ) 이 오직 제일임을 주장하여 모든 일을 자기 독단으로 행하므로, 연나의 `선배' 우두머리 명림답부가 그 본부 ( 本部 ) 의 `선배'로서 밖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어지류 등이 내응 ( 內應 ) 하여, 태조왕이 돌아간 뒤를 기회하여 차대왕을 죽이고 벌족 공치의 나라를 회복한 것이다.
번역
그런데 차대왕은 부왕을 가두고 당시 신앙의 중심인 무사를 죽인 사람으로서, 비록 어지류 등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올랐으나 왕위에 오른 뒤에는 이 무리들을 안중에 두지 않고 군권이 오직 제일임을 주장하여 모든 일을 자기 독단으로 행했으므로, 연나의 '선배' 우두머리 명림답부가 그 본부의 '선배'로서 밖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어지류 등이 내응하여, 태조왕이 돌아간 뒤를 기회로 차대왕을 죽이고 벌족 공치의 나라를 회복한 것이다.
제5편문단 117번역 대기
원문
어떤 이는 명림답부를 조선 사상 처음으로 혁명을 일으킨 혁명가라고 하지마는, 혁명은 반드시 역사상 진화의 의의를 가진 변동을 일컫는 것이니, 벌족 공치를 회복한 반란이 어찌 혁명이 되랴? 명림답부는 한때 정권 쟁탈의 효웅 ( 梟雄 ) 이라 함은 옳지마는 혁명가라 함은 옳지 않다.
번역
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제5편문단 11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2. 명림답부(明臨答夫)의 전권(專權)과 외정(外政)
번역
명림답부가 전권을 가지고 대외 정사를 맡음
제5편문단 11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명림답부가 차대왕을 죽이고 차대왕 당년에 해를 피하여 산중에 숨어 있던 백고 ( 伯固 ) 를 세워 신대왕 ( 新大王 ) 이라 하고, 국내에 사면령 ( 敬免令 ) 을 내려, 차대왕의 태자 추안 ( 鄒安 ) 까지도 용서하여 양국군 ( 讓國君 ) 으로 봉하고, 차대왕의 준엄한 형법을 폐지하니, 나라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이에 명림답부가 `신가'가 되어,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맡아 처리하고, `팔치'와 `발치'를 겸하고, 예량 (濊梁 ) 여러 맥 ( 貊 ) 의 부장 ( 部長 ) 을 다 차지하니, 그 위엄과 권세가 태조 왕 때의 왕자 수성보다 더하였다. 본기에는, “명림답부가 국상 ( 國相 )으로 패자 ( 沛者 ) 를 겸하였다.
번역
명림답부가 차대왕을 죽이고 차대왕 사년에 해를 피하여 산중에 숨어 있던 백고를 세워 신대왕이라 하고, 국내에 사면령을 내려 차대왕의 태자 추안까지도 용서하여 양국군으로 봉하고, 차대왕의 엄한 형법을 폐지하니 나라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이에 명림답부가 '신가'가 되어 나라의 크고 작은 일을 모두 맡아 처리하고, '팔치'와 '발치'를 겸하며, 예량 여러 맥의 부장을 다 차지하니 그 위엄과 권세가 태조 왕 때의 왕자 수성보다 더하였다. 본기에는 명림답부가 국상으로 패자를 겸하였다.
제5편문단 120번역 대기
원문
”고 하였고, 또 “좌우보 ( 左右輔 ) 를 고쳐 국상으로 한 것도 이때에 비롯된 것이다.” 하였는데, 이는 국상이 곧 `신가'인지를 모르고, 패자가 `팔치' 곧 좌보인지를 모르고서 함부로내린 주해이다.
번역
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이전34567다음138건 · 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