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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高句麗BC 37 – AD 668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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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5편 고구려 전성 朝鮮上古史 第5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138개 · 번역 확정 0개
제5편문단 81번역 대기
원문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차지하자 지금의 개평현 동북쪽 70 리에 환도성 ( 丸都城 ) 을 쌓아 서방 경영의 본거지로 삼고, 국내성과 졸본성과 아울러 삼경 ( 三京 ) 이라 일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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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8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환도성의 위치에 대하여는 후세 사람의 논쟁이 분분하여 혹은 환인현 ( 桓仁縣 ) 부근---지금의 혼강 ( 渾江 ) 상류인 안고성 ( 安古城 ) 이라고도 하고, 혹은 집안현 ( 輯安縣 ) 홍석 정자산 ( 紅石頂子山 ) 위라고도하지마는, 앞의 것은 산상왕 ( 山上王 ) 이 옮겨가 설치한 제 2 의 환도성이요, 나중 것은 동천왕 ( 東川王 ) 이 옮겨가 설치한 제 3 의 환도성이다. 이것은 제 6 편에서 다시 서술하려니와, 태조왕의 환도성은 곧 첫 번째 옮겨 쌓은 제 1 의 환도성이니, 삼국사기 지리지 ( 地理志 ) 에, “안시성은 혹 환도성이라고도 한다.”고 하였고, 삼국유사에는, “안시성은 일명 안촌흘 ( 安寸 忽 )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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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도의 위치에 대해서는 후세 사람들의 논쟁이 분분하여, 혹은 환인현 부근—지금의 혼강 상류인 안고성이라고도 하고, 혹은 집안현 홍석정자산 위라고도 하지만, 앞 것은 산상왕이 옮겨가 설치한 제2의 환도성이요, 나중 것은 동천왕이 옮겨가 설치한 제3의 환도성이다. 이것은 제6편에서 다시 서술하려니와, 태조왕의 환도성은 곧 처음으로 쌓은 제1의 환도성이니,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안시성은 혹 환도성이라고도 한다”고 하였고, 삼국유사에는 “안시성은 일명 안촌흘이라고 한다.”
제5편문단 83번역 대기
원문
”고 하였는데, 환 ( 丸 ) 은 우리말로 `알'이 라고 하니, 환도 ( 丸都 ) 나 안시 ( 安市 ) 나 안촌 ( 安寸) 은 다 `아리'로 읽 을 것이므로, 다같이 한 곳---지금의 개평현 동북쪽 70 리의 옛 자리 임이 분명한데, 후세 사람들이 앞 뒤 세 환도성을 옳게 구별하지 못하고 매양 환도성을 한 곳에서만 찾으므로, 아무리 환도성의 고증에 노력하여도 환도성의 위치는 여전히 애매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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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84번역 대기
원문
== 제4장 차대왕(次大王)의 왕위 찬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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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8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1.태조왕(太祖王)의 가정불화(家庭不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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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왕의 집안 불화
제5편문단 8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왕자 수성이 이미 요동을 회복하고 한나라의 세폐 ( 歲幣 ) 를 받으니 태조왕은 그 공을 상주어 `신가'에 임명하고 군국 ( 軍國 ) 대사를 죄다맡겼다. 이에 위엄과 권세가 한봄에 모이고 명성과 인망이 천하에 떨치니, 수성이 만일 이 명성과 인망을 이용하여 나아가 요서를 쳤으면 삼조선의 서북 옛 땅을 전부 회복하기가 쉬웠겠지마는, 수성은 가정에 대한 불평이 공명 ( 功名 ) 에 대한 열심을 감쇄하여, 요동을 회복한 이튿날 한의 화의 요청을 허락 ( 앞 장에 보임 ) 하고 귀국하였다.
번역
왕자 수성이 이미 요동을 되찾고 한나라의 세폐를 받으니 태조왕은 그 공로를 상주어 '신가'에 임명하고 군국의 대사권을 모두 맡겼다. 이에 위엄과 권세가 한봄에 모이고 명성과 인망이 천하에 떨치니, 수성이 만일 이 명성과 인망을 이용하여 나아가 요서를 쳤으면 삼조선의 서북 옛 땅 전부를 회복하기가 쉬웠겠으나, 수성은 가정에 대한 불평이 공명에 대한 열심을 식히어, 요동을 되찾은 다음 날 한의 화의 요청을 허락하고 귀국하였다.
제5편문단 87번역 대기
원문
수성의 가정에 대한 불화란 무엇인가? 수성은 태조왕의 서자요, 막근 · 막덕 형제가 태조왕의 적자임은 이미 앞에서 말하였거니와, 막문은 고구려 왕실의 가법 ( 家法 ) 에 의하여 왕위를 상속받을 권리가 있고, 수성은 그 빛나는 무공에 의하여 또한 태자가 되기를 희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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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8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래서 수성은 요동의 싸움을 마치자 급히 돌아와 원정할 생각을 끊고 밖으로는 정치에 힘쓰며, 어진 신하 목도루 ( 穆度婁 ) · 고복장 ( 高福章 ) 을 기용하여 `팔치'와 `발치'를 삼아서 인심을 거두고, 안으로는 사사로운 무리를 길러 태자의 자리 얻기를 도모하였는데, `불라〔沸流那〕 '의 `일치 ' 미유 ( 彌儒 ) 와, `환라〔桓那 〕 '의 `일치 ' 어지류 ( 어支留 ) 와 `불라'의 조의 ( 조衣 : 당시의 선배 수령 ) 가 수성의 뜻을 알고 이에 。 아부하여 태자의 자리 빼앗기를 몰래 모의하였다.
번역
그래서 수성은 요동에서의 싸움을 마치자 급히 돌아와 원정할 생각을 끊고 밖으로는 정치에 힘쓰며, 어진 신하 목도루와 고복장을 기용하여 '팔치'와 '발치'를 삼아 인심을 거두었고, 안으로는 사사로운 무리를 길러 태자의 자리를 얻으려 도모하였다. 그런데 불라의 일치 미유와, 환라의 일치 어지류와 불라의 조의가 수성의 뜻을 알고 이에 아부하여 태자의 자리를 빼앗는 것을 몰래 모의하였다.
제5편문단 8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런데 태조왕은 수성으로 태자를 삼자니 가법 ( 家法 ) 에 걸리고, 막근으로 태자를 삼자니 수성에게 걸려서 오랫동안 태자를 세우지 못하였다. 수성이 정치를 오로지 한지 10 여 년에 태자의 자리를 얻지 못하자 원망하는 기색이 이따금 얼굴에 보이고, 모의하는 흔적이 때때로 곁에 드러나니 막근은 태자의 지위를 빼앗길 뿐 아니라 수성에게 죽을까 두려웠으나, 병권도 없고 또 위염과 명망이 수성에게 미치지 못하므로 그 대항할 방책은 오직 태조왕의 마음을 돌리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번역
그런데 태조왕이 수성을 태자로 삼자니 가법에 어긋나고, 막근으로 태자를 삼자니 수성에게 걸려 오래도록 태자를 세우지 못하였다. 수성이 정치를 오로지 한 지 10여 년 만에 태자의 자리를 얻지 못하자 원망하는 기색이 이따금 얼굴에 보이고, 모의하는 흔적이 때때로 곁에 드러나니 막근은 태자의 지위를 빼앗길 뿐 아니라 수성에게 죽을까 두려웠으나, 병권도 없고 또 위염과 명망이 수성에게 미치지 못하므로 그 대항할 방책은 오직 태조왕의 마음을 돌리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
제5편문단 90번역 대기
원문
이때에 고구려의 `신수두'에 신단 ( 神檀 ) 의 무사 ( 巫師 ) 는 비록 부여처럼 정권을 가지지는 못 하였으나, 복술 ( 卜術 ) 로써 남의 길흉 화복을 예언한다 일컬어서 일반의 신앙을 받아 귀천의 계급을 불문하고 모든 의심나고 어려운 일을 이 무사에게 결정을 청하는 때였으므로, 막근은 무사에게 뇌물을 주고 도움을 빌었다. 기원 142 년에 환도성에 지진이 일어나고, 또 태조 왕은 꿈에 표범이 범의 꼬리를 물어 끊는 것을 보고, 마음이 좋지 못하여, 무사를 불러 해몽해보라고 하니, 무사는 수성을 참소할 좋은 기회로 여기고, “범은 온강 짐승의 어른이요, 표범은 범의 씨요, 범의 꼬리는 범의 뒤니 아마 대왕의 작은 씨가 대왕의 뒤 ( 후예란 말 ) 를 끊으려는 자가 있어 꿈이 그러한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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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9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 하여, 넌지시 서자 수성이 적자 막근을 해치리라는 뜻을 보였다. 그러나 태조왕이 수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찌 갑자기 무사의 말에 기울어지랴 다시 `불치' 고복장을 불러 물으니, 고복장은 수성의 무리는 아니지마는 아직 수성의 음모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선을 행하면 복이 내리고 불선을 행하면 화가 이릅니다. 대왕께서 나라를 집안같이 걱정하시고 백성을 자식같이 사랑하시면 비록 재난과 변괴와 악몽이 있을지라도 무슨 화가되겠습니까? ” 하고 무사의 말을 반대하여 태조왕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번역
이에, 은근히 서자 수성이 적자 막근을 해칠 것이라는 뜻을 보였다. 그러나 태조왕이 수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찌 갑자기 무사의 말에 기울어지겠는가. 다시 고복장을 불러 물으니, 고복장은 수성의 무리는 아니나 아직 수성의 음모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선을 행하면 복이 내리고 불선을 행하면 화가 이릅니다. 대왕께서 나라를 집안같이 걱정하시고 백성을 자식같이 사랑하시면 비록 재난과 변괴와 악몽이 있을지라도 무슨 화가 되겠습니까?"라며 무사의 말에 반대하여 태조왕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제5편문단 9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2. 수성(遂成)의 음모와 태조왕(太祖王)의 선위(禪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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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이 꾸민 계략과 태조왕의 자리 물려나감
제5편문단 93번역 대기
원문
수성이 40 년 동안이나 정권을 잡아 위염과 복을 오로지 하여, 매양 마근을 죽여서 왕위 상속의 권한을 빼앗으려고 했지마는, 다만 태조 왕이 이미 늙었으므로 그 돌아감을 기다려서 일을 행하려고 하였는데, 태조왕은 두 사람의 감정을 조화시켜서 자기가 죽은 뒤에도 아무런 변란이 없도록 만든 뒤에 태자를 봉하려 하여 긴 세월을 그냥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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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9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기원후 146 년은 태조왕이 왕위에 있은 지 94 년이요, 나이 100 살 되는 경사스러운 해인데, 수성도 이때에 나이 76 살이라, 백살 노인인 태조왕의 건강함을 보고 혹 자기가 태조왕보다 먼저 죽어 막근에게 왕위가 돌아가지나 않을까 하여, 그 해 7 월에 왜산 ( 倭山 : 연혁 미상 ) 에서 사냥하다가 지는 해를 돌아보며 탄식하니, 좌우가 그 뜻을 알고 모두 힘을 다하여 왕자의 뒤를 따라 행동할 것을 맹세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홀로, “대왕께서 성명 ( 聖明 ) 하시어 백성이 공경하여 받드는데, 왕자가 좌우의 소인들을 데리고 성명하신 대왕을 폐위하려고 하는 건 한 가닥 실로 만 근의 무게를 끌려 함과 같을 뿐입니다.
번역
기원후 146년은 태조왕이 왕위에 오른 지 94년이요, 나이 100세가 되는 경사스러운 해였다. 수성도 이때에 나이 76세였는데, 백세 노인인 태조왕의 건강함을 보고 혹 자신이 태조왕보다 먼저 죽어 막근에게 왕위가 돌아가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그리하여 그해 7월에 왜산에서 사냥하다가 지는 해를 돌아보며 탄식하니, 좌우가 그 뜻을 알고 모두 힘을 다하여 왕자의 뒤를 따라 행동할 것을 맹세하였다. 그중 한 사람이 홀로 "대왕께서 성명하시어 백성이 공경하고 받드는데, 왕자가 좌우의 소인들을 데리고 성명하신 대왕을 폐위하려는 것은 실로 만 근의 무게를 끌려 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제5편문단 9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만일 왕자께서 생각을 고치셔서 효도로써 대왕을 섬기시면, 대왕께서 반드시 왕자의 선함을 아시어 양위하실 마음이 였으시겠지만, 그렇지 아니하면 큰 화가 있을 것입니다.”고 하여 반대하였다. 수성이 그의 말을 못마땅해 하니, 좌우가 수성을 위해 그를 살해하고, 음모가 더욱 급히 진행되었다. 고복장이 눈치채고서 태조왕에게 들어가 고하고 수성을 죽이기를 청하였다. 태조왕은 신하로서의 부귀로는 수성의 마음을 달래지 못할 줄을 깨달았으나, 차마 죽이지 못하여 고복장의 청을 거절하고, 수성에게 왕위를 물려준 다음 별궁 ( 別宮 ) 으로 물러가고, 수성은 자리에 올라 차대왕 ( 次大王 ) 이라 하였다.
번역
만약 왕자께서 생각을 고쳐 효도로 대왕을 섬기신다면, 대왕께서 반드시 왕자의 선함을 아시어 양위하실 마음이셨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큰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여 반대하였다. 수성이 그의 말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자 좌우가 수성을 위해 그를 죽이고 음모가 더욱 급히 진행되었다. 고복장이 눈치채고 태조왕에게 들어가 고하고 수성을 죽이기를 청하였다. 태조왕은 신하로서의 부귀로는 수성의 마음을 달래지 못할 줄을 깨달았으나, 차마 죽이지 못하여 고복장의 청을 거절하고, 수성에게 왕위를 물려준 다음 별궁으로 물러가고, 수성은 자리에 올라 차대왕이라 하였다.
제5편문단 96번역 대기
원문
고구려 본기에, “태조왕 80년에 좌보패자 ( 左輔沛者 ) 목도루 ( 穆度婁 ) 가, 수성이 딴 뜻이 있음을 알고, 병을 일컫고 벼슬하지 않았다 ( 左輔沛者 知遂成有異志 稱病不仕). ”고 기록되었고, 차대왕 2 년에 “좌보 목도루가 병을 일컫고 늙어서 물러났다 ( 左輔穆度婁稱病退老 ). ”고 기록되었으니, 이에 이미 15 년 전에 병을 일컫고 벼슬하지 아니한 목도루가 어찌 15 년 후에 차대왕 2 년에 또 병을 일컫고 늙어서 물러났다고 할 수 있으랴?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을 때에 여러 가지 고기 ( 古記 ) 에 대하여 아무런 선택 없이 마구 수록하였음이 이같이 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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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9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하물며 좌보 ( 左輔 ) 나 패자 ( 沛者 ) 가 다 `팔치'의 번역인데, 좌보패자라는 겹말의 명사를 글에 올렸으니, 어찌 가소로운 일이 아니랴? 또 태조왕 본기에, “ 94 년 8 월에 왕이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 ( 西安平 ) 을 습격하여 대방 ( 帶方 ) 의 수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빼앗았다 ( 九十四年 八月 王遺將 襲遼東西安平 殺帶方令 량得樂浪太守妻子 ). ”라 하였는데, 이는 후한서에, “고구려왕 백고 ( 伯固 ) 가---질환 ( 質桓 ) 의 어간에 다시 요동의 서안평을 침범하여 대방의 수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빼앗았다·( 高句麗王伯固 質桓之間 復犯遼東西安平 殺帶方令 량得浪太守妻子 ). ”고 한 글을 그대로 초록한 것이다.
번역
하물며 좌보 패자가 모두 '팔치'의 번역인데, 좌보패자라는 중복된 명사를 글에 올렸으니, 어찌 가소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또 태조왕 본기에 "94년 8월에 왕이 장수를 보내 요동 서안평을 습격하여 대방의 수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빼앗았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후한서에 "고구려왕 백고가 질환 사이에 다시 요동의 서안평을 침범하여 대방의 수령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빼앗았다"라는 고 한 글을 그대로 초록한 것이다.
제5편문단 9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질환의 어간이란 질제 ( 質帝 ) 와 환제 ( 桓帝 ) 의 사이를 가리킨 것이니, 그것은 태조왕 94 년이므로, 김부식이 이 해에다 기록해 넣은 것이고, 백고 ( 伯 固 ) 는 신대왕 ( 新大王 ) 의 이름이니, 이때는 신대왕 원년 전 20 년이므로, 김부식이 `고구려왕 백고 ( 高句麗王伯固 )'의 여섯 글자를 `견장 ( 遺將 )'의 두 글자로 고친 것이다.
번역
질환의 어간이란 질제와 환제의 사이를 가리킨 것이니, 그것은 태조왕 94년이므로 김부식이 이 해에 기록하였고, 백고는 신대왕의 이름이니 이때는 신대왕 원년 전 20년이므로 김부식이 '고구려왕 백고' 여섯 글자를 '유장' 두 글자로 고친 것이다.
제5편문단 99번역 대기
원문
그러나 이때 태조왕의 가정에 차대왕 과 막근의 다툼이 있어 외부의 일을 물을 사이가 없는 때였으므로, 후한서의 질환의 어간은 환령 ( 桓靈 ) 의 어간---환제 ( 桓帝 ) 와 영제 ( 靈帝 ) 의 사이, 신대왕 때로 개정함이 옳은데, 김부식이 이를 태조왕 94년의 일로 적어넣음이 이미 망령된 조작임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친절하게도 달까지 박아 ` 8 월'이라고 하였음은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국내외의 기록을 뽑아 넣을 때에 모호한 것은 아무 근거 없이 연윌 ( 年月 ) 을 스스로 정하고 자구를 가감한 것이 많았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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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10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제 5 장 차대왕(次大王)의 피살과 명림답부(明臨答夫)의 전권(專權) ==
번역
제 5 장 차대왕이 죽임을 당하고 명림답부가 권력을 독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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