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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高句麗BC 37 – AD 668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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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5편 고구려 전성 朝鮮上古史 第5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138개 · 번역 확정 0개
제5편문단 4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왕조의 세계 ( 世系 ) 에 틀리고 안 틀린 것은 사학가가 아는 체할 것이 아니지만, 고대사는 세대의 사실이 매양 왕조의 보첩 ( 譜牒 ) 에 딸려 전하므로, 그 틀리고 안 틀림을 가리게 되는 것이다. 이제 먼저 태조왕 의 세계를 말하기로 한다.
번역
왕조의 계보에 옳고 그름이 있는지 여부는 사학가가 알려고 할 것이 아니나, 고대사는 세대의 사실이 매번 왕조의 보첩에 딸려 전해지므로, 그것이 옳고 그름을 가리게 되는 것이다. 이제 먼저 태조왕의 세계를 말하기로 한다.
제5편문단 42번역 대기
원문
전사 ( 前史 ) 에 태조왕을 유류왕 ( 儒留王 ) 의 아들, 고추가 ( 古鄒加 ) 재사 ( 再思 ) 의 아들, 대주류왕의 조카라 했으나, 유류왕은 이미 말한 바 와 같이 연대가 줄어진 동안에 든 제왕이고, 광개토경호태왕 ( 廣開土 境好太王 ) 의 16 대조이니, 모본왕 (募本王 ) 에게는 3 대조가 될 것이요, 태조왕에게는 4 대조가 될 것이다. 그러니 유류왕을 태조왕의 아버지인 재사의 아버지로 한것은 잘못된 기록이 아니면 속인 기록이다. 재사는 그 벼슬 이름이 고추가 ( 古鄒加 ) 요, 고추가는 곧 `고추가'를 이두자로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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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4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주'는 묵은 뿌리 〔古根〕 란 뜻이요 ( 지금 속어에도 묵은 뿌리를 `고주박'이라 함 ) `가'는 신 ( 神 ) 의 씨란 뜻으로, 당시 5 부 ( 部 ) 대신의 칭호가 된 것이니, `고주가'는 당시 종친 대신의 벼슬 이름이다 ( 지금의 속어에도 먼 동족을 `고죽지 먼 등그러기'라 함 ). 재사가 `고주가'의 벼슬을 가졌으므로 종친 대신임이 분명하고, 후한서나 삼국지에, “처음에는 연나 ( 涓那 ) 는 왕 될 권리를 잃었으나 그 적통 ( 嫡統 ) 대인 ( 大人 ) 이 오히려 고추가라 일컬어 종묘 ( 宗廟 ) 를 세움을 얻었다.
번역
'고주'는 오래된 뿌리라는 뜻이고, '가'는 신의 씨라는 뜻으로, 당시 오 부(部) 대신의 칭호가 되었으니, '고주가'는 당시 종친 대신의 벼슬 이름이다 (지금 속어에도 먼 동족을 '고죽지 먼 등그러기'라 함). 재사가 '고주가'의 벼슬을 가졌으므로 종친 대신임이 분명하며, 후한서나 삼국지에 "처음에는 연나는 왕이 될 권리를 잃었으나 그 적통 대인이 오히려 고추가라 일컬어 종묘를 세우는 것을 얻었다."
제5편문단 4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 하였으나 연나는 서부 ( 西部 ) 의 이름이고, 계나 ( 桂那 ) 는 중부 ( 中部 ) 의 이름이니, 고구려의 정치체제에 중부가 주가 되고 4 부가 이에 복속하였으므로, 어느 임금 때에도 중부를 두어두고 서부인 연나 에서 왕이 나왔을 리가 없으니, 이는 태조왕이 연나의 우두머리인 고추가 재사의 아들로서, 왕이 되고 모본왕의 태자가 계나를 차지하였던 `신한'의 아들로서 물러나 연나의 고추가가 되었음을 가리킨 것일 것이다. 본기에는 태조왕 이후에 다시 대주류왕의 후예로서 들어가 왕위를 이은 이가 없고, 광개토경호태왕의 비에 대주류왕이 그 직조 ( 直祖 ) 로 씌어 있으니, 태조왕의 아버지인 재사가 대주류왕의 조카가 아니라 3 세손이 될 것이다.
번역
고 하였으나 연나는 서부의 이름이고, 계나는 중부의 이름이니, 고구려의 정치체제에 중부가 중심이 되고 사부가 이에 복속하였으므로, 어느 임금 때에도 중부를 두고 서부인 연나에서 왕이 나왔을 리가 없으니, 이는 태조왕이 연나의 우두머리인 고추가 재사의 아들로서 왕이 되고 모본왕의 태자가 계나를 차지했던 신한의 아들로서 물러나 연나의 고추가가 되었음을 가리킨 것일 것이다. 본기에는 태조왕 이후에 다시 대주류왕의 후예로서 들어가 왕위를 이은 이가 없고, 광개토경호태왕의 비에 대주류왕이 그 직조로 쓰여 있으니, 태조왕의 아버지인 재사가 대주류왕의 조카가 아니라 삼 세손일 것이다.
제5편문단 45번역 대기
원문
이제 또 차대왕 ( 次大王 ) 의 세계 ( 世系 ) 를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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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4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전사 ( 前史 ) 에 차대왕은 재사의 아들이요, 태조왕과 한 어머니 아우라 하였으나 태조왕 당시에 차대왕은 왕자라 일컬었으니, 차대왕이 태조왕의 아우라면 어찌 왕제 ( 王弟 ) 라 아니하였는가? 현재의 왕의 아들은 아니지마는 전왕의 아들이므로 또한 왕자라 일컬었다면 재사가 왕의 아버지요 왕이 아니니, 왕부 ( 王父 ) 의 아들도 왕자라 일컬은 예가 있는가? 태조왕이 즉위할 때에 나이 겨우 7 살이요, 생모되는 태후가 섭정하였으니, 이때에 재사가 생존해 있었을지라도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이 여자나 어린아이만도 못할 만큼 노쇠하여 7 살된 아들에게 왕위를 내 주고, 아내가 섭정함에 이른 것인데, 그 뒤에 어찌 다시 굳세어져서 차대왕과 신대왕 ( 新大王 ) 과 인고 ( 仁固 ) 의 3 형제를 낳음에 이르렀으랴? 재사가 정치상에는 싫증이 났으나, 아들을 낳을 만한 생식력은 강하였다 하더라도 차대왕은 즉위할 때에 나이가 76 살이었으니 , 태조 왕이 19 년이 그가 난 해요, 신대왕은 즉위할 때에 나이가 77 살이었으니, 태조왕 37 년이 그가 난 해다.
번역
전사에 차대왕은 재사의 아들이요, 태조왕과 한 어머니의 아우라 하였으나 태조왕 당시에 차대왕은 왕자라 일컬었으니, 차대왕이 태조왕의 아우라면 어찌 왕제라 아니하였는가? 현재의 왕의 아들은 아니지만 전왕의 아들이므로 또한 왕자라 일컬었다면 재사가 왕의 아버지요 왕이 아니니, 왕부의 아들도 왕자라 일컬은 예가 있는가? 태조왕이 즉위할 때에 나이가 겨우 7 살이고, 생모가 태후가 섭정하였으니, 이때에 재사가 생존해 있었을지라도 모든 일을 감당하는 것이 여자나 어린아이만도 못할 만큼 노쇠하여 7 살 된 아들에게 왕위를 내주고, 아내가 섭정함에 이른 것인데, 그 뒤에 어찌 다시 굳세어져서 차대왕과 신대왕과 인고의 세 형제를 낳음에 이르렀으랴? 재사가 정치상에는 싫증이 났으나, 아들을 낳을 만한 생식력은 강하였다 하더라도 차대왕은 즉위할 때에 나이가 76 살이었으니, 태조왕이 19년이 그가 난 해요, 신대왕은 즉위할 때에 나이가 77 살이었으니, 태조왕 37년이 그가 난 해다.
제5편문단 4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태조왕 원년에 많이 늙은 재사가 19 년만에 또 차대왕을 낳고 그 뒤 또 20 년만에 신대왕을 낳았다, 함이 어찌 사리에 맞는 말이랴? 대개 차대왕 · 신대왕과 인고 세 사람은 태조 왕의 서자이고, 차대왕에게 죽은 막근 ( 莫勤 ) 과 막덕 ( 莫德 ) 두 사람은 태조왕의 적자이므로, 신대왕과 인고가 비록 차대왕 ( 왕자시대의 ) 의 전천 ( 專擅 ) 을 미워하였으나, 초록 ( 草綠 ) 은 동색 ( 同色 ) 이라, 그 반역의 음모를 고발하지 않은 것이고, 차대왕도 그 즉위한 뒤에 막근 형제는 살해하였으나, 신대왕과 인고는 그대로 둔 것이니, 후한서에 차대왕을 태조왕의 아들로 기록한 것이 실록 ( 實錄 ) 이요, 본기에 차대왕을 태조왕의 아우라고 한 것은 잘못된 기록이거나 혹은 거짓 기록이다.
번역
태조왕 원년에 나이가 많은 재사가 19년 만에 또 차대왕을 낳고 그 뒤 또 20년 만에 신대왕을 낳았으니, 이것이 어찌 사리에 맞는 말이겠는가? 대개 차대왕과 신대왕 그리고 인고 세 사람은 태조왕의 서자이고, 차대왕에게 죽은 막근과 막덕 두 사람은 태조왕의 적자이므로, 신대왕과 인고가 비록 차대왕(왕자 시대의)의 전횡을 미워하였으나, 초록은 동색이라 그 반역의 음모를 고발하지 않은 것이고, 차대왕도 그 즉위한 뒤에 막근 형제는 살해하였으나, 신대왕과 인고는 그대로 두었으니, 후한서에 차대왕을 태조왕의 아들로 기록한 것이 실록이고, 본기에 차대왕을 태조왕의 아우라고 한 것은 잘못된 기록이거나 혹은 거짓 기록이다.
제5편문단 48번역 대기
원문
본기 ( 本紀 ) 에 태조왕의 소자 ( 小字 ) 를 어수 ( 於漱 ) 라 하고 이름을 궁 ( 宮 ) 이라 하였으나, 어수는 이두문으로 `마스'라 읽을 것이고, 궁 ( 宮 ) 이라는 뜻이다. 전자나 후자가 둘 다 태조왕의 이름이니, 어수는 소자이고, 궁은 이름이라고 나눌 것이 아니다. 차대왕의 이름은 수성 ( 遂成 ) 이니 수성으로 읽을 것인데, 더러운 그릇을 깨끗하게 하는 `짚몽둥이 '를 가리키는 말이요, 태조왕을 전사 ( 前史 ) 에는 시호라고 하였으나 고구려는 처음부터 시호법을 쓰지 아니하고 생사에 그 공적을 찬양하여, `태조 ( 太祖 ) ' 혹은 `국조 ( 國祖 ) '라고 하는 존호 ( 尊號 ) 를 올렸으며, 차대왕은 그 공적이 태조왕 다음 간다는 뜻으로 올린 존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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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4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2. 태조(太祖)대왕과 차대왕(次大王) 시대의 "선배" 제도
번역
태조 대왕과 차대왕 시대의 '선배' 제도
제5편문단 5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구려의 강성은 선배 제도의 창설로 비롯된 것인데, 그 창설한 연대는 전사에 전해지지 아니하였으나, 조의 ( 조衣 : 다음에 자세히 설 함 ) 의 이름이 태조왕 본기에 처음으로 보였으니, 그 창설이 태조 · 차대 두 대왕 때가 됨이 옳다.
번역
고구려의 강성은 선배 제도의 창설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창설 연대는 전사에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조의라는 이름이 태조왕 본기에 처음으로 보였으니, 그 창설은 태조와 차대 두 대왕 때가 옳다.
제5편문단 51번역 대기
원문
`선배'는 이두자로 `선인 ( 先人 )', `선인 ( 仙人 )'이라 쓴 것으로써 , `선 ( 先 )'과 `선 ( 仙 )'은 `선배'의 `선'의 음을 취한 것이고, 인 ( 人 ) 은 `선배'의 `배'의 뜻을 취한 것이니, `선배' 는 원래 `신수두' 교도의 보통 명칭이었는데, 태조왕 때에 와서 해 마다 3 월과 10 월 신수두 대제 ( 大祭 ) 에 모든 사람을 모아 혹은 칼로 춤을 추고, 혹은 활도 쏘며, 혹은 깨끔질도 하고, 혹은 태껸도 하며, 혹은 강의 얼음을 깨고 물 속에 들어가 물싸움도 하고, 혹은 노래하고 춤을 추어 그 잘하고 못함을 보며, 혹은 크게 사냥을 하여 그 잡은 짐승의 많고 적음도 보아서, 여러 가지 내기에 승리한 사람을 `선배'라 일컫고, `선배'가 된 이상에는 나라에서 봉급을 주어서 그 처자를 먹여 집안에 누가 없게 하고, `선배'가 된 사람은 각기 편대를 나누어 한 집에서 자고 먹으며, 앉으면 고사 ( 故事 ) 를 강론하거나 학예를 익히고, 나아가면 산수를 탐험하거나, 성곽을 쌓거나, 길을 닦거나, 군중을 위해 강습을 하거나 하여, 일신을 사회와 국가에 바쳐 모든 곤란과 괴로움을 사양치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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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5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 가운데서 선행과 학문과 기술이 가장 뛰어난 자를 뽑아서 스승으로 섬긴다. 일반 선배들은 머리를 깎고 조백 ( 조帛 ) 을 허리에 두르고, 그 스승은 조백으로 옷을 지어 입으며, 스승 중의 제일 우두머리는 `신크마리'`---두대형 ( 頭大兄 )' 혹은 `태대형 ( 太大兄 )'이라 일컫고, 그 다음은 `마리'---`대형 ( 大兄 )'이라 일컨고, 맨 아래는소형 ( 小兄 : 본래의 말은상고할수없음 ) 이라 일컬었다.
번역
그 가운데서 선행과 학문과 기술이 가장 뛰어난 자를 뽑아 스승으로 모셨다. 일반 선배들은 머리를 깎고 조백을 허리에 두르고, 그 스승은 조백으로 옷을 지어 입었으며, 스승 중의 제일 우두머리는 '신크마리'라 하고, 다음은 '마리'라 하며, 맨 아래는 소형이라 불렀다.
제5편문단 5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전쟁이 일어나면 `신크마리'가 모든 `선배'를 모아 스스로 한단체를 조직하여 싸움터에 나아가서, 싸움에 이기지 못하면 싸우다가 죽기를 작정하여, 죽어서 돌아오는 사람은 인민들이 이를 개선하는 사람과 같이 영광스러운 일로 보고, 패하여 물러나오면 이를 업신여기므로, `선배'들이 전장에서 가장 용감하였다. 당시 고구려의 여러 가지 지위는 거의 골품 ( 骨品 : 명문 ) 으로 얻어 미천한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하였지마는, 오직 `선배'의 단체는 귀천이 없이 학문과 기술로 자기의 지위를 획득하므로, 이 가운데서 인물이 가장 많이 나왔다.
번역
전쟁이 일어나면 선배들이 모든 선배들을 모아 스스로 한 단체를 조직하여 싸움터에 나아가고,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싸우다가 죽을 각오를 하니, 죽어서 돌아오는 사람은 인민들이 이를 개선하는 사람처럼 영광스러운 일로 여기고, 패하여 물러나오면 업신여겼으므로, 선배들이 전장에서 가장 용감하였다. 당시 고구려의 여러 지위는 거의 골품으로 얻어 미천한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하였으나, 오직 선배들의 단체는 귀천에 상관없이 학문과 기술로 자신의 지위를 획득했기에, 이 가운데서 인물이 가장 많이 나왔다.
제5편문단 54번역 대기
원문
지금 함경북도의 재가화상 ( 在家和尙 ) 이라는 것이 곧 고구려 `선배' 의 유종 ( 遺種 ) 이니, 고려도경 ( 高麗圖經 ) 에, “재가화상 ( 在家和尙 ) 은 화상 ( 和尙 : 중 ) 이 아니 라 형 ( 刑 ) 을 받고 난 사람으로, 중과 같이 머리를 깎았으므로, 화상이라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실제와 맞는 말이다. 그러나 형벌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 것은 서긍 ( 徐兢 : 고려도경의 저작자, 지나 宋人 ) 이 다만 지나 한대 ( 漢代 ) 의 죄인을 머리를 깎고, 노 ( 奴 ) 라 일컬은 글로 인하여 드디어 재가화상을 형벌받은 사람이라 억지의 판단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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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5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대개 고구려가 망한 뒤에 `선배'의 남은 무리들이 오히려 구 유풍 ( 遺風 ) 을 유지하여, 마을에 숨어서 그 의무를 수행하여왔는데, `선배'란 명칭은 유교도에게 빼앗기고, 그 머리를 깎은 까닭으로 하여 재가화상이란 가짜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이고, 후손이 가난해서 학문을 배우지 못하여 조상의 옛 일을 갈수록 잊어 자기네의 내력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 것이다.
번역
대개 고구려가 망한 뒤에 '선배'의 남은 무리들이 오히려 옛 풍습을 유지하며 마을에 숨어 그 의무를 수행해 왔는데, '선배'라는 명칭은 유교도에게 빼앗기고 머리를 깎은 까닭으로 하여 재가화상이라는 가짜 명칭을 가지게 된 것이며, 후손이 가난하여 학문을 배우지 못하여 조상의 옛 일을 갈수록 잊고 자기네의 내력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한 것이다.
제5편문단 5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송도 ( 松都 : 開城 ) 의 수박 ( 手拍 ) 이 곧 `선배' 경기의 하나이니, `수박'이 지나에 들어가서 권법 ( 拳法 ) 이 되고, 일본에 건너가서 유도 ( 柔道 ) 가 되고, 조선에서는 이조에서 무풍 ( 武風 ) 을 천히 여긴 이래로 그 자취가 거의 전멸하였다.
번역
송도의 수박은 곧 '선배' 경기의 하나이니, '수박'이 지나에 들어가서 권법이 되고, 일본에 건너가서 유도가 되었으며, 조선에서는 이조에서 무풍을 천시한 이래로 그 자취가 거의 전멸하였다.
제5편문단 57번역 대기
원문
3. 태조대왕(太祖大王)과 차대왕(次大王) 시대의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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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5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구려가 추모왕 때에는 모든 작은 나라들이 늘어서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규모가 초창이라 나라의 체제를 채 갖추지 못하였는데, 태조 왕 때에 와서 차대왕이 왕자로서 집정하여 각종 제도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 제도가 대개 왕검조선 ( 王儉朝鮮 ) 이나 삼부여 ( 三扶餘 ) 의 것을 참작하여 대동소이하게 만든 것이고, 그 뒤 대 ( 代 ) 마다 다소 변경 이 있었으나, 대개 차대왕이 마련한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다. `신 · 말 · 불' 삼한 ( 三韓 ) 의 제도를 모방하여 정부에 재상 세 사람을 두었으니, 가로되 `신가' · `팔치' · `발치'다 .
번역
고구려가 추모왕 때에는 작은 나라들이 늘어서 있을 뿐 아니라, 모든 규모가 초창이라 나라의 체제를 갖추지 못했는데, 태조 왕 때에 와서 차대왕이 왕자로서 집정하여 각종 제도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그 제도가 대개 왕검조선이나 삼부여의 것을 참작하여 비슷하게 만든 것이고, 그 뒤 대마다 다소 변경이 있었으나, 대개 차대왕이 마련한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신', '말', '불' 삼한의 제도를 모방하여 정부에 재상 세 사람을 두었는데, 이를 '신가', '팔치', '발치'라 하였다.
제5편문단 5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신가'는 태대신 ( 太大臣 ) 이란 뜻이니, 이두자로 `상가 ( 相加 )'라 쓰고 , `신가'의 별명이 `마리'로 머리〔頭〕란 뜻이니, 이두자로 대로 ( 對盧 ) ( 대는 옛 뜻으로 마주 ) 라 쓰고, `신가'나 `마리'를 한문으로는 국상 ( 國相 ) 혹은 대보 ( 大輔 ) 라 썼다. 팔치는 `팔꿈치 ( 肱 )'란 뜻이니, 이두자로 `평자 ( 評者 )'라 쓰는데, 한문으로는 `좌보 ( 左輔 ) · 우보 ( 右輔 )'라 썼다. 위의 세 가지를 만일 한문으로 직역하자면 `두신 ( 頭臣)' · `굉신 ( 肱臣 )' · `고신 ( 股臣 )'이라 할 것이지마는, 글자가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대보·좌보·우보'라 했다.
번역
'신가'는 태대신이라는 뜻이므로 이두자로 '상가'라고 쓰고, '신가'의 별명이 머리라는 뜻인 '마리'이므로 이두자로 대로(對盧)를 쓰고, '신가'나 '마리'를 한문으로는 국상 혹은 대보라 썼다. 팔꿈치라는 뜻이니 이두자로 평자(評者)라고 쓰는데, 한문으로는 좌보·우보라 썼다. 위의 세 가지를 만일 한문으로 직역하자면 두신·굉신·고신이라 할 것이나, 글자가 아름답게 보이도록 대보·좌보·우보라 했다.
제5편문단 60번역 대기
원문
삼한고기 ( 三韓古記 ), 해동고기 ( 海東古記 ), 고구려고기 ( 高句麗古記 ) 등의 책에 혹 앞의 것을 좋아 `대로 ( 對盧 ) · 패자 ( 沛者 ) · 평자 ( 評者 )'로 기록하고, 혹은 뒤의 것을 쫓아 `대보 · 좌보 · 우보'라 하였는데, 김부식 ( 金富軾 ) 이 삼국사기를 지을 때에, 이두와 한역 ( 漢譯 ) 의 이동 ( 異同 ) 을 구별하지 못하고 철없는 붓으로 마구 빼고 마구 넣고 마구 섞고 마구 갈라놓았으므로, “좌우보 ( 左右輔 ) 를 고쳐 국상 ( 國相 ) 을 만들었다.” “패자 ( 沛者 ) 아무로 좌보를 삼았다.” 하는 따위의 웃음거리가 그 사기 가운데 가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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