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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高句麗BC 37 – AD 668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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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5편 고구려 전성 朝鮮上古史 第5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138개 · 번역 확정 0개
제5편문단 6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전국을 동·서 ·남·북·중 5 부 ( 部 ) 로 나누어 동부는 `순라', 남부 는 `불라', 서부는 `열라', 북부는 `줄라', 중부는 `가우라'라 하니, 순나`順那' · 관나 ( 灌那 ) · 연나 ( 椽那 ) · 절나 ( 絶那 ) · 계안나 ( 桂安那 ) 는 곧 `순라·불라·열라·줄라·가우라'의 이두자인데, 관나의 `관 ( 灌 )'은 뜻을 취하여 `불 ( 灌은 본래 부을관 )'로 읽을 것이고, 그 별명인 `비류나 ( 沸流那) '의 비류 ( 沸流 ) 는 음을 취하여 `불'로 읽을 것이 니, 지나사의 `관나 ( 灌那 )'는 곧 고구려의 이두자를 직접 수입한 것인데, 삼국사기에는 관 ( 灌 ) 을 관 ( 貫 ) 으로 고쳐 그 뜻을 잃었다.
번역
전국을 동·서·남·북·중 다섯 부로 나누어 동부는 순라, 남부는 불라, 서부는 열라, 북부는 줄라, 중부는 가우라라 하니, 순나, 관나, 연나, 절나, 계안나는 곧 순라·불라·열라·줄라·가우라의 이두자인데, 관나의 '관'은 뜻을 취하여 '불'(본래 부을 관)로 읽을 것이고, 그 별명인 비류나는 '비류'는 음을 취하여 '불'로 읽을 것이니, 지나사의 '관나'는 곧 고구려의 이두자를 직접 수입한 것인데, 삼국사기에는 '관'을 '관'으로 고쳐 그 뜻을 잃었다.
제5편문단 62번역 대기
원문
그 밖의 순 ( 順 ) · 연 (涓 ) · 절 ( 絶 ) · 계 ( 桂 ) 의 네나 ( 那 ) 는 다음으로 쓴 것이니, 중부 ( 中部 ) 는 곧 `신가'의 관할이요, 동 · 남 · 서 · 북 네 부는 중부에 딸려 각각 `라살'이란 이름의 높은 관리를 두었는데, 이것을 이두자로 `누살'이라 쓰고, 한문으로 `도사 ( 道使 )'라 썼다. 도사는 `라살' 곧 누살 ( 누薩 ) 이니 도사의 도 ( 道 ) 는 `라'의 의역이요, 사 ( 使 ) 는 음역인데, 신당서에, “큰 성에는 누살을 두니 당 ( 唐 ) 의 도독 ( 都督 ) 과 같고, 그 밖의 성에는 도사를 두니 당의 자사 ( 刺史 ) 와 같다.”고 하였음은 억지의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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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63번역 대기
원문
`신가'는 정권뿐 아니라 내외 병마 ( 兵馬 ) 를 관장하여, 권위가 대단해서 대왕과 견줄 만하나, 대왕은 세습으로 흔들리지 않는 높은 자리에 있고, `신가'는 3 년마다 대왕과 4 부의 `라살'과 그 밖의 중요한 관원들이 대회의를 열고 적당한 이를 골라 맡겼고, 공적이 있는 사람은 중임을 허락하였다. `라살'은 대개 세습이지만, 왕왕 왕과 `신가'의 명령으로 파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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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6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5 부는 다시 각각 5 부로 나누고 부 마다 또 3 상 ( 相 ) · 5 경 ( 卿 ) 을 내고, 벼슬 이름〔官名〕 위에 부의 이름을 더하여 구별하니, 이를테면 동부에 속한 `순라'는 `순라의 순라'이고, `불라'는 `순라의 불라'이며, 그 밖의 것도 이와 같으며, 동부의 `신가'는 `순라의 신가'라 일컫고, 남부의 `신가'는 `불라의 신가'라 일컫고, 그 밖의 것도 이와 같았다.
번역
다섯 부는 다시 각각 다섯 부로 나누고 부마다 또 세 상과 다섯 경을 내렸으며, 벼슬 이름 위에 부의 이름을 더하여 구별하니, 이를테면 동부에 속한 '순라'는 '순라의 순라'이고, '불라'는 '순라의 불라'이며, 그 밖의 것도 이와 같았고, 동부의 '신가'는 '순라의 신가'라 일컫고, 남부의 '신가'는 '불라의 신가'라 일컫고, 그 밖의 것도 이와 같았다.
제5편문단 6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 밖에 `일치'라는 것은 도부 ( 圖簿 ) 와 사령 ( 辭令 ) 을 맡아보는데, 이두자로 `을지 ( 乙支 )' 혹은`우태 ( 優台 )'라 쓰고, 한문으로 주부 ( 主簿 ) 라 쓰며, `살치'란 것은 대왕의 시종이니 이두자로 사자 ( 使者 ) 라 쓰고, 그 밖의 중외대부 ( 中畏大夫 ) · 과절 ( 過節 ) · 불과절 ( 不過節) 등은 그 음과 뜻과 맡은 직무를 알 수 없다.
번역
이 밖에 '일치'라는 것은 도부와 사령을 맡았는데, 이두자로 '을지' 혹은 '우태'라 쓰고 한문으로는 주부라고 쓰며, '살치'란 것은 대왕의 시종이니 이두자로 사자라 썼고, 그 밖의 중외대부·과절·불과절 등은 그 음과 뜻 및 맡은 직무를 알 수 없다.
제5편문단 66번역 대기
원문
삼국지, 후위서 ( 逅魏書 ), 양서 ( 梁書 ), 후주서 ( 後周書 ), 당서 ( 唐書 ) 등에 12 급 ( 級 ) 의 벼슬 이름을 실었으나, 조선어를 모르는 지나의 역사가들이 그 전해들은 것을 번역한 것이므로, 삼국지에 주부 이외에 또 우태를 실은 것은 주부가 곧 우태의 의역임을 모른 때문이고, 신당서에 누사 ( 騙奢 ) 이외에 또 누살 ( 누薩 ) 을 실은 것은 누사가 곧 누살의 와전임을 모른 때문이다. 통전( 通典 ) 에 고추가 ( 古鄒加 ) 를 빈객 ( 賓客 ) 맡은 자라고 한 것은 다시 고구려의 종친대관 ( 宗親大官 ) 인 고추가가 외교관 된 것을 보고 마침내 고추가를 외교관 벼슬로 잘못 안 것이요, 구당서 ( 舊唐書 ) 에, “조의두 대형 ( 조衣頭大兄 ) 이 3 년만큼씩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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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6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라고 하였음은 `선배'의 수석을 대신의 수석으로 잘못 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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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의 수석을 ‘대신’의 수석으로 잘못 안 것이었다.
제5편문단 6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제 3 장 태조(太祖) · 차(次) 양 대왕의 한족(漢族) 축출과 옛 강토 회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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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태조 다음으로 양대왕이 한족을 몰아내고 옛 땅을 되찾다
제5편문단 69번역 대기
원문
1.한(漢)의 국력과 동침(東侵)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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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7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모본왕 ( 幕本王 ) 이 한때 요동을 회복하였음은 이미 제 1 장에서 말하였거니와, 모본왕이 살해된 뒤에 태조왕이 7 살에 즉위하여 국내의 인심이 의아해 하므로 요서에 10 성을 쌓았으나, 이때에 한 ( 漢 ) 의 부강이 절정에 이르러 지나 유사 이래의 일이라 할 수 있게 되었다.
번역
모본왕이 한때 요동을 회복한 것은 이미 제 1장에서 말하였거니와, 모본왕이 살해된 뒤에 태조왕이 7살에 즉위하여 국내의 인심이 의아해하므로 요서에 10성을 쌓았으나, 이때에 한나라의 부강이 절정에 이르러 지나 유사 이래의 일이라 할 수 있게 되었다.
제5편문단 7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맹장 반초 ( 班超 ) 가 서역도호 ( 西域都護 ) 가 되어, 지금 서아시아의 거사 ( 車師 ) · 비선 ( 鄙善 ) 등의 나라를 토멸하고, 지중해 ( 地中海 ) 에 다다라 대진 ( 大秦 ), 지금의 이태리 ( 伊太利 : 이탈리아 ) 와 소식을 통해서 피부가 희고 몸이 큰 인종과 양피지에 쓰는 해행문자 ( 蟹行文字 : 게가 기어가 듯 옆으로 써나가는 서양글자 ) 의 이야기가 후한서에 올랐고, 두헌 ( 竇憲 ) 이 5 천여 리 원정의 군사를 일으켜, 지금 외몽고 등지에 나아가 북 흉노를 크게 격파하여 북흉노가 흑해 ( 黑海 ) 부근으로 들어가서 동 ( 東 ) 고트 족 ( 族 ) 을 압박하여, 서양사상 ( 西洋史上 ) 에 민족 대이동의 시기를 이루고 이로부터 2 백여 년의 흉노대왕 `아틸라'가 유럽 전체를 뒤흔드는 원인을 이루었다.
번역
맹장 반초가 서역도호가 되어, 지금 서아시아의 거사·비선 등의 나라를 토벌하고 지중해에 이르러 대진, 즉 이탈리아와 소식을 통해 피부가 희고 몸이 큰 인종과 양피지에 쓰는 게가 기어가 듯 옆으로 써나가는 서양문자의 이야기가 후한서에 올랐으며, 두헌이 오천여 리 원정의 군사를 일으켜 지금 외몽골 등지에 나아가 북흉노를 크게 격파하여 북흉노가 흑해 부근으로 들어가 동고트족을 압박함으로써 서양사상에 민족 대이동의 시기를 이루었고, 이로부터 이백여 년 동안 흉노대왕 아틸라가 유럽 전체를 뒤흔드는 원인을 이루었다.
제5편문단 72번역 대기
원문
한이 이만한 국력을 가진 때였으니, 어찌 요동을 고구려의 예사 땅이라 하여 영구히 내어놓으랴? 어찌 고구려나 선비에게 영구히 2 억 7 천만의 굴욕적 세폐 ( 歲幣 ) 를 바치고 말랴? 이에 세폐를 정지하고 경기 ( 耿夔 ) 를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요하를 건너 6 현을 다시 빼앗고, 경기로 요동태수를 삼아 동쪽 침략할 기회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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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7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2.왕자 수성(遂成)의 요동 회복
번역
왕자 수성이 요동을 되찾다
제5편문단 7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후한서에는 당시 한을 침략한 중심 인물을 잘못 알았으나, 실은 태조왕은 당시 고구려에 군림한 제왕일 뿐이고, 전쟁에 대하여는 거의 차대왕인 왕자 수성 ( 途成 ) 이 도맡았었다. 전쟁이 처음에는 한이 주동자가 되어, 요동을 침략하여 빼앗는 동시에 고구려를 침노하매, 고구려는 이에 반항하는 피동적 ( 被動的 ) 지위에 있었고, 그 다음에는 고구려가 주동자가 되어, 요동을 회복하는 동시에 나아가 한의 변경을 잠식하매, 한이 이에 반항하는 피동적 지위에 있었는데, 요동 회복의 전쟁은 기원후 lO5 년에 비롯하여 121 년에 마치니, 전후 17 년이었다.
번역
후한서에는 당시 한을 침략한 중심 인물을 잘못 알았으나, 실로 태조왕은 당시 고구려에 군림했던 제왕일 뿐이며, 전쟁에 관해서는 거의 차대왕인 왕자 수성(途成)이 맡았다. 전쟁이 처음에는 한이 주도자가 되어 요동을 침략하여 빼앗고 동시에 고구려를 침노했으므로, 고구려는 이에 반항하는 피동적인 지위에 있었고, 그 다음에는 고구려가 주도자가 되어 요동을 회복하는 동시에 나아가 한의 변경을 잠식했으므로, 한이 이에 반항하는 피동적 지위에 있었다. 요동 회복의 전쟁은 기원후 105년에 시작하여 121년에 끝나니, 전후 17년이었다.
제5편문단 75번역 대기
원문
이 전쟁의 초년, 기원후 105 년은 왕자 수성의 나이가 34 살이었는데, “고구려가 비록 땅의 넓이와 인구의 수는 한에 미치지 못하나, 다만 고구려는 큰 산과 깊은 골짜기의 나라이므로 웅거하여 지키기에 편리하여 적은 군사로도 한의 많은 군사를 방어하기에 넉넉하며, 한은 평원광야 ( 平原廣野 ) 의 나라이므로 침략하기가 용이하여, 고구려가 비록 한꺼번에 한을 격파하기는 어려우나 자주 틈을 타서 그 변경을 시끄럽게 하여, 피폐하게 한 뒤에 이를 격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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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7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하고 드디어 장기의 소란작전을 한에 대한 전쟁의 방략으로 정하고, 정예한 군사로 요동에 들어가 신창 ( 新昌 ) · 후성 ( 候城 ) 등 여섯 현 ( 縣 ) 을 쳐서 수비병을 격파하여 재물을 약탈하고, 그 뒤에 예와 선비를 꾀어서 해마다 한의 우북평 · 어양 · 상곡 등지를 잇달아 침략하여, 한은 17 년 동안 인축 ( 人畜 ) 과 재물의 소모가 대단하였다.
번역
마침내 장기(長紀)의 소란스러운 작전을 한나라에 대한 전쟁 전략으로 정하고, 정예한 군사로 요동에 들어가 신창과 후성 등 여섯 현을 쳐서 수비병들을 격파하여 재물을 약탈했으며, 그 뒤에 예와 선비를 꾀어 해마다 한나라의 우북평, 어양, 상곡 등의 지역을 연달아 침략하여, 한나라는 17년 동안 인축과 재물의 소모가 대단하였다.
제5편문단 7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기원후 121 년 정월에 한의 안제 ( 安帝 ) 는 고구려의 침입을 걱정하여, 유주자사 ( 幽州 刺史 ) 풍환 (馮煥 ), 현도군수 ( 玄도郡守 ) 요광 ( 姚光 ), 요 동태수 채풍 ( 蔡諷 ) 에게 명하여 유주 ( 幽州 ) 소속의 병력으로 고구려를 공격하라 하였다.
번역
기원후 121년 정월에 한나라 안제는 고구려의 침입을 걱정하여, 유주자사 풍환, 현도군수 요광, 그리고 채풍에게 명하여 유주 소속 병력으로 고구려를 공격하게 하였다.
제5편문단 78번역 대기
원문
이에 수성이 태조왕의 명령을 받아, `신치' 총사령이 되어, 2 천 명으로 험한 곳에 웅거하여, 풍환 등을 막게 하고 3 천 명으로 사잇길을 좇아 요동 · 현도의 각 고을을 불 질러서 풍환 등의 후방 응원을 끊게 하여 드디어 그들을 크게 격파하고, 같은 해 4 월에 수성이 다시 선비의 군사 8 천 명으로 요동의 요대현 ( 遙隊縣 ) 을 치는데, 고구려의 날랜 군사를 신창 ( 新昌 ) 에 잠복시켰다가 요동태수 채풍의 구원병을 습격하여, 채풍 이하 장수 1 백여 명을 베어 죽이고 수없이 많은 군사를 살상하거나 또는 사로잡아 드디어 요동군을 점령 하고, 그 해 l2 월에 또 백제와 예의 기병 1 만을 내어 현도 · 낙랑 두 군을 점령하여, 이에 위우거가 한에게 잃었던 옛 땅 ---조선의 옛 오열홀 ( 烏 列忽 ) 의 전부를 완전히 회복하니, 한이 여러 해의 전쟁에 국력이 피폐 한데다가 또 이처럼 크게 패하니, 다시 싸울 힘이 없어서 드디어 요동 을 내어주고 다시 세폐 ( 歲幣 ) 를 회복하는 조건으로 고구려에 화의를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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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편문단 7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리고 포로는 한 사람에 대해 겸 ( 겸 : 합사로 찬 명주 ) 40 필, 어린아이는 20 필로 속환 ( 贖還 ) 하였다.
번역
그리고 포로는 사람 하나당 겸(兼)으로 40필, 아이는 20필로 속환하였다.
제5편문단 8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요동 · 낙랑 등의 회복이 태조왕 본기나 후한서에 보이지 아니하였으나, 당 ( 唐 ) 의 가탐전 ( 賈耽傳 ) 에 가탐의, “요동과 낙랑이 한의 건안 ( 建安 ) 때에 함락되었다 ( 遙東樂浪 陷於漢 建安之際 ). ”고 한 말을 실었는데, 가탐은 당나라 때의 유일한 사이 ( 四夷 ) 의 고사 ( 故事 ) 연구가이니, 그 말이 반드시 출처가 있을 것이나, 다만 건안은 기원후 l96 년 한 나라 헌제 ( 獻帝 ) 의 원년이니까, 고구려가 중간에 쇠미한 때이므로, 건안은 곧 건광 ( 建光 ) 의 잘못이요, 건광은 곧 기원후 121 년 한나라 안제 ( 安帝 ) 의 연호다. 왕자 수성이 채풍을 죽이고 한의 군사를 격파한 때이니, 이때에 고구려가 요동군 안에 가설한 현도 · 낙랑 등의 군을 회복하였음이 의심없다.
번역
요동과 낙랑 등의 회복은 태조왕 본기나 후한서에는 보이지 않으나, 당의 가탐전에 가탐이 "요동과 낙랑이 한나라 건안 때 함락되었다"고 한 말을 실었는데, 가탐은 당나라 때 유일한 사이의 고사 연구가이니 그 말이 반드시 출처가 있을 것이나, 다만 건안은 기원후 196년 한나라 헌제의 원년이고, 이때는 고구려가 중간에 쇠미하던 때이므로, 건안은 곧 건광의 잘못이며, 건광은 곧 기원후 121년 한나라 안제의 연호이다. 왕자 수성이 채풍을 죽이고 한나라 군사를 격파한 때이니, 이때에 고구려가 요동군 안에 가설한 현도와 낙랑 등의 군을 회복하였음이 의심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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