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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야

新羅·加耶BC 57 – AD 935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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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12편 삼국 통일 朝鮮上古史 第12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169개 · 번역 확정 0개
제12편문단 1번역 대기
원문
== 제 1 장 부여성충(扶餘成忠)의 뛰어난 전략과 백제의 영토 개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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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부여성충(扶餘成忠)이 계책(計策)을 건의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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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성충이 계략을 건의하다
제12편문단 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부여성충은 백제의 왕족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모(智謀)가 뛰어나서 일찍이 예(濊)의 군사가 침략해오자 고향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가 산보(山堡)에 웅거하여 지키는데 늘 기묘한 계교로 많은 적을 죽이니 예의 장수가 사자를 보내 “그대들의 나라를 위하는 충절을 흠모하여 약간의 음식을 올리오.” 하고 궤 하나를 바쳤다. 사람들이 모두 궤를 열어보려고 하였으나 성충이 이를 굳이 못 하게 말리고서 불 속에다 넣게 하였다. 그 속에 든 것은 벌과 땡삐 따위였다. 이튿날 또 예의 장수가 궤 하나를 바쳤다. 모두 이것을 불에 넣으려 하니까 성충은 그것을 열어보게 하였다. 그 속에는 화약과 염초(焰硝) 따위가 들어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 적은 또 궤 하나를 보내왔는데, 성충은 그것을 톱으로 켜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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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성충은 백제의 왕족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모가 뛰어나서 일찍이 예의 군사가 침략해오자 고향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가 산보에 웅거하여 지키는데 늘 기묘한 계교로 많은 적을 죽이니 예의 장수가 사자를 보내 “그대들의 나라를 위하는 충절을 흠모하여 약간의 음식을 올리오.”라 하며 궤 하나를 바쳤다. 사람들이 모두 궤를 열어보려고 하였으나 성충이 이를 굳이 못 하게 말리고서 불 속에 넣게 하였다. 그 속에 든 것은 벌과 땡삐 따위였다. 이튿날 또 예의 장수가 궤 하나를 바쳤다. 모두 이것을 불에 넣으려 하니 성충은 그것을 열어보게 하였다. 그 속에는 화약과 염초 따위가 들어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 적은 또 궤 하나를 보내왔는데, 성충은 그것을 톱으로 켜게 하였다.
제12편문단 4번역 대기
원문
그러니까 피가 흘러나왔다. 칼을 품은 용사가 허리가 끊어져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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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때는 기원후 645년 무왕(武王)은 죽고 의자왕(義慈王)이 즉위해 있었는데 의자왕은 그 말을 듣고 성충을 불러 물었다. “내가 덕이 없어 대위(大位)를 이어 감당치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는 중이오. 신라가 백제와 풀 수 없는 큰 원수가 되어 백제가 신라를 멸망시키지 못하면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킬 것이니 이는 더욱 내가 염려하는 바요, 옛날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범려(范려)를 얻어 10년을 생취(生聚)하고 10년을 교육하여 오(吳)를 멸망시켰으니 그대가 범려가 되어 나를 도와 구천이 되게 해주지 않겠소?” 성충이 대답하였다.
번역
이때는 기원후 645년 무왕은 죽고 의자왕이 즉위해 있었는데, 의자왕은 그 말을 듣고 성충을 불러 물었다. "내가 덕이 없어 대위를 이어 감당치 못할까 두려워하고 있는 중이오. 신라가 백제와 풀 수 없는 큰 원수가 되어 백제가 신라를 멸망시키지 못하면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킬 것이니 이는 더욱 내가 염려하는 바요, 옛날 월왕 구천이 범려를 얻어 10년을 생취하고 10년을 교육하여 오를 멸망시켰으니 그대가 범려가 되어 나를 도와 구천이 되게 해주지 않겠소?" 성충이 대답하였다.
제12편문단 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구천은 오왕 부차(夫差)가 교만하여 월에 대한 근심을 잊었으므로 23년 동안 생취 교육하여 오를 멸망시켰지마는 이제 우리 나라는 북으로 고구려, 남으로 신라의 침략이 쉬는 날이 없어서 전쟁의 승패가 순간에 달려 있고 국가의 흥망이 아침저녁에 달려 있으니 어찌 한가롭게 20년 생취 교육할 여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고구려는 서부대인(西部大人) 연개소문이 바야흐로 불측한 뜻을 품고 있어 오래지 않아서 내란이 있을 것이라, 한참 동안 외국에 대한 일을 경영하지 못할 것이니 아직은 우리나라가 근심할 바가 아니지마는, 신라는 본래 조그만 나라로서 진흥왕(眞興王) 이래로 문득 강한 나라가 되어 우리나라와 원한을 맺어 근자에 와서는 더욱 심하여 내성사신(內省私臣) 용춘(龍春)이 선대왕(백제의 武王)과 혈전을 벌이다가 죽고, 그의 아들 춘추(春秋 : 다음 장 참고)가 항상 우리 나라의 틈을 엿보았으나 다만 선대왕의 영무(英武)하심이 두려워서 얼른 움직이지 못하였는데, 이제 선대왕께서 돌아가셨으니 저네가 반드시 대왕을 전쟁에 익숙하지 못한 소년으로 업신여기고, 또한 우리 나라의 상사(喪事 : 武王의 죽음) 있음을 기회하여 오래지 않아서 침략해올 것이므로 이에 반격의 대책을 연구함이 옳을까 합니다.
번역
구천은 오왕 부차가 교만하여 월에 대한 근심을 잊었으므로 23년 동안 생취 교육하여 오를 멸망시켰으나, 이제 우리 나라는 북으로 고구려, 남으로 신라의 침략이 쉬는 날이 없어 전쟁의 승패가 순간에 달려 있고 국가의 흥망이 아침저녁에 달려 있으니 어찌 한가롭게 20년 생취 교육할 여가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고구려는 서부대인 연개소문이 바야흐로 불측한 뜻을 품고 있어 오래지 않아 내란이 있을 것이라, 한동안 외국에 대한 일을 경영하지 못할 것이니 아직은 우리나라가 근심할 바가 아니지만, 신라는 본래 작은 나라로서 진흥왕 이래로 문득 강한 나라가 되어 우리나라와 원한을 맺어 근자에 와서는 더욱 심하여 내성사신 용춘이 선대왕과 혈전을 벌이다 죽고, 그의 아들 춘추가 항상 우리 나라의 틈을 엿보았으나 다만 선대왕의 영무하심이 두려워 얼른 움직이지 못하였는데, 이제 선대왕께서 돌아가셨으니 저들이 반드시 대왕을 전쟁에 익숙하지 못한 소년으로 업신여기고, 또한 우리 나라의 상사 있음을 기회로 삼아 오래지 않아 침략해 올 것이므로 이에 반격의 대책을 연구함이 옳다고 사료됩니다.
제12편문단 7번역 대기
원문
” 왕이 물었다. “신라가 우리 나라를 침범하면 어디로 해서 오겠소?”“선대왕께서 성열성(省熱城 : 지금의 淸風) 서쪽 가잠성(椵岑城 : 지금의 槐山) 동쪽을 차지하시니 신라가 이를 원통해한 지 오래이므로 반드시 가잠성을 공격해올 것입니다·” 하고 성충이 대답하였다. “그러면 가잠성의 수비를 증강시켜야 하지 않겠소? ” 하고 왕이 다시 물으니 성충은 “가잠성주 계백(階伯)은 지혜와 용기를 겸비하여 비록 신라가 전국의 군사로 포위 공격한다 하더라도 쉽사리 깨뜨리지 못할 것이라 염려할 것이 없고, 갑자기 나가서 적의 허를 찌르는 것이 병가의 상책이니 신라의 정병이 가잠성을 공격해 오거든 우리는 가잠성을 구원한다 일컫고 군사를 내어 다른 곳을 공격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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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왕이 다시 “그러면 어느 곳을 치는 것이 좋겠소?” 하고 물었다. 성충이 대답하였다· “신이 들으니 대야주(大耶州 : 지금의 陜川) 도독(都督) 김품석(金品釋)이 김춘추의 사랑하는 딸 소랑(炤娘)의 남편이 되어 권세를 믿고 부하와 군사와 백성을 학대하고 음탕과 사치를 일삼아서 원한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인데, 이제 우리 나라에 국상(國喪) 있다는 말을 들으면 수비가 더욱 소홀해질 것이고, 또 신라의 정병이 가잠성을 포위 공격하는 때이면 대야성이 위급해지더라도 갑자기 이를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군사가 대야성을 함락시키고 그 이긴 여세를 몰아 공격하면 신라 전국이 크게 소란해질 것이니 이를 쳐 멸망시키기는 아주 쉬울 것입니다.” 왕은 “그대의 지략은 고금에 짝이 드물겠소.
번역
왕이 다시 "그러면 어느 곳을 치는 것이 좋겠소?" 하고 물었다. 성충이 대답하였다. "신이 듣기로 대야주(지금의 임천) 도독 김품석이 김춘추가 사랑하는 딸 소랑의 남편이 되어 권세를 믿고 부하와 군사와 백성을 학대하고 음탕과 사치를 일삼아 원한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인데, 이제 우리 나라에 국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수비가 더욱 소홀해질 것이고, 또 신라의 정병이 가잠성을 포위 공격하는 때이면 대야성이 위급해지더라도 갑자기 이를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군사가 대야성을 함락시키고 그 이긴 여세를 몰아 공격하면 신라 전국이 크게 소란해질 것이니 이를 쳐 멸망시키기는 아주 쉬울 것입니다." 왕은 "그대의 지략은 고금에 짝이 드물겠소.
제12편문단 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하고 성충을 상좌평(上佑平)에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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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성충을 상우평에 임명하였다.
제12편문단 10번역 대기
원문
=== 대야성(大耶城)의 함락과 김품석(金品釋)의 참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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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1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듬해 3월에 신라가 과연 장군 김유신으로 하여금 정병 3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가잠성을 치게 하니 계백이 성을 의지하여 임기응변으로 응전하여 여러 달 동안에 신라 군사가 많이 죽고 다쳤다. 7월에 의자왕이 정병 수만 명을 뽑아 가잠성을 구원한다 일컫고 북으로 향해 나아가다가 갑자기 군사를 돌이켜 대야주로 향하여 미후성(獼猴城)을 포위 함락시켰다. 대야주는 신라 서쪽의 요긴한 진(鎭)이요, 관할하는 성과 고을이 40여 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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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해 3월에 신라가 장군 김유신으로 하여금 정병 삼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가잠성을 치게 하니 계백이 성을 의지하여 임기응변으로 응전하여 여러 달 동안 신라 군사가 많이 죽고 다쳤다. 7월에 의자왕이 정병 수만 명을 뽑아 가잠성을 구원한다 일컫고 북으로 나아가다가 갑자기 군사를 돌이켜 대야주로 향하여 미후성을 포위 함락시켰다. 대야주는 신라 서쪽의 요긴한 진이었으며, 관할하는 성과 고을이 사십여 리가 되었다.
제12편문단 1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김춘추는 공주 소랑을 사랑하여 대야주의 속현(屬縣)인 고타(古陀 : 지금의 居昌)를 그의 식읍(食邑)으로 주어 고타소랑(古陀炤娘)이라 일컫고, 소랑의 남편 김품석으로 대야주 도독을 삼아서 그 40여 성과 고을을 관할하게 하였는데 품석이 음란하고 난폭하여 군사와 백성을 구휼하지 아니하고, 재물과 여색을 탐내어 가끔 부하의 아내나 딸을 빼앗아 첩을 삼았다.
번역
김춘추는 공주 소랑을 사랑하여 대야주의 속현인 고타(지금의 거창)를 그의 식읍으로 주어 고타소랑이라 일컫고, 소랑의 남편 김품석에게 대야주 도독의 직책을 삼아 그 40여 성과 고을을 관할하게 하였으나, 품석이 음란하고 난폭하여 군사와 백성을 구휼하지 않았으며, 재물과 여색을 탐내어 가끔 부하의 아내나 딸을 빼앗아 첩으로 삼았다.
제12편문단 13번역 대기
원문
품석의 막장(幕將) 금일(黔日)이 그의 아름다운 아내를 품석에게 빼앗기고 통분하여 늘 보복하려고 하다가 백제가 미후성을 함락시켰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사람을 보내 내응(內應)하기를 청하였다. 의자왕이 부여윤충(扶餘允忠 : 성충의 아우)으로 하여금 정병 1만을 거느리고 나아가게 하였다. 백제의 군사가 성 아래 이르자 금일이 성 안이 술렁이고 두려워서 나가 싸울 뜻이 없었다. 품석 부부가 하는 수 없이 그 막하의 서천(西川)으로 하여금 성 위에 올라가서 윤충에게 우리 부부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해 준다면 성을 내주겠노라고 청하게 하였다. 윤충이 이 말을 듣고 좌우를 돌아보며 “저희 부부를 위해 국토와 백성을 파는 놈을 어찌 살려두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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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1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나 허락하지 않으면 성 안에 그대로 웅거하여 지켜 얼마 동안을 더 싸울지 모를 일이니 차라리 거짓 허락하고 사로잡는 것이 좋겠소.” 하고 “해를 두고 맹세하여 공의 부부가 살아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겠소.” 하고 가만히 복병을 두고 군사를 물리니 품석이 먼저 그 부하 장사들로 하여금 성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백제가 복병을 내어 습격하여 죄다 죽이고 품석 부부는 금일에게 살해당하였다. 이리하여 백제의 군사가 성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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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허락하지 않으면 성 안에 그대로 웅거하여 지켜 얼마 동안이나 더 싸울지 모를 일이니 차라리 거짓 허락하고 사로잡는 것이 좋겠소.” 하고 “해를 두고 맹세하여 공의 부부가 살아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겠소.” 하고 가만히 복병을 두어 군사를 물리니 품석이 먼저 그 부하 장사들로 하여금 성 밖으로 나가게 하였다. 백제가 복병을 내어 습격하여 죄다 죽이고 품석 부부는 금일에게 살해당하였다. 이리하여 백제의 군사가 성 안으로 들어갔다.
제12편문단 1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의자왕이 미후성에 와서 윤충의 작위를 높여주고 말 20마리와 쌀 1천 섬을 상주었으며, 그 이하의 장사들에게도 차례로 상을 내려 칭찬하고 나서 여러 장수들을 나누어 보내 각 고을을 공략하게 하였다. 대야주는 원래 임나가라(任那加羅)의 땅이었으므로 그 지방의 백성들이 옛 나라를 생각하고 신라를 싫어하다가 백제의 군사가 이르니 모두 환영하여 40여 성과 고을이 한 달 안에 죄다 백제의 차지가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7월에 의자왕이 미후성 등 40여 성을 함락시키고, 8월에 윤충을 보내서 대야성을 함락시켰다고 하였고, 해상잡록(海上雜錄)에는 대야성을 함락시킨 뒤에 40여 성을 항복받았다고 하였는데, 뒤의 것이 사리에 가까우므로 여기서는 이를 좇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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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이 미후성에 와서 윤충에게 작위를 높여주고 말 스무 마리와 쌀 천 섬을 상주었으며, 그 아래 장사들에게도 차례로 상을 내려 칭찬한 뒤 여러 장수들을 나누어 보내 각 고을을 공략하게 하였다. 대야주는 원래 임나가라의 땅이었으므로 그 지방 백성들이 옛 나라를 생각하고 신라를 싫어하다가 백제의 군사가 이르니 모두 환영하여 사십여 성과 고을이 한 달 안에 죄다 백제의 차지가 되었다. 삼국사기에는 7월에 의자왕이 미후성 등 사십여 성을 함락시키고, 8월에 윤충을 보내서 대야성을 함락시켰다고 하였고, 해상잡록에는 대야성을 함락시킨 뒤에 사십여 성을 항복받았다고 하였는데, 뒤의 것이 사실에 가까우므로 여기서는 이를 따랐다.
제12편문단 16번역 대기
원문
대야(大耶)는 ‘하래’로 읽는 것이니 낙동강 상류를 일컫는 말인데, 김유신전에는 대야를 ‘대량(大梁)’이라고 기록하였다. ‘야(耶)’‘양(梁)’ 등이 옛날에는 다 ‘라’ 혹은 ‘래’로 읽은 것이고, 대야를 신라 말엽에 협천(陜川)으로 고쳐 후세에는 이것을 ‘합천’이라 읽었으니 당시에는 합(陜)의 첫소리 ‘하’와 내(川)의 뜻 ‘래’를 따라 ‘하래’로 읽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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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1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고구려 · 백제 동맹의 성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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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와 백제의 동맹이 성립되다
제12편문단 1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의자왕이 대야주 40여 성을 차지한 지 오래지 않아서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고구려의 정권을 잡았다. 의자왕이 성충(成忠)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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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이 대야주 사십여 성을 차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연개소문이 영류왕을 죽이고 고구려의 정권을 장악하였다. 의자왕이 성충에게 물었다.
제12편문단 19번역 대기
원문
“연개소문이 남의 신하로서 임금을 죽였는데 고구려 전국이 두려워서 그 죄를 묻는 자가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고구려가 서국(西國 : 지나를 가리킴)과 전쟁을 한 지 여러 백 년 만에 처음에는 여러 번 서국에서 패하다가 근세에 이르러 날로 강대해져서 요동을 차 지하여 그 세력이 요서에까지 미치고 뭍에서만 마음대로 돌아다닐 뿐 아니라 바다에까지 드나들어 영양왕 때에는 세 번이나 백만의 수나라 군사를 격파하여 나라의 위엄이 크게 떨쳐서 고구려의 군사와 백성들 이 서국과 맞서려는 기염(氣焰)이 하늘을 찌르려 하는 판인데 건무(建武 : 영류왕)가 도리어 이를 압박하고 서국과 화친하여 군사와 백성들의 노여움을 산 지가 오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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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2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연개소문은 고구려 여러 대의 장상(將相)으로 이름난 집안으로서 왕의 정책에 반대하고 정당론(征唐論)을 주장하여 국민들의 마음에 호응하고, 그리하여 건무를 죽였으므로 고구려 전국이 연개소문의 죄를 묻지 아니할 뿐 아니라 바야흐로 그 공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하고 성충이 대답하였다. 왕이 다시 “고구려와 당이 싸우변 어느 나라가 이기겠소” 하고 물으니, 성충은 “당은 비록 땅이 고구려보다 넓고 백성도 고구려보다 많지마는 연개소문의 전략은 이세민(李世民 : 당의 太宗)이 따를 바가 아니니 승리는 반드시 고구려에 돌아갈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왕이 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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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은 고구려 여러 대의 장상으로 이름난 집안으로서 왕의 정책에 반대하고 당나라를 정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백성들의 마음에 호응하였으며, 그리하여 건무를 죽였으므로 고구려 전국이 연개소문의 죄를 묻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 공을 노래하는 것입니다.”라고 성충이 대답하였다. 왕이 다시 “고구려와 당나라가 싸우면 어느 나라가 이기겠습니까?” 하고 묻자, 성충은 “당나라는 비록 땅이 고구려보다 넓고 백성도 고구려보다 많지마는 연개소문의 전략은 이세민(당의 태종)이 따를 바가 아니니 승리는 반드시 고구려에 돌아갈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왕이 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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