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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야

新羅·加耶BC 57 – AD 935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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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12편 삼국 통일 朝鮮上古史 第12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169개 · 번역 확정 0개
제12편문단 2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세민은 네 나라의 여러 영웅들을 토벌하여 통일된 중국의 황제가 되었고 연개소문은 아무런 싸움의 경력이 없는데 어찌 연개소문의 전략이 이세민보다 낫다고 하오?” 성충이 대답하였다. “신이 왕년에 일찍이 고구려에 가서 연개소문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때에는 연개소문이 아무런 직위도 없고 다만 명문의 한 귀소년(貴少年)이었지마는 모습이 우람하고 의기가 호탕하므로 신이 그를 기이하게 여기고 사랑하여 함께 이야기하다가 말이 병법에 미쳤습니다. 그래서 신은 연개소문의 지혜와 계략이 비상함을 알았습니다.
번역
"이세민은 네 나라의 여러 영웅들을 토벌하여 통일된 중국의 황제가 되었는데, 연개소문은 아무런 싸움 경력이 없거늘 어찌 연개소문의 전략이 이세민보다 낫다고 하오?" 성충이 대답하였다. "신이 왕년에 일찍이 고구려에 가서 연개소문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때에는 연개소문이 아무 직위도 없고 다만 명문가의 귀한 소년이었으나, 모습이 우람하고 의기가 호탕하여 신이 그를 기이하게 여기고 사랑하여 함께 이야기하다가 말이 병법에 미쳤습니다. 그래서 신은 연개소문의 지혜와 계략이 비상함을 알았습니다."
제12편문단 22번역 대기
원문
이번의 일로 말하더라도 연개소문이 아버지의 직위를 이어받은 지 오래지 않아 아무런 기색도 없다가 하루 아침에 대신 이하 수백 명을 죽이고, 패수(浿水)의 전쟁에 수(隋)의 군사를 격파하여 위명을 떨친 건무왕을 쳐 이기고 고구려의 대권을 잡았으니 이는 이세민이 따를 바가 아닙니다.” 왕이 또 “그러면 고구려가 능히 당을 멸망시킬 수 있단 말이오?” 하고 물으니 성충은 “그것은 단언할 수 없습니다.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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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2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만일 연개소문이 10년 전에 고구려의 대권을 잡았더라면 오늘날에 당을 멸망시켰을는지 모르지만, 연개소문은 겨우 오늘에 와서야 성공하였는데 이세민은 이미 20년 전에 서국을 통일하면서 나라 다스리는 규모가 정밀하여, 백성을 사랑하여 민심을 열복시킨 지 이미 오래이므로 연개소문이 설혹 싸움에 이긴다 하더라도 민심이 갑자기 당을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당을 멸망시키기 어려운 한 가지 이유입니다. 연개소문이 비록 고구려를 통일하였지마는 그것은 겉모양이고 그 속에는 왕실과 호족들의 남은 무리가 날로 연개소문의 뜻을 엿보고 있어 만일 연개소문이 당을 멸망시키기 전에 죽고 그 후계자가 옳은 감[人材]이 아니면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번역
만약 연개소문이 십 년 전에 고구려의 대권을 잡았더라면 오늘날 당을 멸망시켰을지 모르나, 연개소문은 겨우 오늘에 와서야 성공하였는데 이세민은 이미 이십 년 전에 서국을 통일하면서 나라 다스리는 규모가 정밀하고 백성을 사랑하여 민심을 편안하게 한 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연개소문이 설령 싸움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민심이 갑자기 당을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당을 멸망시키기 어려운 한 가지 이유입니다. 연개소문이 비록 고구려를 통일하였으나 그것은 겉모양일 뿐이며 그 속에는 왕실과 호족들의 남은 무리가 날로 연개소문의 뜻을 엿보고 있어, 만약 연개소문이 당을 멸망시키기 전에 죽고 그 후계자가 올바른 인재가 아니라면 사방에서 반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제12편문단 2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것이 당을 멸망시키기 어려운 또 한 가지 이유입니다 그러니 두 나라의 흥망을 미리 말하기 어렵습니다 ” 하고 대답하였다. 왕이 물었다.
번역
"이것이 당나라를 멸망시키기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이니, 그리하여 두 나라의 흥망을 미리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왕이 물었다.
제12편문단 25번역 대기
원문
“우리 나라가 이제 대야주는 차지하였으나 아주 그 근본을 뒤집어 엎지 못하였으므로 신라는 보복할 마음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오 고구려가 당을 멸망시키거나 당이 고구려를 멸망 시키거나 반드시 남침(南侵)해 올 것이니 그때에 우리 나라는 북으로 고구려나 당의 침략을 받고, 동으로는 신라의 반공을 받을 것인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성충이 대답하였다 “지금의 형세로 보건대 고구려가 당을 치지 않으면 당이 고구려를 쳐서 서로 대립할 것인데 이것은 연개소문이 뻔히 알고 있을 것이고 고구려가 당과 싸우자면 반드시 남쪽 백제와 신라와는 화친하여야만 뒤돌아볼 염려가 없을 것도 연개소문이 환히 알고 있을 것입니다.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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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2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리고 백제와 신라는 피차 원한이 깊어 고구려가 이 중 한 나라와 화친하면 다른 한 나라와는 적국이 될 것도 연개소문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연개소문이 장차 두 나라 중에서 어느 한 나라와 화친하여 당과 전쟁을 할 때에 남쪽 두 나라가 서로 견제해서 고구려를 엿보지 못하게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이제 백제를 위해 계책을 세운다면 빨리 고구려와 화친하여 백제는 신라를, 고구려는 당을 맡아 싸우는 것이 옳을 줄 압니다. 신라는 백제의 적이 못 되니 틈을 타서 이로움을 따라 나아가면 모든 편의가 고구려보다 백제에 있습니다.” 왕이 그의 말이 옳다고 하고 성충을 고구려에 사신으로 보냈다.
번역
백제와 신라 사이에 원한이 깊어, 고구려가 이 중 한 나라와 화친하면 다른 한 나라와는 적국이 될 것이라는 것을 연개소문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연개소문은 장차 두 나라 중에서 어느 한 나라와 화친하여 당과 전쟁을 할 때에 남쪽 두 나라가 서로 견제하여 고구려를 엿보지 못하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이제 백제를 위해 계책을 세운다면 빨리 고구려와 화친하여 백제는 신라를, 고구려는 당을 맡아 싸우는 것이 옳을 줄 안다. 신라는 백제의 적이 될 수 없으니, 틈을 타서 이로움을 따라 나아가면 모든 편의가 고구려보다 백제에 있다.” 왕이 그의 말이 옳다고 하고 성충을 고구려에 사신으로 보냈다.
제12편문단 2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성충이 고구려에 가서 이해를 따져 연개소문을 달래서 동맹의 조약이 거의 맺어지게 되었는데, 연개소문이 갑자기 성충을 멀리 하여 여러 날을 만나보지 못하였다. 성충이 의심이 나서 탐지해 보니 신라의 사신 김춘추(金春秋 : 뒤의 태종 무열왕)가 와서 고구려와 백제의 동맹을 막고 고구려와 신라의 동맹을 맺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번역
성충이 고구려에 가서 이해를 따져 연개소문을 달래어 동맹 조약이 거의 맺어지게 되었으나, 연개소문이 갑자기 성충을 멀리하여 여러 날 만나보지 못하였다. 성충이 의심이 들어 탐지해 보니 신라의 사신 김춘추(뒤의 태종 무열왕)가 와서 고구려와 백제의 동맹을 막고 고구려와 신라의 동맹을 맺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제12편문단 28번역 대기
원문
그래서 성충은 곧 연개소문에게 글을 보내 “공이 당과 싸우지 않으면 모르지만 만일 당과 싸우고자 한다면 백제와 화친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요 왜냐하면 서국이 고구려를 칠 때에 번번이 양식 운반의 불편으로 패하였으니 수나라가 그 분명한 본보기요.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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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2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제 백제가 만일 당과 연합하면 당은 육로인 요동으로부터 고구려를 침노할 뿐 아니라 배로 군사를 운반하여 백제로 들어와서 백제의 쌀을 먹어가며 남에서 부터 고구려를 칠 것이니, 그러면 고구려가 남과 북 양면으로 적을 받게 될 것이니 이 위험이 어떠하겠습니까? 신라는 동해안에 나라가 있어서 당의 군사 운반의 편리하기가 백제만 못할 뿐더러 신라는 일찍이 백제와 화약하고 고구려를 치다가 마침내 백제를 속이고 죽령(竹領) 밖 고현(高峴) 안의 10군을 함부로 점령하였음은 공이 잘 아는 바이니, 신라가 오늘에 고구려와 동맹한다 하더라도 내일에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의 땅을 빼앗지 않으리라 어떻게 보증하겠습니까?” 하였다.
번역
만약 백제가 당과 연합하면, 당은 육로인 요동에서 고구려를 침공할 뿐 아니라 배로 군사를 운반하여 백제로 들어와서 백제의 쌀을 먹으며 남쪽에서부터 고구려를 치게 될 것이니, 그러면 고구려는 남과 북 양면으로 적을 받게 되리니 이 위험이 어떠하겠습니까? 신라는 동해안에 나라가 있어 당의 군사 운반이 편리하기가 백제만 못할 뿐더러, 신라는 일찍이 백제와 화친하고 고구려를 치다가 마침내 백제를 속이고 죽령 밖 고현 안의 열 군을 함부로 점령한 것은 공이 잘 아는 바입니다. 신라가 오늘날 고구려와 동맹한다 하더라도 내일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의 땅을 빼앗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증하겠습니까?” 하였다.
제12편문단 3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연개소문이 이 글을 보고는 김춘추를 가두고 죽령 밖 욱리하(郁里河) 일대의 땅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이리하여 성충은 마침내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돌아갔다.
번역
연개소문이 이 글을 보고는 김춘추를 가두고 죽령 밖에 있는 욱리하 일대의 땅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성충은 마침내 고구려와 동맹을 맺고 돌아갔다.
제12편문단 31번역 대기
원문
=== 안시성 전투 때의 성충(成忠)의 건의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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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3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기원후 644년에 신라가 장군 김유신을 보내 죽령을 념어 성열(省熱) · 동대(同大) 등 여러 성을 공격하므로 백제의 의자왕은 여러 신하들을 모아 응전할 계획을 의논하였는데 성충이 “신라가 여러 번 패한 끝에 스스로 보전할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제 갑자기 침략을 시도하니 이것은 반드시 그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김춘추가 딸 고타랑(古陀娘) 잃은 복수를 하기 위해 여러 번 가만히 바다를 건너 당에 들어가서 구원병을 청하였다고 합니다.
번역
기원후 644년에 신라가 장군 김유신을 보내 죽령을 비롯하여 성열, 동대 등 여러 성을 공격하자 백제의 의자왕은 여러 신하들을 모아 응전할 계획을 논의하였다. 이때 성충이 "신라가 여러 번 패한 끝에 스스로 지킬 것을 생각하지 않고 이제 갑자기 침략을 시도하니 이것에는 반드시 까닭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김춘추가 딸 고타랑을 잃은 복수를 하기 위해 여러 번 조용히 바다를 건너 당나라에 들어가 구원병을 청하였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제12편문단 3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당의 임금 이세민이 해동(海東) 침략할 뜻을 품은 지 오래였으므로 반드시 신라와도 고구려 · 백제 두 나라에 대한 음모를 꾸였을 것인데 헤아리건대 아마 당은 고구려를 치는 동시에 수군으로 백제의 서쪽에 침입하고, 신라는 백제를 쳐서 고구려를 구원하지 못하게 하고, 또한 대군으로 고구려의 후방을 교란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라가 성열 · 동대 등의 성을 차지하기 전에는 고구려의 후방을 교란시키지 못할 것이고, 당이 요동을 차지하기 전에는 수로로 양식 운반하기에 급급하여 백제에 침입할 병선이 없을 것이니, 이제 백제로서 계책을 세운다면 당분간 성열 등의 성을 신라에게 내맡기고 군사를 단속하여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번역
당나라 임금 이세민이 해동을 침략할 뜻을 품은 지 오래였으므로 반드시 신라와 고구려, 백제 두 나라에 대한 음모를 꾸몄을 것이니 헤아리건대 아마 당나라는 고구려를 치는 동시에 수군으로 백제의 서쪽에 침입하고, 신라는 백제를 쳐서 고구려가 구원하지 못하게 하고, 또한 대군으로 고구려의 후방을 교란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라가 성열이나 동대 등의 성을 차지하기 전에는 고구려의 후방을 교란시키지 못할 것이고, 당나라가 요동을 차지하기 전에는 수로로 양식을 운반하는 데 급급하여 백제에 침입할 병선이 없을 것이니, 이제 백제로서 계책을 세운다면 당분간 성열 등의 성을 신라에게 맡기고 군사를 단속하여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제12편문단 34번역 대기
원문
당과 신라가 고구려에 대해 격렬한 전투를 벌여 서로 손을 뺏기가 어렵게 될 것인데 신라는 백제를 염려하여 군사를 많이 내지 못할 것이지 마는 당은 반드시 나라를 기울여 고구려에 침입할 것이니 백제는 그 틈을 타서 배로 정병 수만 명을 운반하여 당의 강남(江南)을 친다면 이를 점령하기가 아주 용이할 것이고, 강남을 점령한 뒤에는 그 물력(物力)과 민중으로 나아가 공략한다면 서국의 북쪽은 비록 고구려의 차지가 되더라도 남쪽은 다 백제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신라가 비록 백제를 아무리 원망하더라도 하잘 것 없는 조그만 나라가 어찌 하겠습니까? 오직 머리를 숙여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그때에는 백제가 신라를 쳐 멸망시킬 수도 있고 그대로 존속시킬 수도 있어서 아무런 말썽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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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3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의자왕이 그의 말을 좇아 여러 장수들에게 명하여 변경을 굳게 지키게 하였다. 이듬해에 과연 당이 30만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에 침입하였는데 안시성을 포위하고 싸웠으나 몇 달 동안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한편 신라는 13만 대군을 내어 고구려의 남쪽을 공격하여 그 후방을 교란시키려고 하므로, 의자왕은 계백(階伯)에게 명하여 신라의 후방을 습격하여 성열 등 일곱 성을 회복하고 윤충을 보내 부사달(夫斯達 : 지금의 松都) 등 10여 성을 점령하고, 수군으로 당의 강남을 습격하여 월주(越州 : 지금의 紹與) 등지를 점령하여 착착 해외의 척지(拓地)를 경영하다가 임자(任子)의 참소로 성충이 마침내 왕의 박대함을 당하여 그 뜻을 펴지 못하였다.
번역
의자왕은 그의 말을 따라 여러 장수들에게 명하여 국경을 굳게 지키게 하였다. 이듬해에 과연 당나라가 삼십만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침입하였는데 안시성을 포위하고 싸웠으나 몇 달 동안 승부가 나지 않았다. 한편 신라는 십삼만 대군을 내어 고구려의 남쪽을 공격하여 그 후방을 교란시키려고 하므로, 의자왕은 계백에게 명하여 신라의 후방을 습격하여 성열 등 일곱 성을 회복하고 윤충을 보내 부사달(지금의 송도) 등 열여 성을 점령하고, 수군으로 당나라의 강남을 습격하여 월주(지금의 소요) 등지를 점령하여 차차 해외의 척지를 경영하다가 임자의 참소로 성충이 마침내 왕의 박대함을 당하여 그 뜻을 펴지 못하였다.
제12편문단 3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제 2 장 김춘추(金春秋)의 외교와 김유신(金庾信)의 음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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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김춘추의 외교와 김유신의 계략
제12편문단 37번역 대기
원문
=== 김춘추의 복수(復讐) 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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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3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김춘추는 신라내성(內省) 김용춘(金龍春), 곧 백제의 무왕(武王)과 동서전쟁 (同婚戰爭)을 한 사람의 아들이다. 김용춘이 죽으니 김춘추 가 그 직위를 이어받아 신라의 정치를 도맡아 처리하였고 백제 무왕과 혈전을 벌였다. 무왕이 죽은 뒤에 의자왕이 성충의 계교를 써서 대야주를 쳐 김품석(金品釋 : 김춘추의 사위) 부부를 죽이고 그 관내(管內)의 40여 성을 빼앗으니, 김춘추는 그 소식을 듣고 어떻게나 통분하 였던지 기둥에 기대서서 그 앞을 사람이나 개가 지나가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붉게 상기한 얼굴로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주먹으로 기둥을 치며 “사나이가 어찌 보복을 못하랴?” 하고 일어섰다.
번역
김춘추는 신라 내성 김용춘, 즉 백제의 무왕과 동서전쟁을 한 사람의 아들이다. 김용춘이 죽자 김춘추가 그 직위를 이어받아 신라의 정치를 맡아 처리하였고 백제 무왕과 혈전을 벌였다. 무왕이 죽은 뒤 의자왕이 성충의 계교를 써서 대야주를 쳐 김품석 부부를 죽이고 그 관내의 사십여 성을 빼앗았으니, 김춘추는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통분했는지 기둥에 기대어 사람이나 개가 지나가는 것도 깨닫지 못하고 붉게 상기한 얼굴로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주먹으로 기둥을 치며 “사나이가 어찌 보복을 못하랴?” 하고 일어섰다.
제12편문단 3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나 신라는 나라가 적고 백성이 적으니 무엇으로 백제에 보복을 하랴 ? 오직 외국의 원조를 빌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춘추가 궁리궁리끝에 결론지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김춘추는 고구려로 들어갔다. 고구려는 수나라의 백만 대군을 격파한 여위(餘威)를 가진 유일한 강대 국이요,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유일한 거인이니 연개소문만 사귀면 백제에 대해 복수를 할 수 있으리라 하여 신라, 고구려 두 나라 동맹의 이로움을 들어 연개소문과 거의 동맹이 이루어지게 된 판에, 백제의 사신 상좌평(上좌平) 성충이 이것을 알고 연개소문에게 글을 보내어 연개소문은 마침내 김춘추를 잡아 가두고 욱리하(郁里河) 일대의 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번역
그러나 신라는 나라가 적고 백성이 적으니 무엇으로 백제에 보복할 수 있겠는가? 오직 외국의 원조를 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김춘추가 깊이 생각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김춘추는 고구려로 들어갔다. 고구려는 수나라의 백만 대군을 격파한 여세를 가진 유일한 강대국이었고,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유일한 거인이었기에, 연개소문과 사귀면 백제에 대해 복수할 수 있으리라 하여 신라와 고구려 두 나라 동맹의 이로움을 들어 연개소문과 거의 동맹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에 백제의 사신 상좌평 성충은 이를 알고 연개소문에게 글을 보내었고, 연개소문은 마침내 김춘추를 잡아 가두고 욱리하 일대의 땅을 요구하게 되었다.
제12편문단 40번역 대기
원문
김춘추가 이에 가만히 종자로 하여금 고구 려왕의 총신 선도해(先道解)에게 선물을 주고 살려주기를 빌었다. 그러나 연개소문의 세상인 판에 총신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래도 선 도해는 선물을 탐내어 그것을 받고 “내가 공을 살려줄 수는 없으나 공이 살아 돌아갈 방법을 가르쳐주리다.” 하고 당시 고구려에 유행하던 거북과토끼 이야기〔龜兎談〕란책을주었다. 김춘추가 그책을 읽어보니 그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번역
아직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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