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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야

新羅·加耶BC 57 – AD 935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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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12편 삼국 통일 朝鮮上古史 第12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169개 · 번역 확정 0개
제12편문단 4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토끼가 거북의 꾐에 빠져서 등에 엽혀 용왕국(龍王國)으로 벼슬을 하려고 들어갔다. 들어가보니 벼슬을 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용왕이 병이 들어 토끼의 간이 병에 약이라 하여 거북을 보내서 저를 꾀어온 것이었다. 토끼가 얼른 꾀를 내어 용왕에게 “신은 달의 정기의 아들이 라 달을 보고 잉태하였으므로 선보름에 달이 찰 때에는 간을 내놓고 후보름을 달이 기울 때에는 간을 다시 넣어두는데, 신이 대왕의 나라 에 들어올 때에 마침 선보름이라 간을 내놓았었으므로 지금은 신의 간이 신의 뱃속에 있지 않고 금강산 속의 어느 나무 밑에 감추어두었습 니다. 신을 다시 내보내주시면 그 간을 가져오겠습니다.
번역
토끼가 거북의 계략에 빠져 용왕국으로 들어가 높은 벼슬을 얻으려 했다. 들어가 보니, 벼슬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용왕이 병들어 토끼의 간이 약이라 하여 거북을 보내 자신을 꾀어낸 것이었다. 토끼가 재빨리 계책을 내어 용왕에게 말했다. "신은 달의 정기를 타고난 아들이라 달을 보고 임신하였기에, 선보름에 달이 차면 간을 내놓고 후보름에는 다시 간을 넣어두는데, 신이 대왕의 나라에 들어올 때가 마침 선보름이라 간을 내놓았었으므로 지금은 신의 간이 신의 뱃속에 있지 않고 금강산 속 어느 나무 밑에 감추어 두었습니다. 저를 다시 보내주시면 그 간을 가져오겠습니다."
제12편문단 4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하고 속여 마침내 다시 거북의 등에 업혀 나와서 물에 닿자 “사람이나 짐승이나 간을 내었다 넣었다 하는 일이 어디 있더냐? 아나 옜다, 간 받아라.” 하고 깡충깡충 뛰어 달아났다.
번역
"하고 속여 마침내 다시 거북 등에 업혀 나와 물에 닿자 '사람이든 짐승이든 간을 내었다 넣었다 하는 일이 어디 있느냐? 아나<0xEC><0x98><0x9C>다, 간 받아라.' 하고 폴짝 뛰어 달아났다."
제12편문단 43번역 대기
원문
김춘추는 선도해의 뜻을 알고 고구려 왕에게 거짓 글을 올려 욱리하 일대의 땅을 고구려에 바치겠노라고 하였다. 그래서 연개소문은 김춘 추와 약속을 맺고 그를 석방하여 귀국하게 하였다. 김춘추는 국경에 이르자 고구려의 사자를 돌아보며 “땅이 무슨 땅이란 말이냐? 어제의 맹약은 죽음을 벗어나려는 거짓말이었다.” 하고 토끼처럼 뛰어 돌 아왔다.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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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4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김춘추가 고구려에 가서 실패하고 돌아오니 이에 신라가 고구려 · 백제 두 나라 사이에 고립된 한낱 약소국이 되어 부득이 새로이 해서 (海西)의 당에 동맹을 청하게 되었다. 그래서 김춘추는 바다를 건너 당에 들어가서 당태종을 보고 신라의 위급한 형편을 말하고 힘 닿는 데까지 자기를 낯추고 많은 예물로 구원병을 청하는데, 당나라 조정의 임금과 신하의 뜻을 맞추기 위해 아들 법(法敏 : 뒤의 문무왕)과 인 문(仁問) 등을 당에 인질로 두고, 본국의 의복과 관을 버리고 당의 의복과 관을 쓰고, 진흥왕 이래로 일컬어오던 본국의 제왕과 연호를 버 리고 당의 연호를 쓰기로 하였다.
번역
김춘추가 고구려에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자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 사이에 고립된 약소국이 되어 부득이 새로 바다 건너 당나라에 동맹을 청하게 되었다. 그래서 김춘추는 바다를 건너 당나라에 들어가 당태종을 만나 신라의 위급한 사정을 말하고 힘껏 자신을 내세우며 많은 예물로 구원군을 청하는데, 당 조정의 임금과 신하들의 뜻을 맞추기 위해 아들 법민(훗날 문무왕)과 인문 등을 당에 인질로 두고, 본국의 옷과 관을 버리고 당나라의 옷과 관을 입었으며, 진흥왕 때부터 불리던 본국의 제왕과 연호를 버리고 당나라의 연호를 쓰기로 하였다.
제12편문단 4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또 당태종이 편찬한 진서 (晉書)와 그가 보태고 깎고 한 사기 (史記) · 한서 (漢書) · 삼국지 (三國志) 등에 있는 조선을 업신여기고 모욕한 말들을 그대로 가져다가 본국에 유포 시켜 사대주의의 병균을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번역
또 당태종이 편찬한 진서와 그가 보태고 깎은 사기, 한서, 삼국지 등에 있는 조선을 업신여기고 모욕한 말들을 그대로 가져다가 본국에 유포시켜 사대주의의 병균을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제12편문단 46번역 대기
원문
=== 김유신의 등용(登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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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4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김춘추가 한창 복수운동에 분주한 판에 그를 보좌하는 한 명물이 있었으니 곧 김유신이었다. 당시에 연개소문을 고구려의 대표 인물이라 하고 부여성충을 백제의 대표 인물이라 한다면 김유신은 곧 신라의 대표 인물이라 할 것이다. 고구려 · 백제가 망한 뒤에 신라의 역사가들 이 그 두 나라 인물의 전기적(傳記的) 자료를 말살해버리고 오직 김유신만을 찬양하였으므로 삼국사기 열전에 김유신 한사람의 전기가 을 지문덕 이하 수십 명의 전기보다도 양이 훨씬 많고, 부여성충 같은 이는 열전에 끼이지도 못하였다. 그러니까 김유신전에 화려하고 아름다 운 말이 많음을 가히 미루어 알 수있다. 이제 그 사리에 맞는 것만을 추려보기로 한다.
번역
김춘추가 한창 복수 운동에 분주한 때에 그를 돕는 인물이 있었으니 곧 김유신이었다. 당시 연개소문을 고구려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고 부여성충을 백제의 대표적인 인물이라 한다면, 김유신은 곧 신라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것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망한 뒤에 신라의 역사가들이 그 두 나라 인물의 전기적 자료를 말살하고 오직 김유신만을 찬양하였으므로, 삼국사기 열전에 김유신의 전기가 지문덕 이하 수십 명의 전기보다도 양이 훨씬 많고, 부여성충 같은 인물은 열전에 실리지도 못하였다. 그러니 김유신전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말이 많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제 그 사리에 맞는 것만을 추려보기로 한다.
제12편문단 4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김유신은 신가라 국왕 구해(仇亥)의 증손이다. 다섯 가라국이 거의 다 신라와 싸우다가 망하였으나 신가라는 한 번도 싸우지 않고 나라를 들어 귀부해왔고, 신라처럼 골품(骨品)을 다투는 나라이므로 왕은 구 해에게 감사하여 식읍(食邑)을 주고 준귀족(準貴族)으로 대우하였다. 구해는 또 장병대원(將兵大員)이 되어 구천(狗川) 싸움에서 백제왕을 쳐 죽인 전공도 있었다. 그러나 신라의 귀골(貴骨)들이 김무력(金武 力 : 仇亥)을 외래(外來)의 김씨라 하여 세 성의 김씨와 구별하여 세 성들과 혼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였는데, 김무력의 아들 서현 (舒玄)이 일찍이 출유(出遊)하다가 세 성의 김씨인 숙흘종(肅訖宗)의 딸 만명 (萬明)이 몹시 아름다움을 보고 정을 금치 못하고 추파로 뜻을 통하여 야합해서 유신을 배었다.
번역
김유신은 신가라 국왕 구해의 증손이다. 다섯 가라국이 거의 다 신라와 싸우다가 망하였으나 신가라는 한 번도 싸우지 않고 나라를 들어 귀부해왔고, 신라처럼 골품을 다투는 나라이므로 왕은 구해에게 감사하여 식읍을 주고 준귀족으로 대우하였다. 구해는 또 장병대원이 되어 구천 싸움에서 백제왕을 쳐 죽인 전공도 있었다. 그러나 신라의 귀골들이 김무력을 외래의 김씨라 하여 세 성의 김씨와 구별하여 세 성들과 혼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였는데, 김무력의 아들 서현이 일찍이 출유하다가 세 성의 김씨인 숙흘종의 딸 만명이 몹시 아름다움을 보고 정을 금치 못하고 추파로 뜻을 통하여 야합해서 유신을 배었다.
제12편문단 49번역 대기
원문
숙흘종이 이 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만명을 가두니 만명이 도망하여 금물내(今勿內---지금의 진천(鎭 川)의 서현이 있는 곳으로 가서 부부의 예를 이루고 유신을 낳았는데 아버지 서현은 일찍 죽고 어머니 만명이 유신을 길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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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5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유신이 처음에는 방탕하여 행동을 조심하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울며 타이르는 말을 듣고 감격하고 깨달아서 학업에 힘썼다. 나이 17살에 화랑(花郞)의 무리가 되어 중악산(中岳山) · 인박산(咽薄山) 등에 들어가서 나라를 구하려는 기도를 올리고 검술을 익혀 차차 이름이 났다. 그러나 유신이 가라국의 김씨이기 때문에 여간한 연줄이 없이는 중요하게 쓰이지 못할 줄을 알고, 당시의 총신인 내성사신(內省私臣) 김용춘의 아들 춘추와 사귀어 훗날 현달(顯達)할 발판을 만들려고 하였다. 하루는 자기 집 부근에서 두 사람이 제기를 차다가 유신이 일부러 춘추의 옷을 차 단추를 떨어뜨리고, 춘추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서 자기의 막내 누이를 불러 단추를 달게 하였다.
번역
유신은 처음에는 방탕하여 행동을 조심하지 않았으나 어머니가 울며 타이르는 말을 듣고 감격하고 깨달아 학업에 힘썼다. 나이 열일곱 살에 화랑 무리가 되어 중악산과 인박산 등에 들어가 나라를 구하려는 기도를 올리고 검술을 익혀 차차 이름이 났다. 그러나 유신은 가라국의 김씨였기에 별다른 연줄 없이는 중요하게 쓰이지 못할 줄을 알고, 당시의 총신인 내성사신 김용춘의 아들 춘추와 사귀어 훗날 현달할 발판을 만들려고 하였다. 어느 날 자기 집 근처에서 두 사람이 제기를 차다가 유신이 일부러 춘추의 옷 단추를 떨어뜨리고, 춘추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막내 누이를 불러 단추를 달게 하였다.
제12편문단 5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누이 문희 (文姬) 가 엷은 화장에 산뜻한 옷차림으로 바늘과 실을 가지고 나오는데, 그 아름다움이 춘추의 눈을 황홀하게 하였다. 춘추는 마침내 흔인을 청하여 춘추는 유신의 매부가 되었다.
번역
누이 문희가 옅은 화장에 산뜻한 옷차림으로 바늘과 실을 가지고 나오니, 그 아름다움이 춘추의 눈을 황홀하게 하였다. 춘추는 마침내 흔인을 청하여 유신의 매부가 되었다.
제12편문단 52번역 대기
원문
용춘이 죽고 춘추가 정권을 잡으니 유신은 그 장재 (將材)로 뿐 아니라 춘추의 도움이 있어 마침내 신라의 각 군주(軍主)가 되고, 춘추가 왕이 되자 소뿔한(舒弗翰 : 벼슬 이름으로 將相을 겸함)의 직위를 얻어 신라의 병마(兵馬)를 한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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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5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거짓이 많은 김유신의 전공(戰功) ===
번역
김유신이 세운 공적들
제12편문단 5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삼국사기 김유신전을 보면, 유신은 전략과 전술이 다 남보다 뛰어나 백전백승의 명장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개는 그의 패전은 가려 숨기고 조그만 승리를 과장한 것이 기록이다.
번역
삼국사기 김유신전을 보면, 유신은 전략과 전술이 모두 남보다 뛰어나 백전백승의 명장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개는 그의 패전은 가리고 작은 승리만 과장하여 기록한 것이었다.
제12편문단 55번역 대기
원문
진덕대왕(眞德大王) 원년(기원후 647년)에 백제 군사가 무산(茂山) 감물(甘勿) 동잠(桐岑) 세 성을 공격하므로 유신이 보병과 기병 1만으로 항거하였는데 고전을 하여 힘이 다했다. 유신이 비녕자(丕寧子)에게 “오늘의 일이 급하니 그대가 아니면 누가 능히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격발시키겠는가?” 하였다. 비녕자는 두 번 절하여 응낙하고 적에게 돌진하는데, 그의 아들 거진(擧眞)과 종 합절(合節)이 그 뒤를 따라 세 사람 모두 힘을 다해 싸우다가 죽었다 신라의 삼군(三軍)이 감동하여 앞을 다투어 진격해서 적병을 크게 깨뜨리고 3천여 명을 목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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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5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유신이 압량주(押梁州 : 지금의 慶山)군주가 되어---대량주(大梁州 : 곧 大耶州)의 싸움을 보복하려고 하니 왕이 “적은 군사로 큰 군사를 대적함이 위태롭지 아니하오?” 하니 유신이 “---지금 우리들은 한마음이 되었으니 백제를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하여 왕이 출병을 허락하였다. 유신이 고을의 군사를 조련하여 대량주 성 밖에 이르니 백제가 항거해 싸우므로 유신은 거짓 패하여 옥문곡(玉門谷)으로 들어가니 백제 군사가 가벼이 여겨 크게 몰려왔다 유신은 복병을 내어 앞뒤로 쳐서 크게 깨뜨려 백제의 장군 8명을 사로잡고 군사 1천여 명을 베었다.
번역
유신이 압량주 군주가 되어 대량주의 싸움을 보복하려 하니 왕이 “적은 군사로 큰 군사를 대적하는 것이 위태롭지 아니하오?”라 하니 유신이 “지금 우리들은 한마음이 되었으니 백제를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라고 하여 왕이 출병을 허락하였다. 유신이 고을의 군사를 조련하여 대량주 성 밖에 이르니 백제가 항거해 싸우므로 유신은 거짓 패하여 옥문곡으로 들어가니 백제 군사가 가볍게 여겨 크게 몰려왔다. 유신은 복병을 내어 앞뒤로 쳐서 크게 깨뜨려 백제의 장군 8명을 사로잡고 군사 1천여 명을 베었다.
제12편문단 5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리고 사자를 백제의 장군에게 보내서 “우리 군주 품석과 그의 아내 김씨의 뼈가 너희 옥중에 있으니---네가 죽인 두 사람의 뼈를 보내면 나는 살아 있는 여넓 사람을 돌려주겠다·”라고 하니, 백의 유골을 돌려보내므로 유신은 사람을 돌아가게 하고 이긴 기세를 타 백제의 경계를 넘어 들어가 악성(嶽城) 등 12성을 빼앗고서 1만 명을 베고 9천 명을 사로잡았다. 이 공으로 유신은 이찬 (伊飡)의 작위를 받고 상주행군대총관(上州行軍大總管)이 되었으며, 진례(進禮) 등 9성을 도륙하여 9천여 명을 베고 6백여 명을 사로잡았다.
번역
그리고 사자를 백제의 장군에게 보내어 "우리 군주 품석과 그의 아내 김씨의 뼈가 너희 옥중에 있으니, 네가 죽인 두 사람의 뼈를 보내면 나는 살아 있는 여넓 사람을 돌려주겠다"라고 하니, 백의 유골을 돌려보내므로 유신은 사람을 돌아가게 하고 이긴 기세를 타 백제의 경계를 넘어 들어가 악성 등 12성을 빼앗고서 만 명을 베고 구천 명을 사로잡았다. 이 공으로 유신은 이찬의 작위를 받고 상주행군대총관이 되었으며, 진례 등 9성을 도륙하여 구천여 명을 베고 육백여 명을 사로잡았다.
제12편문단 58번역 대기
원문
2년(기원후 648년) 8월에 백제 장군 은상(殷相)이 석토(石吐) 등 7성을 공격하므로 왕이 유신 · 죽지 (竹旨) · 진춘(陳春) · 천존(天存) 등 장군 에게 명하여 삼군을 다섯 길로 나누어 백제군을 치게 하였는데, 서로 지고 이기고 하여 열흘이 되도록 풀리지 아니하여 시체가 들에 널리고 흐르는 피가 내를 이루었다. 유신 등이 도살성 (道薩城) 아래에 주둔하여 말과 군사를 쉬게 해가지고 다시 공격하려고 하는데 마침 물새가 동쪽에서 날아와 유신의 군막 위를 지나갔다. 군사들이 모두 불길한 징조라고 하니 유신이 말했다. “오늘 백제의 정탐이 올 것이니 너희들은 모르는 체하라·” 하고, 군중에 명령을 내려 “수비를 견고히 하여 움직이지 말아라. 내일 구원병 오는 것을 기다려 싸울 것이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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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문단 5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백제의 정탐이 돌아가 은상에게 이 말을 고하여 은상은 구원병이 오는 줄 알고 의심하며 두려워했다. 유신 등이 일시에 내달아 맹렬히 공격하여 크게 깨뜨리고, 달솔(達率) · 정중(正仲)과 군사 1백 명을 포로로 하고, 좌평 ·은상·자견(自堅) 등 10명과 군사 8,980명을 베 고, 말 1만 마리와 갑옷 1천8백 벌을 노획하고 그 밖에 기계도 수없이 노획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백제의 좌평 정복(正福)이 군사 1천 명을 데리고 와서 항복하므로 놓아주었다.
번역
백제의 정탐이 돌아와 은상에게 이 말을 고하자, 은상은 구원병이 오는 줄 알고 의심하며 두려워했다. 유신 등이 일시에 내달아 맹렬히 공격하여 크게 깨뜨리고, 달솔과 정중 및 군사 백 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좌평, 은상, 자견 등 열 명과 군사 팔천구백팔십 명을 베고, 말 만 필과 갑옷 천팔백 벌을 노획했으며 그 밖에 기계도 수없이 노획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백제의 좌평 정복이 군사 천 명을 데리고 와서 항복했으므로 놓아주었다.
제12편문단 6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본기의 기록도 이와 비슷한데 악성 (嶽城)은 연혁을 알 수 없으나 진례 (進禮)는 용담(龍潭) · 진안(鎭 安) 사이의 진잉을(進仍乙 : 고구려의 본 이름인데 신라에서 진례라 하였음)이므로 악성도 그 부근일 것이니, 이것은 전라도의 동북지방 이 신라의 위협을 받은 것이고, 석토(石吐)는 연혁을 알 수 없으나 도살성이 곧 청안(淸安)의 옛 이름이므로 석토도 그 부근일 것이니, 이 것은 충청도의 동북지방을 신라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 유신이 이처럼 늘 승리를 거두었다면 백제의 국토가 몹시 쇠퇴했을 것인데 당 서(唐書)에는 신라 사신 김법민(金法敏)의 구원을 청한 말에 “큰 성과 요긴한 진(鎭)이 다 백제가 차지한 바가 되어 국토가 날로 줄어들었습니다---다만 옛 땅도 도로 찾는다면 강화를 청하겠습니다.
번역
본기의 기록도 이와 비슷한데, 악성은 연혁을 알 수 없으나 진례는 용담과 진안 사이의 진잉(고구려의 본 이름인데 신라에서 진례라 하였음)이므로 악성도 그 부근일 것이니, 이것은 전라도 동북지방을 신라가 위협받은 곳이고, 석토는 연혁을 알 수 없으나 도살성이 곧 청안의 옛 이름이므로 석토도 그 부근일 것이니, 이것은 충청도 동북지방을 신라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 유신이 이처럼 늘 승리를 거두었다면 백제의 국토가 몹시 쇠퇴했을 것인데 당서에는 신라 사신 김법민의 구원을 청한 말에 "큰 성과 요긴한 진이 다 백제가 차지한 바가 되어 국토가 날로 줄어들었습니다---다만 옛 땅도 도로 찾는다면 강화를 청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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