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야
新羅·加耶BC 57 – AD 935문헌 원문 · 번역
조선상고사 제12편 삼국 통일
제12편번역 대기
원문
(大城重鎭 竝爲百濟所竝 疆宇日蹙 ---但得古地 卽請交和)”라고 하였고, 삼국유사에는 “태종대왕이 백제를 정벌하고자 당에 군사를 청하였는데 일찍이 혼자 앉아 있으면 근심하는 빛이 얼굴에 나타났다. (太宗大王 欲伐百濟 請兵於唐 嘗獨坐 憂形於色)”고 하였다. 이때에 백제는 성충(成忠) · 윤충(允忠) · 계백(階伯) · 의직(義直) 등 어진 재상과 이름난 장 수가 수두룩하고, 사졸들은 숱한 싸움을 겪어서 도저히 신라의 적이 아니었으니, 김유신이 몇 번 변변찮은 작은 싸움에서는 이겼었는지 모르지마는 기록과 같이 공이 혁혁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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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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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신 특유의 음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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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의 독특한 계략
제1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김유신의 전공이 거의 거짓 기록이라면 김유신은 무엇으로 그렇게 일컬어졌는가? 김유신은 지혜와 용기있는 명장이 아니라 음험하고 사나운 정치가요, 그 평생의 큰 공이 싸움터에 있지 않고 음모로 이웃나라를 어지럽힌 사람이다. 그 실례를 하나 들겠다. 신라 부산현(夫山縣 : 지금 송도 부근) 현령(縣令) 조미곤(租未坤)이 백제의 포로가 되어 백제 좌평 임자(任子)의 집 종이 되었는데, 충실하고 부지런하게 임자를 섬겨 자유로이 밖에 드나들게 되자 가만히 도망해서 신라에 돌아와 백제 국내의 사정을 고하였다. 유신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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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바와 같이 김유신의 전공이 거의 거짓 기록이라면, 김유신은 무엇으로 그렇게 불렸는가? 김유신은 지혜롭고 용기 있는 명장이 아니라 음험하고 사나운 정치가이며, 그 평생의 큰 공적은 싸움터에 있지 않고 음모로 이웃 나라를 어지럽힌 사람이다. 그 실례를 하나 들겠다. 신라 부산현(夫山縣: 지금 송도 부근) 현령 조미곤이 백제의 포로가 되어 백제 좌평 임자의 집 종이 되었는데, 충실하고 부지런하게 임자를 섬겨 자유롭게 밖에 드나들게 되자 가만히 도망하여 신라에 돌아와 백제 국내의 사정을 고하였다. 유신이 말했다.
제12편번역 대기
원문
“임자는 백제 왕이 사랑하는 대신이라니 내 뜻을 알려 신라에 이용되게 하면 그대의 공이 누구보다도 클 것인데, 그대가 능히 위험을 무릅쓰고 내 말대로 하겠소?” 조미곤이 말했다. “생사를 돌아보지 않고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이에 조미곤은 유신의 밀령을 받고 다시 백제에 들어가 임자에게 “이 나라의 신민이 되어 이 나라의 풍속을 모른다는 것은 안 될 일이기에 미처 아뢰지 못하고 나가 다니다가 돌아 왔습니다.”라고 하니, 임자는 이 말을 곧이듣고 의심하지 않았다. 조미곤이 틈을 타 임자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실은 고향을 생각하여 신라에 갔다 왔고 먼젓번 말은 한때 꾸민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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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신라에 가서 김유신을 만나보았는데 유신의 말이 백제와 신라가 서로 원수가 되어 전쟁이 그치지 아니하니, 두 나라 중 한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인데 그러면 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지금의 부귀를 잃고 남의 포로가 될 것이니 원컨대 우리 두 사람이 미리 약속하여 신라가 망하면 유신이 공에 의지해 백제에서 다시 벼슬을 하고 백제가 망하면 공이 유신에게 의지해 신라에서 다시 벼슬을 하기로 합시다. 그러면 두 나라 중 어느 나라가 망하든지 우리 두 사람은 여전히 부귀를 보전할 것이 아니겠소 하는 자기의 뜻을 말씀드려 보라고 하였습니다. ” 임자가 잠자코 아무 말이 없자 조미곤은 송구스러워하며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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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 가서 김유신을 만나보았는데, 유신의 말이 백제와 신라가 서로 원수가 되어 전쟁이 그치지 않으니, 두 나라 중 한 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지금의 부귀를 잃고 남의 포로가 될 것이니, 원컨대 우리 두 사람이 미리 약속하여 신라가 망하면 유신이 공에 의지해 백제에서 다시 벼슬을 하고, 백제가 망하면 공이 유신에게 의지해 신라에서 다시 벼슬을 하기로 합시다. 그러면 두 나라 중 어느 나라가 망하든지 우리 두 사람은 여전히 부귀를 보전할 것이 아니겠소 하는 자기의 뜻을 말씀드려 보라고 하였습니다. 임자가 잠자코 아무 말이 없자 조미곤은 송구스러워하며 물러났다.
제1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며칠 뒤에 임자가 조미곤을 불러 전일에 한 말을 물으므로 조미곤이 다시 유신의 말을 되풀이하고 이어 “나라는 꽃과 같고 인생은 나비와 같은 것인데, 만일 이 꽃이 진 뒤에 저 꽃이 핀다면 이 꽃에서 놀던 나비가 저 꽃으로 옮겨가 사시를 항상 봄처럼 놀아야 할 것이 아닙니 까? 어찌 구태여 꽃을 위해 절개를 지켜 부귀를 버리고 몸을 망치겠습니까?” 하였다. 임자는 원래 부귀에 얼이 빠진 추악한 사나이였으므로 이 말을 달게 여겨 조미곤을 보내 유신의 말에 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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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에 임자가 조미곤을 불러 전날의 말을 묻자, 조미곤은 다시 유신의 말을 되풀이하며 이어서 말했다. "나라는 꽃과 같고 인생은 나비와 같은 것인데, 만일 이 꽃이 진 뒤에 저 꽃이 핀다면 이 꽃에서 놀던 나비가 저 꽃으로 옮겨가 사시를 항상 봄처럼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굳이 꽃을 위해 절개를 지키며 부귀를 버리고 몸을 망치겠습니까?" 하였다. 임자는 본래 부귀에 정신이 팔린 추악한 사내였으므로 이 말을 달게 여겨 조미곤을 보내 유신의 말에 찬성하였다.
제12편번역 대기
원문
유신이 다시 임자에게 “한 나라의 권세를 독차지하지 못하면 부귀가 무슨 뜻이 있겠소? 들으니 백제에는 성충이 왕의 총애를 받아 모든 것이 다 그의 뜻대로만 되고, 공은 겨우 그 아래에서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낸다니 어찌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소?” 하고 백방으로 꾀어 부여 성충을 참소하게 하고, 마침내는 요망한 계집 금화(歸花)를 임자에게 천거하여 백제 왕궁에 들여보내게 해서 부여성충 이하 어진 신하들을 혹은 죽이고 혹은 귀양보내서 백제로써 백제를 망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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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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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장 부여성충(扶餘成忠)의 자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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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부여 성충의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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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화(錦花)와 임자(任子)의 참소와 이간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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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화와 임자가 고소하고 이간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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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는 김유신이 보낸 무당 금화를 미래의 화복과 국가 운명의 길고 짧음을 미리 아는 선녀라 일컬어 의자왕에게 천거하였다. 왕이 이에 혹해서 금화에게 백제 앞날의 길흉을 물었다. 금화는 눈을 감고 한참 있다가 신의 말을 전한다고 “백제가 만일 충신 형제를 죽이지 아니하 면 눈앞에 나라가 망하는 화가 미칠 것이요, 죽이면 천년만년 영원히 국운이 계속되리라.” 하였다. 왕이 말했다. “충신을 쓰면 나라가 흥하 고 충신을 죽이면 나라가 망함은 고금을 통한 이치인데 이제 충신 형제를 죽여야 백제의 국운이 영원할 것이라고 함은 무슨 말이냐?” 금 화가 말했다. “그 이름은 충신이지마는 실은 충신이 아니기 때문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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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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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신 형제란 누구란 말이냐?” 하고 왕이 물으니 금화는 “첩은 다만 신의 비밀한 맹령을 전할 뿐이고 그것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왕은 성충(成忠)과 윤충(允忠) 형제 가 다 이름에 충(忠) 자가 있어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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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형제란 누구인가?" 하고 왕이 묻자 금화는 "첩은 다만 신의 비밀스러운 명을 전할 뿐이고, 그것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왕은 성충과 윤충 형제의 이름에 충(忠) 자가 있어 그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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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는 왕의 성충에 대한 마음이 흔들렸음을 알고 그를 참소하여 내쫓으려고 하였다. 왕이 마침 임자와 한가로이 술을 마시게 되자 임자에 게 물었다. “성충은 어떠한 사람이오?” 임자가 “성충은 재주와 계략이 또래 중에서 뛰어나 전쟁의 승패를 미리 획책하면 백에 한 번도 실 수하는 일이 없고, 남의 뜻을 잘 짐작하며 말솜씨가 있어 이웃나라에 사신으로 가면 임금을 욕되게 하지 아니합니다. 참으로 천하의 기재(奇才) 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재가 있는 만큼 그를 다루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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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는 왕이 성충에게 마음이 흔들렸음을 알고 그를 고발하여 쫓아내려 하였다. 왕이 마침 임자와 한가롭게 술을 마시게 되자 임자가 물었다. "성충은 어떤 사람입니까?" 임자가 말했다. "성충은 재주와 계략이 또래 중에서 뛰어나 전쟁의 승패를 미리 계획하면 백에 한 번도 실수하는 일이 없고, 남의 뜻을 잘 짐작하며 말솜씨가 있어 이웃나라에 사신으로 가면 임금을 욕되게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천하의 기재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재가 있는 만큼 그를 다루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제12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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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들으니 성충이 고구려에 사신으로 갔을 때에 개소문과 친밀해서 개소문더러, ‘고구려에 공이 있고 백제에 성충이 있으니 우리 두 사람이 힘을 합하면 천하에 얻지 못할 것이 있겠소? ’ 하여 엄연히 백제의 개소문을 자처하고, 개소문은 성충에게 ‘나나 공이 아직 대권(大權)을 잡지 못하였음이 한이오. ’ 하며 성충을 매우 후하게 대접했다고 합니다. 성충이 이같이 불측한 마음을 가지고 이웃나라의 권세있는 신하와 정의가 매우 가깝고, 또 그의 아우에 윤충 같은 명장이 있으니, 신은 대왕께서 만세(萬歲)하신 후에는 백제는 대왕 자손의 백제가 아니요 성충의 백제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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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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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왕은 윤충을 파면하여 소환하고 성충을 소홀히 대접하였다. 이 때 윤충은 바야흐로 월주(越州 )에서 장사를 훈련하여 당의 강남(江 南)을 온통 집어 삼키려고 하는 참이었는데 갑자기 참소를 만나 파면 돼서 돌아오니 오래지 않아 월주는 당에게 함락되었다. 그래서 윤충 은 울분하여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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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왕은 윤충을 파면하여 소환하고 성충을 소홀히 대접하였다. 이때 윤충은 바야흐로 월주에서 장사를 훈련하여 당의 강남을 온통 집어삼키려 하는 참이었는데 갑자기 참소를 만나 파면되어 돌아오니 오래지 않아 월주는 당에게 함락되었다. 그래서 윤충은 울분하여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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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충(成忠)의 자살과 그를 따르던 무리들의 축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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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충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쫓겨남
제12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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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충이 죽고 성충도 물리쳐지니 금화는 더욱 기탄없이 의자왕에게 권하여 웅장하고 화려한 왕흥사(王興寺)와 태자궁(太子宮)을 지어 나 라의 재정이 마르게 하고, 백제 산천의 지덕(地德)이 험악하니 쇠로 진압해야 한다고 각처 명산에 쇠기둥 또는 쇠못을 박고 강과 바다에 쇠그릇을 던져넣어 나라 안의 철이 동이 나게하니, 나라 사람들이 금화를 원망하여 ‘불가살’이라 일컬었다. ‘불가살’은 백제 신화(神話)의 ‘쇠 먹는 신’의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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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에 성충이 상소하여 임자와 금화의 죄를 통렬히 논란하였으나 왕의 좌우가 다 임자와 금화의 심복이었으므로 다투어 성충을 참소하기 를 “성충이 대왕의 총애를 잃은 뒤로 늘 울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오늘날 이런 상소를 올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성충을 잡아서 옥에 가두고 좌평 흥수(興首)를 고마미지(古馬彌知 : 지금의 長興)로 귀양보내고, 서부은솔(西部恩率) 복신(福信)을 파면하여 가 두니 이들은 다 성충의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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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성충이 상소하여 임자와 금화의 죄를 통렬히 논하였으나 왕의 좌우가 모두 임자와 금화의 심복이었으므로, 그들은 다투어 성충을 참소하기를 하였다. 이에 "성충이 대왕의 총애를 잃은 뒤로 늘 울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오늘날 이런 상소를 올린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성충을 잡아 옥에 가두고 좌평 흥수(興首)를 고마미지(지금의 장흥)로 귀양 보내고, 서부은솔(西部恩率) 복신(福信)을 파면하여 가 두니 이들은 모두 성충의 무리였다.
제1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성충은 옥중에서 다시 유언의 상소를 올려 “충신은 죽을지라도 임금을 잊지 못하느니 신이 한 말씀 올리고 죽고자 합니다. 신이 천시 (天時)와 인사(人事)를 살피건대, 오래지 않아 전화(戰禍)가 있을 것 입니다. 무릇 군사를 씀에는 지세를 택하여 위쪽에 처해서 적에 대응 해야만 만전(萬全)합니다. 만일 적병이 침입하거든 육로로는 탄현(炭峴)에서 막고, 수로로는 백강(白江)에서 막아 험한 곳에 웅거해 싸워야 합니다.” 하고는 음식을 끊어 28일 만에 죽으니 곧 고구려 태대대로 연개소문이 죽기 한 해 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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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충은 옥중에서 다시 유언의 상소를 올려 "충신은 죽을지라도 임금을 잊지 못하오니, 신이 한 말씀 올리고 죽고자 합니다. 신이 천시와 인사를 살피건대, 오래지 않아 전란이 있을 것입니다. 무릇 군사를 쓸 때는 지세를 택하여 위쪽에 두어 적에 대응해야만 만전합니다. 만일 적병이 침입하거든 육로로는 탄현에서 막고, 수로로는 백강에서 막아 험한 곳에 모여 싸워야 합니다." 하고는 음식을 끊어 28일 만에 죽었으니, 이는 고구려 태대대로 연개소문이 죽기 한 해 전이었다.
제12편번역 대기
원문
탄현은 후세 사람들이 지금의 여산(礪山) 탄현(炭峴)이라 하고, 백강은 지금의 부여(扶餘) 백강(白江)이라고 하지마는 백제가 망할 때 신라 군사가 탄현을 넘고 당의 군사가 백강을 지난 뒤에 계백(階伯)이 황산(黃山 : 지금의 連山 부근)에서 싸우고, 의직(義直)이 부여 앞장에서 싸웠으니 탄현은 지금 보은(報恩)의 탄현이고, 백강은 지금 서천 (舒川) 백마강(白馬江)이 바다로 들어가는 어귀, 흥수(興首)의 이른바 기벌포(伎代浦)이다. (다음 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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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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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4 장 신라 · 당 두 나라 군사의 침입과 붙잡힌 백제 의자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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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신라와 당나라의 군사가 침입하고 사로잡힌 백제의 의자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