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가야
新羅·加耶BC 57 – AD 935문헌 원문 · 번역
조선상고사 제11편 백제 멸망
제1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갓쉰동이 공주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공주는 애쓰지 말라. 돌쇠 한 놈 죽는 것이 무슨 큰일인가 나는 들으니 부처님은 사람을 구할 때에 아버지와 오라버니에게 고한 일이 없다던데- - -.” 공주가 그 말에 얼굴빛이 더욱 변하더니 내전(內殿) 불당에 들어가 기도하고 열쇠로 철책의 문을 열어 갓쉰동이를 내보냈다. 공주가 손목을 잡고 “내가 너를 처음 보았지마는 너를 보내는 데 내 마음도 따라간다. 네 몸은 매같이 휠훨 날아서 가더라도 네 마음일랑 나를 주고 가거라.” “공주가 나를 잊을지언정 내가 어찌 공주를 잊겠는가? ” 하고는 갈길이 바빠 걸음아 날 살려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도망하여 성문을 나와 풀뿌리를 캐먹으면서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 달딸의 국경을 벗어나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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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쉰동이 공주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공주는 애쓰지 말라. 돌쇠라는 놈이 죽는 것이 무슨 큰일인가 나는 들으니 부처님께서는 사람을 구할 때 아버지와 오라버니에게 알린 적이 없다고 하던데-" 공주가 그 말에 얼굴빛이 더욱 변하더니 내전 불당에 들어가 기도하고 열쇠로 철책의 문을 열어 갓쉰동이를 내보냈다. 공주가 손목을 잡고 "내가 너를 처음 보았지만, 너를 보내는 데 내 마음도 함께 간다. 네 몸은 매처럼 훨훨 날아가더라도 네 마음만은 나에게 주고 가거라."라고 했다. "공주께서 저를 잊으실지언정 제가 어찌 공주를 잊겠습니까?" 하고는 갈 길이 바빠 걸음마 날 살려라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도망하여 성문을 나와 풀뿌리를 캐 먹으며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걸어 달딸의 국경을 벗어나 귀국했다.
제11편번역 대기
원문
달딸의 둘째왕자가 돌아와 공주가 갓쉰동이를 사사로이 놓아준 것을 알고 크게 노하여 칼을 빼서 공주의 목을 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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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 이야기는 계속해서 갓쉰동이가 귀국한 뒤에 책문(策文)을 지어 과거에 급제한 일이며 영희와 결혼한 일이며 달딸을 토평한 일이며 그 밖에도 이야기들이 많으나 다 생략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연개소문이 지나를 정탐한 전설의 일단(一段)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갓쉰동 은 곧 개소문(蓋蘇文)이니 개(蓋)는 갓으로 윈고 소문(蘇文)은 쉰으로 읽을 것이며, 국혜는 곧 남생(男生)의 묘지(墓誌)에 보인 개소문의 아버지 태조(太祚)니, 하나는 그 이름이고 하나는 그 자(字)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국혜가 혹 소설의 작자가 사사로이 지은 이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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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계속해서 갓쉰동이가 귀국한 뒤에 책문을 지어 과거에 급제한 일이며 영희와 결혼한 일이며 달딸을 토평한 일이며 그 밖에도 이야기들이 많으나 다 생략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연개소문이 지나를 정탐한 전설의 일단으로 믿는다. 왜냐하면 갓쉰동은 곧 개소문이니, 개는 갓으로 읽고 소문은 쉰으로 읽을 것이며, 국혜는 곧 남생의 묘지에 보인 개소문의 아버지 태조니, 하나는 그 이름이고 하나는 그 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국혜가 혹 소설의 작자가 사사로이 지은 이름일 것이다.
제1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달딸국왕은 곧 당고조(唐高祖)요 둘째 왕자는 곧 당고조의 둘째 아들 태종이니, 어찌하여 당고조와 태종을 달딸왕이라 달딸왕자라 하였는가 하면 이는 여러 백 년 이래 사대주의파의 세력에 눌려 언문책(諺文冊) 이라고 천대하던 우리 글로 쓴 여염집 부녀자가 읽는 책에서도 당당히 지나 대륙의 정통 제왕을 공격 혹은 비난하지 못하였으므로, 당(唐)을 달딸로 당고종을 달딸국왕으로 태종을 달딸국 둘째 왕자로 고친 것이다. 연개소문이 병력으로 그 임금과 대신과 가족 등 수백 명을 죽인 사실이 왜 갓쉰동전에 빠졌는가? 이것도 구소설의 권선징악(勳善徵惡)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여 고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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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딸국왕은 곧 당고조요 둘째 왕자는 곧 당고조의 둘째 아들 태종이니, 어찌하여 당고조와 태종을 달딸왕이라 달딸왕자라 하였는가 하면 이는 여러 백 년 이래 사대주의파의 세력에 눌려 언문책이라고 천대하던 우리 글로 쓴 여염집 부녀자가 읽는 책에서도 당당히 지나 대륙의 정통 제왕을 공격하거나 비난하지 못하였으므로, 당(唐)을 달딸로, 당고종을 달딸국왕으로, 태종을 달딸국 둘째 왕자로 고친 것이다. 연개소문이 병력으로 그 임금과 대신과 가족 등 수백 명을 죽인 사실이 왜 갓쉰동전에 빠졌는가? 이것도 구소설의 권선징악주의에 위배된다 하여 고친 것이다.
제11편번역 대기
원문
연개소문의 시대에는 조선에 과거(科學)가 없던 시대라 책문(策文) 을 지어 과거에 급제한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과거에 급제한 이를 천선(天仙)같이 본 이조의 습관에 의해 덧붙인 것이다. 갓쉰동전은 이 같이 옛 전설을 고치고 새 관념으로 첨삭하여 지은 소설이니 그 본래 것의 신용가치의 여하를 말할 수 없음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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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규염객전과 갓쉰동전 두 책의 기록이 좀 다른데, 이제 두 책의 기록의 진위(眞僞)를 추론하건대, 이때에 고구려가 새로 수양제(隋煬帝) 의 수백만 군사를 대파하여 전 지나가 크게 놀라 떨고, 당고조(唐高祖)의 부자는 수양제 치하(治下)에 있는 태원(太原)의 소공국(小公國) 이요, 이정(李靖)은 태원의 한 작은 벼슬아치였다. 태원이 옛날부터 많이 고구려의 침략을 받던 지방이므로 더욱 고구려 사람을 경계하였을 것이며, 당태종은 안으로 전 지나를 평정하고 밖으로 고구려를 토멸할 야심을 가져 늘 고구려나 고구려 사람들의 행동을 주목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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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염객전과 갓쉰동전 두 책의 기록이 좀 다른데, 이제 두 책의 기록의 진위(眞僞)를 추론하건대, 이때에 고구려가 새로 수양제의 수백만 군사를 대파하여 전 지나가 크게 놀라 떨고, 당고조의 부자는 수양제 치하에 있는 태원의 소공국이요, 이정은 태원의 한 작은 벼슬아치였다. 태원이 옛날부터 많이 고구려의 침략을 받던 지방이므로 더욱 고구려 사람을 경계하였을 것이며, 당태종은 안으로 전 지나를 평정하고 밖으로 고구려를 토멸할 야심을 가져 늘 고구려나 고구려 사람들의 행동을 주목하였을 것이다.
제1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래서 당태종은 여러 노복들 중에서 변장한 고구려 사람 연개소문을 발견한 것이니 얼마나 놀랐으랴? 하물며 당서(唐書)에도 연개소문은 모습이 괴이하고, 의기가 호매(豪邁)하다고 하였으니, 당태종이 이를 발견하자 곧 자기네 장래의 강적이 자기네 수중에 잡혔음을 알고 비상한 요행으로 여겼을 것이고, 또한 얼마나 좋아하였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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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당태종은 여러 노복들 중에서 변장한 고구려 사람 연개소문을 발견했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하물며 『당서』에도 연개소문이 모습이 괴이하고 의기가 호방하다고 했으니, 당태종이 이를 발견하자 곧 자신의 미래의 강적이 자기 손에 잡혔음을 알고 비상한 요행으로 여겼을 것이고, 또한 얼마나 기뻐했겠는가.
제11편번역 대기
원문
그 놀라움, 그 좋아함 끝에 반드시 죽이려고 하였을 것도 불을 보는 것과 같이 명확한 사실일 것이다. 이치로 미루어보아 갓쉰동전은 믿을 만한 점이 많고, 신구 두 당서에 당태종의 말을 기록하여 “개소문 은 방자하다. ” “개 소문은 감히 나오지 못하였다. ” “개 소문은 이리 같 은 야심- - -.” 이라고 한 말들이 비록 개소문을 미워한 말이지마는 반 면에 개소문을 꺼렸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위공병서(李衛公兵書)에 “막리지(寞離支) 개소문은 스스로 군사병법을 안다고 하였다.”고 한 문구가 또한 개소문을 모멸하였다느니 보다 두려워 공경한 뜻이 엿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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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런데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만나보고 영기(英氣)에 눌려 동으로 나왔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두 기록을 대조해봄에 있어 규염객전 은 의심할 만한 점이 많으므로, 본서에는 규염객전을 버리고 갓쉰동전을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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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만나보고 영기에 눌려 동쪽으로 나왔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두 기록을 대조해 보니 규염객전은 의심할 만한 점이 많으므로, 본서에는 규염객전을 버리고 갓쉰동전을 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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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개소문 귀국 후의 내외 정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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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돌아간 후의 안팎의 정세는
제11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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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지나로부터 귀국한 것은 대개 기원후 616년( ? )경이다. 연 태조(淵太祚) 부부는 등에 새긴 이름을 증거삼아 아들을 찾았고, 만리 밖 미혼부(未婚夫)를 기다리던 유씨 집의 영희는 신랑을 맞아 한때 기이한 이야기로 고구려 국내에 널리 퍼졌다고 하였다. 이는 다 역사적 사실이 될 것이 못 되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거니와 개소문이 귀국한 뒤에 수(隋)의 양제(煬帝)는 신하 우문화급(宇文化及 : 살수에서 패해 돌아간 장군 宇文述의 아들)에게 참살당하고, 군웅(群雄)이 우우 일어나 서로 힘을 다투어 지나 전국이 끓는 물같이 부글부글하다가 오래 지 않아 앞에서 말한 당공(唐公) 이연(李淵)의 아들 이세민(李世民 : 곧 당태종)이 아버지 이연을 협박하여 또한 반란군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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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오히려 수(隋)에 대하여 신하의 예를 취하다가 마침내 군웅을 말끔히 토멸하고는 드디어 아버지 연을 추대하여 당황제 (唐皇帝)를 삼고 또 오래지 아니하여 당태종은 형 건성(建成)과 아우 원길 (元吉)이 권력 다툼함을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건성 · 원길을 죽이고 아버지 연을 협박하여 황제의 자리를 빼앗아 스스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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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오히려 수나라에 대하여 신하의 예를 취하다가 마침내 군웅을 깨끗이 토벌하고는 드디어 아버지 연을 추대하여 당황제를 삼았고, 또 오래지 않아 당태종은 형 건성과 아우 원길이 권력 다툼하는 것을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건성과 원길을 죽이고 아버지 연을 협박하여 황제의 자리를 빼앗아 스스로 섰다.
제1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연호를 정관(貞觀)이라 하고 15년 동안이나 정치와 전쟁에 애쓰며 이름난 신하와 어진 재상을 등용하여 여러 가지 문화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국가 사회주의를 행하여 국내의 땅들을 모두 공전(公田)으로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대략 공정하게 분배하였으며, 16위(衛)를 세우고 고구려의 징병제(徵兵制)를 참작하여 상비군 이외에 예비병을 두어 전국 백성이 해마다 농사의 여가에 말타고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이정(李靖) 후군집(候君集) 등 여러 장수들을 내보내서 돌궐(突厥)---지금의 내몽고와 철륵(鐵勒)의 여러 부(部)--- 지금의 외몽고와 토독혼(묘 짜軍)---지금의 티베트를 정복하여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이 다 혁혁하니 이것이 지나사에 가장 떠드는 정관의치(貞觀之治)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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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를 정관이라 하고 15년 동안이나 정치와 전쟁에 애쓰며 이름난 신하와 어진 재상을 등용하여 여러 가지 문화사업을 크게 일으키고, 국가 사회주의를 행하여 국내의 땅들을 모두 공전으로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대략 공정하게 분배하였으며, 16위(衛)를 세우고 고구려의 징병제를 참작하여 상비군 이외에 예비병을 두어 전국 백성이 해마다 농사의 여가에 말타고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이정과 후군집 등 여러 장수들을 내보내서 돌궐---지금의 내몽고와 철륵---지금의 외몽고와 토독혼---지금의 티베트를 정복하여 문치와 무공이 다 혁혁하니 이것이 지나사에 가장 떠드는 정관지치라는 것이다.
제11편번역 대기
원문
그러면 연개소문이 귀국한 이듬해 수가 망한 뒤로부터 정관 15년까지 26년 동안 고구려의 내정은 어떠하였던가? 왕의 아우 건무는 을지 문덕과 함께 수의 군사를 쳐 물리친 두 대원훈(大元勳)이지만, 을지문덕은 북진남수(jE隻南守) 주의를 지키고 건무는 북수남진(北守南進) 주의를 주장하여 두 사람이 서로 정견을 달리했는데, 영양왕(영陽王)이 돌아가고 건무가 즉위 (기원후 618년)하고부터는 더욱 북수남진 주의를 굳게 지켜 수 · 당이 일어나고 망하는 사이에 을지문덕 일파의 여러 신하들이 그 기회를 타서 북으로 강토를 늘리자고 주장했으나 왕이 억제하여 듣지 아니하고, 당에 사자를 보내서 화호(和好)를 맺고 수의 말기에 사로잡은 지나인을 다 돌려보내고 장수왕(長壽王)의 남진정책을 다시 써서 자주 군사를 내어 신라와 백제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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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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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이를 반대하고 “고구려의 우환이 될 것은 당이지 신라와 백제가 아니다. 지난날에 신라와 백제가 동맹하여 우리 나라의 땅을 침노해 빼앗은 일이 있으나 이제는 형편이 이미 변하여 신라와 백제가 서로 원수로 여김이 이미 깊어져서 여망(餘望)이 없으니, 국가에서 남쪽에는 견제책(牽制策)을 써서 신라와 동맹하여 백제를 막거나 백제와 동맹하여 신라를 막거나, 두 계책 중에서 하나를 쓰면 두 나라가 서로 싸우는 통에 우리 나라는 남쪽의 걱정이 없게 될 것이니 이 틈을 타서 당과 결전하여 다투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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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이를 반대하며 "고구려의 우환은 당이지 신라와 백제가 아니다. 지난날에 신라와 백제가 동맹하여 우리 나라 땅을 침범하고 빼앗은 일이 있으나, 이제는 형세가 이미 변하여 신라와 백제가 서로 원수지간이 된 것이 깊어져서 더 이상 바라볼 바가 없으니, 국가에서 남쪽에는 견제책을 써서 신라와 동맹하여 백제를 막거나, 혹은 백제와 동맹하여 신라를 막는 등 두 계책 중 하나를 쓰면 두 나라가 서로 싸우게 되어 우리 나라는 남쪽의 걱정이 없어질 것이니, 이 틈을 타서 당과 결전하여 다투는 것이 옳다."
제1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서쪽 나라는 우리 나라와 언제나 양립하지 못할 나라이니 이것은 지나간 일에 경험하여 보아도 분명한 것이므로 국가에서 왕년에 몇백만 수나라 군사를 격파했을 때 곧 대군을 내어 토벌하였더라면 그 평정이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쉬웠을 것인데, 그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를 잃었음이 이미 뜻있는 이의 통분히 여기는 바요, 오늘날도 좀 늦기는 하였으나 저네의 형제가 화목하지 아니하여 건성은 세민을 죽이려 하고 세민은 건성을 죽이려 하는데, 이연(李淵)이 혼암(昏暗)하여 두 사람 사이에서 어찌하지 못하니 이러한 판에 만일 우리가 대군으로 저네를 치면 건성이 모반하여 우리에게 붙거나, 세민이 모반하여 우리에게 붙을 것이요, 설혹 그렇지 못할지라도 저네가 수의 말년에 우리에게 크게 패하고, 또 여러 해 난리가 뒤를 이어 백성의 힘이 아직 회복되지 못하였으므로 반드시 전쟁을 할 여력이 없을 것이니 이것도 비상한 좋은 기회이거니와 만일 저네 두 형제 중 한 사람이 패해 죽고 한 사람이 전권(專權)하여 세력이 통일된 뒤에 폐정(廳政)을 고치고 군제(軍制)를 바로잡아 우리 나라를 침범하면 땅의 크기와 백성의 많기가 다 저네에게 미치지 못하는 데, 고구려가 무엇으로 저네에게 대항할 것인가? 국가 흥망의 기틀이 여기에 있는데 모든 신하와 장수들이 이를 아는 이가 없으니 어찌 한심하지 아니하랴?” 하여 극력 당의 정벌을 주장하였으나 영류왕 (榮留王)과 다른 신하들이 이를 듣지 아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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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 나라는 우리 나라와 언제나 함께할 수 없는 나라니, 이는 지나간 일에서 경험해 보아도 분명한 것이므로 국가가 왕년에 몇백만 수나라 군사를 격파했을 때 대군을 내어 토벌했더라면 그 평정이 손바닥 뒤집는 것같이 쉬웠을 것이다. 그러한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를 잃은 것은 이미 뜻있는 이들이 통탄하는 바이다. 오늘날도 조금 늦기는 하였으나, 저들의 형제가 화목하지 않아 건성은 세민을 죽이려 하고 세민은 건성을 죽이려 하는데, 이연이 혼란하여 두 사람 사이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이러한 판에 만일 우리가 대군으로 저들을 치면 건성이 모반하여 우리에게 붙거나, 세민이 모반하여 우리에게 붙을 것이요. 설혹 그렇지 못할지라도 저들이 수의 말년에 우리에게 크게 패하고, 또 여러 해 난리가 뒤를 이어 백성의 힘이 아직 회복되지 못하였으므로 반드시 전쟁을 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이것 또한 비상한 좋은 기회이다. 만일 저들 두 형제 중 한 사람이 패해 죽고 한 사람이 전권을 잡아 세력이 통일된 후에 정치를 바로잡고 군제를 고쳐 우리 나라를 침범한다 하더라도, 땅의 크기와 백성의 많기가 모두 저들에게 미치지 못하는데, 고구려가 무엇으로 저들에게 대항할 수 있겠는가? 국가 흥망의 기틀이 여기에 있는데 모든 신하와 장수들이 이를 아는 이가 없으니 어찌 한심하지 아니하랴?” 하여 극력 당나라 정벌을 주장하였으나 영류왕과 다른 신하들이 이를 듣지 않았다.
제11편번역 대기
원문
기원후 626년에 이르러 세민(世民 : 당태종)이 그 무덕(武德) 9년에 아버지의 황제의 자리를 빼앗을 때 신라와 백제에 사신을 보내 서로 전 쟁을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오래지 않아 다시 을지문덕의 전승 기념 으로 쌓은 경관(京觀)이 두 나라 평화에 장애가 된다 하여 철회를 요 구해왔다. 영류왕은 크게 놀라 오래지 않아 당의 침입이 반드시 있을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오히려 북수남진의 정책을 그대로 지켜 남쪽 의 침략을 그만두지 않는 동시에 국내의 남녀를 징발하여 북부여성 (北扶餘城)에서 지금의 요동반도(遼東半島) 남쪽 끝까지 1천여 리의 장성을 16년이나 두고 쌓으니 그 역사(役事)가 전쟁보다 더 거창하여, 남자는 농사를 짓지 못하고 여자는 누에를 쳐 길쌈을 하지 못하여 국력이 크게 피폐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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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삼국유사에는 그 장성을 연개소문의 주청(奏請)에 의해 쌓은 것이라고 하였으나 이것은 “연개소문이 노자상(老子像)과 도사(道士)를 청해왔다.”고 하는 말과 한가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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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는 그 장성을 연개소문의 주청에 의해 쌓았다고 하였으나, 이는 "연개소문이 노자상과 도사를 청해왔다"는 말과 같은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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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연개소문의 혁명과 대살육(大殺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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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개소문이 일으킨 혁명과 큰 살육
제11편번역 대기
원문
기원후 646년경에 서부(西部)의 살이(薩伊) 연태조(淵太祚)가 죽으니 아들 연개소문이 살이의 직위를 물려받게 되었다. 그러나 연개소문이 늘 격렬하게 당을 치기를 주장하므로, 영류왕과 모든 대신과 호족(豪族)들은 다 연개소문을 평화를 파괴할 인물이라고 위험시하여 그가 직위 물려받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니 이는 곧 연개소문의 정치 생명 을 끊어버리는 것이었다. 연개소문은 자기의 소신이 아주 굳어서 “내가 아니면 고구려를 구할 사람이 없다.” 하고 자처하는 인물이었지만 또한 어릴 때 타향과 외국에서 두 번이나 종 노릇한 경력이 있어 굽혀야 할 때 굽힐 줄을 아는 의지가 굳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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