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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야

新羅·加耶BC 57 – AD 935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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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11편 백제 멸망 朝鮮上古史 第11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165개 · 번역 확정 0개
제11편문단 10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게다가 요동은 날씨가 일찍 추워지므로 만일 가을 바람에 풀이 마르면 소· 말·양들을 먹일 수가없어 굶어 죽을 것이었다. 당태종은 크게 당황하여 강하왕 도종에게 명하여 안시성의 동남쪽에 토정을 쌓게 하였다. 흙으로 나뭇가지를 싸서 층층이 쌓아올라고 중간에 길 다섯을 내어 왕래케 해서 l0일 동안의 품과 50만의 돈을 들이고군사 수만 명이 날마다 6,7번을 번갈아 교전하여 죽고 상하는 자가 적지 아니하였다.
번역
게다가 요동은 날씨가 일찍 추워져 가을바람에 풀이 마르면 소와 말과 양들을 먹일 수 없어 굶어 죽을 것이었다. 당태종은 크게 당황하여 강하왕 도종에게 명하여 안시성의 동남쪽에 토정을 쌓게 하였다. 흙으로 나뭇가지를 싸서 층층이 쌓아 올리다가 중간에 길 다섯을 내어 왕래하게 하여 열흘 동안의 품과 오십만 돈을 들였고 군사 수만 명이 날마다 여섯, 일곱 번씩 번갈아 교전하여 죽거나 상하는 자가 적지 않았다.
제11편문단 10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토산이 이루어지자 산위에서 포석(抛石 : 돌을 던지는 기구)과 당거(撞車 : 냄다 질러 파괴하는 수레)를 굴려 성을 무너뜨리니 성 안에서는 무너진 곳에 목책(木冊)을 세워서 막았으나 당할 수가 없는지라 양만춘이 결사대 100명을 뽑아 성이 무너진 곳으로 갑자기 내달아 당의 군사를 쳐 물리치고 토산을 빼앗아 산 위의 포석과 당거를 차지하여 이것으로 도리어 산 위의 당의 군사를 치니 당태종이 달리 계책이 없어 군사를 철퇴시키려고 하였다.
번역
토산이 이루어지자 산 위에서 돌을 던지는 기구와 냄다 질러 파괴하는 수레를 굴려 성을 무너뜨렸으니, 성 안에서는 무너진 곳에 목책을 세워 막았으나 당할 수가 없었다. 이에 양만춘이 결사대 백 명을 뽑아 성이 무너진 곳으로 갑자기 내달려 당의 군사를 치 물리치고 토산을 빼앗았다. 또한 산 위의 돌 던지는 기구와 냄다 질러 파괴하는 수레까지 차지하여 이것으로 도리어 산 위의 당의 군사를 치니, 당태종은 달리 계책이 없어 군사를 철퇴시키려고 하였다.
제11편문단 103번역 대기
원문
연개소문은 요동의 싸움을 양만춘 · 추정국 두 사람에게 맡기고 정병 3만으로 적봉진(未峰鎭)---지금의 열하(熱河) 부근으로 나가 다시 남으로 나아가 장성(長城)을 넘어 상곡(上谷)---지금의 하간(河間) 등지를 습격하니 당의 태자 치 (治)가 어양(漁陽)에 머물러 있다가 크게 놀라 급함을 알리는 봉화를 들어 햇불이 하룻밤에 안시성까지 연락되었다. 당태종은 곧 임유관(臨유關) 안에 변란이 일어났음을 알고 곧 군사를 돌이키려고 하였다. 오골성주 추정국과 안시성주 양만춘은 그 봉화로 연개소문이 이미 목적지에 이르렀음과 당태종이 장차 도망할 것을 짐작하고 추정국은 전군을 거느리고 안시성 동남쪽 좁은 골짜기로 몰려나와서 당의 군사를 돌격하고, 양만춘은 성문을 열고 급히 내달아 공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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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문단 10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당의 군사가 크게 어지러워져서 사람과 말이 서로 짓밟으며 도망했다. 당태종은 헌우란(헌芋란)에 이르러 말이 수렁에 빠져서 꼼짝을 못하고, 양만춘의 화살에 왼쪽 눈을 맞아 거의 사로 잡히게 되었는데, 당의 용장 설인귀(薛仁貴)가 달려와서 당태종을 구하여 말을 갈아태우고, 전군(前軍)의 선봉 유홍기 (劉弘基)가 뒤를 끊고 혈전을 벌여서 당태종은 가까스로 달아났다. 성경통지(盛京通志) 해성고적고(海城古蹟考)의 ‘당태종의 말이 빠진 곳(唐太宗陷馬處)’이란 것이 곧 그곳이니, 지금까지도 그곳 사람들에게 “말이 수렁에 빠지고 눈에 화살을 맞아 당태종이 사로잡힐 뻔하였다. ” 하는 이야기가 전 해져오고 있다.
번역
당나라 군사들이 크게 어지러워져서 사람과 말이 서로 짓밟으며 도망했다. 당태종은 헌우란에 이르러 말이 수렁에 빠져서 꼼짝 못하게 되었고, 양만춘의 화살에 왼쪽 눈을 맞아 거의 사로잡힐 뻔했는데, 당나라 용장 설인귀가 달려와 당태종을 구하여 말을 갈아태웠으며, 전군의 선봉 유홍기가 뒤를 끊고 혈전을 벌여서 당태종은 가까스로 달아났다. 성경통지 해성고적고의 ‘당태종의 말이 빠진 곳’이란 것이 곧 그곳이니, 지금까지도 그곳 사람들에게 “말이 수렁에 빠지고 눈에 화살을 맞아 당태종이 사로잡힐 뻔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제11편문단 105번역 대기
원문
양만춘 등이 당태종을 추격하여 요수(遼水)에 이르러 허다한 당의 장사를 목베고 사로잡으니 요택에 이르러 당태종은 말을 몰아 수렁에 처넣어 다리를 삼아서 밟고 건너갔다. 10월에 임유관에 이르러서는 연개소문이 당군의 돌아갈 길을 끊고, 뒤에서는 양만춘이 몹시 급히 추 격하니 당태종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자 마침 눈바람이 크게 일어 천지가 아득해져서 지척을 분별할 수 없이 되어 양편 사람과 말이 서로 엎드러지고 자빠지고 하여 크게 혼란해지니 당태종이 이 기회에 도망하여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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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문단 106번역 대기
원문
안시성 싸움은 또한 동양 고사상(古史上)의 큰 전쟁이라, 비록 숫자 상의 군사는 살수싸움에 미치지 못하지마는그러나 피차의 방략이 용의주도함과 군대의 정예 (精銳)함과 물자의 소모는 살수 싸움보다 더 했으며 싸움을 한 시일도 그보다 갑절이었다. 이 싸움이 곧 두 민족의 운명을 결정짓게 한 전쟁이었는데도 당사(唐史)의 기록은 거의가 사리에 모순된다. 이를테면 1) 백제는 고구려의 동맹국이었는데도 당사에는“백제가 금휴개(金휴鎧:검게 윷칠한갑옷)를 바쳐서 전군이 이것을 입고 출전하니 갑옷이 햇빛에 찬란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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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문단 10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 하였으니, 고구려의 동맹국인 백제가 도리어 적국인 당의 군사에게 무장을 제공한 것이 아닌가? 2) 당군의 패망은 곧 양식의 결핍에 원인이 있었는데 당의 역사에는 당태종이 백암성(白巖城) 등을 깨뜨리고 양식 10만 섬 혹은 50만 섬을 얻었다고 하였으니 그들이 운반해온 양식 이외에 얻은 양식이 또한 적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3) 연개소문이 영류왕(榮留王)과 수많은 호족(豪族)틀을 죽이고는 연씨(淵氏)네 무리를 써서 중 요한 직위에 두어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오던 벌족정치(閥族政治)를 타파하고 정권을 통일하였는데, “당태종이 안시성에 이르니 북부누살 (北部누薩) 고연수(高延壽)와 남부욕살 고혜진(高惠眞)이 고구려 · 말 갈(靺鞨 : 濊)의 군사 15만 6천8백 명을 거느리고 와서 안시성을 구원 하였다.
번역
고하였으니, 고구려의 동맹국인 백제가 오히려 적국인 당나라 군사에게 무장을 제공한 것이 아닌가? 당군의 패망은 곧 양식 부족이 원인이었는데, 당의 역사에는 당태종이 백암성 등을 깨뜨리고 양식 십만 섬 혹은 오십만 섬을 얻었다고 하였으니 그들이 운반해 온 양식 외에 얻은 양식이 또한 적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연개소문이 영류왕과 수많은 호족의 가문을 죽이고는 연씨 무리를 써서 중요한 직위에 두어 오래전부터 시행되어 오던 벌족정치를 타파하고 정권을 통일하였는데, "당태종이 안시성에 이르니 북부누살 고연수와 남부욕살 고혜진이 고구려와 말갈의 군사 십오만 육천팔백 명을 거느리고 와서 안시성을 구원하였다."
제11편문단 10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 했으니, 왕족 고씨(高氏)가 오히려 남북 두 부(部)를 근거 지로 하여 살이 (薩伊)의 중요한 임무를 맡아 군사 수십만을 가졌다니 연개소문의 혁명 이후에 고구려의 상황이 어찌 그러하였을 것인가? 4) 안시성은 곧 환도성(丸都城)으로 고구려 삼경(三京)의 하나로써 해륙(海陸)의 요충이니 개소문이 혁명한 뒤에 이 땅을 다른 파에게 줄 수 없을 것인데, 당의 역사에 “안시성주(양만춘)가 재주와 용기가 있고 성이 험하고 양식이 풍족하므로 막리지(연개소문)의 난에 웅거해 지켜서 항복하지 아니하므로 막리지가 그 성을 주었다.
번역
고했으니, 왕족 고씨가 오히려 남북 두 부를 근거지로 삼아 살이의 중요한 임무를 맡아 군사 수십만을 가졌다니 연개소문의 혁명 이후에 고구려의 상황이 어찌 그러하였을까? 안시성은 곧 환도성으로 고구려 삼경 중 하나로서 해륙의 요충지이니 개소문이 혁명한 뒤에 이 땅을 다른 파에게 줄 수 없을 터인데, 당의 역사에 "안시성주 양만춘이 재주와 용기가 있고 성이 험하고 양식이 풍족하므로 막리지 연개소문의 난에 웅거하여 지켜 항복하지 아니하므로 막리지가 그 성을 주었다."
제11편문단 109번역 대기
원문
”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그때에 고구려가 몇 개의 나라로 나뉘어 있었던 것인데 어찌 하나로 단결하여 수십만의 당군을 막았을까? 평양 공격의 계책은 수의 양제가 패해 망한 것인데, 당의 역사에 “이정(李靖)이 이 계책이 쓰이지 아니한 것을 패전의 첫째 원인으로 삼고, 당태종도 또한 이를 후회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오래지 않은 양제의 일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이와같이 사실에 모순되는 기록이 많은 것은 무슨 까닭인 가? 대개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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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문단 11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1) 사방의 모든 나라를 다 당의 속국으로 보는 주관적 자존심에 몰리어 사관(史官)들이 항상 높은 이를 위해 숨기고, 친한 이를 위해 숨기고 중국을 위해 숨기는 이른바 춘추필법으로 기록한 때문이니 백제가 고구려의 동맹국임이 객관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첫째 조항의 망발을 하였고,
번역
사방의 모든 나라를 당나라의 속국으로 보는 주관적인 자존심 때문에 사관들이 항상 높은 사람을 위해 숨기고, 친한 사람을 위해 숨기고 중국을 위해 숨기는 이른바 춘추필법으로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백제가 고구려의 동맹국이라는 객관적인 사실에도 불구하고 첫째 조항에서 망발하였다.
제11편문단 11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2) 요동성 · 개평성 등을 차례로 점령하게 한 것이 연개소문의 예정한 전략에 빠진 것임을 숨기기 위하여 그 노획품이 많았음을 과장하다 가 둘째 조항의 위증(僞證)을 하게 된 것이고,
번역
요동성이나 개평성 등을 차례로 점령하게 한 것이 연개소문의 계획에 짜인 것임을 숨기기 위해 그 노획품이 많았음을 과장하다가 둘째 조항의 거짓 증언을 하게 된 것이다.
제11편문단 112번역 대기
원문
3) 당태종이 패해 달아난 것을 승리한 것으로 뒤집어 꾸미다가 고씨(高氏)의 천하가 이미 연씨(淵氏)의 천하가 된 것을 잊고 문득 15만 대군을 가진 고연수 · 고혜진 두 누살이(누薩伊)가 투항했다는 셋째 조항의 망령된 조작이 있게 된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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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문단 11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4) 당태종이 수십만 대군으로 4,5달에 한낱 안시의 외로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수치를 가려 숨기기 위해 “안시성은 곧 당태종이 공략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본국 고구려의 대권(大權)을 잡은 연개소문 도 어찌하지 못하였다.”는 넷째 조항의 기록을 남겼고,
번역
당 태종이 수십만 대군으로 4, 5달에 안시성의 외로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한 치욕을 감추기 위해 "안시성은 당 태종이 공략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본국 고구려의 대권을 잡은 연개소문도 어찌하지 못하였다"는 네 번째 조항의 기록을 남겼다.
제11편문단 11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5) 당이 고구려에게 패한 것은 여러 가지 계책이나 사람이 모자람에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묘한 계책이 있어도 쓸 수 없었던 때문이라 하여 “이도종(李道宗 : 江夏王)이 평양의 허를 찔러 공격하자고 하였다.” 하는 다섯째 조항의 어리석은 말이 있게 된 것이다. 이상은 대강을 말한 것이거니와 자세히 상고해보면 거의가 다 이러 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제 당의 역사를 좇지 않고 해상잡록 · 성경통지(盛京通志) 및 동삼성(東三省) 사람들의 전설 등을 재료로 하여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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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가 고구려에게 패한 것은 여러 가지 계책이나 사람이 모자람에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어떠한 기묘한 계책이라도 쓸 수 없었던 까닭이 있어서 "이도종(李道宗 : 강하왕)이 평양의 허를 찔러 공격하자고 하였다"는 다섯 번째 조항의 어리석은 말이 있게 된 것이다. 이상은 대강을 말한 것이니, 자세히 상고해보면 거의가 다 이러 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제 당나라의 역사를 따르지 않고 해상잡록·성경통지 및 동삼성 사람들의 전설 등을 재료로 하여 기록하였다.
제11편문단 115번역 대기
원문
=== 화살 독으로 인한 당 태종의 사망과 연개소문이 당 정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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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문단 11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당태종이 양만춘의 화살에 눈이 빠졌음은 모든 인사들의 전설이 되고 시인의 음영(吟詠)에는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정관음(貞觀吟) 에 올라 “이는 주머니 속의 물건이라더니만 눈이 화살에 떨어질 줄 뉘 알았으랴. (謂是囊中-物耳那知玄花落白羽)”라고 하였고, 노가재 (老稼齎) · 김창흡(金昌翕)의 천산시(千山詩)에는 ‘천추에 대담한 양만춘 이 규염(규髥)의 눈동자 쏘아 떨어뜨렸네(千秋大膽楊萬春 箭射규髥落 眸子)”라 하였으며 그 밖에도 이런 시가 많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삼국 사기 동국통감(東國通鑑) 등 역사책에는 당시의 전황에 관해 당서(唐 書)에서 뽑아 기록하였을 뿐 이러한 말이 없다. 이는 사대주의파 사학자들이 고대 우리 나라의 외국에 대한승리의 기록을 모두 삭제해버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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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이 양만춘의 화살에 눈이 빠졌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전설이 되었고, 시인들은 목은 이색의 정관음(貞觀吟)에 올라 “이는 주머니 속 물건이라더니만 눈이 화살에 떨어질 줄 누가 알았으랴. (謂是囊中-物耳那知玄花落白羽)”라고 하였으며, 노가재와 김창흡의 천산시에는 ‘천추에 대담한 양만춘이 규염의 눈동자를 쏘아 떨어뜨렸네(千秋大膽楊萬春 箭射규<0xE9><0xAB><0xA5>落 眸子)’라고 하였고, 그 밖에도 이런 시가 많다. 그러나 우리 나라 삼국사기나 동국통감 같은 역사책에는 당시의 전황에 관해 당서에서 뽑아 기록했을 뿐 이러한 말은 없다. 이는 사대주의파 사학자들이 고대 우리나라의 외국에 대한 승리 기록을 모두 삭제했기 때문이다.
제11편문단 11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것을 지나의 역사책에 상고해보건대 구당서(舊唐書) 태종본기 (太宗本記) · 신당서 (新唐書) · 자치통감(資治通鑑) 이 세 가지 에 당태종의 병에 대한 진단 기록이 서로 달라서, 하나는 당태종이 내종(內腫)으로 죽었다고 했고 또 하나는 한질(寒疾)로 또 하나는 이질 로 죽었다고 하여 일대에 전 지나에 군림한 만승황제(萬乘皇帝)가 죽은 병이 늑막염인지 장티푸스인지 모르도록 모호하게 기록한 것은 대 개 고구려인의 독화살에 죽은 치욕을 숨기려다가 이같이 모순된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러나 요동에서 얻은 병이라 함은 모든 기록이 일치 하니 양만춘의 화살 독으로 인하여 죽은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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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지나의 역사서에 상고해보건대 구당서 태종본기, 신당서, 자치통감 이 세 가지에 당태종의 병에 대한 진단 기록이 서로 달라서, 하나는 당태종이 내종으로 죽었다고 했고 또 하나는 한질로, 또 하나는 이질로 죽었다고 하여 일대에 전 지나에 군림한 만승황제가 죽은 병이 늑막염인지 장티푸스인지 모르도록 모호하게 기록한 것은 대 개 고구려인의 독화살에 죽은 치욕을 숨기려다가 이같이 모순된 기록을 남긴 것이다. 그러나 요동에서 얻은 병이라 함은 모든 기록이 일치하니 양만춘의 화살독으로 인하여 죽은 것이 분명하다.
제11편문단 118번역 대기
원문
이것은 송 (宋)의 태종(太宗)이 태원(太原)에서의 화살의 상처로 인하여 그 독이 해마다 재발하다가 3년 만에 죽은 것을 송사(宋史)에 숨겼음과 같은 것이니,(陳霆의 兩山墨談에 보임) 이 뒤 신라와 당의 동맹이 더욱 공고하였음과 당의 안녹산(安祿山) ·사사명(史思明)의 난과 번진(藩鎭) 의 발호(跋扈)가 어느 것이고 당태종이 고구려의 독한 화살에 맞아 죽은사건과 관계없는데, 이제 이를 가려 숨겨서 역사적 사실의 기인(起因)을 모르게 하였으니 춘추필법의 해독이 또한 심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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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편문단 11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연개소문이 지나에 침입한 사실도 기록에는 보이지 아니하지마는 지금의 북경(北京) 조양문(朝陽門) 밖 7리 되는 황량대(황糧臺)를 비롯하여 산해관(山海關)까지 이르는 사이에 황량대라 일컫는 지명이 10여 군데인데, 전설에 황량대란 당태종이 모래를 쌓아 양식 저장해놓은 것이라고 속여 고구려 사람이 습격해오면 복병으로 맞아 공격한 곳이라 하니 이는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북경까지 추격한 유적이고, 산동(山東) · 직예(直匠) 등지에 드문드문 고려(高麗) 두 글자를 위에 붙인 지명이 있어 전설로는 그것이 다 연개소문이 점령하였던 곳이라고 하는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북경 안정문(安定門) 밖 60리쯤에 있는 고려진(高麗鎭)과 하간현(河間縣) 서북쪽 12리쯤에 있는 고려성(高麗城)이다.
번역
연개소문이 지나에 침입한 사실은 기록에 보이지 않으나, 지금의 북경 조양문 밖 7리 되는 황량대와 산해관까지 이르는 사이에 황량대라 불리는 지명이 열여 군데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황량대는 당태종이 모래를 쌓아 양식을 저장해 놓은 곳이라 속여 고구려 사람이 습격해 오면 복병으로 맞서 공격했던 곳이라고 한다. 이는 연개소문이 당태종을 북경까지 추격한 유적이며, 산동이나 직예 등지에 드문드문 고려 두 글자를 붙인 지명이 있어 전설로는 그것들이 모두 연개소문이 점령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북경 안정문 밖 60리쯤에 있는 고려진과 하간현 서북쪽 12리쯤에 있는 고려성이다.
제11편문단 12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당나라 사람 번한(樊漢)의 고려성 회고시(高麗城懷古詩)에 “외딴 곳 성문은 활짝 열렸는데(僻地城門啓) 흰 구름이 성가퀴에 걸렸어라(雲林雉堞長), 물이 맑아지는 해 잠겨 있고(水明留晩照), 모래는 어슴푸레 별빛이어라(沙暗燭星光). 북소리 구름 밖에 퍼져나가고(疊鼓連雲起) 갓 핀 꽃들이 땅을 장식했으려니(新花拂地粧) 문득 세상은 변하여(居然朝市變) 다시는 풍악 소리 울리지 않네(無復管絃장). 가시덤불 먼지 가운데(?刺黃塵裏) 길가엔 쑥대만 우북(蒿蓬古道傍). 먼지 속엔 비취가묻혔는데(輕塵埋??), 거친 무덤 위엔 소돌이 오가 누나(荒?上牛羊).
번역
당나라 사람 번한의 고려성 회고시에 이르기를, 외진 곳 성문은 활짝 열렸으나 흰 구름이 성가퀴에 걸려 있고, 물이 맑아지는 해는 저물어 가며, 모래는 어스름한 별빛이로다. 북소리가 구름 밖에 퍼져나가고, 막 피어난 꽃들이 땅을 장식했으리라. 문득 세상은 변하여 다시는 풍악 소리가 울리지 않네. 가시덤불 먼지 속 길가에는 쑥대만 우거지고, 먼지 속엔 비취가 묻혔으며, 거친 무덤 위로는 소와 양이 오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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