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시·연구사
通時시대 무관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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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1편 총론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가령 위의 말이 다 참말이라면 이는 궁예와 유모의 평생 비밀일 것인데, 그것을 듣고 전한 자가 누구이며, 가령 궁예가 왕이 되어 신라의 형법(刑法)밖에 있게 된 뒤에 스스로 발표한 말이라 하면, 그 말한 날짜나 곳은 적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찌하여 데리고 말할 사람을 기록하지 않았는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부모를 부모라 함은 나를 낳은 은혜를 위함인데, 만일 나를 낳음이 없고 나를 죽이려는 원수가 있는 부모야 무슨 부모이겠는가?
번역
만약 위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이는 궁예와 유모의 평생 비밀일 것이니, 그것을 듣고 전한 사람이 누구이며, 만약 궁예가 왕이 되어 신라의 형법 외에 다른 것이 없게 된 뒤 스스로 발표한 말이라 하더라도, 그 말을 한 날짜나 장소를 적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어찌하여 함께 이야기할 사람을 기록하지 않았는가?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부모를 부모라고 하는 것은 나를 낳은 은혜 때문인데, 만약 나를 낳음이 없고 나를 죽이려는 원수가 있는 부모라면 무슨 부모겠는가?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궁예가 헌안왕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만일 사관(史官)의 말과 같이 그가 세상에 나오던 날 죽으라고 누각 위에서 내던진 날로부터 아버지라는 명의가 귾어졌으니, 궁예가 헌안왕의 몸에 칼질을 하여도 아비를 죽인 죄가 될 것 없고 신라의 서울과 능(陵)을 유린한다 할지라도 조상을 모욕한 논란이 될 것 없거늘 하물며 왕의 그림을 치고 문란한 신라를 혁명하려 함이 무슨 큰 죄나 논란이 되랴마는 고대의 좁은 논리관으로는 그 두 가지 일, 헌안왕의 초상과 신라에 대한 불공(不恭)만 하여도 궁예는 죽어도 죄가 남을 것이니, 죽어도 죄가 남을 궁예를 죽이는 데야 무엇이 안 되었으랴? 이에 왕건은 살아서 고려 통치권을 가지고 죽어서도 태조문성(太祖文聖)의 존시(尊諡)를 받아도 추호의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고려 사관이 구태여 세달사(世達寺)의 한 비렁뱅이 중이던 궁예를 가져다가 고귀한 신라 왕궁의 왕자로 만듦인가 한다.
번역
궁예가 헌안왕의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사관의 말과 같이 그가 세상에 나오던 날 죽이라고 누각 위에서 내던진 날로부터 아버지라는 명분이 끊어졌으니, 궁예가 헌안왕의 몸에 칼을 대어도 아비를 죽인 죄가 될 것이 없고 신라의 서울과 능(陵)을 더럽힌다 할지라도 조상을 모욕한 논란이 될 것이 없거늘 하물며 왕의 그림을 치고 문란한 신라를 혁명하려 하는 것이 무슨 큰 죄나 논란이 되랴. 그러나 고대의 좁은 논리관으로는 그 두 가지 일, 헌안왕의 초상과 신라에 대한 불공만 하여도 궁예는 죽어도 죄가 남을 것이니, 죽어도 죄가 남을 궁예를 죽이는 데 무엇이 안 되었으랴? 이에 왕건은 살아서 고려 통치권을 가지고 죽어서도 태조문성의 존시를 받아도 추호의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니, 이것이 고려 사관이 굳이 세달사(世達寺)의 한 비렁뱅이 중이던 궁예를 가져다가 고귀한 신라 왕궁의 왕자로 만든 것인가.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제왕이라 역적이라 함은 성패의 별명일 뿐이요, 정론이라,사론이라 함은 많고 적은 차이일 뿐인데, 게다가 보고 들은 데 잘못이 있고, 쓰는 사람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이 섞이지 않았는가?
번역
제왕이라 하거나 역적이라 하는 것은 그저 별명일 뿐이며, 정론이라 사론이라 하는 것은 많고 적음의 차이일 뿐인데, 게다가 보고 들은 데 잘못이 있고, 쓰는 사람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생각이 섞이지 않았겠는가?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사실도 흘러가는 물과 같이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이미 간 사실을 그리는 역사를 저술하는 이도 어리석은 사람이거니와, 그 써놓은 것을 가지고 앉아서 시비곡직을 가리려는 역사를 읽는 이가 더욱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 아니다, 역사는 개인을 표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요, 사회를 표준으로 하는 것이다.
번역
사실도 흐르는 물과 같아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이미 지나간 사실을 기록하는 역사를 저술하는 이 또한 어리석은 사람인데, 그 기록을 가지고 앉아서 시비와 곡직을 따지려는 역사를 읽는 이는 더욱 어리석은 사람이 아닌가? 아니다. 역사는 개인을 표준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표준으로 하는 것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므로 우리가 우의 성이 왕(王)인가? 신(辛)인가를 조사하여 바로잡느니보다 다만 당시의 지나에 대하여 선전(宣戰)하고, 요동 옛 땅을 회복하려 함이 이루어질 일인가? 실패할 일인가, 성패간에 그 결과가 이로울까 해로울까부터 정한 후에 이를 주장한 우와 반대한 이성계의 시비를 말함이 옳을 것이고, 궁예의 성이 궁(弓)인가 김(金)인가를 변론하는 것보다, 신라이래 숭상하던 불교를 개혁하여 조선에 새 불교를 성립시키려 함이 궁예 패망의 도화선이니, 만일 왕건이 아니더면 궁예의 그 계획이 성취되었을까? 성취되었다면, 그 결과를 확인한 뒤에야 이를 계획하던 궁예와 대적하던 왕건의 옳고 그름을 말함이 옳다고 생각한다.
번역
그러므로 우리가 우의 성씨가 왕인지 신인지를 조사하여 바로잡는 것보다, 다만 당시의 지나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하고 요동 옛 땅을 회복하려는 것이 이루어질 일인지 실패할 일인지, 그 결과가 이로울지 해로울지를 먼저 정한 후에 이를 주장했던 우와 반대했던 이성계의 시비를 말하는 것이 옳고, 궁예의 성씨가 궁인지 김인지를 변론하는 것보다, 신라 이래 숭상하던 불교를 개혁하여 조선에 새 불교를 세우려 한 것이 궁예 패망의 도화선이니, 만일 왕건이 아니었다면 궁예의 그 계획이 성취되었을까? 성취되었다면, 그 결과를 확인한 뒤에야 이를 계획했던 궁예와 대적했던 왕건의 옳고 그름을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제1편번역 대기
원문
‘개인으로부터 사회를 만드느냐? 사회로부터 개인을 만드느냐?’ 이는 고대로부터 역사학자들이 논쟁하는 문제다. 이조 전반기의 사상계는 세종대왕의 사상으로 지배되고, 후반기의 사상계는 퇴계산인(李滉) 사상으로 지배되었다.
번역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면 이조 5백 년 동안의 사회는 세종,퇴계가 만든 것이 아닌가? 신라 후기로부터 고려 중엽까지의 6백 년 동안은 영랑,원효가 각기 당시 사상계의 한방면을 차지하여 영랑의 사상이 성해지는 때에는 원효의 사상이 물러나고 원효의 사상이 성해지는 때에는 영랑의 사상이 물러나서 일진일퇴 일왕일래로 갈아들어 사상계의 패왕이 되었으니, 6백 년 동안의 사회는 그 두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가?
번역
그렇다면 이조 오백 년 동안의 사회는 세종과 퇴계가 만든 것이 아닌가? 신라 후기부터 고려 중엽까지의 육백 년 동안은 영랑과 원효가 각자 당시 사상계의 한 방면을 차지하여, 영랑의 사상이 성해지면 원효의 사상이 물러나고 원효의 사상이 성해지면 영랑의 사상이 물러나는 식으로 오르내리며 사상계의 패왕이 되었으니, 육백 년 동안의 사회는 그 두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가?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백제의 정치 제도는 온조대왕이 마련하여 고이대왕(古爾大王)이 마무리하였고, 발해의 정치 제도는 고제(高帝)가 마련하여 선제(宣帝)가 마무리하였으니, 만일 온조왕과 고이왕이 아니었더라면 백제의 정치가 어떤 형식으로 되었을는지, 고제와 선제가 아니었더라면 발해의 정치가 어떤 형식으로 되었을는지 또한 모를 일이다.
번역
백제의 정치 제도는 온조대왕이 마련하고 고이대왕이 마무리하였으며, 발해의 정치 제도는 고제가 마련하고 선제가 마무리하였으니, 만약 온조왕과 고이왕이 아니었다면 백제의 정치가 어떤 형식이었을지, 고제와 선제가 아니었다면 발해의 정치가 어떤 형식이었을지는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삼경(三京)오도(五都)의 제도가 왕검과 부루(夫婁)로부터 수천 년 동안 정치의 모형이 되었으니, 이로써 보면 한 사람의 위대한 인격자의 손끝에서 사회라는 것이 되어지는 것이고, 사회의 자주성은 없는 것이 아닌가?
번역
삼경과 오도의 제도는 왕검과 부루로부터 수천 년 동안 정치의 모형이 되었으니, 이를 보면 한 위대한 인격자의 손끝에서 사회라는 것이 생겨난 것이고, 사회의 자주성이 없는 것이 아닌가?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나 다시 한편으로 살펴보자. 고려 말엽에 불교의 부패가 극도에 이르러 원효종은 이미 쇠미해지고 임제종(臨濟宗)에도 또한 뛰어난 이가 없고, 다만 10만 명의 반승회(飯僧會:중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모임)와 백만 명의 팔관회(八關會:천신에 제사 지내어 나라와 왕실의 태평을 빌고 온갖 놀이도 즐기는 모임)로 제물과 곡식을 낭비하여 국민이 머리를 앓을 뿐 아니라, 사회는 이미 불교 밖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기에 급급하였다. 이에 안유(安裕).우탁(禹倬)이며 정몽주가 유교의 목탁을 들었고. 그 밑에서 세종이 나고 퇴계가 났으니, 그러면 세종의 세종됨과 퇴계의 퇴계됨이 세종이나 퇴계 그 자신이 스스로 된 것이 아니요,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함이 옳지 않을까?
번역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살펴보자. 고려 말기에 불교의 부패가 극에 달하여 원효종은 이미 쇠퇴했고 임제종에도 뛰어난 이가 없었으며, 다만 십만 명의 반승회와 백만 명의 팔관회로 제물과 곡식을 낭비하여 국민들이 머리를 아플 뿐 아니라, 사회는 이미 불교 밖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기에 급급하였다. 이에 안유(安裕), 우탁(禹倬)이며 정몽주가 유교의 목탁을 들었고. 그 밑에서 세종이 나고 퇴계가 났으니, 그러면 세종의 세종됨과 퇴계의 퇴계됨이 세종이나 퇴계 자신이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삼국 말엽, 그 수백 년 동안에 찬란히 발달한 문학과 미술의 영향을 받아 소도천군(蘇塗天君)의 미신이나 율종소승(律宗小乘)의 하품(下品)불교로는 영계(靈界)의 위안을 줄 수가 없어서 사회가 그 새 생명을 찾은 지가 또한 오래이므로 신라의 진흥대왕이나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다 여러 교종 통일의 새로운 안을 내놓으려 한 일이 있었다. 그 때에 영랑이 도령(徒領)의 노래를 부르고 원효가 화엄(華嚴)의 자리를 배풀었으며, 최치원이 유도에서 불도로 불도에서 선도로 바꾸는 신통한 재주를 보이니 이에 각계가 갈체하여 이 세 사람을 맞았다. 그러니 영랑이나 원효나 최치원이 다 본인 자신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요,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번역
삼국 말엽 동안 찬란하게 발달한 문학과 미술의 영향을 받아 소도천군의 미신이나 율종소승의 하품불교로는 영계의 위안을 줄 수 없었고, 사회가 새로운 생명을 찾은 지가 또한 오래되었으므로 신라 진흥대왕이나 고구려 연개소문이 모두 여러 교종 통일의 새로운 방책을 내놓으려 한 일이 있었다. 그때에 영랑이 도령의 노래를 부르고 원효가 화엄의 자리를 마련했으며, 최치원이 유도에서 불도로, 불도에서 선도로 바꾸는 신통한 재주를 보이니 이에 각계가 모여 이 세 사람을 맞았다. 그러니 영랑이나 원효나 최치원이 모두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에 따라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원효는 신라 그때에 났기에 원효가 된 것이요, 퇴계는 이조 그때에 났기에 퇴계가 된 것이다. 만일 그들이 희랍 철학의 강단에 났더라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되지 않았을까? 프랑스나 독일의 현대에 났더라면 베르그송이나 오이켄이 되지 않았을까? 나파륜(拿破崙:나폴레옹)의 뛰어난 재주와 큰 계략으로도 도포 입고 대학(大學)읽던 시절에 도산사원(陶山書院)부근에 태어났더라면, 물러가 송시열이 되거나 나아가 홍경래가 되었을 뿐이 아니었을까?
번역
이에 따라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원효는 신라 때에 태어났기에 원효가 된 것이고, 퇴계는 이조 때에 태어났기에 퇴계가 된 것이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 철학의 강단에 태어났더라면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되지 않았을까? 프랑스나 독일의 현대에 태어났더라면 베르그송이나 오이켄이 되지 않았을까? 나폴레옹의 뛰어난 재주와 큰 계략으로도 도포를 입고 대학을 읽던 시절에 도산사원 부근에 태어났더라면, 물러가 송시열이 되었거나 나아가 홍경래가 되었을 뿐이 아니었을까?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크고 작은 분량으로 그와 같이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 면목이 아주 달라졌을 것은 단언할 수 있다. 논조가 여기에까지 미쳤으나, 개인은 사회라는 불무에서 이루어질 뿐이니, 개인의 자주성은 어디에 있는가? 개인도 자주성이 없고 사회도 자주성이 없으면 역사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번역
크고 작은 분량으로 그와 같이 되지는 않더라도 그 모습이 아주 달라졌을 것은 단언할 수 있다. 논조가 여기에까지 미쳤으나, 개인은 사회라는 무리 속에서 이루어질 뿐이니, 개인의 자주성은 어디에 있는가? 개인도 자주성이 없고 사회도 자주성이 없다면 역사의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나는 이것을 볼 때 개인이나 사회의 자주성은 없으나 환경과 시대를 따라서 자주성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조선이며 만주며 토이기며 헝거리가 3천 년 전에는 다 뚜렷한 한 혈족이었다. 그러나 혹은 아시아에 그대로 있고 혹은 유럽으로 옮겨가서 대륙의 동서가 달라지고, 혹은 반도 혹은 대륙으로 혹은 사막 혹은 비옥한 땅으로, 혹은 온대 혹은 한대로 분포하여 땅의 멀고 가까움이 다르고, 목축이나 농업, 침략이나 보수 등으로 생활과 풍속이 해와 달을 지내는 대로 더욱 간격이 생겨서 각자의 자주성을 가졌다. 이것이 곧 환경을 따라 성립한 민족성이라 하는 것이다.
번역
나는 이것을 볼 때 개인이나 사회의 자주성은 없으나 환경과 시대를 따라서 자주성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조선이며 만주며 토이기며 헝거리가 삼천 년 전에는 모두 분명한 한 혈통이었다. 그러나 아시아에 그대로 있거나 유럽으로 옮겨가면서 대륙의 동서가 달라지고, 혹은 반도나 대륙으로, 혹은 사막이나 비옥한 땅으로, 혹은 온대나 한대로 분포하여 땅의 멀고 가까움이 다르고, 목축이나 농업, 침략이나 보수 등으로 생활과 풍속이 해와 달을 지내는 대로 더욱 간격이 생겨 각자의 자주성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곧 환경을 따라 성립한 민족성이라 하는 것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같은 조선으로도 이조 시대가 고려 시대와 다르고, 고려 시대는 또 동북국(東北國:渤海.滅貊등)과 다르고, 동북시대는 삼국과 같지 아니하며, 왕검. 부루 시대와도 같지 아니하다. 멀면 1천년의 전후가 다르고, 가까우면 1백 년의 전후가 다르니, 지금부터 이후로는 문명의 진보가 더욱 빨라서, 10년 이전이 홍황(鴻荒:오랜 옛날)이 되고, 1년 이전이 먼 옛날이 될는지 모르는 일이니, 이것이 이른바 시대를 따라 성립하는 사회성(社會性)이다.
번역
같은 조선으로도 이조 시대가 고려 시대와 다르고, 고려 시대는 또 동북국(渤海, 貊 등을 멸한 나라)과 다르고, 동북시대는 삼국과 같지 않으며, 왕검, 부루 시대와도 같지 않다. 멀면 천 년의 전후가 다르고, 가까우면 백 년의 전후가 다르니, 지금부터 이후로는 문명의 진보가 더욱 빨라서, 십 년 이전이 홍황(아주 먼 옛날)이 되고, 일 년 이전이 먼 옛날이 될지 모르는 일이니, 이것이 이른바 시대를 따라 성립하는 사회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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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와 퇴계가 시대와 경우를 바꾸어 났다 하면, 원효는 유자(儒者)가 되고 퇴계는 불자(佛者)가 되었을는지 모르는 일이거니와, 도양(跳揚)발달한 원효더러 주자(朱子)의 규구(規矩)만 삼가 지키는 퇴계가 되라 한다면 이는 불가능한 일이며, 충실하고 용졸(庸拙)한 퇴계더러 불가의 별종(別宗)을 수립하는 원효가 되라 한다면 이도 또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니, 왜냐하면 시대와 경우가 인물을 낳는 원료 됨과 같으나 인물이 시대와 환경을 이용하는 능력은 다르기 때문이다.
번역
원효와 퇴계가 시대와 경우를 바꾸어 태어났다고 한다면, 원효는 유학자가 되고 퇴계는 불교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나, 재주가 뛰어난 원효에게 주자의 규범만을 지키는 퇴계가 되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성실하고 어리숙한 퇴계에게 불가의 별종을 세우는 원효가 되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시대와 경우가 사람을 낳는 재료와 같지만, 사람이 시대와 환경을 이용하는 능력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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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도 개인과 같이 어느 곳 어느 때에 갑이라는 민족이 가서 그 성적이 어떠하였으니, 을이라는 민족이 갔더라도 마찬가지 성적을 이루었을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대개 개인이나 민족이 두 가지 개성이 있으니, 그 하나는 항성(恒性)이요, 다른 하나는 변성(變性)이다, 항성은 제1의 자주성이요, 변성은 제2의 자주성이니 항성이 많고 변성이 적으면 환경에 순응치 못하여 절멸(絶滅)할 것이요, 변성이 많고 항성이 적으면 나은 자에게 정복당하여 패할 것이니, 늘 역사를 회고하여 두 가지 자주성의 많고 적음을 조절하고 무겁고 가벼움을 평균하게 하여, 그 생명이 천지와 한 가지로 장구하게 하려면 오직 민족적 반성에 의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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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도 개인과 같이 어느 곳 어느 때에 갑이라는 민족이 가서 그 성적이 어떠하였으니, 을이라는 민족이 갔더라도 마찬가지의 성적을 이루었을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다. 대개 개인이나 민족에게는 두 가지 개성이 있는데, 하나는 항성이고 다른 하나는 변성이다. 항성은 제1의 자주성이요, 변성은 제2의 자주성이니, 항성이 많고 변성이 적으면 환경에 순응하지 못하여 절멸할 것이며, 변성이 많고 항성이 적으면 나은 자에게 정복당하여 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늘 역사를 회고하여 두 가지 자주성의 많고 적음을 조절하고 무겁고 가벼움을 평균하게 하여, 그 생명이 천지와 한가지로 장구하게 하려면 오직 민족적 반성에 의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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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역사의 개조에 대한 두 가지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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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개조에 대한 두 가지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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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개조에 대한 나의 우견으로 이상에 의하여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하여 두 가지 결론을 지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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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개조에 대한 나의 의견으로 이상에 근거하여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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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사회의 이미 정해진 국면에서는 개인이 힘쓰기 매우 곤란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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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이미 정해진 국면에서는 개인이 힘쓰기가 매우 곤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