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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1편 총론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 뒤에 금의 태조가 요(遼)를 토멸하고 지나 북방을 차지하여 황제를 일컫고 천하를 노려 보았다. 금은 원래 백두산 동북의 여진(女眞)부락으로서 우리에게 복종하던 노민(奴民:高麗圖經에, “여진은 종으로 고려를 섬긴다(女眞奴奉高麗).”고 하였고, 고려사에 실린 金景組의 국서에도, “여진이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삼았다(女眞以高麗爲父母之邦)”고 하였음)이었는데 갑자기 강성해져서 형제의 위치로 바뀌었다(고려사에 실린 金景祖의 국서에, 형 大金皇帝가 글을 아우 고려왕에게 보낸다(兄大金皇帝致致書于弟高麗國王).“고 하였음). 이에 나라 사람들 가운데 좀 혈기가 있는 사람이면 모두 국치에 눈물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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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금의 태조가 요를 멸하고 지나 북방을 차지하여 황제를 자처하며 천하를 노려보았다. 금은 본래 백두산 동북의 여진 부족으로 우리에게 복종하던 노비였는데, 갑자기 강성해져서 형제의 위치로 바뀌었다(고려사에 실린 금경조의 국서에, 형 대금황제가 글을 아우 고려왕에게 보낸다. “~”라고 하였음). 이에 나라 사람들 가운데 좀 혈기가 있는 사람이면 모두 국치에 눈물을 흘렸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묘청은 이러한 틈을 타 고려 초엽부터 전해오는 ”평양에 도읍을 정하면 36나라가 조공온다(定都平壤三十六國來朝).“하는 도참(圖讖)을 가지고 부르짖으니, 사대주의의 편벽된 소견을 가진 김부식 등 몇몇 사람 이외에는 모두 묘청에게 호응하여, 대문호인 정지상(鄭知常)이며, 무장(武將)인 최봉심(崔逢深)이며, 문무가 겸전(兼全)한 윤언이(尹彦?:尹瓘의 아들)등 이 모두 북벌론을 주창함으로써 묘청의 세력이 일시에 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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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은 이러한 틈을 타 고려 초엽부터 전해오는 "평양에 도읍을 정하면 삼십육국이 조공한다"는 도참을 가지고 부르짖으니, 사대주의의 편벽된 소견을 가진 김부식 등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묘청에게 호응하여, 대문호인 정지상이며, 무장인 최봉심이며, 문무를 겸한 윤언 등이 모두 북벌론을 주창함으로써 묘청의 세력이 일시에 전성하였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오래지 않아 묘청의 하는 짓이 미치고 망령되어 평양에서 왕명도 없이 나라 이름을 고치고 온 조정을 협박하니, 이에 정지상은 묘청의 행동을 반대하였고, 윤언이는 도리어 주의가 다른 김부식과 함께 묘청 토벌의 선봉이 되었다. 이것이 묘청이 실패한 원인이다. 그런데 김부식은 출정하기 전에 정지상을 죽이고 묘청을 토벌한 후에 또 윤언이를 내쫓아서 북벌론자의 뿌리를 소탕해버렸다.
번역
얼마 지나지 않아 묘청이 하는 짓이 미치고 망령되어 평양에서 왕명도 없이 나라 이름을 고치고 온 조정을 협박하니, 이에 정지상은 묘청의 행동을 반대하였고, 윤언이는 오히려 주의가 다른 김부식과 함께 묘청 토벌의 선봉에 섰다. 이것이 묘청이 실패한 원인이다. 그런데 김부식은 출정하기 전에 정지상을 죽이고 묘청을 토벌한 후에 또 윤언이를 내쫓아서 북벌론자의 뿌리를 소탕해버렸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김부식은 성공하였으나 이로 하여 조선이 쇠약해질 터전이 잡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참고하여 보면, 묘청의 성패한 원인과 그 패한 뒤에 생긴 결과가 본명하지 않은가. 이로써 회통(會通)을 구하는 한 예를 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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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은 성공하였으나 이로 인해 조선이 쇠약해질 터전이 마련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참고하여 보면, 묘청의 성패한 원인과 그 패배 후에 생긴 결과가 본명하지 않은가. 이로써 회통을 구하는 한 예를 보인 것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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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심습(心習)을 제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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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습관을 제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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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군성(海軍省)의, “세계 철갑선(鐵甲船)의 비조(鼻組)는 1592년경의 조선 해군 대장 이순신이다.”라고 한 보고가 영국사에 실려 있는데, 일본인들은 모두 당시 일본 배가 철갑(鐵甲)이요, 이순신의 것은 철갑이 아니라면서 그 보고는 틀린 것이라고 반박하고, 조선의 집필자들은 이것을 과장하기 위하여 그 보고를 그대로 인용해서 조선과 일본 어느 나라가 먼저 철갑선을 창조하였는가를 논쟁하게 되었다.
번역
영국 해군성에서 "세계 철갑선의 비조(鼻組)는 1592년경의 조선 해군 대장 이순신이다"라는 보고가 영국사에 실려 있는데, 일본인들은 모두 당시 일본 배가 철갑이고 이순신의 것은 철갑이 아니라고 반박하며 그 보고가 틀렸다고 주장하고, 조선의 집필자들은 이를 과장하기 위해 그 보고를 그대로 인용하여 조선과 일본 어느 나라가 먼저 철갑선을 창조했는가를 논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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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일본인의 말은 아무런 뚜렷한 증거가 없는 위안(僞案)이라 족히 따질 것이 없거니와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에 설명한 귀선(龜船)의 제도를 보건대, 배는 널빤지로 꾸미고 철판으로 꾸민 것이 아닌 듯 하니, 이순신을 장갑선의 비조라고 함은 옳으나, 철갑선의 비조라 함은 옳지 않을 것이다. 철갑선의 창조자라 함이 보다 더 명예가 되지마는, 창조하지 않은 것을 창조하였다고 하면 이것은 진화(進化)계급을 어지럽힐 뿐이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가, 고려의 어떤 명장(名匠)이 증기선을 창조하였다는 문구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신용치 못한 것은 속일 수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것도 옳지 않기 때문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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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말은 아무런 뚜렷한 증거가 없는 위안이라 족히 따질 것이 없으나, 이충무공전서에 설명된 귀선의 제도를 보건대, 배는 널빤지로 꾸미고 철판으로 꾸민 것이 아닌 듯하니, 이순신을 장갑선의 비조라 함은 옳으나, 철갑선의 비조라 함은 옳지 않을 것이다. 철갑선의 창조자라 함이 보다 더 명예가 되지마는, 창조하지 않은 것을 창조하였다고 하면 이것은 진화계급을 어지럽힐 뿐이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가, 고려의 어떤 명장이 증기선을 창조하였다는 문구가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우리가 신용치 못한 것은 속일 수 없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것도 옳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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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본색(本色)을 보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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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의 모습을 지킬 것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에,“국선(國仙) 구산(瞿山)이 사냥을 나가서 어린 짐승이나 새끼 가진 짐승을 함부로 낭자하게 죽였는데, 주막의 주인이 저녁 밥상에 자기의 다리살을 베어놓고, 공(公)은 어진 이가 아니니 사람의 고기도 먹어보라고 하였다.”고 한말이 있다. 이는 대개 신라 당시에는 영량(永郞).술랑(述郞) 등의 학설이 사회에 침투되어 국선 오계(五戒)의 한 가지인, ‘살상은 골라서 하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이 다 실행하던 때이므로, 이를 위반하는 자는 사람의 고기도 먹으리라는 반감으로 주막의 주인이 이렇게 참혹하게 무안을 준 것이다. 그것이 수십자에 지나지 않는 기록이지마는, 신라 화랑사의 일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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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운부군옥에 국선 구산이 사냥을 나가 어린 짐승이나 새끼를 가진 짐승을 함부로 죽였는데, 주막의 주인이 저녁 식탁에 자기 다리살을 놓고 공(公)은 어진 사람이 아니니 사람 고기도 먹어보라고 하였다는 말이 있다. 이는 대개 신라 당시 영량·술랑 등의 학설이 사회에 스며들어 국선 오계 중 하나인 '살상은 골라서 하라'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실천하던 때였으므로, 이를 어기는 자는 사람의 고기도 먹을 것이라는 반감으로 주막의 주인이 이렇게 참혹하게 무안을 준 것이다. 그것이 수십 자에 지나지 않는 기록이지만, 신라 화랑사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구려사 미천왕기(美川王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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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사 미천왕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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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상왕(烽上王)이 그 아우 돌고(固)가 딴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하여 죽이니, 돌고의 아들 을불(乙弗:美川王의 이름)이 겁이나서 달아나 수실촌(水室村) 사람인 음모(陰牟:당시 부호의 이름인듯)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였는데, 음모가 밤마다 기와와 돌을 집옆의 늪에 던져 개구리가 울지 못하게 하라 하고, 낮이면 나무를 해오라고 하여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였다.
번역
봉상왕이 그 아우 돌고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하여 죽이니, 돌고의 아들 을불이 두려워 도망쳐 수실촌 사람인 음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였는데, 음모가 밤마다 기와와 돌을 집 옆의 늪에 던져 개구리가 울지 못하게 하라 하고, 낮에는 나무를 해오라고 하여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하였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을불은 견디다 못 하여 1년 만에 달아나서 동촌(東村)사람 재모(再牟)와 소금장수가 되어 압록강에 이르러 소금 짐을 강동(江東) 사수촌사람의 집에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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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불은 견디다 못하여 1년 만에 달아나 동촌 사람 재모와 소금 장수가 되어 압록강에 이르러 소금 짐을 강동 사수촌 사람의 집에 부렸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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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파가 외상으로 소금을 달라고 하므로 한 말쯤 주었더니, 그 후에 또 달라고 하므로 이를 거절하였는데 노파는 앙심을 품고 몰래 짚신 한 켤레를 소금 짐 속에 묻었다가 을불이 길을 떠난 뒤에 쫓아와서 도둑으로 몰아 압록제(鴨綠宰)에게 고발하여 짚신 한 켤레의 값으로 소금 한 짐을 빼앗고 매질까지 한 뒤에 놓아 보냈다,”라는 이야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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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노파가 외상으로 소금을 달라고 하기에 말 한 필 정도를 주었더니, 그 후에 또 달라고 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노파는 원한을 품고 몰래 짚신 한 켤레를 소금 짐 속에 숨겨두었다가 을불이 길을 떠난 뒤에 따라와 도둑으로 몰아 압록제에게 고발하여, 짚신 한 켤레 값으로 소금 한 짐을 빼앗고 매질까지 한 후에 놓아보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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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불과 몇 줄 안 되는 기록이지마는 또한 봉상왕 시대의 부호의 포학과 시민과 수령의 사악한 행위를 그린 약도이니, 그 시대 풍속사의 일반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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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또한 몇 줄 되지 않는 기록이지만, 봉상왕 시대의 부호들의 포악함과 시민 및 수령들의 사악한 행위를 그린 약도이니, 그 시대 풍속사의 일반이라 할 것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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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삼국사기나 고려사는 아무 맛 없는, ‘어느 임금이 즉위하였다’, ‘어느 대신이 죽었다.’ 하는 등의 연월이나 적고, 보기좋은 ‘어느 나라 어느 나라가 사신을 보내왔다.’ 하는 등의 사실이나 적은 것들이요, 위의 3), 4) 두 절과 같이 시대의 본색을 그린 글은 보기 어렵다. 이는 유교도의 춘추필법과 외교주의가 편견을 낳아서, 전해내려오는 고기를 제멋대로 고쳐서 그 시대의 사상을 흐리게 한 것이다.
번역
그러나 삼국사기나 고려사는 맛이 없는 것으로, '어느 임금이 즉위하였다', '어느 대신이 죽었다'와 같은 연월이나 적고, 보기 좋은 '어느 나라 어느 나라가 사신을 보내왔다'와 같은 사실만 기록되어 있을 뿐이며, 위 3), 4) 두 절과 같이 시대의 본색을 그린 글은 보기 어렵다. 이는 유교도의 춘추필법과 외교주의가 편견을 낳아, 전해 내려오는 고기를 제멋대로 고쳐서 그 시대의 사상을 흐리게 한 것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옛날 서양의 어느 역사가가 이웃집에서 두 사람이 다투는 말을 역력히 다 들었다, 그런데 그 이튿날 남들이 말하는 그 두 사람의 시비는 자기가 들은 것과는 전연 달랐다. 이에, ‘옛날부터의 역사가 모두 이 두 사람의 시비와 같이 잘못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자기가 저술한 역사책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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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서양의 어느 역사가가 옆집에서 두 사람이 다투는 말을 훤히 들었는데, 그 다음 날 남들이 말하는 그 두 사람의 시비는 자신이 들은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에 '옛날부터의 역사가 모두 이 두 사람의 시비와 같이 잘못 전해진 것이 아닌가?' 하고 자신이 저술한 역사책을 전부 불태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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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보원이 들어다가 보고하고 편집원이 다시 교정하고 그러고도 잘못이 생기는 예가 있는 신문.잡지의 기사도 오히려 그 진상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이 허다할 뿐 아니라, 갑의 신문이 이러하다 하면 을의 신문은 저렇하다 하여, 어느 것을 믿을 수 없는 일이 많으니, 하물며 고대의 한두 사학가가 자기의 좋아하고 싫어하는대로 아무 책임감 없이 지은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으랴?
번역
탐보원이 들어와 보고하고 편집원이 다시 고치고 그러고도 잘못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도 오히려 그 진실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이 많을 뿐 아니라, 갑의 신문이 이러하다 하면 을의 신문은 저렇다 하여, 어느 것을 믿을 수 없는 일이 많으니, 하물며 고대의 한두 사학가가 자기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대로 아무 책임감 없이 지은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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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성계가 고려의 마지막 왕 우(禑)의 목을 베고 그 자리를 빼앗을 때, 후세 사람이 신하로서 임금을 죽인 죄를 나무랄까 하여 백방으로 우는 원래 왕씨의 왕통을 잇지 못할 요망한 중 신돈의 천첩 반야의 소생이라 하고, 경효왕(敬孝王:慕愍王?)이 신돈의 집에서 어떻게 데려왔다느니, 반야가 우를 궁인 한씨소생으로 정하는 것을 보고 통한하여 울부짖어 우니 궁문도 그 원통함을 알고 무너졌다느니 하여 아무쪼록 우가 신씨임을 교묘하게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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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성계가 고려의 마지막 왕 우(<0xE7><0xA6><0x91>)의 목을 베고 그 자리를 빼앗았을 때, 후세 사람들이 신하로서 임금을 죽인 죄를 나무랄까 하여 백방으로 우는 원래 왕씨의 왕통을 잇지 못할 요망한 중 신돈의 천첩 반야의 소생이라 하고, 경효왕이 신돈의 집에서 어떻게 데려왔다느니, 반야가 우를 궁인 한씨 소생으로 정하는 것을 보고 통한하여 울부짖어 우니 궁문도 그 원통함을 알고 무너졌다느니 하여 아무쪼록 우가 신씨임을 교묘하게 증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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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는 오히려 송도 유신들이 있어 굴 속에 숨어서까지 우의 무함당함을 절규하였으므로, 오늘날 사학가들이 비록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오히려 우가 왕씨요, 신씨가 아님을 믿는 이도 있다. 또 왕건이 궁예의 장군으로 궁예의 은총을 받아 대병을 맡게 되자 드디어 궁예를 쫓아내어 객사케 하고 또한 신하로서 임금을 죽였다는 죄를 싫어하여 전력을 집중하여 궁예를 죽여 마땅한 죄를 구하였으니, ‘궁예는 신라 헌안왕(憲安王)의 아들인데, 왕이 그를 5월5일에 났음을 미워하여 버렸더니, 궁예가 이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서 도둑을 쳐 신라를 멸망시키려고 어느 절에서 벽에 그려진 헌안왕의 상까지 칼로 쳤다.'고 하였고,
번역
그러나 우는 오히려 송도 유신들이 있어 굴 속에 숨어서까지 우의 무함당함을 절규하였으므로, 오늘날 사학가들이 비록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오히려 우가 왕씨요, 신씨가 아님을 믿는 이도 있다. 또 왕건이 궁예의 장군으로 궁예의 은총을 받아 대병을 맡게 되자 드디어 궁예를 쫓아내어 객사케 하고 또한 신하로서 임금을 죽였다는 죄를 싫어하여 전력을 집중하여 궁예를 죽여 마땅한 죄를 구하였으니, ‘궁예는 신라 헌안왕의 아들인데, 왕이 그를 5월 5일에 났음을 미워하여 버렸더니, 궁예가 이를 원망하여 군사를 일으켜서 도둑을 쳐 신라를 멸망시키려고 어느 절에서 벽에 그려진 헌안왕의 상까지 칼로 쳤다.'고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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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확실한 증거를 만들고자, ‘궁예가 나자 헌안왕이 엄명을 내려 궁예를 죽이라고 하여 궁녀가 누각위에서 아래로 내던졌는데, 유모가 누락 아래에서 받다가 손가락이 잘못 아이의 눈을 찔러 한쪽 눈이 멀었다, 그 유모가 데려다가 비밀히 길렀는데, 10살이 되자 장난이 몹시 심하므로 유모가 울면서 말하기를, 왕이 너를 버리신 것은 내가 차마 버려둘 수 없어서 데려다 길렀는데, 이제 네가 이렇듯 미치광이 짓을 하니 만일 남이 알면 너와 내가 다 죽을 것이다, 하였다. 궁예가 이 말을 듣고 울며 머리를 깍고 중이 되었다. 그 후에 신라의 정치가 문란함을 보고 군사를 모아 큰 뜻을 성취하리라 하고 도둑의 괴수 양길에게로 가서 후한 대우를 받고 군사를 나누어 동으로 나아가서 땅을 차지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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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확실한 증거를 만들고자, 궁예가 나자 헌안왕이 엄명을 내려 궁예를 죽이라고 하여 궁녀가 누각 위에서 아래로 내던졌는데, 유모가 누각 아래에서 받다가 손가락이 잘못 아이의 눈을 찔러 한쪽 눈이 멀었다. 그 유모가 데려다가 비밀히 기르다가, 열 살이 되자 장난이 몹시 심하므로 유모가 울면서 말하기를, 왕이 너를 버리신 것은 내가 차마 버려둘 수 없어서 데려다 길렀는데, 이제 네가 이렇듯 미치광이 짓을 하니 만일 남이 알면 너와 내가 다 죽을 것이다, 하였다. 궁예가 이 말을 듣고 울며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그 후에 신라의 정치가 문란함을 보고 군사를 모아 큰 뜻을 성취하리라 하고 도둑의 괴수 양길에게로 가서 후한 대우를 받고 군사를 나누어 동으로 나아가서 땅을 차지하였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