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시·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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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1편 총론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또 그 뒤 일본인 조거용장(鳥居龍欌)이 조사 발표한 조선. 만주. 몽고. 토이기 네 종족의 현행하는 말로 같은 것이 수십 종(이에 나의 기억하는 바는 오직 貴子를 ‘아기’라, 乾醬을 ‘메주’라 하는 한두 가지뿐임)이 있음을 억단(臆斷)을 내렸고, 지나 24사(史)의 선비.흉노.몽고등에 관한 기록을 가지고 그 종교와 풍속의 같고 다름을 참조하고, 서양사로써 흉노의 유종(遺種)이 토이기(土耳其:터키).흉아리(匈牙利:헝가리) 등지로 옮겨간 사실을 고열(考閱)하여, 조선. 만주. 몽고. 토이기 네종족은 같은 혈족이라는 또 하나의 억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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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뒤 일본인 조거용장이 조사하여 발표한 조선, 만주, 몽골, 터키 네 종족의 현행하는 말로 같은 것이 수십 종이 있음을 억측하였고, 지나 24사의 선비, 흉노, 몽골 등에 관한 기록을 가지고 그 종교와 풍속의 같고 다름을 참고하고, 서양사로써 흉노의 후예가 터키, 헝가리 등지로 옮겨간 사실을 고찰하여, 조선, 만주, 몽골, 터키 네 종족은 같은 혈족이라는 또 하나의 억측을 내리게 된 것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 억단의 옳고 그름은 고사하고 조선사를 연구하자면 조선의 고어뿐 아니라 만주어. 몽고어. 등도 연구하여 고대의 지명. 벼슬 이름의 뜻을 깨닫는 동시에, 이주(移住)하고 교통한 자취며, 싸우고 빼앗은 자리며, 풍속의 같고 다른 차이며, 문야(文野:문명과 야만)의 높고 낮은 원인을 구명하고, 그 밖에 허다한 사적의 탐구와 잘못된 문헌의 교정 등에도 힘을 기울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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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억단의 옳고 그름은 논할 것도 없고, 조선사를 연구하자면 조선의 고어뿐 아니라 만주어나 몽골어 등도 연구하여 고대의 지명이나 벼슬 이름의 뜻을 깨달아야 하며, 이주하고 교류했던 흔적과 싸우고 빼앗았던 장소, 풍속의 같고 다른 차이점, 문명과 야만의 높낮음의 원인을 밝혀내야 하고, 그 밖에 수많은 사적 탐구와 잘못된 문헌의 교정 등에도 힘을 기울여야겠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상의 다섯 가지는 재료의 수집과 그 선택 등의 수고로움에 대하여 나 자신의 경력을 말한 것이다. 조선. 지나. 일본 등 동양 문헌에 대한 대 도서관이 없으면 조선사를 연구하기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학자들은 국내에 아직 십분 만족하다 할 도서관은 없으나,그러나 동양으로는 제일이고 또 지금에 와서는 또 조선의 소유가 그 외부(外部)의 곳집이 되고 또 서적의 구독과 각종 자료의 수집이 우리같이 표랑생활 중에 있는 한사(寒士)보다 월등히 나을 것이요, 게다가 새 사학에 상당한 소양까지 있다고 자랑하기에 이르렀으나, 지금까지 동양학(東洋學)에 위걸(偉傑)이 나지 못 함음 무슨 까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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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언급된 다섯 가지는 재료를 모으고 그것을 고르는 등의 수고로움에 대해 나 자신의 경력을 말한 것이다. 조선, 지나, 일본 등 동양 문헌에 대한 대도서관이 없다면 조선사를 연구하기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일본의 학자들은 국내에 아직 충분히 만족할 만한 도서관은 없으나, 동양으로는 제일이며 또 지금에 와서는 조선의 소유가 외부의 곳집이 되고 서적 구독과 각종 자료 수집이 우리와 같이 표랑 생활을 하는 한사보다 월등히 나을 것이며, 게다가 새로운 사학에 필요한 상당한 소양까지 있다고 자랑하기에 이르렀으나, 지금까지 동양학에 위대한 인재가 나오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저들 중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자가 백조고길(白鳥庫吉)이라 하지마는, 그가 저술한 신라사(新羅史)를 보면, 배열. 정리의 새로운 형식도 볼 수 없고 한두 가지 발명도 없음은 무슨 까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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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 중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자가 백조고길이라 하나, 그가 저술한 신라사를 보면, 배열이나 정리의 새로운 형식도 보이지 않고 한두 가지 발명도 없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좁은 천성(天性)이 조선을 헐뜯기에만 급급하여 공평을 결함으로 인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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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하늘의 성품이 오직 조선을 비방하는 데만 급급하여 공평을 부족함으로 여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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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조선사람으로서 어찌 조선 사학이 일본인으로부터 개단(開端)하기를 바라리요 마는 보장(寶藏)을 남김없이 가져다가 암매(暗昧)중에 썩임을 개탄하고 아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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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으로서 어찌 조선 사학이 일본인으로부터 시작되기를 바라겠는가. 다만 보물을 남김없이 가져다가 어둠 속에 썩어가는 것을 한탄하고 아까워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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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제5장 역사서의 개조에 대한 소견(所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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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역사서의 개조에 대한 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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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역사 재료에 대하여 그 없어진 것을 채우고 빠진 것을 기우며, 거짓을 제거하고 헐뜯은 것을 밝혀서 완전하게 하는 방법의 대략을 이미 말하였거니와, 편찬하고 정리하는 절차에 있어서도 옛날 역사의 투를 고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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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자료에 대하여 사라진 것은 채우고 빠진 것을 기우치며, 거짓은 제거하고 헐뜯은 바는 밝혀서 완전하게 하는 방법의 개요를 이미 말하였거니와, 편찬하고 정리하는 절차에 있어서도 옛 역사의 풍조를 고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제1편번역 대기
원문
근일에 왕왕 새로운 체제의 역사를 지었다는 한두 가지 새 저서가 없지 아니하나, 그것은 다만 신라사.고려사. 하던 왕조 독립의 식을 고쳐 상세(上世).중세(中世).근세(近世)라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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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권1, 권2라 하던 통감(痛鑑).분편(分編)의 이름을 고쳐 제1편, 제2편이라 하였으며, 그 내용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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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痛鑑)이라 하던 것을 권1, 권2라 하였는데, 분편의 이름을 고쳐 제1편, 제2편이라 하였으며, 그 내용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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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재기(才技).이단(異端)이라 하던 것을 예술이라 학술이라 하여 그 귀천의 위치가 바뀌었을 뿐이요, 근왕(勤王)이라 한외(外:외적을 막음)라 하던 것을 애국이라 민족적 자각이라 하여 그 신구(新舊)의 명사(名詞)가 다를 뿐이니, 털어놓고 말하자면 한장책(韓裝冊)을 양장책(洋裝冊)으로 고쳤음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나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우리 역사의 개조 방법의 대강을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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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와 기술이라고 하던 것을 예술과 학술이라 하여 그 귀천의 위치가 바뀌었을 뿐이며, 근왕이라 하던 것을 외적을 막음이라 하여 그 신구의 명칭이 다를 뿐이니, 털어놓고 말하자면 한장책을 양장책으로 고쳤음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나의 어리석은 소견으로 우리 역사의 개조 방법의 대강을 말하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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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계통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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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혈통을 찾아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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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구사(舊史)에는 갑(甲)대왕이 을(乙)대왕의 아버지요 정(丁)대왕이 병(丙) 대왕의 아우이니 하여 왕실의 계통을 찾는 외에 다른 곳에서는 거의 계통을 찾지 않았으므로, 무슨 사건이든지 공중에서 거인이 내려오고, 평지에서 신산(神山)이 솟아오른 듯하여, 한 편의 신괴록(神怪錄)을 읽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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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록에는 갑대왕이 을대왕의 아버지이고 정대왕이 병대왕의 아우라고 하여 왕실의 계통을 찾는 것 외에는 다른 곳에서는 거의 계통을 찾지 못했으므로, 무슨 사건이든지 공중에서 거인이 내려오고, 평지에서 신산이 솟아오른 듯하여, 한 편의 신괴록을 읽는 것 같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역사는 인과의 관계를 밝히자는 것인데, 만일 이와 같은 인과 이외의 일이 있다 하면 역사는 하여 무엇하랴. 그것은 지은 사람의 부주의에 의한것이요, 본질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구사에는 그 계통을 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가 이를 찾을 수 있으니, 삼국사기, 신라사에 적힌 신라의 국선(國仙)이 진흥대황(眞興大王) 때부터 문무대왕(文武大王)때까지 전성하여, 사다함(斯多含) 같은 이는 겨우 열 대여섯 살의 소년으로 그 제자의 수가 지나의 대성(大聖) 공구와 겨루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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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과 관계를 밝히는 것이거늘, 만약 이와 같은 인과가 아닌 일이 있다면 역사가 무엇을 하겠는가. 그것은 지은 사람의 부주의에 의한 것이지, 본질이 그러한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구사에는 그 계통을 말하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이를 찾을 수 있다. 삼국사기나 신라사에 적힌 신라의 국선(國仙)이 진흥대왕 때부터 문무대왕 때까지 전성하여, 사다함 같은 이는 겨우 열댓 살 남짓한 소년으로 그 제자의 수가 지나의 대성 공구와 겨루게 되었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밖에 현상(賢相).양장(良將).충신.용사가 모두 이 가운데서 났다(삼국사기에 인용한 金大問의 설)고 하였으나, 그 동안이 수십 년에 지나지 않고 성식(聲息)이 아주 끊어져서, 국선 이전에 국선의 개조(開祖)도 볼 수 없고, 국선 이후 국선의 후계자도 볼 수 없이 갑자기 왔다가 갑자기 갔으니, 이것이 어찌 신라의 신괴록이 아니랴?
번역
그 외에 현명한 재상이나 용맹한 장수, 충신, 영웅 모두 이 가운데서 났다(삼국사기에 인용한 김대문의 설)고 하였으나, 그 기간이 수십 년을 넘지 않고 소식이 완전히 끊겼으며, 국선 이전의 개조도 볼 수 없고, 국선 이후의 후계자도 볼 수 없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으니, 이것이 어찌 신라의 신괴록이 아니겠는가?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기(古記)에서 왕검이 국선의 개조임을 찾으매, 고구려사에서 조의(衣)선인(先人) 등을 알 것이며, 고려사에서 이지백(李知白)이, “선랑(仙郞)을 중흥시키자.”고 한 쟁론과, 예종(睿宗)이, “사선(四仙)의 유적을 영광스럽게 하라.”하고, 의종(毅宗)이, “국선의 복로(伏路)를 다시 열라.”고 한 조서를 보매, 고려에까지도 오히려 국선의 유통(遺統)이 있었음을 볼지니 이것을 계통을 찾는 방법의 한 예로 든다.
번역
고기에서 왕검이 국선의 개조임을 찾았으니, 고구려사에서 조의 선인 등을 알 수 있고, 고려사에서 이지백이 "선랑을 중흥시키자"고 한 논쟁과, 예종이 "사선(四仙)의 유적을 영광스럽게 하라"고 하고, 의종이 "국선의 복로를 다시 열라"고 한 조서를 보면, 고려에까지도 오히려 국선의 유통이 있었음을 볼 수 있으니, 이것을 계통을 찾는 방법의 한 예로 든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2) 그 회통(會通)을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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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통로를 찾을 것이다.
제1편번역 대기
원문
회통이란 전후.피차의 관계를 유취한다는 말이니, 구사에도 회통이라는 명칭은 있으나 오직 예지(禮志), 과목지(科目志)-회통의 방법이 완미하지 못하지만-이 밖에는 이 명칭을 응용한 곳이 없다. 그러므로 무슨 사건이든지 홀연히 모였다가 홀연히 흩어지는 구름과도 같고, 돌연히 불다가도 그치는 선풍(돌개바람)과도 같아서 도저히 붙잡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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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려사 묘청전(妙淸傳)을 보면, 묘청이 일개 서경(西京:평양)의 한 중으로서, “평양에 도읍을 옮기고 금국(金國)을 치자.” 하매, 일시에 군왕 이하 많은 시민의 동의를 얻어서 기세가 혁혁하다가, 마침내 평양에 웅거하여 나라 이름을 대위(大爲)라 하고, 연호를 천개(天開)라 하고, 인종(仁宗)더러 대위국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고 협박장 식의 상소를 올렸는데 반대당의 수령인 한낱 유생 김부식이 왕사(王師)로서 와서 문죄(問罪)하니, 묘청이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하고 부하에게 죽었으므로 묘청을 미친 자라고 한 사평(史評)도 있지마는, 당시의 묘청을 그처럼 신앙한 이가 많았음은 무슨 까닭이며, 묘청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패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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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묘청전(妙淸傳)을 보면, 묘청이 한때 서경(평양)의 한 중으로서, "평양에 도읍을 옮기고 금국을 치자" 하니, 일시에 군왕 이하 많은 시민의 동의를 얻어 기세가 매우 높았으나, 마침내 평양에 자리 잡고 나라 이름을 대위라 하고, 연호를 천개라 하며, 인종에게 대위국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고 협박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에 반대파의 수령인 유생 김부식이 왕사로 와서 죄를 물으니, 묘청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부하에게 죽었으므로 묘청을 미친 사람이라고 평한 사평도 있으나, 당시 묘청을 그토록 믿었던 사람이 많았던 까닭은 무엇이며, 묘청이 하루아침에 그렇게 패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려사의 세기(世紀)와 열전(列傳)을 참고하여 보면 태조 왕건이 거란(契丹:뒤의遼)과 국교를 끊고 북방의 옛 강토를 회복하려 하다가 거사하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그 후예 되는 임금 광종(光宗).숙종(肅宗) 같은 이는 다 태조의 유지를 성취하려 하였고, 신하에도 이지백(李知白).곽원(郭元).왕가도(王可道) 같은 이들이 열렬하게 북벌을 주장하였으나 다 실행치 못하고 윤관(尹瓘)이 군신이 한마음으로 두만강 이북을 경영하려는 창끝을 약간 시험하다가 너무 많아서 그 이미 얻은 땅의 구성(九城)까지 금(金)의 태조에게 다시 돌려주니 이는 당시 무사들이 천고에 한되는 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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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의 세기와 열전을 참고해 보면, 태조 왕건이 거란과 국교를 끊고 북방의 옛 강토를 회복하려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그 후예인 광종이나 숙종 같은 이들은 모두 태조의 유지를 성취하려 했으며, 신하들 중에도 이지백, 곽원, 왕가도 같은 이들이 열렬하게 북벌을 주장했으나 다 실행하지 못했다. 윤관이 군신이 한마음으로 두만강 이북을 경영하려는 기세를 약간 시험하다가 너무 많아 이미 얻은 땅의 구성까지 금나라 태조에게 다시 돌려주니, 이는 당시 무사들이 천고에 한되는 일로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