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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1편 총론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① 하나는 본서의 위증(僞證)이니, 초학집(初學集), 유학집(有學集)등은 전겸익(錢謙益)이 저술한 실제로 있는 것이지마는, 그 글 가운데 씌어 있는 우리 나라에 관한 일은 대개 전겸익의 위조요, 실제로없는 것이 많으니, 이런 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번역
하나의 것은 본서의 거짓 증거이니, 초학집이나 유학집 등은 전겸익이 저술한 실재하는 것이기는 하나, 그 글 가운데 쓰여 있는 우리 나라에 관한 일들은 대부분 전겸익의 위조요, 실제로 없는 것이 많으니, 이런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나 이는 우리 나라 역사에 그것을 반박할 확고한 증거들이 있거니와 , 만일 우리 역사의 반박할 재료가 없어지고 저네의 거짓 기록만 유전(流轉)된 것이 있으면 다만 가설의 부인만으로는 안 될 것이니 어찌하면 옳을까?
번역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 역사에 그것을 반박할 확고한 증거들이 있거니와, 만일 우리 역사의 반박할 재료가 없어지고 저들의 거짓 기록만 유전된 것이 있다면 다만 가설의 부인만으로는 안 될 것이니 어찌하면 옳을까?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옛날에 장유(長維)가 사기(史記)의, “무왕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다(武王封箕子干朝鮮).”고 한 것을 변정하는데, 첫째로 상서(尙書)에, “나는 남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고”한 말을 들어 기자가 이미 남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하였으니, 무왕의 봉작(封爵)에, “기자가 조선으로 몸을 피하였다(箕子避地朝鮮).”고 한 것을 들어 반고(班固)는 사기를 지은 사마천보다 성실하고 정밀한 역사가로서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기자의 봉작설을 빼버리고 봉작은 사실이 아니라고 단언을 내렸으니, 이는 인증(人證)이다.
번역
옛날에 장유가 사기(史記)에 기록된 "무왕이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였다"는 것을 바로잡는데, 첫째로 상서(尙書)에 "나는 남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고 한 말을 들어 기자가 이미 남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맹세했으니, 무왕의 봉작에 "기자가 조선으로 몸을 피하였다"고 한 것을 들어 반고(班固)는 사기를 지은 사마천보다 성실하고 정밀한 역사가로서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기자의 봉작설을 빼버리고 봉작은 사실이 아니라고 단언을 내렸으니, 이는 사람의 증언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삼국 이후 고려 말엽 이전(몽고 침입 이전)에 우리 나라 형세가 강성하여 지나에 대하여 전쟁으로 맞설 떄에도 저에게 보낸 국서에 우리를 낮추어 한 말이 많이 있었거니와, 그들은 다른 나라가 사신을 보내면 반드시 내조(來朝:조공왔다)라고 썼음은 지나인의 병적인 자존성에 의한 것이니, 이는 근세 청조(淸朝)가 처음 서양과 통할 때 영(英).로(露) 등 여러 나라가 와서 통상한 사실을 죄다 “모국이 신하를 일컫고 공물을 바쳤다(某國稱臣奉貢).”고 썼음을 보아도 가히 알수 있는 일이니, 그네의 기록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
번역
삼국 이후 고려 말엽 이전(몽고 침입 이전)에 우리 나라 형세가 강성하여 지나에 대하여 전쟁으로 맞설 때에도 저에게 보낸 국서에 우리를 낮추어 한 말이 많이 있었거니와, 그들은 다른 나라가 사신을 보내면 반드시 내조라고 썼음은 지나인의 병적인 자존성에 의한 것이니, 이는 근세 청조가 처음 서양과 통할 때 영로 등 여러 나라가 와서 통상한 사실을 죄다 “모국이 신하를 일컫고 공물을 바쳤다”고 썼음을 보아도 가히 알 수 있는 일이니, 그들의 기록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된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또 지나인이 만든 열조시집(列朝詩集), 양조평양록(兩朝平讓錄) 등 시화(詩話) 가운데 조선 사람의 시를 가져다가 게재할 때에 대담하게 한 구절 한 줄을 고쳤음을 볼 수 있으니, 우리의 역사를 적을 때에도 자구를 고쳤었음을 알 것이다. 그리고 몽고의 위력이 우리 나라를 뒤흔들 때, 우리의 악부(樂府).사책(史冊)을 가져다가 황도(皇都).제경(帝京).해동천자(海東天子). 등의 자구를 모두 고친 사실이 고려사에 보였으니, 그 고친 기록을 바로잡지 못한 삼국사. 고려사 등도 지나와 관계된 문제는 실제의 기록이 아님을 알 것이다.
번역
또 지나라에서 만든 열조시집(列朝詩集), 양조평양록(兩朝平讓錄) 등의 시화에 조선 사람의 시를 가져다가 게재할 때 대담하게 한 구절 한 줄을 고쳤음을 볼 수 있으니, 우리의 역사를 적을 때에도 자구를 고쳤었음을 알 것이다. 그리고 몽골의 위력이 우리 나라를 뒤흔들 때, 우리의 악부나 사서에서 황도, 제경, 해동천자 등의 자구를 모두 고친 사실이 고려사에서 보였으니, 그 고친 기록을 바로잡지 못한 삼국사나 고려사 등도 지나와 관계된 문제는 실제의 기록이 아님을 알 것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것은 사증(事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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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사실의 증거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연전에 김택영(金澤榮)의 역사집략(歷史輯略)과 장지연(張志淵)의 대한강역고(大韓彊域考)에 , 일본의 신공여주(神功女主) 18년에 신라를 정복했다는 것과, 수인주(垂仁主) 2년에 임나부(任那府)를 설치하였다는 것을 모두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그대로 따다가 적고 그 박식함을 자랑하였다.
번역
전에 김택영의 역사집략과 장지연의 대한강역고에, 일본 신공여주 18년에 신라를 정복했다는 것과 수인주 2년에 임나부를 설치했다는 것을 모두 일본서기에서 그대로 따와 적고 그 박식함을 자랑하였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나 신공 18년은 신라 내해왕(柰解王) 4년(서기 199년)이요, 내해왕 당년에는 신라가 압록강을 구경한 이도 별로 없었을 테인데, 이제 내해왕이 아리나례(阿利那禮:압록강)을 가리키며 맹세하였다 함이 무슨 말이며, 수인주는 백제와 교통하기 이전의 일본의 임금이니, 백제의 봉직(縫織)도 수입이 안 된 때인데, 수인주 2년에 임나국(任那國) 사람에게 붉은 비단[赤絹] 2백 필을 주었다 함은 어쩐 말인가?
번역
그러나 신공 18년은 신라 내해왕의 4년(서기 199년)이었고, 당시에는 신라가 압록강을 구경한 이도 별로 없었을 터인데, 이제 내해왕이 아리나례(압록강)를 가리키며 맹세했다는 것이 무슨 말이며, 수인주는 백제와 교류하기 이전의 일본의 임금이니, 백제의 봉직(누비옷)조차 수입되지 않았을 때인데, 수인주 2년에 임나국 사람에게 붉은 비단 2백 필을 주었다는 것은 어떠한 말인가?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 두가지 의문에 답하기 전에 그 두 사건의 기사가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니, 이것은 이증(異證)이다. 이렇게 고인의 위증(僞證)을 인(人)으로 사(事)로 또 이(理)로 증명하여 부합되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임을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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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가지 의문에 답하기 전에 그 두 사건의 기록 자체가 스스로 부정하고 있으니, 이것은 이질적인 증거이다. 이처럼 고인의 거짓 증언을 사람으로, 사실로, 또 이치로 증명하여 들어맞지 않으면 그것은 거짓임을 알 것이다.
제1편번역 대기
원문
② 후세 사람의 위증이니, 원서에는 본래 거짓이 없었는데 후세 사람이 문구를 보태어 위증한 것이다. 마치 당태종이 고구려를 치려 하여, 그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남사(南史), 북사(北史) 등에 보인 조선에 관한 사실을 가져다 자기네에게 유리하도록 안사고(顔師古) 등으로 하여금 곡필(曲筆)을 잡아 고치고 보태고 바꾸고 억지의 주를 달아서, 사군(史郡:樂浪.臨屯.眞番.玄?)의 연혁이 가짜가 진짜로 되고, 역대 두 나라의 국서가 더욱 본래대로 전해지는 것이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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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러한 증거는 본편 제2장 지리연혁(地理沿革)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가짜가운데 진짜니, 마치 관자(管子)같은 것은 관중(管仲)의 저작이 아니고 지나 육국(六國) 시대의 저작인 위서(僞書)이나 조선과 제(齊)의 전쟁은 도리어 그 실상을 전한 자이니, 위서로서도 진서(眞書)이상의 가치를 가진 것이라 할 것이다.
번역
이러한 증거는 본편 제2장 지리연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거짓된 것 같으나 실제이며, 마치 관자 같은 것은 관중의 저작이 아니고 지나 육국 시대의 저서인 위서나 조선과 제의 전쟁은 오히려 그 실상을 전한 것이니, 위서로서도 진서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 할 것이다.
제1편번역 대기
원문
5) 만(滿). 몽(蒙). 토(土) 여러 종족의 언어와 풍속의 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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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김부식은 김춘추(金春秋). 최치원(崔致遠) 이래의 모화주의(慕華主義)의 결정(結晶)이니, 그가 저술한 삼국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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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은 김춘추와 최치원이 이룬 화려한 사학 사조의 정수이며, 그가 저술한 삼국사기에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고주몽(高朱蒙)은 고신씨(高辛氏:고대 중국 5제의 한 사람)의 후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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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몽은 고신씨의 후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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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김수로(金首露)는 금천씨(金天氏:皇帝의 아들 少昊)의 후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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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金首露)는 금천씨(金天氏:황제의 아들 소호)의 후예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진한(辰韓)은 중국 진인(秦人)이 동래(東來)한 것이다” 하여, 말이나 피나 뼈나 교나 풍속이 한가지도 같은 것이 없는 지나족을 동종(同宗)으로 보아, 말살에다 쇠살을 묻힌 어림없는 붓을 놀린 뒤로 그 편벽된 소견을 간파한 이가 없었으므로, 우리 부여의 계(族系)가 분명치 못하여 드디어는 조선사의 위치를 캄캄한 구석에 둔 지가 오래였다.
번역
진한은 중국 진인이 동래로 온 것이라 하여, 말이나 피나 뼈나 교나 풍속이 한 가지도 같은 것이 없는 지나족을 같은 뿌리로 여겨, 말살에다 쇠살을 묻힌 어림없는 붓을 놀린 뒤로 그 편벽된 생각을 간파한 이가 없었으므로, 우리 부여의 혈통이 분명치 못하여 드디어는 조선사의 위치를 캄캄한 구석에 둔 지가 오래였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언제인가 필자가 사기(史記) 흉노전(匈奴傳)을 보니, 삼성(三性)의 귀족 있음이 신라와 같고, 좌우 현왕(賢王) 있음이 고려나 백제와 같으며, 5월의 제천(祭天)이 마한과 같고, 무기일(戊己日)을 숭상함이 고려와 같으며, 왕공(王公)을 한(汗)이라 함이 삼국의 간(干)과 같고, 벼슬 이름 끝 글자에 치라는 음이 있음이 신지(臣智)의 지(智)와 한지(旱支)의 지(支)와 같으며, 후(后)를 알씨(閼氏)라 함이 곧 ‘아씨’의 번역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 생겼다.
번역
필자가 사기 흉노전을 보니, 삼성의 귀족이 신라와 같고, 좌우 현왕이 고려나 백제와 같으며, 5월의 제천이 마한과 같고, 무기일을 숭상함이 고려와 같으며, 왕공을 한이라 함이 삼국의 간과 같고, 벼슬 이름 끝 글자에 치라는 음이 있음이 신지의 지와 한지의 지와 같으며, 후를 알씨라 함이 곧 '아씨'의 번역이 아닌가 하는 가설이 생겼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인축(人畜). 회계(會計)하는 곳을 담림혹은 대림이라 함이 ‘살임’의 뜻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나고, 휴도(休屠)는 소도(蘇塗)와 음이 같을 뿐 아니라, 나라 안에 대휴도(大休屠)를 둔 휴도국(休屠國)이 있고, 각처에 또 소 휴도가 있어서 더욱 삼한의 소도와 틀림이 없었다.
번역
인간과 가축을 모아두는 곳을 담림이나 대림이라 하는데, 이는 '살림'의 뜻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고, 휴도는 소도와 음이 같을 뿐만 아니라, 나라 안에 대휴도라는 휴도국이 있고, 각처에 또 소 휴도가 있어 더욱 삼한의 소도와 틀림이 없었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에 조선과 흉노가 3천 년 전에는 한방 안의 형제였다는 의안(疑案)을 가져 그 해결을 구하다가, 그 뒤에 건륭제(乾隆帝)가 명하여 지은 만주원류고(滿洲源流告)와 요(遼). 금(金). 원(元) 세 역사의 국어해(國語解)를 가지고 비교하여보았더니, 비록 그 가운데 부여의 대신 칭호인 ‘가(加)’를 음으로 풀이하여 조선말 김가 이가 하는 ‘가’와 같은 뜻이라 하지 않고 뜻으로 주석하여 가(家)의 잘못이라 하였으며, 금사(金史).
번역
이에 조선과 흉노가 삼천 년 전에는 한방 안의 형제였다는 의혹을 가져 그 해결을 구하다가, 그 뒤에 건륭제가 명하여 지은 만주원류고와 요, 금, 원 세 역사의 국어해를 가지고 비교해 보았더니, 비록 그 가운데 부여의 대신 칭호인 ‘가’를 음으로 풀이하여 조선말 김가 이가 하는 ‘가’와 같은 뜻이라 하지 않고 뜻으로 주석하여 가(家)의 잘못이라 하였으며, 금사.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발극렬(勃極烈)을 음으로 맞는 신라의 불구래(弗矩래內)에 상당한 것이라 하지 않고 청조(淸朝)의 패륵(貝勒:패리)의 동류라 한 것 등의 잘못이 없지 아니하나, 주몽(朱蒙)이 만주어(滿洲語) ‘주림물’ 곧 삼림의 뜻이라 하고, 삼한의 벼슬 이름의 끝자 지(支)가 곧 동몽고(東蒙古)의 중을 만나 동몽고 말의 동.서.남.북을 물으니 연나.준나.우진나.회차라고 하여, 고려사의, “도부를 순나라 하고(東部曰順那),서부를 연나라 하고(西部曰涓那), 남부를 관나라 하고(南部曰灌那), 북부를 절나라 하고(北部曰絶那)”고 한 것과 같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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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극렬을 음으로 읽는 신라의 불구래에 상당하는 것이라고 하거나 청조의 패륵의 동류라고 한 등의 잘못이 없지 아니하나, 주몽이 만주어 '주림물' 즉 삼림의 뜻이라고 하고, 삼한의 벼슬 이름 끝 글자 지가 곧 동몽고의 중을 만나 동몽고 말의 동서남북을 물으니 연나, 준나, 우진나, 회차라고 하여 고려사에서 "동부를 순나라라 하고(東部曰順那), 서부를 연나라라 하고(西部曰涓那), 남부를 관나라라 하고(南部曰灌那), 북부를 절나라라 하였다(北部曰絶那)"는 것과 같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