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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1편 총론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승군(僧軍)의 내력을 모르면 무엇이 해로우며 당태종이 부상한 사실을 안들 무엇이 이롭기에 이런 사실을 애써서 탐색하느냐 할 이가 있겠지만, 그러나 사학(史學)이란 것은 하나하나를 모으고 잘못 전하는 것을 바로잡아서 과거 인류의 행동을 여실하게 그려내어 후세 사람들에게 깨쳐주는 것이니, 승군 곧 선인군(先人軍)의 내력을 모르면 다만 고구려가 당나라 군사만을 물리친 원동력뿐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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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군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무엇이 해롭겠으며 당태종이 부상한 사실을 안들 무엇이 이로울까 하여 이런 사실을 애써 탐색하는 이가 있겠지만, 사학이란 것은 하나하나를 모으고 잘못 전하는 것을 바로잡아 과거 인류의 행동을 여실하게 그려내어 후세 사람들에게 깨우쳐 주는 것이니, 승군 곧 선인군의 역사를 알지 못하면 다만 고구려가 당나라 군사만을 물리친 원동력뿐 아니라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뒤따른 명림답부(明臨答夫)의 혁명군의 중심과 강감찬의 거란을 격파한 군대의 주력(主力)이 다 무엇이었던지 모르고, 따라서 삼국에서부터 고려까지의 1천여 년 군제상(軍制上) 중요한 점을 모를 것이며, 당태종이 눈을 잃고 죽은 줄을 모른다면 안시성 전국(戰局)이 속히 결말이 난 원인을 모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신라와 당나라가 연맹하게 된 배경이요, 당나라 고종(高宗)과 그 신하가 모든 희생을 돌아보지 않고 고구려와 흥망을 겨룬 전제(前提)요, 백제와 고구려가 서로 손을 맞잡게 된 동기이던 것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위에 든 것은 그 한두 예일 뿐이고, 이 밖에도 이 같은 일이 얼마인지를 모를 것이니, 그러므로 조선사의 황무지를 개척하자면 도저히 한두 사람의 힘으로 단시일에 완결시킬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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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명림답부의 혁명군 중심과 강감찬이 거란을 격파한 군대의 주력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고, 따라서 삼국시대부터 고려까지의 1천여 년 군제상의 중요한 점을 모를 것이며, 당태종이 눈을 잃고 죽은 줄을 모른다면 안시성 전투가 속히 결말을 맺은 원인을 모를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신라와 당나라가 연맹하게 된 배경이며, 당나라 고종과 그 신하들이 모든 희생을 돌아보지 않고 고구려와 흥망을 겨룬 전제이며, 백제와 고구려가 서로 손을 맞잡게 된 동기였음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위에 든 것은 그 한두 가지 예일 뿐이고, 이 밖에도 이와 같은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모를 것이니, 그러므로 조선사의 황무지를 개척하자면 도저히 한두 사람의 힘으로 단기간에 완결시킬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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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각종 명사(名詞)의 해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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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명사의 해석에 대하여
제1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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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는 고대 후에니키 인이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가져다 알파벳을 만든 것처럼 한자를 가져다가 이두문을 만들었는데, 그 초창기에는 한자의 음을 딴 것도 있고 혹은 그 뜻을 딴 것도 있으니, 삼국사기에 보이는 사람의 이름으로는, ‘소지(疎智), 일명 비처(毘處)’라 함은 빛의 뜻이 소지가 된것이고 음이 비처로 된 것이요, ‘소나(素那), 일명 금천(金川)’이라 함은 뜻이 금천, 음이 소나로 된 것이요, ‘거칠부(거漆夫), 일명 황종(荒宗)’이라 함은 ‘거칠위’의 음이 거칠부, 뜻이 황종으로 된 것이요, ‘개소문(蓋蘇文), 일명 개금(蓋今)’은 ‘신’ 의 음이 소문, 뜻이 금으로 된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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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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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異斯夫), 일명 태종(笞宗)’은 ‘잇위’의 음이 이사부, 뜻이 태종(訓蒙子會에 笞를 ‘잇’으로 읽음)으로 된 것이다. 지명(地名)으로는 ‘밀성(密城), 추화(推火)라고도 함’ 은 ‘밀무’의 음이 밀성, 뜻이 추화로 된 것이요, ‘웅산(熊山) 공목달(功木達)이라고도 함’은 ‘곰대’의 뜻이 웅산, 음이 공목달로 된 것이요, ‘계립령(鷄立領), 일명 마목령(麻木領)’이라 함은 ‘저름(겨릅)’의 음이 계립, 뜻이 마목으로 된 것이요, ‘모성(母城), 막성(莫城)이라고도 함’은 ‘어미’ 의 뜻이 모, 음이 막으로 된 것이요, ‘흑양(黑壤), 금물노(今勿奴)라고도 함’은 ‘거물라’의 ‘거물’의 뜻이 흑, 음이 금물로 된 것이요, 양과 노는 다 ‘하’의 음을 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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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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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명(官名)으로는 ‘각간(角干)을 혹은 발한(發翰)이라함’은 ‘불’의 뜻이 각, 음이 발로 된 것이고, 간(干)과 한(翰)은 다 ‘한’의 음을 취한 것이나, 불한은 군왕(郡王)을 일컬음이요, ‘누살(薩)을 혹 도사(道使)라 함’은 ‘라’의 뜻이 도, 음이 누로 된 것이고, ‘살’의 뜻이 사, 음이 사로 된 것이니, ‘라살’은 지방장관을 일컬음이요, ‘말한’ ‘불한’, ‘신한’은 삼신(三神)에서 근원한 것인데, 뜻으로는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이 되고, 음으로는 마한.변한.진한으로 된 것이요, ‘도가’,‘개가’,‘크가’,‘소가’,‘말가’는 다서 대신의 칭호인데, ‘도.개.크.소.말’등은 뜻으로,‘가’는 음으루 저가(猪加).구가(狗加).대가(大加).우가(牛加).마가(馬加)로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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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명으로는 '각간'을 혹은 '발한'이라 하는데, 여기서 '불'의 뜻이 각이고 음이 발이며, 간과 한은 모두 '한'이라는 소리를 취했으나, 불한은 군왕을 일컫고, '누살'을 혹 도사라 하는데, 여기서 '라'의 뜻이 도이고 음이 누이며, '살'의 뜻이 사이고 음이 사이므로, '라살'은 지방 장관을 일컫는다. '말한', '불한', '신한'은 삼신에서 유래한 것인데, 뜻으로는 천일, 지일, 태일이 되고, 음으로는 마한, 변한, 진한으로 된 것이다. '도가', '개가', '크가', '소가', '말가'는 모두 서대 대신의 칭호인데, '도·개·크·소·말' 등은 뜻으로, '가'는 음을 빌려 저가(猪加), 구가(狗加), 대가(大加), 우가(牛加), 마가(馬加)로 된 것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같이 자질구레한 고증이 무슨 역사상의 큰 일이 되는가? 이것은 자질구레한 듯하나 지지(地誌)의 잘못도 이로써 바로잡을 수 있고, 사료의 의혹도 이로써 보충할 수 있으며 고대의 문학에서부터 모든 생활 상태까지 연구하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해모수(解募漱)와 유화왕후(柳化王后)가 만난 압록강이 어디인가? 지금의 압록강이라 하면 당시 부여의 서울인 합이빈(哈爾濱)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곳이라면 달리 또 압록이 없어 그 의문을 깨뜨리지 못하였더니,첫 걸음에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의 비에 지금의 압록강을 아리수(阿利水)라 하였음을 보고 압록의 이름이 아리(阿利)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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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고증이 무슨 역사상의 큰 일이 되는가? 이것은 사소해 보이나 지리지의 잘못도 이로써 바로잡을 수 있고, 사료의 의혹도 이로써 보충할 수 있으며 고대의 문학에서부터 모든 생활 상태까지 연구하는 열쇠가 된다. 예를 들자면, 해모수와 유화왕후가 만난 압록강이 어디인가? 지금의 압록강이라고 하면 당시 부여의 서울인 하얼빈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다른 곳이라면 달리 또 압록이 없어 그 의문을 깨뜨리지 못하였더니, 첫 걸음에 광개토호태왕의 비에 지금의 압록강을 아리수라 하였음을 보고 압록의 이름이 아리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
제1편번역 대기
원문
두 번째로 요사(遼史)에 ‘요흥종(遼興宗)이 압자하(鴨子河)를 혼돈강(混同江)이라 이름을 고쳤다.’고 한 것을 보고 ‘압자(鴨子)가 곧 ‘아리’인즉, 혼돈강 곧 송화강(松花江)이 고대의 북압록강(北鴨綠江)인가?‘ 하는 가설을 얻었고, 다음에 동사강목(東史綱目)고이(考異)에, ’삼국유사의 ‘요하(遼河) 일명 압록(鴨綠)’과 주희의 여진이 일어나 압록강에 웅거하였다.‘고 한 것을 들어 ’세 압록(鴨綠)이 있다,‘고 하였음을 보고 송화강이 고대에 한 압록강이었음을 알고, 따라서 해모수 부부가 만난 압록강이 곧 송화강임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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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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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전(馬韓傳)에 ‘비리(卑離)’를 건륭제(乾隆帝)의 삼한정류(三韓訂謬)에는 만주의 패륵(貝勒:패리)과 같은 관명(官名)이라고 하였으나, 나는 생각하기를 삼한의 비리는 삼국지리지(三國地理志)백제의 부리(夫里)이니, 비리나 부리는 다 ‘울’의 취음(取音)이요, 도회(都會)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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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전에는 '비리'를 건륭제가 삼한을 정할 때 만주의 패륵과 같은 관명이라고 하였으나, 나는 생각하기로는 삼한의 비리는 삼국지리지 백제의 부리이니, 비리나 부리는 모두 '울'의 소리를 빌린 말이며 도읍이라는 뜻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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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의 비리와 백제의 부리를 참조하면, 마한의 벽비리(壁卑離)는 백제의 파부리(波夫里)요, 여래비리(如來卑離)는 이릉부리(爾陵夫里)요, 모로비리(牟盧卑離)는 모량부리(毛良夫里)요, 감해비리(鑑奚卑離)는 고막부리(古莫夫理)요, 초산도비리(楚山途卑離)는 미동부리(未冬卑離)요, 고랍비리(古臘卑離)는, 고막부리(古莫夫里)니, 비록 이 음과 저 뜻이 이역(異譯))이 있기는 하나 그 대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조선이 관중(管仲)과 싸우던 때에 지나 산서성(山西省)이나 영평부(永平府)에 비이(卑耳)의 계(谿)를 두었으니, 비이는 비리 곧 ‘울’의 번역이다. 이에서 조선 고대의 ‘울’이 곧 산해관(山海關)서족까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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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한의 벽비리는 백제의 파부리에 해당하고, 여래비리는 이릉부리이며, 모로비리는 모량부리이고, 감해비리는 고막부리이며, 초산도비리는 미동부리이고, 고랍비리는 고막부리이니, 비록 이 음과 저 뜻에 차이가 있기는 하나 그 대략을 알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조선이 관중과 싸우던 때에 지나 산서성이나 영평부에 비이의 계를 두었으니, 비이는 비리 곧 '울'의 번역이다. 이로써 조선 고대의 '울'이 곧 산해관 서족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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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자질구레한 고증이 역사상의 큰 일이 아니지마는 도리어 역사상의 큰 일을 발견하는 연장이라 하겠다. 만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훈몽자회(訓蒙字會), 처용가(處容歌), 훈민정음(訓民正音) 등에서 옛 말을 연구하고, 삼국유사에 씌어있는 향가에서 이두문의 용법을 연구하면 역사상 허다한 발견이 있을 것 같다. 필자가 일찍이 이에 유의한 바 있었는데, 해외에 나간 뒤로 부터는 한 권의 책을 얻기가 심히 어려워서, 10년을 두고 삼국유사를 좀 보았으면 하였으나 또한 얻어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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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자질구레한 고증이 역사상의 큰 일이 아니지만, 오히려 역사상의 큰 일을 발견하는 연장이라 하겠다. 만일 한 걸음 더 나아가 훈몽자회, 처용가, 훈민정음 등에서 옛 말을 연구하고, 삼국유사에 쓰여 있는 향가에서 이두문의 용법을 연구하면 역사상 허다한 발견이 있을 것 같다. 필자가 일찍이 이에 유의한 바가 있었는데, 해외에 나간 뒤로는 한 권의 책을 얻기가 심히 어려워서, 10년을 두고 삼국유사를 좀 보았으면 하였으나 또한 얻어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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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위서(僞書)의 판별과 선택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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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가짜 기록)를 가려내고 고르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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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고대에 진귀한 책을 태워버린 때(이조 太宗의 焚書같은)는 있었으나 위서를 조작한 일은 별로 없었으므로, 근래에 와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등이 처음 출현하였으나 누구의 변박(辨駁)도 없이 고서로 인정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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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고대에 진귀한 책을 태워버린 때(태종의 분서와 같은)는 있었으나 위서를 조작한 일은 별로 없었으므로, 근래에 와 천부경과 삼일신고 등이 처음 출현하였으나 누구도 변박하여 고서로 인정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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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 나라 책은 각 씨족의 족보 가운데 그 조상의 일을 혹 위조한 것이 있는 이외에는 그다지 진위의 변별에 애쓸 필요가 없거니와, 우리와 이웃해 있는 지나. 일본 두 나라는 예로부터 교제가 빈번함을 따라서 우리 역사에 참고될 책이 적지 않지마는 위서 많기로는 지나 같은 나라가 없을 것이니, 위서를 분간하지 못하면 인용하지 않을 기록을 우리 역사에 인용하는 착오를 저지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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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책은 각 씨족의 족보 가운데 조상의 일을 혹 위조한 것이 있는 이외에는 그다지 진위의 변별에 애쓸 필요가 없으나, 우리와 이웃한 지나와 일본 두 나라는 예로부터 교제가 빈번함을 따라 우리 역사에 참고될 책이 적지 않으나, 위서가 많기로는 지나 같은 나라가 없을 것이니, 위서를 분간하지 못하면 인용하지 않을 기록을 우리 역사에 인용하는 착오를 저지르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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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마는 그 가짜에 구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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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짜와 진짜 사이에는 구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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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하나는 가짜 중의가짜이니, 예를 들면 죽서기년(竹書紀年)은 진본이 없어지고 위작이 나왔음을 앞에서 이미 말하였거니와, 옛날 사학가들이 늘 고기(古記)의, ‘단군은 요임금과 함께 무진년에 섰다(檀君 興堯竝立戊辰).’고 한 글에 의하여 단군의 연대를 알고자 하는 이는 항상 요 임금의 연대에 비교 하고자 하며 요 임금의 연대를 찾는 이는 속강목(續綱目:金仁山저술)에 고준(考準)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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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가짜 중의 가짜이니, 예를 들어 죽서기년은 진본이 없어지고 위작이 나왔음을 앞에서 이미 말하였거니와, 옛 사학가들이 늘 고기의 '단군은 요임금과 함께 무진년에 섰다'는 글에 의하여 단군의 연대를 알고자 하는 이는 항상 요 임금의 연대에 비교하고 하며 요 임금의 연대를 찾는 이는 속강목(金仁山 저술)에 고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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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소(周召: 周公과 召公)의 공화(王이 달아나고 주공과 소공이 의논하여 정치를 행한 14년)이전의 연대는 지나 역사가의 대조(大祖)라 할 만한 사마천(司馬遷)도 알지 못하여, 그의 사기(史記)연표에 쓰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그보다도 더 요원한 요 임금의 연대랴. 그러므로 속강목은 다만 가짜 죽서기년에 의거하여 적은 연대이니, 이제 속강목에 의거하여 고대의 연대를 찾으려 함은 도리어 연대를 흐리게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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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소(周公과 召公)의 공화(왕이 달아나고 주공과 소공이 의논하여 정치를 행한 14년) 이전의 연대는 지나 역사가의 대조(大祖)라 할 만한 사마천도 알지 못하여, 그의 사기 연표에 쓰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그보다도 더 요원한 요 임금의 연대이겠는가. 그러므로 속강목은 다만 가짜 죽서기년에 의거하여 적은 연대이니, 이제 속강목에 의거하여 고대의 연대를 찾으려 함은 도리어 연대를 흐리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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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국(孔安國)의 상서전(尙書傳)에, ‘구려 한맥(句麗?貊)’이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고구려와 삼한이 지나의 주무왕(周武王)과 교통하였음을 주장하는 이도 있으나, 사기(史記)공자세가(孔子世家)에,“안국(安國)이 지금의 황제의 박사(博士)가 되었는데 일찍 죽었다(安國爲今皇帝博士蚤卒).”고 하였으니, ‘지금의 황제’는 무제(武帝)이다. 무제를 '지금의 황제‘하 한 것은 사마천이 무제가 죽어서 무제라는 시호를 받은 것을 못 보았기 때문이고, 안국을 ’일찍 죽었다.‘고 한 것은 사마천이 생전에 안국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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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국의 상서전에는 ‘구려 한맥’이라는 구절을 인용하여 고구려와 삼한이 지나의 주무왕과 교류했음을 주장하는 이가 있으나, 사기 공자세가에는 “안국이 지금 황제의 박사가 되었는데 일찍 죽었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황제’는 무제이다. 무제를 ‘지금의 황제’라 한 것은 사마천이 무제가 죽어서 무제라는 시호를 받은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안국을 ‘일찍 죽었다’고 한 것은 사마천이 생전에 안국의 죽음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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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공안국은 사마천보다 먼저 죽고 사마천은 무제보다 먼저 죽었음이 명백한데 , 상서전에는 무제의 아들인 소제(昭帝)시대에 창설한 금성군(金城郡)이란 이름이 있으니, 공안국이 그가 죽은 뒤에 창설된 지명을 예언할 만한 점쟁이라면 모르거니와,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하면 상서대전이 위서(僞書)임이 또한 분명하고 거기 기록된 구려. 한맥 등도 자연 명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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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공안국은 사마천보다 먼저 죽었고 사마천은 무제보다 먼저 죽었음이 분명한데, 상서전에는 무제의 아들인 소제 시대에 창설된 금성군이라는 이름이 있으니, 공안국이 그가 죽은 뒤에 창설된 지명을 예언할 만한 점쟁이라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상서대전이 위서임 또한 분명하고 거기 기록된 구려나 한맥 등도 자연 명백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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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진짜 중의 가짜인데, 이것을 다시 둘로 나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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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는데, 이것을 다시 둘로 나누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