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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1편 총론 朝鮮上古史 第1篇

신채호 · 1931 · 저본 한국어 위키문헌
문단 272개 · 번역 확정 0개
제1편문단 12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공구의 춘추(春秋)를 역사의 절대적인 준칙으로 알아 그 의례를 본받아서 임금을 높이고 신하를 억누르기를 위주하다가 마지막에는 자기나라까지 비방하는 편벽된 논란을 벌임이 셋째 유감이요,
번역
공구의 춘추를 역사의 절대적인 준칙으로 알아 그 의례를 본받아 임금을 높이고 신하를 억누르는 것을 위주하다가 마지막에는 자기 나라까지 비방하는 편벽된 논란을 벌인 것이 세 번째 유감이다.
제1편문단 12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국민의 자감(資鑑)에 이바지하려 함보다 외국인에게 아첨하려 한 의사가 더 많고(李修山 일파를 제하고) 자기 나라의 강토를 조각조각 베어주어 마지막에 가서는 건국 시대의 수도까지 모르게 만들었음이 넷째 유감이다.
번역
국민의 자산 증진에 보탬이 되려 하기보다 외국인에게 아첨하려는 의사가 더 많았고(이수산 일파를 제외하고), 자기 나라의 강토를 조각조각 베어주어 마지막에는 건국 시대의 수도마저 잃게 만든 것이 네 번째로 유감이다.
제1편문단 12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우리의 사학계가 이와같이 눈멀고, 귀먹고, 절름발이 등 온갖 병을 죄다 가져서 정당한 발달을 얻지 못함은 무슨 까닭인가? 너무 자주 내란과 외환(비교적 오래 편안했던 이조 일대는 제하고)과 자연의 재난이 잦았던 것은 그만두고라도 인위(人爲)의 장애를 이룬 것을 들건대,
번역
우리 사학계가 이와 같이 눈멀고, 귀먹고, 절름발이 등 온갖 병을 다 갖추어 정당한 발달을 이루지 못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너무 자주 내란과 외환(비교적 오래 편안했던 이조 일대는 제외하고)과 자연의 재난이 잦았던 것은 그만두고라도 인위적인 장애를 이룬 것을 들건대,
제1편문단 12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1) 신지(神誌) 이래의 역사를 비장해두는 버릇이 역사의 고질이 되어 이조에서도 중엽 이전에는 동국통감, 고려사 등 몇몇 관에서 간행한 책 이외에는 사사로이 역사를 짓는 것을 금하였으므로 이수광(李?光)은 내각에 들어가서야 고려 이전의 비사(秘史)를 많이 보았다 하였고 이언적(李彦迪)은 사벌국전(沙伐國傳)을 지어가지고도 친구에게 보임을 꺼려했다. 당대 왕조의 잘잘못을 기록하지 못하게 함은 다른 나라에도 간혹 있거니와, 지나간 고대의 역사마저 사사로이 짓거나 읽는 것을 금함은 우리 나라에만 있었다. 그리하여 역사를 읽는 이가 별로 없었고,
번역
신지(神誌) 이래의 역사를 비장해 두는 버릇이 역사의 고질이 되어 이조에서도 중엽 이전에는 동국통감, 고려사 등 몇몇 관에서 간행한 책 이외에는 사사로이 역사를 짓는 것을 금하였으므로 이수광은 내각에 들어가서야 고려 이전의 비사(秘史)를 많이 보았다고 하였고 이언적은 사벌국전을 지어 가지고도 친구에게 보임을 꺼려하였다. 당대 왕조의 잘잘못을 기록하지 못하게 한 것은 다른 나라에도 간혹 있거니와, 지나간 고대의 역사마저 사사로이 짓거나 읽는 것을 금한 것은 우리 나라에만 있었다. 그리하여 역사를 읽는 이가 별로 없었고,
제1편문단 12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2) 송도(松都)를 지나다가 만월대(滿月臺)를 쳐다보라. 반쪽의 기와가 남아 있는가? 한 개의 주초가 남아 있는가? 막막히 넓은 밭에 이름만 만월대라 할 뿐이 아닌가? 슬프다, 만월대는 이조의 아버지뻘로 멀지 않은 고려조의 대궐인데, 무슨 병화에 탔다는 설도 없이 어찌 이와같이 정(情)이 없는 빈터만 남았는가?
번역
송도를 지나다가 만월대를 바라보라. 반쪽 기와가 남아 있는가? 한 개 주초가 남아 있는가? 막막하게 넓은 밭에 이름만 만월대라고 할 뿐이 아닌가? 슬프다, 만월대는 이조의 아버지뻘로 멀지 않은 고려조의 대궐인데, 무슨 병화에 탔다는 설도 없이 어찌 이와같이 정이 없는 빈터만 남았는가?
제1편문단 12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와 똑같은 예로서 부여에서 백제의 유물을 찾아볼 수 없으며, 평양에서 고구려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에서 나오는 결론은 뒤에 일어난 왕조가 앞의 왕조를 미워하여 역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파괴하고, 태워버리기를 위주한 것이다. 신라가 일어나매 고구려.백제 두 나라 역사가 볼 것이 없게 되었고, 고려가 되매 신라의 역사가 볼 것이 없게 되었으며, 이조가 대신하메 고려의 역사가 볼것이 없게 되어 매양 현재로서 과거를 계속하려 아니하고 말살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역사에 쓰일 자료가 박약해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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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똑같은 예로 부여에서는 백제의 유물을 찾아볼 수 없고, 평양에서는 고구려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뒤에 일어난 왕조가 앞의 왕조를 미워하여 역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파괴하고 태워버리기를 위주로 하였다는 것이다. 신라가 일어나매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의 역사가 볼 것이 없게 되었고, 고려가 되매 신라의 역사가 볼 것이 없게 되었으며, 이조가 대신하여 고려의 역사가 볼 것이 없게 되어 매번 현재로서 과거를 계속하려 하지 않고 말살하려 하였다. 그리하여 역사에 쓰일 자료가 박약해졌으며,
제1편문단 12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3) 현종(顯宗)이, “조총(鳥銃)의 길이가 얼마나 되오?”하니, 유혁연(柳赫然)이 두 손을 들어, “이만합니다.”하고 형용하였다. 기주관(記注官:기록을 맡은 관리)은 그 문답한 정형(情形)을 받아쓰지 못하고 붓방아만 찧고 있었다. 유혁연이 그를 돌아보며, “전하께서 유혁연에게 조총의 길이를 물으시니(相問鳥銃之長於柳赫然) 혁연이 손을 들어, ”자, 남짓이 하고 이만합니다,“고 대답하였다(然擧手尺餘以對曰如是)라고 쓰지 못하느냐?” 하고 구짖었다, 숙종(肅宗)이 박태보(朴太輔)를 친히 문초하는데, “이리저리 잔뜩 결박하고 뭉우리돌로 때려라.”하니, 주서(注書) 고사직(高司直)이 서슴없이, 필(必)자 모양으로 결박하여 돌로 때려라(必字形縛之無隅石擊之).“라고 썼다 그래서 크게 숙종의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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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이 “조총의 길이가 얼마나 되오?”라고 묻자, 유혁연이 두 손을 들며 “이만합니다.”라고 답하였다. 기주관은 그 문답하는 정황을 받아 적지 못하고 붓만 갈고 있었다. 유혁연이 그를 돌아보며, “전하께서 유혁연에게 조총의 길이를 물으시니, 혁연이 손을 들어 ‘자, 남짓이 하고 이만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라고 쓰지 못하느냐?”라며 꾸짖었다. 숙종이 박태보를 직접 문초하는데, “이리저리 잔뜩 묶고 뭉우리돌로 때려라.” 하니, 주서 고사직이 서슴없이 필자 모양으로 묶어 돌로 치라고 하였다. 그래서 크게 숙종의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제1편문단 12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이것들이 궁정의 한 가화(佳話)로 전하는 이야기이지마는, 반면에 남의 글로 내 역사를 기술하기 힘듦을 볼 것이다. 국문이 늦게 나오기도 했지마는, 나온 뒤에도 한문으로 저술한 역사만 있음이 또한 기괴하다. 이는 역사 기록의 기구가 부족함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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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들은 궁정에서 전하는 좋은 이야기일 뿐이지만, 반면에 남의 글로 내 역사를 기술하기 어려움을 볼 것이다. 국문이 늦게 나오기도 했지만, 나온 뒤에도 한문으로 저술된 역사만 있다는 것은 또한 기괴하다. 이는 역사 기록의 도구가 부족함 때문이다.
제1편문단 12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4) 회재(晦齋:李彦迪)나 퇴계(退溪:李滉)더러 원효나 의상의 학술사상(學術史上) 위치를 물으면 한 마디의 대답을 못 할 것이요, 원효와 의상에게 소도(蘇塗:솟대)나 내을(奈乙:박혁거세의 탄생지)의 신앙적 가치를 말하면 반분의 이해를 못 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조의 인사들이 고려 시대의 생활의 취미를 모르며, 고려나 삼국의 인사들은 또 삼한 이전의 생활의 취미를 모를 만큼 반식(飯食). 거처(居處). 신앙. 교육 등 일반 사회의 형식과 정신이 모두 몹시 변하여 오늘의 아메리카 사람으로 내일 러시아 사람됨과 같은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이는 역사 사상의 연락이 끊어짐이라, 어디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구명할 동기가 생기랴? 이상 몇 가지 원인으로 하여 우리의 역사학이 올바르게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번역
회재(이언적)나 퇴계(이황) 같은 이들이 원효나 의상의 학술사상적 위치를 묻거든 한마디 대답하지 못할 것이며, 원효와 의상에게 소도나 내을의 신앙적 가치를 말하면 반쯤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조의 인사들은 고려 시대의 생활 취미를 모르고, 고려나 삼국의 인사들은 또 삼한 이전의 생활 취미를 모를 만큼 반식, 거처, 신앙, 교육 등 일반 사회의 형식과 정신이 모두 몹시 변하여 오늘날 아메리카 사람과 내일 러시아 사람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 이는 역사 사상의 연결이 끊어짐이라, 어디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구할 동기가 생기겠는가? 이상 몇 가지 원인으로 하여 우리의 역사학이 올바르게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제1편문단 13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3백 년 동안 사색(四色)의 당파 싸움이 크게 국가에 해를 끼쳤다 하지마는, 당론이 극렬할수록 제각기 나는 옳고 저는 그르다는 것을 퍼뜨리기 위하여 사사로운 기술이 성행하고 당의 시비가 매양 국정에 관계되므로 따라서 조정의 잘잘못을 논술하게 되어 모르는 사이에 역사의 사사로운 저작의 금지가 깨뜨려져서 마침내 한백겸. 안정복. 이종휘. 한치윤 등 사학계에 몇몇 인물이 배치되었음도 그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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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 년 동안 사색 당파 싸움이 국가에 큰 해를 끼쳤다고는 하지 않으나, 당론이 극렬할수록 각기 자신이 옳고 남이 그르다는 것을 퍼뜨리기 위해 사사로운 기술이 성행했고 당의 시비가 매번 국정에 관계되었으므로 따라서 조정의 잘잘못을 논하는 것이 되어 모르는 사이에 역사의 사적인 저작 금지가 깨져서 마침내 한백겸, 안정복, 이종휘, 한치윤 등 사학계에 몇몇 인물이 배치된 것도 그 결과이다.
제1편문단 13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혹 어떤 이는, “사색 이후의 역사는 피차의 기록이 서로 모순되어 그 시비를 가릴 수가 없어서 가장 역사의 난관이 된다.”고 하지마는, 그들의 시비가 무엇인가 하면 아무 당이 이조의 충신이니, 역적이니, 아무 선생이 주자학의 정통이니 아니니 하는 문제들뿐이라,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보면 서릿발 같은 칼을 휘둘러 임금의 시체를 두 동강이 낸 연개소문을 쾌남아라 할 것이요, 자기의 의견을 주장하여 명륜당(明倫堂) 기둥에 공자를 비평한 글을 붙인 윤백호(尹白湖)를 걸물(傑物)이라 할 것이다.
번역
어떤 이들은 "사색 이후의 역사는 서로 기록이 모순되어 그 시비를 가릴 수 없어 가장 역사적 난관이 된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논하는 시비란 아무 당파가 조정의 충신인지 역적이냐 하는 것이거나, 어떤 선생이 주자학의 정통인지 아닌지에 관한 문제들뿐이다.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보면 서릿발 같은 칼로 임금의 시체를 두 동강 낸 연개소문을 쾌남이라 할 것이며,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여 명륜당 기둥에 공자를 비평한 글을 붙인 윤백호를 걸물이라고 할 것이다.
제1편문단 13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냉정한 두뇌로써 회재.화담(花潭:徐敬德). 퇴계.율곡(栗谷:李珥) 등의 학술상 공헌의 많고 적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자학의 정통이 되고 안 됨은 희담(戱談)이 될 분이요, 노론(老論).소론(少論).남인(南人).북인(北人)의 다툼은 그 정치상에 미친 영향의 좋고 나쁨을 물을 뿐이며, 이조의 충성된 종 되고 못 됨은 잠꼬대에 지나지 않을 뿐이요, 개인의 사사로운 덕의 결점을 지적하여 남의 명예를 더럽히고 혹은 애매한 사실로 남을 모함하여 죽인 허다한 사건들은 그 반면에 있어서 당시 사회 알력의 나쁜 습속으로 국민과 나라를 해친 일종의 통탄할 사료가 될 뿐이다.
번역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냉정한 두뇌로써 회재, 화담(서경덕), 퇴계, 율곡(이이) 등의 학술적 공헌이 많고 적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주자학의 정통이 되고 안 될 것은 희담이 될 분이며, 노론, 소론, 남인, 북인의 다툼은 그 정치상에 미친 영향의 좋고 나쁨을 물을 뿐이고, 이조의 충성된 종이 되고 못 될 것은 잠꼬대에 지나지 않을 뿐이며, 개인의 사사로운 덕의 결점을 지적하여 남의 명예를 더럽히고 혹은 애매한 사실로 남을 모함하여 죽인 허다한 사건들은 그 반면에 있어서 당시 사회 알력의 나쁜 습속으로 국민과 나라를 해친 일종의 통탄할 사료가 될 뿐이다.
제1편문단 13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만일 시어머니의 역정과 며느리의 푸념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일에 낱낱이 재판관을 불러 그 굽고 곧음을 판결하려 한다면 이는 스펜서의 이른바 이웃집 고양이 새끼 낳았다는 보고 같아서 도리어 이로써 사학계의 다른 중대한 문제를 등한히 할 염려가 있으니, 그냥 던져둠이 옳다. 그리고 빨리 지리 관계라든가, 국민생활 관계라든가, 민족의 성쇠라든가 하는 큰 문제에 주의하여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것을 구하여 조선 사학계의 표준을 세움이 급무 중의 급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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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시어머니의 역정과 며느리의 푸념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 일에 재판관들을 불러 그 옳고 그름을 판결하려 한다면, 이는 스펜서가 이른바 옆집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는 보고와 같아서 오히려 이것으로 사학계의 다른 중대한 문제를 등한시할 염려가 있으니, 그냥 두는 것이 옳다. 그리고 빨리 지리 관계라든가, 국민생활 관계라든가, 민족의 성쇠라든가 하는 큰 문제에 주의하여 잘못을 바로잡고 참된 것을 구하여 조선 사학계의 표준을 세우는 것이 급무 중의 급무라고 생각한다.
제1편문단 13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 제4장 사료의 수집과 선택에 관한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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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사료를 모으고 고르는 것에 대한 참고
제1편문단 135번역 대기
원문
만일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디서 무엇으로 어떻게 우리의 역사를 연구하여야 하겠느냐 하면 , 그 대답이 매우 곤란하나, 우선 나의 경과부터 말하고자 한다. 이제부터 16년 전에 국치(國恥:한일합방)에 발분하여 비로소 동국통감(東國痛鑑)을 읽으면서 사평체(史評體)에 가까운 독사신론(讀史新論)을 지어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지상에 발표하고, 이어서 수십 학생들의 청구에 의하여 지나식(支那式)의 연의(蓮義)를 본받은 역사도 아니고 소설도 아닌 대동사천녀사(大東史千年史)란 것을 짓다가, 두 가지 다 사고로 인하여 중지하고 말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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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문단 13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 논평의 독단(獨斷)과 행동의 대담하였음을 지금까지 스스로 부끄러워하거니와, 그 이후 얼마만큼 분발하여 힘쓴 적도 없지 아니하나 나아간 것이 촌보(寸步)쯤도 못 된 원인을 오늘에 와서 국내 일반 독사계(讀史界)에 호소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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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논평의 독단과 행동이 대담했음을 지금까지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있으나, 그 이후로 얼마나 분발하여 힘쓴 적도 없지 아니하나, 나아간 것이 촌보쯤도 못 된 까닭을 오늘날 국내 일반 독사계에 호소하고자 한다.
제1편문단 13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1) 옛 비석의 참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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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비석을 참고함에 대하여
제1편문단 13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일찍이 사곽잡록(四郭雜錄:저자미상)을 보다가 “신립(申砬)이 선춘령(先春領)아래에 고구려 옛 비가 있다는 말을 듣고(申砬聞先春領下有高句麗舊碑), 몰래 사람을 보내 두만강을 건너가서 탁본(拓本)을 떠왔는데(潛遣人 渡豆滿江 模本而來), 알아볼 만한 글자가 3백여 자에 지나지 않았다(所可辨識者 不過三百餘字).그 글에 황제라고 한 것은 고구려왕이 스스로를 일컬은 것이요(其曰皇帝 高句麗王自稱也), 그 상가(相加)라고 한 것은 고구려의 대신을 일컬은 것이었다(其曰相加 高句麗大臣之稱也).“고 한 일절이 있음을 보고 크게 기뻐서, 만주 깊은 산중에 천고(千古) 고사(故事)의 이빠진 것을 보충할 만한 비석쪽이 이것 하나뿐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해외에 나간 날부터 고구려 발해의 옛 비석을 답사하리라는 회포가 몹시 깊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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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사곽잡록(四郭雜錄)을 보다가 신립이 선춘령 아래에 고구려 옛 비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몰래 사람을 보내 두만강을 건너가 탁본을 가져왔는데, 알아볼 만한 글자가 삼백여 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 글에 황제라고 한 것은 고구려왕이 스스로를 일컫는 것이고, 그 상가라고 한 것은 고구려 대신을 일컫는 것이었다. "고 한 글자가 있음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만주 깊은 산중에 천고의 옛이야기가 빠진 것을 보충할 만한 비석이 이것 하나뿐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고 해외에 나간 날부터 고구려 발해의 옛 비석을 답사하리라는 회포가 몹시 깊었다.
제1편문단 13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그러나 해삼위(海參威:브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프스크를 왕래하는 선객들에게 그 항로 중에서 전설로 내려오는 석혁산악(錫赫山嶽)에 우뚝 서 있는 윤관(尹瓘, 혹은 蓋蘇文)의 기공비(紀功碑)를 보았다는 말이며, 봉천성성(奉天省成)에서 간접으로 이통주(伊通州)를 유람하였다는 사람이 그 고을 동쪽 70리에 남아 있는 해부루(解夫婁:夫餘의 왕)의 송덕비(頌德碑)를 보았노라는 이야기며, 발해의 옛 서울에서 온 친구가 폭이 30리인 경박호(鏡泊湖:古史에는忽汗海)의 앞쪽(북쪽)에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와 겨룰 만한 1만 길 비폭(飛瀑)을 구경하였다고 하는 말이며, 해룡현(海龍縣)에서 나온 나그네가 죽어서 용이 되어 일본의 세 섬을 가라앉히겠노라고 한 문무대왕(文武大王:신라)의 유묘(遺廟)를 예배하였다는 이야기 등이 나에게는 귀로 들을 인연만 있었고 눈으로 볼 기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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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해삼위에서 하바로프스크를 오가는 선객들에게 그 항로 중에 전설로 내려오는 석혁산악에 우뚝 서 있는 윤관의 기공비를 보았다는 말이며, 봉천성에서 간접으로 이통주를 유람하였다는 사람이 그 고을 동쪽 70리에 남아 있는 해부루의 송덕비를 보았다는 이야기며, 발해의 옛 서울에서 온 친구가 폭이 30리인 경박호의 앞쪽에 미국 나이아가라 폭포와 겨룰 만한 1만 길 비폭을 구경하였다고 하는 말이며, 해룡현에서 나온 나그네가 죽어서 용이 되어 일본의 세 섬을 가라앉히겠다고 한 문무대왕의 유묘를 예배하였다는 이야기 등이 내게는 귀로 들을 인연만 있었고 눈으로 볼 기회는 없었다.
제1편문단 14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한번 네댓 친구와 동행하여 압록강 위의 집안현(輯安縣), 곧 고구려 제2의 환도성(丸都成)을 얼씬 보았음이 나의 인생에 기념할 만한 장관이라 할 것이나, 그러나 여비가 모자라서 능묘(陵墓)가 모두 몇인지 세어볼 여가도 없이 능으로 인정할 것이 수백이요, 묘가 1만 내외라는 억단(臆斷)을 하였을 뿐이었다. 마을 사람이 주는 댓잎 그린 금척(金尺)과 그곳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박아서 파는 광개토왕 비문을 값만 물어보았으며(깨어진 그 땅 위에 나온 부분만), 수백의 왕릉 가운데 천행으로 남아 있는 8층 석탑, 사면이 네모진 광개토왕릉과 그 오른편의 제천단(祭天壇)을 붓으로 대강 그려서 사진을 대신하였고 그 왕릉의 넓이와 높이를 발로 재고 몸으로 견주어서 자로 재는 것을 대신하였을 뿐이었다
번역
한번 네댓 친구와 함께 압록강 위의 집안현, 곧 고구려 제2의 환도성을 본 것이 내 인생에 기념할 만한 장관이라 할 수 있으나, 여비가 모자라 능묘가 모두 몇 개인지 셀 겨를도 없이 능으로 짐작되는 것이 수백이고, 무덤이 만 개 정도라는 추측만 했을 뿐이었다. 마을 사람이 주는 댓잎 그린 금척과 그곳에 사는 일본인이 박아서 파는 광개토왕 비문을 값만 물어보았으며(깨진 땅 위에 나온 부분만), 수백의 왕릉 가운데 천행으로 남아 있는 8층 석탑, 사면이 네모난 광개토왕릉과 그 오른쪽의 제천단을 붓으로 대강 그려 사진을 대신하였고 그 왕릉의 넓이와 높이를 발로 재고 몸으로 가늠하여 자로 재는 것을 대신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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