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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제1편 총론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지나 대륙에 용맹하고 억센 명나라 성조(成祖)가 있어 조선에 대한 감시가 엄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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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대륙에 용맹하고 억센 명나라 성조가 있어 조선에 대한 감시가 삼엄하고,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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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명나라 사신 장영(張寧)이 엄중히 둔병의 이유를 힐문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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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명나라 사신 장녕이 엄중히 둔병의 이유를 묻자,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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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의 그 무(武)를 숭상하고 공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조선 문헌의 정리를 자임(自任)하여 불경을 간행하고 유학을 장려하는 외에 사료의 수집에도 전력하여 조선 역대 전쟁사인 동국병감(東國兵鑑)과 조선 풍토사인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을 편찬하고(동국병감은 文宗때, 여지승람은 成宗때 편찬), 그밖에도 허다한 서적을 간행하였으니 비록 큰 공헌은 없으나 얼마간 공적은 있었다 할 것이다. 선조(宣祖).인조(仁祖) 이후에는 유교계에 철학.문학의 큰 인물이 배출되고 사학계도 차차 진보되어 허목(許穆)의 단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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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가 무(武)를 숭상하고 공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조선 문헌 정리를 스스로 맡아 불경을 간행하고 유학을 장려하는 것 외에도 사료 수집에 힘써 조선 역대 전쟁사인 동국병감과 조선 풍토사인 동국여지승람을 편찬했으며(동국병감은 문종 때, 여지승람은 성종 때 편찬), 그 밖에도 많은 서적을 간행했으니 비록 큰 공헌은 없으나 어느 정도의 공적은 있었다고 할 것이다. 선조와 인조 이후에는 유교계에 철학·문학의 큰 인물이 배출되고 사학계도 차차 진보되어 허목의 단군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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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등 각세기(世紀)가 너무 간략하기는 하나 왕왕 독특한 견해가 있으며, 유형원(柳馨遠)은 비록 역사에 관한 전문 저서가 없으나, 역대 정치제도를 논술한 반계수록(磻溪隋錄)이 또한 사학계에 보탬이 적지 않았으며,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설(東國地理說)이 비록 수십 줄에 지나지 않는 간단한 논문이지마는 일반 사학계에 큰 광명을 열어서 그 뒤 정약용(丁若鏞)의 강역고(彊域考)며, 한진서(韓鎭書)의 지리(地理)며,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木)에 실린 강역론(彊域論)이며, 그 밖의 조선 역사 지리를 설(設)하는 사람은 모두 한 선행의 그 간단한 지리설을 부연하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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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등 각 세기가 너무 간략하기는 하나 왕왕 독특한 견해가 있으며, 유형원은 비록 역사에 관한 전문 저서는 없으나, 역대 정치제도를 논술한 반계수록이 또한 사학계에 보탬이 적지 않았으며, 한백겸의 동국지리설은 비록 수십 줄에 지나지 않는 간단한 논문이지만 일반 사학계에 큰 광명을 열어 그 뒤 정약용의 강역고며, 한진서의 지리며, 안정복의 동사강목에 실린 강역론이며, 그 밖의 조선 역사 지리를 설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 선행의 그 간단한 지리설을 부연했을 뿐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나로서 보건데, 그 지리설 중에 삼한과 조선을 분리함이 범엽(范曄:後漢書의저자)이 전한 동이열전(東夷列傳)의 지리를 설명함에는 족하나, 이로써 조선 고대 3천 년 동안의 지리를 단정하여, “동국(東國)은 옛날부터 한강 이남을 삼한(三韓)이라 하고 한강 이북을 조선이라 하였다.” 라는 결론을 내렸음은 너무도 맹목적이요, 무단적 (武斷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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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보건대, 그 지리설 중에 삼한과 조선을 분리함이 범엽이 전한 동이열전의 지리를 설명함에는 족하나, 이로써 조선 고대 3천 년 동안의 지리를 단정하여, "동국은 옛날부터 한강 이남을 삼한이라 하고 한강 이북을 조선이라 하였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은 너무나 맹목적이고 무단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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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선생이 삼신(三神) .삼경(三京) .삼한(三韓). 삼조선(三朝鮮).의 연락적 관계와 발조선(發朝鮮). 발숙신(發肅愼). 부여조선(夫餘朝鮮). 예맥조선(濊貊朝鮮). 진국(震國). 진번조선(眞番朝鮮). 진한(辰韓). 마립간(麻立干). 마한(馬韓). 모한(慕韓) 등이 동음이역(同音異譯)임을 몰랐으므로 이 같은 큰 착오가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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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께서 삼신, 삼경, 삼한, 삼조선, 발조선, 발숙신, 부여조선, 예맥조선, 진국, 진번조선, 진한, 마립간, 마한, 모한 등이 같은 소리지만 다른 뜻을 가진 것임을 모르셔서 이러한 큰 착오를 범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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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그러나 동이열전에 보인 삼한의 위치는 선생이 비로소 간단명료하게 분석해서 밝혀 기왕에 역사의 기록만 있고 역사의 연구는 없었다고 할 만한 조선사학계에서 선생이 처음으로 사학의 실마리를 열었다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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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동이열전에 나타난 삼한의 위치는 선생님께서 비로소 간단명료하게 분석하여 밝히셨으니, 이전에는 역사의 기록만 있을 뿐 연구가 없었던 조선사학계에서 선생님께서 처음으로 사학의 실마리를 여신 것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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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안정복은 평생을 열사 한 가지에만 노력한, 5백 년 이래 유일한 빈한한 선비로서 서적의 열람이 부족하여 삼국사기 같은 것도 그 늘그막에야 겨우 남이 베낀 틀린 글자가 많은 것을 얻어보았으므로 그가 저술한 동사강목에 궁예(弓裔)의 국호를 마진기(摩震紀)라 한 웃음거리를 남겼으며, 지나의 서적 중에서도 참고에 필요한 위략(魏略)이나 남제서(南濟書)를 같은 것이 있음을 몰라서 고루한 구절이 적지 아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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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복은 평생을 열사 한 가지에만 힘쓴, 5백 년 이래 유일한 빈한한 선비로서 서적을 읽을 기회가 부족하여 삼국사기 같은 것도 그 막바지에야 겨우 남이 베낀 글자 중 틀린 것이 많은 것을 얻었을 뿐이어서, 그가 저술한 동사강목에 궁예의 국호를 마진기라 한 우스꽝스러운 부분을 남겼으며, 지나의 서적 중에서도 참고할 만한 위략이나 남제서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몰라 고루한 구절이 적지 않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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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시대에 유행하는 공구(孔丘:孔子)의 춘추(春秋)며, 주희(朱憙:朱子)의 강목(綱目)의 웅덩이에 빠져 기자본기(箕子本紀) 아래 단군과 부여를 덧붙이로 하였으며, 신라 마지막 판에 궁예와 왕건을 참주(僭主)로 한 망발도 있고 너무 황실 중심의 주의를 고수하여 정작 민족 자체의 활동을 무시함이 많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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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시대에 유행하는 공구의 춘추와 주희의 강목의 구덩이에 빠져 기자본기 아래 단군과 부여를 덧붙였으며, 신라 마지막 판에는 궁예와 왕건을 참주로 한 망발도 있고 너무 황실 중심의 주의를 고수하여 정작 민족 자체의 활동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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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구의 정밀하기로는 선생 이상 가는 이가 없었으므로 지지(地志)의 잘못의 교정과 사실의 모순의 변증(辯證)에 가장 공이 많다 하여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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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연구의 정밀함으로서는 스승님보다 나아갈 사람이 없었기에, 지리지의 오류를 바로잡고 사실의 모순을 논파하는 데 가장 큰 공로가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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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풍(柳惠風)의 발해고(渤海考)는 대씨(大氏3백 년 동안 문치(文治)와 무공(武功)의 사업을 수록하여 1천여 년이나 사학가들이 압록강 이북을 베어버린 결함을 보충하였고 이종휘(李鍾?)의 수산집(修山集)은 단군 이래 조선 고유의 독립적 문화를 노래하여 김부식 이후 사학가의 노예 사상을 갈파하였는데, 특별한 발명과 채집(採集)은 없다 하더라도, 다만 이 한 가지만으로도 또한 영원히 남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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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풍의 발해고는 대씨가 3백 년 동안 문치와 무공의 사업을 기록하여 1천여 년 동안 사학가들이 압록강 이북을 다루지 못한 결함을 보충하였고, 이종휘의 수산집은 단군 이래 조선 고유의 독립적인 문화를 노래하여 김부식 이후 사학가들의 노예 사상을 깨뜨렸는데, 특별한 발명과 채집이 없다고 하더라도, 다만 이 한 가지만으로도 또한 영원히 남을 일이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한치윤(韓致奫)의 해동역사(海東繹史)는 오직 지나. 일본 등의 서적 가운데 보이는 우리역사에 관한 문자를 수집하여 거연히 방대한 저술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삼국사(三國史)에서 빠진 부여. 발해. 가락(駕洛). 숙신(肅愼) 등도 모두 한 편의 세기(世紀)를 구성하였으며, 동국통감(東國通鑑)에 없는 저근(姐瑾). 사법명(沙法名). 혜자(慧慈). 왕인(王仁) 등도 각각 몇 줄씩의 전기(傳記)가 있고 궁중어(宮中語). 문자. 풍속. 등의 부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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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윤의 해동역사는 오직 지나, 일본 등의 서적에서 보이는 우리 역사에 관한 문자를 모아 거대한 저술을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삼국사에서 빠진 부여, 발해, 가락, 숙신 등도 모두 한 편의 세기를 구성하였으며, 동국통감에 없는 저근, 사법명, 혜자, 왕인 등도 각각 몇 줄씩의 전기가 있고 궁중어, 문자, 풍속 등의 부문이 있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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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그의 조카 한진서(韓鎭書)의 지리속(地理續)이 있어서 뒷사람들의 고증의 수고를 덜어주었으니 또한 역사학에 두뇌가 있었다고 할 것이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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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그의 조카 한진서의 『지리속』이 있어 후대 사람들의 고증 노력을 덜어 주었으며, 또한 역사학에 지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너무 글자 사이에서 조선에 관한 사실을 찾다가 민족 대세의 관계를 잃었으니 곧 부루(夫婁)와 하우(夏禹)의 대 국제교제로 볼 오월춘추(吳越春秋)의 주신(州愼)의 창수사자(蒼水使者)와 2천 년 동안 흉노와 연(燕)과 삼조선(三朝鮮)이 혹은 화의하고 혹은 싸운 전후 큰 일들을 다 빠뜨렸고,
번역
너무 글자 사이에서 조선에 관한 사실을 찾다가 민족 대세의 관계를 잃었으니, 곧 부루와 하우의 대국제교제로 볼 오월춘추의 주신이 창수사자와 2천 년 동안 흉노와 연과 삼조선이 혹은 화의하고 혹은 싸운 전후 큰 일들을 다 빠뜨렸고,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유교의 위력에 눌려 고죽국(孤竹國)이 조선족의 갈래임을 발견치 못하는 동시에 백이(伯夷).숙제(叔齊)의 성명을 빠뜨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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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위세에 눌려 고죽국이 조선족의 갈래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한편, 백이와 숙제의 이름을 빼놓았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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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의 선택이 정확하지 못하였으니, 진서(晉書)의 속석전(束晳傳)에 의하면, “우(禹)임금이 백익(伯益)을 죽이고, 태갑(太甲)이 이윤(伊尹)을 죽였다.”는 등의 기록이 있는 것이 죽서기년(竹書紀年)의 진본(眞本)이요, 현존한 죽서기년은 가짜인데, 이제 그 가짜를 그대로 기재하였으며,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무릉서(武陵書)는 당나라 사람의 위조인데, 그대로 신용하여 인용하였고, 이 밖에 지나인이나 일본인이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서 우리 나라를 속이고 모욕한 것을 많이 그대로 수입하였으니, 이것이 그 책의 결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번역
서적 선택이 정확하지 못하여, 진서(晉書)의 속석전(束<0xE6><0x99><0xB3>傳)에 "우임금이 백익을 죽이고, 태갑이 이윤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이 죽서기년(竹書紀年)의 원본인데, 현존하는 죽서기년은 가짜이며, 이제 그 가짜를 그대로 기재하였고,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무릉서(武陵書)는 당나라 사람의 위조이거늘, 그대로 신용하여 인용했으며, 이 밖에 지나인이나 일본인이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어 우리 나라를 속이고 모욕한 것을 많이 그대로 수입하였으니, 이것이 그 책의 결점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제1편번역 대기
원문
이조 일대의 일을 적은 역사로 말하면, 내가 일찍이 정종조(正宗朝) 한때의 기록을 엮은 수서(修書)라는 아주 잔글자로 쓴 2백 권의 거질(巨帙)을 보았었고, 만일 관서(官書)인 국조보감(國朝寶鑑), 조야첨재(朝野僉載) 등을 비롯하여 허다한 개인 저술의 역사서까지 친다면 몇 백의 수레에 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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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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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태조(李太祖) 이하의 사실을 적은 역사로는 조야집요(朝野輯要),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등 몇몇 책을 대강 훑어본 이외에는 자세히 다 읽어본 것이 없으므로 아직 그 낫고 못함을 말하지 못하거니와, 대개 열에 일고여덟이 사색(四色)의 당쟁사(黨爭史)임은 단언할수 있을 것이니 아, 이조 이래 수백 년 동안의 조선인의 문화사업은 이에 끊어졌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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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하의 사실을 기록한 역사로는 조야집요나 연려실기술 등 몇몇 책들을 대략 훑어본 것 외에는 자세히 다 읽어본 것이 없으므로, 아직 그 좋고 못함을 말하지 못하겠으나, 대체로 열에 일고여덟이 사색의 당쟁사임은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아, 이조래 수백 년 동안 조선인의 문화사업은 이에 끊어졌도다.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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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 열거한 역사서를 다시 말한다면 대개가 정치사요, 문화사에 해당하는 것은 몇이 못 됨이 첫째 유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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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열거한 역사서들을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이 정치사와 문화사에 해당하는 것이 적어 첫째로 아쉬우며,
제1편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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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 중에서도 동국통감, 동사강목 이외에는 고금을 회통한 저서가 없고, 모두 한 왕조의 흥하고, 망한 전말로 글의 수미(首尾)를 삼았음이 유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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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 중에서도 동국통감, 동사강목 이외에는 고금을 아우른 저서가 없고, 모두 한 왕조의 흥하고 망한 전말을 글의 시작과 끝으로 삼았음이 유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