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高麗AD 918 – AD 1392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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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卷一
卷一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諱建,字若天,姓王氏。漢州松嶽郡人,金城太守隆之長子。母韓氏以唐僖宗乾符四年新羅憲康王三年丁酉正月十四日丙戌生太祖於松嶽南第,神光紫氣耀室充庭,竟日盤旋,狀若蛟龍。幼而聰明,龍顏日角,方頤廣顙,氣度雄深,語音洪大,寬厚,有濟世之量。在位二十六年,壽六十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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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건(建)이고 자는 약천(若天)이며, 성은 왕씨이다. 한주 송악군 사람으로, 금성 태수 용지(隆之)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한씨이며, 당 희종 건부 4년 신라 헌강왕 3년 정유년 정월 14일 병술일에 태조가 송악남에 태어났으니, 신성한 빛과 자줏빛 기운이 방을 가득 채우고 마침내 하늘을 휘감는 모양이 마치 교룡과 같았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용의 얼굴과 뿔을 지녔고, 네모난 턱과 넓은 이마에 기품이 깊으며, 목소리가 우렁차고 너그럽고 세상을 구제할 만한 큰 뜻을 지녔다. 재위 26년 동안 살았으며, 수명은 67세였다.
卷一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戊寅元年後梁末帝貞明四年,契丹太祖神冊三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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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원년 후 양 말제 정명 4년, 거란 태조 신책 3년이었다.
卷一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夏六月丙辰。太祖卽位于布政殿,國號高麗,改元天授。初,世祖築室松嶽之南,僧道詵來憩門外樹下,嘆曰:「此地當出聖人。」世祖聞之,倒屣出迎。相與登松嶽,道詵俯察仰觀,就爲書一封,授世祖曰:「公明年必得貴子,旣長,可以與之。」書秘,世莫知也。太祖年十七,道詵復至,請見曰:「足下値百六之會,三季蒼生待公弘濟。」因告以出師置陣地利天時之法,望秩山川感通保佑之理。時,新羅政衰,群賊競起,甄萱叛據南州,稱後百濟,弓裔據有高句麗之地,都鐵圓,國號泰封。世祖爲松嶽郡沙粲,以郡歸于裔。裔喜,卽以爲金城太守。世祖因說裔曰:「大王若欲王朝鮮肅愼卞韓之地,莫如先城松嶽,以吾長子爲其主。」裔從之,使太祖築勃禦槧城,仍爲城主。時,太祖年二十。後,伐廣州忠州唐城靑州槐壤等郡縣,平之,以功,授阿粲。又率舟師,攻錦城郡,拔之,擊取十餘郡縣,仍改錦城爲羅州。良州告急,裔令太祖往救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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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여섯째 달 병진일이었다. 태조가 부정전(布政殿)에 자리 잡고 나라 이름을 고려로 하고 연호를 천수(天授)로 바꾸었다. 처음에는 세조가 송악(松嶽)의 남쪽에 거처를 짓었는데, 승도(僧道<0xE8><0xA9><0xB5>)가 와서 문밖 나무 아래 쉬면서 탄식하기를 "이곳은 성인이 나올 곳이다"라고 하였다. 세조가 이를 듣고 신발을 벗어 던지며 나가 맞이하였다. 함께 송악에 오르니, 도와 승은 아래로 살피고 위로 바라보더니 마침내 글 한 봉투를 써서 세조에게 주면서 "공께서는 내년에 반드시 귀한 아들을 얻으실 것이니, 자라면 그 아이와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편지는 비밀이어서 세상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다. 태조가 열일곱 살 때, 승도가 다시 와서 만나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아랫분께서는 백육(百六)의 만남을 가치 있게 여기시니, 삼대 창생들이 공께서 크게 이롭게 해주시기를 기다립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출사하여 진지를 정하는 지리적 천시의 방법과 산천에 감응하고 보우받는 이치를 알려주었다. 이때 신라의 정세가 쇠퇴하고 여러 도적이 일어나, 견훤이 남주에 반란을 일으켜 후백제라 칭하고, 궁예가 고구려 땅 일부를 차지하여 도철원이라 하고 나라 이름을 태봉이라 하였다. 세조는 송악군 사찬(沙粲)이 되어 군을 궁예에게 돌렸다. 궁예가 기뻐하며 곧 이것을 금성태수(金城太守)로 삼았다. 세조는 이어서 궁예에게 말하기를 "대왕께서 왕조선과 숙신, 변한의 땅을 원하신다면, 먼저 송악성을 차지하는 것이 좋으니, 나의 장남을 그 주인으로 삼으십시오"라고 하였다. 궁예가 이를 따르어 태조에게 발어거성(勃禦<0xE6><0xA7><0xA7>城)을 짓게 하고 여전히 성주로 삼았다. 이때 태조가 스무 살이었다. 후에 광주와 충주, 당성, 청주, 괴랑 등의 군현을 정벌하여 평정하고 공을 세워 아찬(阿粲)을 받았다. 또 배를 타고 사병으로 금성군을 공격하여 빼앗고 열여 개 이상의 군현을 얻었으며, 금성을 로주(羅州)로 개칭하였다. 양주가 위급하다고 하여 궁예가 태조에게 가서 구원하도록 명하였다.
卷一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及還,陳安邊拓境之策,左右皆屬目,裔亦奇之,進階閼粲。攻尙州沙火鎭,與甄萱累戰克之。太祖見裔驕虐,復有志於閫外。適裔以羅州爲憂,遂令太祖往鎭之,進階爲韓粲海軍大將軍。推誠撫士,威惠竝行,敵境讋服。裔令閼粲宗希金言等爲副,修戰艦,攻拔光州珍島郡皐夷島城,進次德眞浦。甄萱列戰艦,自木浦至德眞,首尾相銜,水陸縱橫,兵勢甚盛。諸將患之。太祖曰:「師克在和,不在衆。」乃進軍急擊,敵船稍却。乘風縱火,燒溺者太半,斬獲五百餘級。萱以小舸遁歸。先是,羅州管內諸郡與我阻隔,賊兵遮絶,莫相應援,頗懷虞疑。及是,衆心悉定。金言等自以功多無賞,頗解體。太祖曰:「愼勿怠也。唯戮力無貳心,庶可獲福。今,主上多殺不辜,讒諛得志,在內者,人不自保,莫如外事征伐,殫力勤王之爲愈也。」諸將然之。遂至潘南縣浦口,縱諜賊境。時,有壓海縣賊帥能昌,起海島,善水戰,號曰水獺,嘯聚亡命,與葛草島小賊相結,候太祖至,欲害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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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와서 진안이 변방의 땅을 개척하는 계책을 펼치자, 좌우 모두가 이를 따랐고, 그 후예들 또한 기이하게 여겨 가찬에게 나아가게 하였다. 상주 사화진을 공격하여 진선과 연달아 싸워 이겼다. 태조는 후예들이 교만하고 난폭하다고 보고, 또다시 변방에 뜻을 두었다. 이에 후예를 로주로 보내 걱정하게 하고, 마침내 태조가 그곳으로 가도록 하여, 가찬에게 해군대장군이라는 직책을 주었다. 성실한 사람들을 달래고 사기를 북돋아 위엄과 은혜를 함께 베풀자 적들이 두려워 복종하였다. 후예는 가찬, 종희, 금언 등에게 부관으로 삼고 전함을 수리하여 광주 진도군 고의도를 함락시키고, 이어서 덕진포까지 나아갔다. 진선은 전함을 늘어세워 목포에서 덕진까지 머리를 맞대게 하여, 물과 육지에서 오가며 군세가 매우 성대하였다. 여러 장수들이 이를 걱정하였다. 태조가 말하기를, "군대가 이기는 것은 무리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취적인 기세에 있다."라 하니, 나아가 급습하자 적선이 조금 물러섰다. 바람을 타고 불을 지르자, 빠져 죽은 자가 절반이나 되었고, 사로잡은 배는 오백여 척에 달했다. 선은 작은 배를 타고 도망하여 돌아갔다. 먼저 로주 관내의 여러 군과 우리 사이에 막혀 적군이 끊어지니, 서로 돕는 이가 없어 매우 근심스러웠다. 이때 비로소 모두의 마음이 안정되었다. 금언 등은 공을 많이 세웠으나 상을 받지 못하자 다소 풀이 죽었다. 태조가 말하기를, "경계하여 게으름 피우지 마라. 오직 힘쓰는 데 두려움 없는 마음만이 복을 얻을 수 있다. 지금 주상께서 죄 없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죽이고, 아첨하는 자들이 뜻을 얻으니, 안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지키기 어려우니, 밖에서 원정을 벌여 나라를 위해 힘쓰는 것이 가장 좋다." 하니, 여러 장수들이 이에 따랐다. 마침내 판남현 포구에 이르러 적진을 공격하였다. 이때 압해현의 적장 능창이 바다섬을 일으켜 수전에 능하여 '물달'이라 불리며, 무리를 지어 도망치는 자들과 결합하여 태조가 오기를 기다리며 해치려 하였다.
卷一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太祖謂諸將曰:「能昌已知我至,必與島賊,同謀爲變。賊徒雖小,若幷力合勢,遏前絶後,勝負未可知也。使善水者十餘人擐甲持矛,乘輕舫,夜至葛草渡口,擒來往計事者,以沮其謀,可也。」諸將皆從之。果獲一小舸,乃能昌也。執送于裔,斬之。裔授太祖波珍粲侍中,以召之。於是,位冠百僚,抑情謹愼。每見人被讒,輒悉解救,朝臣將士洽然歸心。太祖懼禍及,復求外寄,裔亦謂:「水軍帥輕,不足以威敵。」乃解太祖侍中,使復領水軍,鎭羅州。百濟與海上草竊聞太祖復至,皆懾伏,莫敢動。太祖還,告舟楫之利應變之宜。裔喜謂左右曰:「我諸將帥中誰可比擬乎。」時,裔誣構叛罪,日殺百數。一日,急召太祖,怒目熟視曰:「卿昨夜聚衆謀叛,何耶。」太祖笑對曰:「烏有是哉。」裔嘗自謂彌勒佛,乃曰:「卿莫紿我。我能觀心,所以知也。我將入定以觀。」乃合眼負手,仰天良久。時,掌奏崔凝在側,佯墜筆,下庭取之,因趨過太祖,微語曰:「不伏則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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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가 여러 장수들에게 말하였다. "창능이 내가 왔음을 알게 되면, 반드시 섬나라 도적들과 함께 모의하여 변을 일으킬 것이다. 도적 무리가 비록 작을지라도, 만약 힘을 합쳐 세력을 이루어 앞을 막고 뒤를 끊으면 승패를 알 수 없다. 선수한 자 열댓 명을 무장시키고 창과 창을 들게 하여, 가벼운 배를 타고 밤에 갈초도에 도착하여, 왕래계사들을 사로잡아 그들의 계략을 막는 것이 어떻겠는가?" 여러 장수들이 모두 따랐다. 마침내 작은 배 한 척을 얻어 창능이 되었다. 그를 붙잡아 유이에게 넘겨 베었다. 유이가 태조에게 파진찬 시중을 주어 그를 부르게 하였다. 이에 관복을 갖추고 백관들 앞에서 마음을 삼가게 하였다. 매번 사람이 모함당하는 것을 보면, 모두 구제하였고, 조정 신하들과 장수들은 마음에 편안함을 느꼈다. 태조가 재앙을 두려워하여 다시 외지로 보내기를 청하자, 유이 또한 말했다. "수군 사령관이 가볍다 하여 적을 위협하기에 부족하다." 이에 태조의 시중을 풀고 다시 수군을 이끌게 하여 나주를 진압하게 하였다. 백제와 해상 초는 태조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두려워하여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태조가 돌아와 배와 닻의 이로움과 변화에 적합한 점을 알렸다. 유이가 기뻐하며 좌우에게 말했다. "내 장수들 중에 누가 비할 만한 사람이 있겠는가." 이때, 유이가 거짓으로 반역죄를 꾸며 매일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어느 날, 급히 태조를 부르고 노골적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경은 어젯밤 무리들을 모아 반역을 꾀했느냐?" 태조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것이 없다." 유이는 스스로 미륵불이라고 여기며 말했다. "경은 나를 속이지 마라. 나는 마음을 볼 수 있으니, 그래서 안다. 내가 선정에 들어가 관찰하겠다." 이에 눈을 감고 손을 모아 하늘을 오랫동안 우러러보았다. 이때, 주관하던 최응이 곁에 있다가, 일부러 붓을 떨어뜨려 마당에서 그것을 집어 들고, 이어서 태조를 지나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엎드리지 않으면 위태롭다."
卷一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太祖乃悟曰:「臣實謀叛,罪當死。」裔大笑曰:「卿可謂直也。」卽以金銀粧鞍賜之。太祖嘗夢見九層金塔立海中,自登其上。是年三月,有商客王昌瑾,自唐來寓市廛,忽於市中見一人,狀貌瑰偉,鬚髮皓白,頭戴古冠,披居士服,左手持垸,右手持古鏡。謂昌瑾曰:「能買我鏡乎。」昌瑾以米買之,懸於市壁。日光斜映,隱隱有細字可讀。其略曰:「三水中,四維下,上帝降子於辰馬,先操雞,後搏鴨。於巳年中,二龍見,一則藏身靑木中,一則現形黑金東。或見盛,或視衰,盛衰爲滅惡塵滓。」昌瑾初不知有文,及見之,謂非常,獻于裔。裔王昌瑾物色,求其人,不得。唯東州勃颯寺有鎭星古像,如其狀,左右亦持垸鏡。昌瑾喜,具以狀白,裔歎異之,令文人宋含弘白卓許原等解之。含弘等曰:「三水中,四維下,上帝降子於辰馬者,辰韓馬韓也。巳年中,二龍見,一則藏身靑木中,一則現形黑金東者,靑木松也,謂松嶽郡人,以龍爲名者之子孫,可以爲君主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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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가 깨달아 말하기를, "신이 실로 반역을 꾀하였으니 죄는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예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경은 곧다고 할 수 있소." 곧 금은으로 안장과 장식품을 내려주었다. 태조는 일찍이 꿈에 아홉 층의 금탑이 바다 가운데 서 있고, 스스로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 해 삼월에 상인 왕창근이라는 사람이 당나라에서 와서 시장에 머물고 있다가, 문득 시장에서 한 사람을 보았는데, 용모가 웅장하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희었으며, 머리에는 옛 관을 쓰고 승려의 옷을 입고, 왼손에는 곡<0xEA><0xB4><0xAD>이를 들고 오른손에는 옛 거울을 들고 있었다. 창근이 그에게 말하기를, "내 거울을 살 수 있겠소?" 창근은 쌀로 그것을 사서 시장 벽에 걸었다. 햇빛이 비쳐 은은하게 읽을 수 있는 글자가 있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세 물과 네 방향 아래, 상제께서 진마(辰馬)에서 아들을 내리셨으니, 먼저 닭을 잡고 나중에 오리를 잡았다. 사년(巳年)에 두 용이 보이는데, 한쪽은 푸른 나무 속에 숨어 있고, 다른 쪽은 검은 금속으로 동쪽에 나타난다. 때로는 번성한 것처럼 보이고, 때로는 쇠퇴해 보이는 것이 그 흥망성쇠가 악하고 더러운 재를 없애는 것이다." 창근은 처음에는 글자가 있다는 것을 몰랐으나, 그것을 보고는 비범하다고 여겨 예에게 바쳤다. 예는 왕창근의 물건을 살펴보고 그 사람을 찾았으나 얻지 못했다. 다만 동주(東州)의 발삿사(勃颯寺)에 진성(鎭星)의 옛 조각상이 있는데, 모양이 그러하고 좌우에도 곡<0xEA><0xB4><0xAD>이와 거울을 들고 있었다. 창근은 기뻐하며 그것으로 상황을 아뢰었고, 예는 이를 이상하게 여겨 문인 송함홍, 백탁, 허원 등에게 풀이를 부탁했다. 함홍 등이 말하기를, "세 물과 네 방향 아래 상제께서 진마에서 아들을 내리신 것은 진한(辰韓)과 마한(馬韓)이다. 사년에 두 용이 보이는데, 한쪽은 푸른 나무 속에 숨어 있고, 다른 쪽은 검은 금속으로 동쪽에 나타난 것은 푸른 나무인 소나무이며, 이를 송악군 사람이라 하고 용을 이름으로 삼은 자의 후손이니 군주가 될 수 있다."
卷一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王侍中有王侯之相,豈謂是歟。黑金鐵也,今所都鐵圓之謂也。今主初盛於此,殆終滅於此乎。先操雞,後搏鴨者,王侍中御國之後,先得雞林,後收鴨綠之意也。」三人相謂曰:「王猜忌嗜殺,若告以實,王侍中必遇害,吾輩亦且不免矣。」乃詭辭告之。六月乙卯。騎將洪儒裴玄慶申崇謙卜智謙等密謀,夜詣太祖第,將言推戴之意。不欲令夫人柳氏知之,謂柳氏曰:「園中豈有新瓜乎,可摘來。」柳氏知其意,出從北戶,潛入帳中。於是,諸將曰:「今,王政僭刑濫,殺妻戮子,誅夷臣僚,民墜塗炭,疾之如讎。桀紂之惡無以加也。廢昏立明,天下之大義,請公行殷周之事。」太祖作色,拒之曰:「吾以忠義自許,王雖暴亂,安敢有二心。以臣伐君,斯謂革命,予實不德,敢效湯武之事乎。恐後世將以爲口實。古人云:『一日爲君,終身爲主。』況延陵季子曰:『有國,非吾節也。』乃去而耕焉,吾豈過季子之節乎。」諸將曰:「時難遭而易失,天與不取,反受其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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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시중에게 왕후의 모습이 있거늘, 어찌 그리 말하는가. 검은 쇠와 철로 만든 것이니, 지금 이 곳에서 둥근 쇠를 이르렀다. 이제 주군께서 이곳에 처음 번성하시었으나, 아마도 여기서 끝날 것인가. 먼저 닭을 잡고 나중에 오리를 잡는 것은, 왕시중이 나라를 다스린 후에 먼저 계림을 얻고 나중에 아녹을 거두었다는 뜻이다." 세 사람이 말하기를, "왕께서는 의심하고 살생하는 것을 좋아하시니, 만약 사실로 고한다면 왕시중께서는 반드시 해를 입으실 것이요, 우리들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에 속임수로 고하였다. 6월 을묘일. 기장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이 비밀리에 모의하여 밤에 태조의 거처로 가서 전복(推戴)할 뜻을 말하려 하였다. 부인 유씨가 알기를 원치 않아, 유씨에게 "뜰 안에 새 오이가 있느냐, 따와라."라고 말했다. 유씨는 그 뜻을 알고 북쪽 문으로 나가 잠자리에 숨어들었다. 이에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지금 왕정은 법도를 거스르고 남용하여 아내를 죽이고 자식을 베었으며, 신하들을 참살하고 백성들은 고통 속에 떨어져 숯처럼 괴로워한다. 걸후의 악함에 비할 바가 없다. 어리석은 이를 폐하고 밝은 이를 세우는 것이 천하의 큰 의이니, 공께서 은나라와 주나라의 일을 행하시기를 청합니다." 태조는 표정을 지으며 거절하기를 말하였다. "나는 충과 의로 스스로를 칭한다. 왕이 비록 난을 일으켰으나, 감히 두 마음을 품을 수 있겠느냐. 신하가 임금을 치니, 이것을 혁명이라 하거늘, 내가 실로 덕이 없어서 감히 목공(湯武)의 일을 따르겠는가. 후세 사람들이 이를 구실로 삼을까 두렵다. 옛사람들이 말하기를 '하루 동안 군주가 되어도 평생 주인이 된다'고 하였다. 하물며 연릉 계자가 말하기를 '나라가 있어도 나만의 절개는 아니다'라 하고 떠나서 농사지었으니, 내가 어찌 계자의 절개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여러 장수들이 말하기를, "때가 어려워 겪기 쉽고 잃기는 쉬우니, 하늘이 주지 않으니 오히려 그 허물을 받는다."
卷一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國中民庶受毒痡者,日夜思欲復之。且權位重者,皆遭殺戮,今之德望未有居公之右者。衆情所以望於公也,公若不從,吾等死無日也。況王昌瑾鏡文如彼,豈可違天,死於獨夫之手乎。」柳氏出,謂太祖曰:「擧義代虐,自古而然。今聞諸將之議,妾猶憤發,況大丈夫乎。」手提甲領,以被之。諸將扶擁而出,黎明,坐於積穀之上,行君臣之禮。令人馳且呼曰:「王公已擧義旗矣。」國人奔走來赴者,不可勝記,先至宮門鼓譟以待者,亦萬餘人。裔聞之,不知所圖,微服出北門,遁于巖谷,尋爲斧壤民所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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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백성들이 독과 질병을 앓아 밤낮으로 회복하기를 바랐다. 게다가 권세 있는 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으니, 지금 덕망이 공보다 뛰어난 이는 없었다. 무리들이 공에게 기대를 거는 까닭은 그러하며, 만약 공께서 따르지 않으신다면 우리들은 살 날이 없다. 하물며 왕창근과 경문 같은 분이라면 어찌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홀로 힘 있는 자의 손에 죽을 수 있겠는가." 유씨가 나와 태조에게 말하였다. "악행을 대신할 의리를 세우는 것은 예로부터 그러합니다. 지금 여러 장수들의 논의를 들으니, 저는 여전히 분개하며, 하물며 대장부일까요." 갑옷 깃을 손에 들고 그것으로 몸을 감쌌다. 여러 장수들이 그를 부축하여 나오자, 새벽녘에 곡식 더미 위에 앉아 군신으로서 예를 갖추었다. 사람을 시켜 달려가 외치게 하니 "왕공께서 이미 의기(義旗)를 세우셨습니다." 나라 사람들이 달려와 모인 것은 형언할 수 없으며, 먼저 궁문까지 와서 기다리던 이들도 만 명이 넘었다. 이를 들은 자들은 무슨 속셈인지 알지 못하여, 평상복으로 북문을 나와 바위골짜기로 숨어들었고, 마침내 부장민들에게 해를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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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丁巳。詔曰:「泰封主當四郡土崩之時,剷除賊寇,漸拓封疆,未至兼幷,惟以酷暴御衆,以姦回爲至道,以威侮爲要術,徭煩賦重,人耗土虛,而宮室過制,勞役不止,怨讟遂興。於是,竊號稱尊,殺妻戮子,天地不容,神人共怨,荒墜厥緖,可不誡乎。朕謬膺推戴,叨處崇高,庶幾戒覆車之轍,取伐柯之則,與民更始,移風易俗,君臣諧魚水之歡,河海協晏淸之慶,內外群庶宜悉朕懷。」群臣拜謝曰:「臣等値泰封之世,毒害良善,淫虐無辜,老稚嗷嗷,莫不含冤,幸今遭遇聖明,得保首領,敢不竭力,以圖報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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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丁巳)에 조서가 내려지기를, "태봉의 주인이 사군(四郡)의 땅이 무너질 때, 도적과 무리를 제거하고 점차 영토를 넓혔으나, 아직 합병에 이르지 못하여, 다만 가혹하고 폭력으로 백성을 다스리고, 간교함과 돌아감으로 지극한 도리로 삼고, 위세와 모욕으로 중요한 기술로 삼았으며, 부역과 세금이 무겁고, 사람과 땅이 헛되이 소모되고, 궁실이 지나치게 제도화되어 노역이 끊이지 않으니, 원망과 불만이 마침내 일어났다. 이에 몰래 높은 칭호를 자처하고 아내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니,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하고, 신과 인간 모두 원망하며, 그 근본이 무너져 내리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짐이 잘못 받아들여 높고 높은 자리에 있게 되었으니, 마치 무너진 수레의 자국을 경계하고, 가지를 베는 법을 취하여, 백성과 다시 시작하고, 풍속을 바꾸어, 군신이 물과 고기처럼 화목하고, 강과 바다가 평안하고 맑은 경사를 이루게 하니, 안팎의 모든 백성이 마땅히 짐의 뜻을 따라야 할 것이다." 신하들이 절하며 답하기를, "신들은 태봉의 시대를 겪으며, 착하고 선한 사람들을 해치고, 음란하고 잔혹하여 무고한 이들이 많으며, 늙은이와 어린아이들이 애처롭게 울부짖고, 원한을 품는 이가 없지 않습니다. 다행히 지금 성명한 분을 만나 목숨을 보전하게 되었으니, 감히 힘을 다하여 보답할 방도를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卷一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王謂靑州人韓粲聰逸曰:「泰封主以靑州沃饒,人多豪傑,恐其爲變,將欲殲之,乃召軍人尹全愛堅等八十餘人,俱以非辜,械繫在途,卿其亟往,放還田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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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청주 사람 한찬총일에게 말하였다. "태봉의 땅은 청주가 비옥하고 사람이 많으며 호걸들이 있어 변고를 일으킬까 두렵다. 이제 곧 그들을 섬멸하려 하니, 군인 윤전애건 등 여든여 명이 모두 죄가 없어 길에 묶여 있다. 경이 속히 가서 그들의 마을로 돌려보내라."
卷一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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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騎卒泰評爲徇軍郞中。評博涉書史,明習吏事。初爲鹽州賊帥柳矜順記室,裔破矜順,評乃降。裔怒其久不服,令屬卒伍。遂從太祖,開國之際,與有力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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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병과 사졸을 거느리고 태평에서 군사를 돌았다. 평보에서는 서적과 역사를 두루 익혔고, 관리의 일을 밝게 배웠다. 처음에는 염주 지역의 도적 우두머리였던 유긍순의 기록실에 속했으며, 그 후 긍순을 깨뜨려 평이 항복했다. 긍순은 오랫동안 복종하지 않은 것에 분노하여 부하 사졸들을 거느렸다. 마침내 태조를 따랐고, 나라가 세워질 때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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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軍將軍桓宣吉伏誅。初,宣吉與其弟香寔俱有翊戴之功,王委以腹心,常令率精銳以宿衛。其妻謂曰:「子才力過人,士卒服從,又有大功,而政柄在人,可不懊乎。」宣吉心然之。遂陰結兵士,伺隙爲變。卜智謙知之,密告,王以跡未形,不納。一日,王坐殿上,與學士數人議國政,宣吉與其黨五十餘人持兵,突入內庭,直欲犯之。王策杖而立,厲聲叱之曰:「朕雖以汝輩之力至此,豈非天乎。天命已定,汝敢爾耶。」宣吉見王辭色自若,疑有伏甲,與衆走出。衛士追殺之。香寔後至,知事敗亦亡,追兵殺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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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군장군 환선길은 복병으로 죽임을 당했다. 처음에는 선길과 그의 아우 향식이 모두 나라를 돕는 공을 세워 왕이 그들을 중히 여겨 늘 정예 병력을 이끌고 지키게 했다. 그의 아내가 말하기를, "아들이 재주가 사람을 넘치고 사졸들의 복종도 있으며 큰 공까지 세웠는데, 정치의 권세가 저 사람에게 있다니, 부럽지 않겠습니까."라 하니 선길이 마음이 놓였다. 이에 몰래 병사들을 모아 틈을 노려 변을 일으키려 했다. 북지겸은 이를 알고 비밀리에 고자하니 왕께서 자취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고 여기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느 날, 왕께서 전각에 앉아 학사 몇 명과 나라의 정사를 의논하고 있을 때, 선길과 그의 무리 오십여 명이 병기를 들고 갑자기 내궁으로 쳐들어와 곧 범하려 했다. 왕께서는 책장으로 서서 호통치시며 말씀하시기를, "짐이 비록 너희들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으나 어찌 하늘의 뜻이 아니겠느냐. 하늘의 명은 이미 정해졌거늘, 네가 감히 거역할 수 있겠느냐." 선길은 왕께서 태연한 모습을 보이자 혹시 숨겨둔 무기가 있을 것이라 의심하고 군중과 함께 빠져나갔다. 호위병들이 그들을 추격하여 죽였다. 향식이 나중에 도착했으나, 이미 상황이 패배하였음을 알고 추격하는 병사들에게 살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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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詔曰:「設官分職爲國所先,化俗安民用賢爲急,誠無官曠,何有政荒。朕知人不明,審官多失,寢興疚懷,職此而已。內外庶僚,各稱其職,今時致理,後世稱休。宜其登庸列辟,歷試群公,用懋精選,咸使僉諧。自中及外,具悉朕懷。」遂以金行濤爲廣評侍中,黔剛爲內奉令,林明弼爲徇軍部令,林曦爲兵部令,陳原爲倉部令,閻萇爲義刑臺令,歸評爲都航司令,孫逈爲物藏省令,秦勁爲內泉部令,秦靖爲珍閣省令。是皆稟性端方,處事平允,創業之始,推戴有功者也。林積璵爲廣評侍郞,能駿權寔竝爲內奉卿,金堙英俊竝爲兵部卿,崔汶堅術竝爲倉部卿,朴仁遠金言規竝爲白書省卿,林湘煖爲都航司卿,姚仁暉香南竝爲物藏卿,能惠曦弼竝爲內軍卿。是皆夙達事務,奉公無怠,敏於決斷,允愜衆心者也。康允珩爲內奉監,申一林寔竝爲廣評郞中,國鉉爲員外郞,倪言爲內奉理決,曲矜會爲評察,劉吉權爲徇軍郞中。其餘司省各置郞史,蓋開國之初,妙簡賢材,以諧庶務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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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하기를, 관직을 나누어 나라의 근본을 세우고, 풍속을 교화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재능 있는 이를 쓰는 것이 급선무이니, 진실로 관직이 비는 곳이 없으면 어찌 정사가 황폐하겠는가. 짐은 사람이 밝지 못하고, 관직을 살피는 이들이 많이 잘못하는 것을 알고 마음이 괴롭도다. 이로써 그치노라. 내외의 신료들은 각자의 직책을 지키고, 지금의 정리를 이르면 후세에 편안함을 얻을 것이다. 마땅히 등용할 사람들과 열거할 사람들을 시험하여 여러 공신들을 거느리고, 힘써 정성껏 뽑아 모두 첨해(僉諧)로 삼을 것이다. 안쪽부터 바깥까지, 짐의 뜻을 모두 담았다. 이에 금행도(金行濤)를 광평시중으로, 검강(黔剛)을 내봉령으로, 임명필(林明弼)을 순군부령으로, 임희(林曦)를 병부령으로, 진원(陳原)을 창부령으로, 염암(閻萇)을 의형대령으로, 귀평(歸評)을 도항사령으로, 손형(孫逈)을 물장성령으로, 진경(秦勁)을 내천부령으로, 진정(秦靖)을 진각성령으로 삼았다. 이들은 모두 타고난 성품이 바르고, 일을 처리하는 것이 공평하며, 나라를 세우기 시작할 때 공을 세운 이들이다. 임적(林積)과 현(璵)은 광평시랑으로, 능준(能駿)과 권식(權寔)은 함께 내봉경으로, 금낭(金堙)과 영준(英俊)은 함께 병부경으로, 최문(崔汶)과 견술(堅術)은 함께 창부경으로, 박인(朴仁)과 원금(遠金)은 함께 백서성경으로, 임상(林湘)과 난(煖)은 도항사경으로, 요인(姚仁)과 휘(暉)는 함께 물장경으로, 능혜(能惠)와 희필(曦弼)은 함께 내군경으로 삼았다. 이들은 모두 일찍부터 업무에 능통하여, 공을 받들 때 게으름이 없고, 결정에 민첩하며, 여러 사람의 마음에 합당한 이들이다. 강윤형(康允珩)을 내봉감으로, 신일(申一)과 임식(林寔)은 함께 광평랑중으로, 국현(國鉉)을 원외랑으로, 니언(倪言)을 내봉리결로, 곡경회(曲矜會)를 평찰로, 유길권(劉吉權)을 순군랑중으로 삼았다. 그 외 사성(司省)에는 각기 랑사(郞史)를 두었는데, 이는 나라를 세우기 초기에 묘하고 간결하며 재능 있는 인재들로 여러 업무를 조화시키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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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朴質榮爲侍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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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질영을 시중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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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蘇判宗偘內軍將軍犾鈇伏誅。偘與鈇俱以姦佞,得幸弓裔,譖害良善。王卽位,首誅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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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판종과 웅내군장군은 죄가 깊어 참수되었다. 웅은 전과 함께 간사하고 아첨하여, 복이 있던 공의를 모함하고 선량한 사람들을 해쳤다. 왕이 즉위하자 그들을 모두 처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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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隱士朴儒來見。王以禮待之,謂曰:「致理之道,惟在求賢。今,卿之來,如得傅巖渭濱之士。」因賜冠帶,令管機要,賜姓王。儒性質直,通經史。初,仕弓裔,爲員外,遷至東宮記室。見裔政亂,遂出家,隱於山谷,聞王卽位,乃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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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하는 선비 박유가 찾아왔다. 왕이 예로써 그를 대하며 말하기를, "도리를 이르는 바는 오직 현인을 구하는 데 있다. 지금 경이 온 것은 마치 암위(巖渭)의 강가에 사는 학자 같구나." 하고 관대와 띠를 내려주고 기묘한 일을 맡기며 성씨 왕을 주었다. 유는 본래 성품이 곧고 경전과 역사를 통달하였다. 처음에는 궁예 밑에서 일하여 원외(員外)의 자리에 이르렀다가 동궁 기록실로 옮겼다. 예가 정변하는 것을 보고 마침내 출가하여 산골에 숨어 지내다가, 왕이 즉위한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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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詔曰:「爲國,當務節儉。民富倉實,雖有水旱飢饉之災,可無患也。所有內莊及東宮食邑積穀,多致朽損,其以內奉郞中能梵爲審穀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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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서에 이르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절약하는 것이 마땅하다. 백성이 부유하여 창고가 가득 차면, 비록 물난리나 흉년의 재앙이 있어도 근심할 것이 없다. 소유한 내장과 동궁의 식읍에 쌓인 곡식은 많이 썩거나 손상되니, 이를 내에서 봉하는 장중능범을 심곡사로 삼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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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始定官制。詔曰:「朕聞乘機革制,正謬是詳,導俗訓民,號令必愼。往者,泰封主以新羅階官郡邑之號鄙野,改爲新制,行之累年,民不習知,以至惑亂。今,悉從新羅之制,其名義易知者,可從新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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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관제를 정하였다. 조서에 이르기를, "짐이 듣기로 기구의 제도를 바꾸는 것이 옳고 그름을 자세히 살피어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법도와 명령은 반드시 신중해야 한다. 이전에는 태봉주가 신라의 계관과 군읍의 이름을 비천한 들판에 두어 새 제도로 고쳐서 여러 해 동안 시행하였으나, 백성들이 익숙하지 않아 혼란에 이르렀다. 이제는 모두 신라의 제도를 따르니, 그 이름이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제도를 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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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吉粲能允獻瑞芝一本。得之家園,九莖三秀。王賜內倉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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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한 빛이 찬란하여 신비로운 지초 한 포기를 바치니, 집안의 뜰에서 난 것으로 아홉 가닥에 세 개의 새순이 나 있었다. 왕께서 창고 곡식을 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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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馬軍大將軍伊昕巖,棄市。昕巖業弓馬,見利躁求。事弓裔,以鉤距,得見任用。至裔末年,襲取熊州,因而鎭之,聞王卽位,潛懷禍心,不召自至,士卒多亡,熊州復爲百濟所有。守義刑臺令閻萇與昕巖比隣,知其陰謀具奏。王曰:「昕巖棄鎭自來,以喪邊疆,罪實難原。然與我竝肩事主,情分有素,不忍加誅。且其叛形未露,彼必有辭。」萇請密令伺之,王遣內人,至萇家,從帳中候之。昕巖妻桓氏至廁,謂其無人,旋已長吁曰:「吾夫事若不諧,則吾受禍矣。」言訖而入。內人以狀聞,遂下昕巖獄,具伏。令百僚議其罪,皆曰:「當誅。」王親讓之曰:「汝素畜兇心,自陷刑辟。法者,天下之公也,不可私撓。」昕巖流涕而已。令斬於市,籍其家,黨與不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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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군대장군 이흔암은 성을 버렸다. 흔암은 활과 말을 익혀, 이익에 민감하고 조급했다. 궁예를 섬기다가 갈고리와 쇠못으로 공을 세워 쓰임을 얻었다. 요의 말년에 흥주를 차지하여 마침내 진압하였는데, 왕이 즉위하자 은밀히 화근을 품어 부르지 않아도 찾아왔다. 사병들이 많이 죽자 흥주는 다시 백제의 소유가 되었다. 의형대에서 염암과 흔암을 나란히 두게 하니, 그의 음모를 알고 아뢰었다. 왕이 말하기를, "흔암은 진을 버리고 와서 변방을 잃게 했으니 죄가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다. 그러나 나와 함께 임금을 섬긴 정분이 있어 죽이기 어려우며, 게다가 반역의 기색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으니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염이 비밀리에 그를 살피도록 청하자, 왕이 내관을 보내 염의 집까지 가서 장막 안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흔암의 아내 환씨가 화장실에 이르러 사람이 없다고 말하고는 이윽고 길게 한숨 쉬며 말했다. "저의 남편 일이 순조롭지 못하면, 저 또한 재앙을 당할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들어갔다. 내관이 그 상황을 보고하자, 마침내 흔암은 감옥에 갇히고 모두가 누명을 쓰게 되었다. 백관들에게 죄를 논하게 하니 모두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왕께서 친히 만류하며 말하기를, "너는 본래 사악한 마음을 품어 스스로 형벌에 빠졌다. 법이란 천하의 공적인 것이니 함부로 흔들어서는 안 된다." 흔암은 눈물만 흘렸다. 시장에서 베게 하고 그의 집안과 관련자들은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