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高麗AD 918 – AD 1392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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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卷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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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五月。政丞金傅獻玉帶,長十圍,六十二銙。王受之,命藏于物藏。初,新羅使金律來,王問曰:「聞新羅有三大寶,丈六金像九層塔幷聖帶也,三寶未亡,國亦未亡。像塔猶存,不知聖帶今猶在耶。」律對曰:「臣未嘗聞聖帶也。」王笑曰:「卿爲國貴臣,柰何不知國之大寶。」律慙,而還告其王。王問群臣,無能知者。有皇龍寺老僧曰:「予聞聖帶,是眞平大王所服也,歷代傳之,藏在南庫。」王遂齋祭,見之。至是,獻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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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다섯째 달. 정승 김부가 옥띠를 가지고 열 겹과 예순두 개를 가져왔다. 왕이 그것을 받고 물건 창고에 모셔두게 했다. 처음에는 신라 사신 김률이 왔는데, 왕이 물었다. "신라에 큰 보물이 세 가지가 있다고 들었다. 길이 여섯 자에 금상과 아홉 층 탑, 그리고 성대도 있다는데, 이 세 보물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나라 또한 사라지지 않았다. 상과 탑은 아직 남아 있는데, 성대는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률이 대답했다. "신은 성대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왕이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나라의 귀한 신하인데, 어찌 나라의 큰 보물을 모를 수 있느냐." 률이 부끄러워하며 돌아가 왕에게 고했다. 왕이 신하들에게 물었으나,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황룡사 노승이 말하길, "제가 듣기로 성대는 진실로 평대왕께서 입으셨던 것이며, 대대로 전해 내려와 남쪽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왕이 마침 제사를 지내다가 그것을 보고, 이윽고 그것을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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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歲,城順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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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는 성순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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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遣王規邢順如晉,賀登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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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규가 형순을 진나라로 보내고, 하등극에게 축하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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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戌二十一年後晉天福三年,契丹會同元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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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 21년 후진 천복 3년, 괴등 회동 원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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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三月。西天竺僧來。王備兩街威儀法駕,迎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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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삼월. 서쪽의 천축 나라 승려가 오자, 왕이 두 거리에 위엄 있는 법의를 갖추어 맞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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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七月。碧珍郡將軍李悤言卒。新羅之季,群盜競起,唯碧珍郡爲悤言所保,民賴以安。王遣人,諭以同心戮力,底定禍亂。悤言奉書甚喜,卽遣其子永,將兵從王征討。王善之,以大匡思道貴女妻之,拜悤言本邑將軍,恩賚稠重。悤言感激,鍊兵峙糧,以孤城,介於新羅百濟必爭之地,屹然爲東南聲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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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칠월. 벽진군 장군 이전이 돌아가셨다. 신라의 시기에 도적들이 여기저기 일어나자, 오직 벽진군만이 전에게 보호를 받았고 백성들은 그로 인해 안정을 얻었다. 왕이 사람을 보내 함께 힘써서 재앙과 혼란을 막으라고 명하였다. 전은 이 서신을 받고 매우 기뻐하여 곧 아들 영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왕을 따라 정벌에 나섰다. 왕은 또한 대광의 사도 귀녀의 남편을 생각하여, 전에게 본래 고향의 장군 자리를 내리며 은혜와 재물을 두텁게 베풀었다. 전은 감격하여 병사를 단련하고 군량을 비축하며, 외딴 성으로 신라와 백제가 반드시 다툴 땅에 자리 잡아 굳건히 남동쪽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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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始行後晉年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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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후진의 연호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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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冬十二月。耽羅國太子末老來朝。賜星主王子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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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열두월. 탐라국의 태자는 늙어 조정에 나아왔다. 별주 왕자 작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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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歲,城陽巖龍岡平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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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는 성양의 암룡강 평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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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亥二十二年後晉天福四年,契丹會同二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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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 22년 후진 천복 4년, 거란 회동 2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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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三月。佐丞龔直卒。直燕山昧谷人。自幼有勇略。事百濟,爲甄萱腹心,以長子直達次子金舒及一女爲質。直嘗朝百濟,謂直達曰:「今,見此國,奢侈無道。吾雖密邇,不願復來。聞高麗王公,文足以安民,武足以禁暴,故四方無不懷服。予欲歸附,汝意何如。」直達曰:「自入質以來,觀其風俗,唯恃富强,競務驕矜,安能爲國哉。今,大人欲歸明主,保安弊邑,不亦宜乎。予當與弟妹,俟隙而歸矣。縱不得歸,賴大人之明,餘慶流於子孫,則予雖死無恨。」直遂決意來附,與子英舒來朝,言於王曰:「臣在弊邑,久聞風化,雖無助天之力,願竭爲臣之節。」王喜拜大相,賜白城郡祿廏馬彩帛,拜子咸舒爲佐尹。又以貴戚正朝俊行之女妻英舒。王曰:「卿灼見理亂存亡之機,來歸於我,朕甚嘉之。聯姻公族,用示厚意,卿其益竭心力,鎭撫邊境。」直謝,因言曰:「百濟一牟山郡境接弊邑,以臣歸化,常加侵掠,民不安業,臣願往攻取,使弊邑之民不被寇竊,專務農桑,益堅歸化之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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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사월. 좌승 공직이 죽었다. 직은 연산매곡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용맹하고 재주가 있었다. 백제에 가서 진선현의 마음을 얻어 장남 직달과 차남 금서 및 딸을 인질로 맡겼다. 직은 한때 백제를 찾아와 직달에게 말하기를, "지금 이 나라를 보니 사치스러움이 도리에 어긋난다. 비록 가까우나 다시 오고 싶지 않다. 고라국의 왕 공께서 문덕으로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 무력으로 폭정을 막을 수 있기에 사방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는다. 나는 돌아가고자 하는데,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직달이 말하기를, "인질로 온 이후 그 풍속을 보니 오직 부와 강함에만 의지하고, 경쟁하며 교만하여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대인이 밝은 주인에게 돌아가서 이 낡은 고을을 보전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나는 남동생과 누이와 함께 기회를 봐서 돌아갈 것이다. 설령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대인의 지혜를 믿고 나머지 경(慶)의 혈통이 자손에게 남아 있다면, 비록 내가 죽어도 한탄할 바가 없다." 직은 마침내 마음을 정하여 나아갔고, 아들 영서와 함께 조정에 와서 왕에게 말하기를, "신은 이 낡은 고을에 있으면서 오랫동안 풍화(風化)를 들어왔습니다. 비록 하늘의 힘을 도울 수는 없으나, 신의 몸소 충성을 다하고 싶습니다." 왕이 기뻐하며 대상에 임명하고 백성군 녹읍과 말, 재물, 비단 등을 하사했으며, 아들 함서에게 좌윤으로 삼았다. 또한 귀족 친척으로서 조정에서 준행의 딸인 영서를 아내로 주었다. 왕이 말하기를, "경(卿)은 이 혼란한 때에 나라가 흥망할 기회를 보고 나에게 돌아왔으니, 짐은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공족과 인연을 맺어 두터운 뜻을 보이니, 경은 힘을 다하여 변방을 안정시키도록 하라." 직이 감사하며 이어서 말하기를, "백제는 모산군 경계가 이 고을와 맞닿아 있어, 신이 돌아가서 문명을 전파하자 늘 침략을 가해 백성들이 편안하게 농사지을 수 없고, 오직 농사와 베틀질에 힘쓰게 하려 합니다. 신은 가서 공격하여 얻어내어, 이 낡은 고을의 백성들이 약탈당하지 않고 오직 농사에 전념하게 하여 문명화하는 진실함을 더욱 굳건히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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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許之。萱怒,收直達及弟妹,烙斷股筋,直達死之。百濟滅,金舒得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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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 허하기를. 선노가 노하여 직달과 누이동생들을 거두어 가죽으로 꼬챙이처럼 지지고, 직달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하였다. 백제가 망하고 금서가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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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歲,晉遣國子博士謝攀來,冊王爲開府儀同三司檢校太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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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에 진나라가 국자 박사 사반을 보내어 왕을 책봉하여 개부의동삼사검교태사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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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子二十三年後晉天福五年,契丹會同三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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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 23년 후진 천복 5년, 거란이 함께 삼 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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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三月。以慶州爲大都督府,改諸州郡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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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사월에 경주를 대도독부로 삼아 여러 주와 군의 이름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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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七月。王師忠湛死。樹塔于原州興法寺,王親製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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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칠월에 왕사(王師)의 충담이 죽자, 원주 흥법사에 탑을 세우고 왕실에서 비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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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二月。開泰寺成。命設落成法會,親製疏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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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개태사(開泰寺)가 세워졌다. 낙성 법회를 열도록 명하고, 친히 상소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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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歲,初定役分田。自朝臣至軍士,勿論官階,視人性行善惡功勞大小,給之有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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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에는 처음으로 역분된 토지를 나누어 주었다. 조정 신하부터 군사까지 관직의 높낮이를 따지지 않고, 사람의 인성과 행한 선악의 공로 크고 작음을 보고 차등을 두어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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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重修神興寺,置功臣堂,繪三韓功臣於壁,設無遮大會,一晝夜,歲以爲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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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를 다시 짓고 공신당을 세우며, 삼한의 공신들을 벽에 그림으로 그리고, 무제(無遮) 대회를 열어 밤낮없이 매년 지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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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歸我質子王仁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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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가 나에게 질자 왕인 자를 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