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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高麗AD 918 – AD 1392

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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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卷三 高麗史節要 卷三

김종서 등 · 1452 · 저본 중국어 위키문헌
문단 733개 · 번역 확정 0개
卷三문단 2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契丹詐爲康兆書,送興化鎭,諭降。楊規曰:「我受王命而來,非受兆命。」不降。又使盧戩及其閤門使馬壽持檄,至通州,諭降,城中皆懼。中郞將崔質洪淑投袂而起,執戩及壽,乃與防禦使李元龜副使崔卓大將軍蔡溫謙判官柴巨雲閉門固守,衆心乃一。
번역
거란이 거짓으로 강조서(康兆書)를 만들어 흥화진에 내려와 항복을 명하였다. 양규가 말하기를, "나는 왕의 명령을 받고 왔지, 조의 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다."라며 항복하지 않았다. 또 노장과 그 사병 출신인 마수에게 격문을 들고 통주로 오게 하여 항복을 명하니 성 안의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였다. 중랑장 최질홍숙이 옷깃을 여미며 일어나 장군 노장과 수, 그리고 방어사 이원귀, 부사 최탁, 대장군 채온겸, 판관 사거운 등이 문을 닫고 단단히 지키자, 백성의 마음은 하나가 되었다.
卷三문단 2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十二月庚戌。丹兵入郭州。防禦使戶部員外郞趙成裕夜遁。右拾遺乘里仁大將軍大懷德申寧漢工部郞中李用之禮部郞中簡英彥皆死。城遂陷,契丹留兵六千餘人,守之。
번역
12월 경술일. 단병이 과(郭)로 들어왔다. 방어사 호부원외랑 조성유는 밤에 도망쳤다. 우습유, 승리인 대장군 대회덕신녕, 한 공부랑 중 이용지, 예부랑 중 간영연 모두 죽었다. 성이 마침내 함락되었고, 거란이 병사 여섯천여 명을 남겨 지켰다.
卷三문단 2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壬子,丹兵至淸水江。安北都護府使工部侍郞朴暹棄城遁,州民皆潰。初,王聞丹兵至,遣中郞將智蔡文,將兵鎭和州,以備東北。及兆敗,命蔡文移兵,援西京,蔡文卽與軍容使侍御史崔昌進,次剛德鎭。
번역
임자년, 단병이 청수강에 이르렀다. 안북도호부사 공부시랑 박섬은 성을 버리고 도망쳤고, 주민들은 모두 흩어졌다. 처음에는 왕이 단병이 온 것을 듣고 중랑장 장지채문에게 군사를 보내 화주를 진압하여 동북쪽을 대비하게 했다. 나중에 패배하자 채문에게 병력을 옮겨 서경으로 지원하게 했고, 채문은 곧 군용사 사시어사 최창진과 함께 강덕진으로 향했다.
卷三문단 2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癸丑。丹兵至西京,焚中興寺塔。
번역
계축일. 단병이 서경에 이르러 중흥사 탑을 불태웠다.
卷三문단 2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甲寅。肅州潰。是日,盧顗爲鄕導,與丹人劉經齎檄,至西京,諭降,副留守元宗奭與僚佐崔緯咸質楊澤文晏等已修降表。蔡文等聞之,引兵至西京,城門閉。崔昌呼分臺御史曹子奇曰:「吾等奉王命,倍道而來,不納,何也。」子奇具告顗經諭降事,遂開門。蔡文入屯故宮南廊。昌諷宗奭,拘留顗等固守,宗奭不從。昌密與蔡文謀,遣兵城北,候顗等還,掩殺之,取其表,焚之。時,城中疑貳,蔡文出屯城南,從之者,獨大將軍鄭忠節耳。俄而東北界都巡檢使卓思政率兵而至,遂與合軍,復入城。王以三軍敗衄州郡陷沒,上表請朝。契丹主許之,遂禁俘掠,以馬保佑爲開城留守王八副之,遣乙凛將騎兵一千,送保佑等。乙卯。丹主又使韓杞以突騎二百至西京城北門,呼曰:「皇帝昨遣劉經盧顗等,齎詔曉諭,奈何至今了無消息。若不拒命,留守官僚來聽我指諭。」思政聞杞語,謀諸蔡文,使麾下鄭仁等將驍騎突出,擊斬杞等百餘人,餘悉擒之,無一人還者。
번역
갑인일에는 숙주가 무너졌다. 이날 노의는 향도로서 단나라 사람 유경과 함께 격문(檄文)을 가지고 서경에 이르러 항복을 권유했고, 부류수 수호관 원종석과 동료들 최위함, 질양택문안 등은 이미 항복하는 상소를 올렸다. 채문 등이 이를 듣고 군사를 이끌고 서경으로 와서 성문을 닫았다. 최창이 분대어사 조자기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은 왕의 명을 받들어 길을 따라 왔는데 받아들이지 않으니 무슨 이유가 있습니까?"라 하였다. 자기가 의와 경이 항복하는 일을 자세히 고하자 마침내 문을 열었다. 채문은 둔궁 옛 궁궐 남쪽 회랑으로 들어갔다. 창이 원종석에게 간언하여 노의 등을 가두어 지키게 하였으나, 원종석은 따르지 않았다. 창이 몰래 채문과 모의하여 군사를 성 북쪽으로 보내 의 등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포위하여 그들의 상소를 빼앗아 불태웠다. 이때 성 안에는 의심하는 기색이 돌았고, 채문은 둔성 남쪽으로 나와 따르는 자는 대장군 정충절뿐이었다. 곧이어 동북 경계 도순검사 탁사정이 군사를 이끌고 도착하여 마침내 합세하여 다시 성 안으로 들어왔다. 왕은 삼군이 패하고 주현이 함락되었음을 들어 조정에 상소를 올렸다. 거란의 주인 허지(許之)가 이를 받아들여 포로를 사로잡았고, 마보우에게 개성문을 지키는 수호관 역할을 맡기고 을린을 시켜 기병 천 명을 보내 마보우 등을 보냈다. 을묘일에는 단나라 주인이 또 한기(韓杞)를 시켜 돌격하는 기병 이백 명을 서경 성 북문까지 오게 하여 "황제가 어제 유경과 노의 등에게 조서를 가지고 계시어 알려주었으나, 지금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만약 명령에 따르지 않는다면 수호관 관료들이 나를 만나 지시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사정이 기의 말을 듣고 채문 등을 모의하여 휘하 정인 등이 용맹한 기병을 내보내 기 등 백여 명을 공격하여 베어 죽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로잡아 한 사람도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卷三문단 2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思政以蔡文爲先鋒,出與乙凛戰,乙凛保佑敗走。於是,城中人心稍安,思政還入城,蔡文與李元出屯慈惠寺。丹主復遣乙凜擊之。邏卒報,敵兵來屯安定驛,其勢甚盛。蔡文馳告思政。丙辰。遂與思政僧法言率兵九千,迎擊于林原驛南,斬首三千餘級,法言死之。翌日,蔡文復出戰,丹兵敗走。於是,城中將士登城以望,競出逐之,至馬灘,丹兵回軍,擊敗之,遂圍城,丹主次于城西佛寺。思政懼紿將軍大道秀曰:「君自東門吾自西門出,前後夾攻,篾不勝矣。」遂以麾下兵夜遁。道秀出大東門,始知見紿,又力不可敵,遂率所部,降于契丹。諸將皆潰,城中恟懼。己未。統軍錄事趙元隘守鎭將姜民瞻郞將洪叶方休莫知所措,乃共禱神祠,筮得吉兆。於是,衆推趙元爲兵馬使,收散卒,閉城固守。
번역
사정이 채문에게 선봉을 맡겨 을린과 싸우게 하였으나, 을린이 보호하여 패주하였다. 이에 성 안의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안정되자, 사정은 다시 성으로 돌아와 채문과 이원이 출둔지사에 머물렀다. 단주는 다시 을린을 보내 공격하게 하였다. 군사들이 보고하기를, 적군 병력이 출둔안정역에 진을 치고 그 기세가 매우 강하였다. 채문이 달려가 사정에게 고했다. 병진년(丙辰年). 이에 사정과 승법언은 군사를 이끌고 구천 명으로 임원역 남쪽에서 맞서 싸워, 목을 베어 삼천여 명을 죽였고 법언은 그를 죽였다. 다음 날, 채문이 다시 출전하여 단군 병력이 패주하였다. 이에 성 안의 장사들이 성에 올라가 바라보며 경쟁적으로 추격하였고, 마탄에 이르러 단군은 군대를 돌려 공격당해 패퇴하였으며, 마침내 성을 포위하니, 단주는 성 서쪽 불사에 머물렀다. 사정은 두려워하여 장군 대도수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동문에서 나가 서문에서 나가서 앞뒤로 협공하면 능히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이에 자신의 부하들을 이끌고 밤에 도망쳤다. 도수가 대동문으로 나와 비로소 두려워하는 자를 보고, 또한 힘을 거스를 수 없어 마침내 소속 병력을 이끌고 거란에게 항복하였다. 모든 장수들이 흩어졌고, 성 안은 매우 두려움에 떨었다. 기미년(己未年). 군대를 통솔하던 기록사 조원과 진을 지키던 장군 강민첨과 장군 홍예방휴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함께 신사에 기도하고 점괘로 상서로운 징조를 얻었다. 이에 무리들은 조원을 병마사로 추대하여, 흩어진 군사를 거두고 성을 닫아 지키게 하였다.
卷三문단 2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庚申。楊規自興化鎭率兵七百餘人,至通州,收兵一千人。辛酉。入郭州,擊契丹所留兵,悉斬之,徙城中男女七千餘人于通州。是日,契丹主攻西京,不拔,解圍而東。
번역
경신일에는 양규가 자흥화진에서 병사 칠백여 명을 이끌고 통주에 이르러 병사 천 명을 거두었다. 신유일에는 과주로 들어가 거란이 남긴 군사를 치고 모두 베어 죽였으며, 성 안의 남자 여자 칠천여 명을 통주로 옮겼다. 이날 거란 주력은 서경을 공격했으나 빼앗지 못하고 포위를 풀며 동쪽으로 물러났다.
卷三문단 2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癸亥。西京神祠旋風忽起,契丹軍馬皆僨。
번역
계해일. 서경 신사에서 돌풍이 갑자기 일어나니, 거란 군마들이 모두 놀랐다.
卷三문단 2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召還河拱辰柳宗,復其爵。
번역
하강의 아들인 유종을 불러 돌아오게 하고 그의 작위를 되돌려 주었다.
卷三문단 3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辛未。智蔡文奔還于京。
번역
신미일이다. 지채문이 경성으로 돌아왔다.
卷三문단 31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壬申。奏西京敗軍狀,群臣議降。姜邯贊獨曰:「今日之事,罪在康兆,非所恤也。但衆寡不敵,當避其鋒,徐圖興復耳。」遂勸王南行。蔡文請曰:「臣雖駑怯,願在左右,庶效犬馬之勞。」王曰:「昨李元崔昌奔還,自請扈從,今不復見,爲臣之義果如是乎。今卿旣勞于外,又欲捍衛,深嘉乃忠。」仍賜酒食及銀粧鞍轡。是夜,王與后妃及吏部侍郞蔡忠順等禁軍五十餘人出京城。
번역
임신년. 서경에서 패한 군대의 상황을 아뢰니, 신하들이 항복할 것을 논하였다. 강한찬은 홀로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강조에게 죄가 있는 것이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다만 무리가 적어 대적하기 어려우니, 그 기세를 피하여 천천히 흥성하는 방도를 모색해야 합니다." 하고 왕남을 권하였다. 채문청이 말하기를, "신은 비록 재주가 없고 겁이 많으나, 곁에서 힘쓰고 싶으니, 개와 말을 부리는 수고라도 하도록 하겠습니다." 왕이 말하기를, "어제 이원과 최창이 도망쳐 돌아갔는데, 스스로 따르겠다고 청했더니 오늘 다시 보이지 않네. 이것이 신의 의리인가? 이제 경은 밖에서 애쓰느라 피곤한데 또 지키려 하니, 깊이 가상하고 충성스럽구나." 이에 술과 음식 및 은으로 된 장식품과 안장고삐를 내렸다. 그날 밤에 왕과 후비들 및 예부시랑 채충순 등 금군 오십여 명이 도성을 나섰다.
卷三문단 32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癸酉。至積城縣丹棗驛,武卒堅英與驛人張弓矢,將犯行宮,蔡文馳射之。賊徒奔潰,復自西南山突出遮道,蔡文又射却之。晡時,王至昌化縣,有吏告曰:「王識吾名面乎。」王陽不聞,吏怒將構亂,使人呼曰:「河拱辰將兵來矣。」蔡文曰:「何故來耶。」吏曰:「欲擒蔡忠順金應仁耳。」應仁及侍郞李正忠郞將國近等皆遁。夜賊又至,侍從臣僚宦官嬪御皆亡匿,唯玄德大明兩王后侍女二人承旨良叶忠弼等侍。蔡文或出或入,隨機應變,賊不敢近。及曉,蔡文請二后先自北門脫去,手鞚御馬,間行入道峯寺,賊不之知,忠順繼至。蔡文奏曰:「去夜賊疑非拱辰,臣請往跡之。」王恐其亡,不許。蔡文奏曰:「臣若背君,言與事違,天必誅之。」王乃許,卽往昌化縣,道逢國近。國近曰:「吾之衣裝盡被賊奪。」蔡文曰:「汝爲臣不忠,獲保首領,足矣。」適,拱辰柳宗赴行在,蔡文遇諸道,具言賊變,且詰之,果非拱辰所爲也。拱辰道見中軍判官高英起敗軍南走,與之俱來。
번역
계유년. 적적성현 단조역에 이르렀을 때, 무졸 견영과 역인 장궁시가 행궁을 위협하자 채문치가 활로 쏘아 그들을 물리쳤다. 도적 무리가 흩어져 다시 남서쪽 산에서 나와 길을 막자, 채문이 또 활로 쏘아 물러나게 했다. 낮 무렵, 왕지창이 화현에 이르렀는데, 한 관리가 아뢰기를 "왕께서 저의 이름을 아시는 것 같습니다." 하니, 왕양이 듣지 않자 그 관리가 노하여 난을 일으키려 하여 사람을 시켜 "하공진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온다!"라고 외쳤다. 채문이 "어찌 와서 그러는가?"라고 묻자, 그 관리가 "채충순과 금응인(金應仁)을 사로잡으려 함입니다."라고 말했다. 응인과 시랑 이정충과 장군 국근 등이 모두 도망쳤다. 밤에 도적이 다시 오자, 시종 신료와 환관, 빈, 어미, 왕후, 시녀들 모두 숨었고, 오직 현덕대명 두 왕과 후궁 시녀 두 명만이 명을 받들어 양엽충필 등 시중들었다. 채문은 때로는 밖에 나오고 때로는 안으로 들어가 상황에 맞춰 대응하여 도적이 감히 가까이 오지 못했다. 날이 밝자, 채문이 두 왕에게 먼저 북문으로 빠져나가고, 수갑으로 어마를 잡고 잠시 길을 따라 도봉사에 들라고 청하자, 도적들은 이를 알지 못했고, 충순이 뒤따라갔다. 채문이 아뢰기를 "밤에 도적들이 하공진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신이 가서 그 자취를 추적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했다. 왕이 그가 죽을까 두려워 허락하지 않았다. 채문이 아뢰기를 "신이 임금을 거역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벌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왕이 마침내 허락하여 곧바로 창화현으로 가서 길에서 국근을 만났다. 국근이 "제 옷가지가 도적들에게 모두 빼앗겼습니다."라고 말하자, 채문이 "네가 신에게 불충하다. 목숨만 건져도 족하다."라고 말했다. 그때, 하공진과 유종이 행재하고 있었는데, 채문이 여러 길에서 도적들의 변고를 듣고 따져 물어보니, 정말 하공진의 짓이 아니었다. 하공진이 도에서 중군 판관 고영이 패퇴한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가는 것을 보고 그를 따라왔다.
卷三문단 33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時,拱辰所領卒二十餘人,蔡文遂以其卒圍昌化縣,搜得賊所盜馬十五匹鞍十部,將還。蔡文謂拱辰等曰:「吾與諸君偕進,王必驚動。請諸君少後。」遂獨行。忠弼在寺門望之,入奏智將軍來矣,王喜出門迎之。蔡文奏曰:「臣尋得賊取贓,實非拱辰所爲。且偕拱辰來。」王引見拱辰柳宗,勞之。
번역
이때, 공진이 거느린 병사 스무 명이 넘었는데, 채문수가 그 병사들로 창화현을 에워싸고 도적들이 훔친 말 열다섯 필과 안장 열 부를 찾아내어 돌려주었다. 채문수가 공진 등에게 말하기를, "내가 여러 군주와 함께 나아가면 왕께서 반드시 놀라실 것이다. 여러분은 뒤에 머무르시오." 하고 홀로 떠났다. 충필이 사찰 문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들어가 아뢰기를, 지장군이 오니 왕께서 밖으로 나와 맞이하였다. 채문수가 아뢰기를, "신이 도적들이 가져간 물건을 찾아냈으니, 실로 공진의 소행이 아닙니다. 게다가 공진과 함께 오겠습니다."라 하였다. 왕이 공진과 유종을 불러 만나 그들을 위로하였다.
卷三문단 34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甲戌。王次楊州。河拱辰奏曰:「契丹本以討賊爲名,今已得康兆,若遣使請和,彼必班師。」王筮得吉卦,遂遣拱辰及高英起奉表狀往丹營。行至昌化縣,以表狀授郞將張旻別將丁悅,先往軍前,告曰:「國王固願來覲,第懼兵威,又因內難出避江南,差遣陪臣拱辰等,陳告事由。拱辰等亦惶懼不敢前來,請速收兵。」旻等未至,丹兵先鋒已至昌化。拱辰等具陳前意,丹兵問國王安在,答曰:「今向江南,不知所在。」又問遠近,答曰:「江南太遠,不知幾萬里。」追兵乃還。
번역
갑술일이다. 왕이 양주로 갈 때였다. 하공진이 아뢰기를, "거란은 본래 도적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했으나, 이제 이미 강성한 기세를 얻었으니, 만약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한다면 반드시 군대를 거두어 돌아갈 것입니다." 왕서가 길한 괘를 얻자, 마침내 공진과 고영을 시켜 표상(表狀)을 가지고 단영으로 갔다. 창화현에 이르러 표상을 장장(張旻) 장군과 정열 별장에게 맡기고 먼저 군대로 가서 아뢰기를, "국왕께서 반드시 오시기를 원하시나, 병사의 위세가 두려우시고 또 내부의 어려움 때문에 강남으로 피신하셨으니, 수행하는 신 공진 등이 사정을 고하여 왔습니다." 공진 등도 두려워 감히 나아가지 못하고 속히 군대를 거두어 가달라고 청했다. 민 등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단병 선봉대가 이미 창화에 이르렀다. 공진 등은 그동안의 뜻을 펼쳐 보였고, 단병이 국왕이 어디 계신지 묻자 대답하기를, "지금 강남으로 가셨으며, 어디 계신지는 알지 못합니다." 또 거리를 묻자 대답하기를, "강남은 너무 멀어 몇만 리인지 알 수 없습니다." 추격하던 병사들은 돌아갔다.
卷三문단 35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辛亥二年宋大中祥符四年,契丹統和二十九年。
번역
신해 2년 송대중상부 4년, 거란 통화 29년이었다.
卷三문단 36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春正月乙亥朔。契丹主入京城,焚燒大廟宮闕民屋皆盡。是日,王次廣州,失兩王后所之,令蔡文往尋之,至饒呑驛,乃得奉還。王喜爲留三日。
번역
봄 정월 을해삭. 거란의 우두머리가 도성에 들어와 큰 사당과 궁궐, 백성들의 집을 모두 불태웠다. 이날 왕은 광주로 갔다가 두 왕후의 것이를 잃어버려 채문에게 가서 찾아오게 하였고, 마침내 요돈역에서 받았다. 왕은 기뻐하여 사흘을 머물렀다.
卷三문단 37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丁丑。河拱辰高英起至丹營,乞班師。丹主許之,遂留拱辰等,扈從諸臣聞拱辰等被執,皆驚懼散走。惟侍郞忠肅張延祐忠順周佇柳宗金應仁不去。
번역
정축일. 하공진이 고영을 이끌고 단영에 이르러 반사를 청하니, 단주는 이를 허락하여 마침내 공진 등과 여러 신하들이 그를 따르다가 붙잡힌 것을 듣고 모두 놀라 흩어졌다. 오직 시랑 충숙, 장연우, 충순, 주자, 유종금, 응인만이 떠나지 않았다.
卷三문단 38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戊寅。王發廣州,次鼻腦驛。蔡文奏:「扈從將士皆托尋妻子四散,昏夜,恐有姦賊竊發。請爲幟分揷將士冠以辨。」從之。
번역
무인일. 왕이 광주로 나아가다가 비뇌역에 이르렀다. 채문이 아뢰기를, 수행하는 장사들이 모두 아내와 자식들을 찾아 헤매어 흩어져 있고, 깊은 밤에는 간악한 도적들이 몰래 일어나지 않을까 두렵다 하니, 장사들에게 표지를 만들어 관을 씌워 구별할 것을 청하였다. 그를 따랐다.
卷三문단 39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己卯。柳宗奏曰:「陽城臣之籍鄕,去此不遠,請幸之。」王悅遂幸。夜,柳宗應仁等矯旨,毀御鞍,以賜縣人,遲明,縣吏皆遁。柳宗應仁等又請,遣二王后各歸其鄕,除扈從將卒,令往東邊備急。王以問蔡文,蔡文大哭曰:「今君臣失道,橫罹殃禍,播遷如此。正當動由仁義,以收人心,棄王后,以求生,其可忍乎。」王曰:「將軍言是也。」遂行過蛇山縣,蔡文見群雁下田,欲慰悅王心,躍馬而前。雁驚飛,翻身仰射,應弦而墮。王大悅,蔡文下馬,取雁進前曰:「有臣如此,何憂盜賊。」王大笑慰奬。至天安府,柳宗應仁等奏云:「臣等請先往石坡驛,供頓以迎。」遂逃。
번역
기묘일. 유종주가 말하기를, "양성 신의 고향이 이곳에서 멀지하니, 폐하께서 그곳으로 가시기를 청합니다." 왕열이 마침내 그리하여 행차하였다. 밤에 유종응인 등이 간계를 꾸며 어루를 부수고 현 사람들에게 하사하며, 동이 트기 전에 현리들이 모두 도망쳤다. 유종응인 등이 다시 청하기를, 두 왕후를 각각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호종하는 장졸들을 거두어, 동쪽 변방에 급히 대비하게 할 것을 명하였다. 왕이 채문을 묻자, 채문이 크게 울며 말하기를, "지금 군신이 도리를 잃고 재앙을 당하며 이렇게 떠돌게 되니, 마땅히 인의(仁義)로 움직여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데, 왕후를 버리고 목숨을 구하려 하니 어찌 참을 수 있겠습니까." 왕이 말하기를, "장군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라." 이에 사산현을 지나가자, 채문이 무리 지어 날아드는 기러기를 보고 왕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말을 타고 앞으로 나섰다. 기러기가 놀라 날아가 몸을 뒤집으며 활을 쏘려 하다가 시위에 걸려 떨어졌다. 왕이 크게 기뻐하고, 채문은 말에서 내려 기러기를 가지고 앞으로 오며 말하기를, "신하가 이와 같은데 무슨 도적과 재앙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왕이 크게 웃으며 위로하고 칭찬하였다. 천안부에 이르자, 유종응인 등이 아뢰기를, "저희들이 먼저 석파역으로 가서 숙식을 제공하며 맞이할 것을 청합니다." 그리하여 도망쳤다.
卷三문단 40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辛巳。次于公州。節度使金殷傅備禮郊迎,奏曰:「豈意聖上跋涉山川,凌冒霜雪,至於此極。」仍獻衣帶土物,王嘉納更衣,分賜土物扈從官僚。暮至巴山驛,吏皆遁,御廚闕膳,殷傅所進膳羞適至,分供朝夕。王謂蔡文曰:「玄德王后有娠,不宜遠行。本貫善州距此不遠,可以遣之。」蔡文固執前議,王曰:「勢不獲已。」遂遣之。次礪陽縣,將卒有離心。蔡文奏曰:「聖祖統合之時,有功者,雖小必賞。況今方涉險艱,要得衆心,宜先懋賞。」王從之,授玄安之等十六人爲中尹。
번역
신사일(辛巳)일이다. 공주에 이르렀다. 절도사 김은부(金殷傅)가 예(禮)와 교(郊)를 가지고 맞이하며 아뢰기를, "어찌하여 성상께서 산천을 건너고 서리와 눈을 헤치며 이곳까지 오셨습니까."라 하였다. 이어서 옷과 띠, 그리고 토산물들을 바치니, 왕가(王嘉納)가 옷을 갈아입고 토산물들을 나누어 수호하는 관료들에게 분배하였다. 저녁에 바산역(巴山驛)에 이르렀으나, 관리들이 모두 달아나고 어루만지기(御廚)의 음식도 부족하여, 은부(殷傅)가 바친 음식과 의복이 겨우 도착하여 아침저녁으로 나누어 공급하였다. 왕이 채문(蔡文)에게 말하기를, "현덕왕후께서 임신하셨으니 멀리 나가지 않는 것이 좋지 않다. 본래 고향인 선주(善州)가 이곳에서 멀지 않으니, 그곳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다." 채문은 전의를 고집하였으나, 왕이 말하기를, "세력(勢)을 얻지 못하면 안 된다." 하여 마침내 그를 보내게 하였다. 다음으로 여양현(礪陽縣)에 이르렀으나, 장졸들 사이에 이탈하는 기운이 있었다. 채문이 아뢰기를, "성조(聖祖)께서 통합하실 때 공을 세운 자가 있으면, 비록 작더라도 반드시 상을 주어야 합니다. 하물며 지금 험난한 길을 지나가니,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힘써 상을 주어야 합니다." 왕이 이를 따르어 현안지(玄安之) 등 열여섯 사람을 중윤(中尹)으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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