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高麗AD 918 – AD 1392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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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卷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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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三月。改百官號,以內議省爲內史門下,廣評省爲御事都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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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四月。令男子十歲以上著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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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六月。制曰:「后德惟臣。朕新摠萬幾,恐有闕政,其京官五品以上各上封事,論時政得失。」正匡行選官御事上柱國崔承老上書,略曰:「臣竊見,開元史臣吳兢撰進貞觀政要,勸玄宗勤修太宗之政,蓋以事體相近,不出一家,而其政休明,可爲師範故也。自我太祖開國已來,臣所及知者,皆誦在臣心。今,謹錄五朝政化善惡之跡,可鑑可戒者,謹條奏以聞。伏審我太祖神聖大王之御極也,時當百六,運協一千。當初,翦亂夷凶,天生前主而假手,在後膺圖受命,人知聖德以歸心。於是,値金雞自滅之期,乘丙鹿再興之運,不離鄕井,便作闕庭,定遼浿之驚波,得秦韓之舊地,十有九載統一寰瀛,可謂功莫高矣。若契丹者,與我連境,宜先修好,而彼又遣使求和。我乃絶其交聘者,以彼國嘗與渤海連和,忽生疑貳,不顧舊盟,一朝殄滅。故太祖以爲無道之甚,不足與交,所獻駱駞亦皆棄而不畜,其深策遠計,防患乎未然,保邦于未危者,有如此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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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제(制)가 말하기를, "후덕(後德)의 신하로서, 짐이 새로 만 가지를 겪었으니, 혹 정사가 미진할까 두렵다. 수도의 5품 이상의 관원들에게 각자 상서(上書)를 올리도록 하여, 당시의 정세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하게 하라." 정광행(正匡行)이 관직을 뽑는 임무를 맡은 어사(御事) 상주국(上柱國) 최승로가 상서로 올리기를, 대략 말하기를, "신(臣)이 감히 보건대, 개원사(開元史)의 신(臣) 오경(吳兢)이 『정관정요(貞觀政要)』를 지어 올리면서, 현종(玄宗)에게 태종(太宗)의 정치를 부지런히 익히도록 권했으니, 이는 사물이 체계상 비슷하여 한 가지 흐름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정치가 밝고 명확하여 스승이 될 만하기 때문이다. 태조(太祖)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로, 신이 아는 바는 모두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 이제 삼가 오조(五朝)의 정치적 덕과 악의 흔적을 기록하여, 본받고 경계할 만한 것을 조목조목 아뢰오니 들으소서. 엎드려 생각건대, 우리 태조 신성대왕의 위대한 기상이 그러하였으니, 당시 백육(百六)에 이르렀고 운세는 천(千)과 합치하였다. 처음에 난리통에 휩싸인 오랑캐를 물리치고 하늘이 내린 전주(前主)가 되어 힘을 빌렸고, 나중에 계획을 받아 명을 받았으며, 사람들은 성덕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 그리하여 금계(金雞)가 스스로 멸망할 시기를 만나고, 병록(丙鹿)의 재흥의 운을 타고, 고향과 우물터를 떠나지 않고, 마땅히 있어야 할 궁궐을 짓고, 요와 패(浿)의 거친 물결을 안정시키며, 진(秦)과 한(韓)의 옛 땅을 얻어, 열아홉 해 동안 온 세상에 통일하였으니, 공덕이 높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거란(契丹)이라면,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니, 먼저 잘 다스려야 하거늘, 그들이 또 사신을 보내 화친을 구하였다. 내가 그와의 교류를 끊었으니, 그 나라가 예전에 발해와 화친을 맺었던 적이 있었으나, 갑자기 의심을 품어 옛 맹약을 돌보지 않고, 하루아침에 멸망하였다. 그러므로 태조께서는 이를 너무나 무도하다고 여겨 교류할 수 없다고 하셨고, 바치던 낙마(駱駞)마저 모두 버리고 기르지 않으셨다. 그 깊은 계책과 먼 계획은, 재앙을 미리 막고 나라를 위태로워지기 전에 지키는 것이니, 이와 같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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渤海旣爲丹兵所破,忽汗亡時,其世子大光顯等以我國家擧義而興,領其餘衆數萬戶,日夜倍道來奔。太祖憫念尤深,迎待甚厚,至賜姓名,又附之宗籍,使奉其本國祖先之禋祀,其文武參佐以下亦皆優霑爵命,其急於存亡繼絶,而能使遠人來服者,又如此也。百濟甄萱兇悖好亂,殺主虐民,太祖聞之,不遑寢食,行師討罪,卒成匡復,其不忘舊主,定傾扶危者,又如此也。自新羅之季,至我國初,西北邊民每被女眞蕃騎往來侵盜,太祖斷自宸衷,遣一良將,鎭之,不勞寸刃,反令蕃衆來歸。自是,塞外塵淸,邊境無虞,其知人善任,柔遠能邇者,又如此也。新羅君臣以運盡數窮,自求歸化,讓至再三,然後許之。東自溟州至興禮府,其間百十餘城莫不懷于有仁,應時來服,其能以禮讓,而人無不服者,又如此也。唯南平百濟,不得已而用兵,凡大興師,前後數次,然旌麾之下,戎馬之前,或有臨陣便降,或有望風懾伏,雖交鋒刃,不欲殺傷,可謂仁者無敵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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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가 이미 단병에게 무너졌고, 홀연히 한나라가 쇠퇴할 때, 그 세자 대광현 등이 우리 나라를 일으키고자 의리를 내세우며 나머지 군중 수만 호를 이끌고 밤낮으로 달려왔다. 태조는 근심이 매우 깊어 맞이하는 것이 지극했고, 심지어 이름을 내려주고 종적에 편입시켜 본국의 조상 제사를 받들게 했으며, 문무 참좌 이하 모두가 벼슬과 명예를 얻었다. 나라의 존망이 끊길 위기에 처했으나 멀리 있는 사람들을 오게 할 수 있었으니, 또 이러했다. 백제는 진선(甄萱)이 사납고 어지라치기를 좋아하여 임금을 죽이고 백성을 학대하자, 태조는 이를 듣고 잠도 자고 먹지도 못하며 군사를 일으켜 죄를 징벌하였고 마침내 나라를 바로 세웠다. 옛 주군을 잊지 않고 위태로움을 돌보아 지탱하게 했으니, 또 이러했다. 신라가 절기에 이르러 우리 나라 초창기까지, 서북쪽 변방 백성들이 여진의 기마병들의 왕래 침탈을 당하자, 태조는 스스로 마음속으로 생각하여 한 장군을 보내 진압하게 하였고 힘쓰지 않았으나 오히려 오랑캐 무리들을 돌아오게 했다. 이로써 사막 밖 먼지가 맑아지고 변방에 근심이 없었으며, 그 사람을 잘 맡기고 부드러움과 멀리 있는 곳까지 다스릴 수 있음을 알았으니, 또 이러했다. 신라 군신들은 운용할 것이 다 떨어져 스스로 돌아가기를 구했고, 여러 번 청했으나 비로소 허락하였다. 동쪽의 명주에서 흥례부까지, 그 사이에 백여 개의 성읍이 모두 인자함을 품고 때에 맞추어 오게 하여 예로써 공경하게 했으며, 그 예로써 사람을 감화시키니, 또 이러했다. 다만 남평 백제는 어쩔 수 없이 병거를 사용하였는데, 큰 군대를 일으킬 때 앞뒤로 여러 차례였으나, 깃발 아래와 전차 앞에 임진하면 바로 항복하는 이들이 있거나 희망이 바람처럼 가라앉아 복종하게 하는 이가 있어 비록 칼을 맞대었어도 죽이려 하지 않았으니, 인자한 자는 적수가 없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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及甄萱積惡數十餘年,然後終爲逆豎所囚,逃奔于我而請兵誅逆,太祖聞之,厚禮迎致,及其殞沒,而亦優賻贈,其道貫幽明,義周存沒者,又如此也。洎平百濟,車駕入城,哀恤窮民,厚加慰諭,下令諸軍,秋毫無犯。且南北久分,新舊又別,撫之如一,終始不渝,其含弘寬簡,又如此也。自成一統以來勤政八年,事大以禮,交隣以道。居安無逸,接下思恭,貴道德,崇節儉,卑宮室而期於粗庇風雨,惡衣服而取其但禦寒暑。好賢樂善,捨己從人,恭儉禮讓之心,發於天性。況生長民間,備嘗艱險,衆人情僞無不具知,萬事安危亦能先見,所以賞刑不失其時,邪正不同其路,其知勸懲之方,得帝王之體者,又如此也。加以知人,不失其才,御下,必得其力,任賢勿貳,去邪勿疑,尊釋敎,重儒術,爲君之令德斯備,有國之嘉猷可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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但以創業之初,致平日淺,宗廟社稷且未光崇,禮樂文物猶多闕乏,凡百官司之品式及諸內外之規儀未及修定,忽遺弓劍,蓋國人之不幸,寔天道之難諶,深可惜也。惠宗久在東宮,累經監撫,尊禮師傅,善接賓僚。由是令名聞於朝野。及初嗣位,衆擧欣然。時,有人譖定宗兄弟,謂有異圖。惠宗聞而不答,亦無所問,恩遇愈隆,待之如初。故人皆服其大度。旣而不修德政,過惜身命,左右前後常以甲士相隨,蓋爲疑人太甚,大失爲君之體。加以偏賞將士,恩澤不均,故內外怨嗟,人心携貳。又卽位踰年,便致沈痾,牀枕之間淹延歲月。於是,朝臣賢士不獲近前,鄕里小人常居臥內。厥疾彌篤,嗔恚日增。三年之間,民不見德,至于晏駕之日,粗得免其橫禍,可不痛哉。定宗在藩邸,早有令聞。及惠宗寢疾彌留,王規等潛有所圖,窺覦王室。定宗先認之,密與西都忠義之將,定計而爲備。及內難將作,衛兵大至。故姦計不成,群兇受誅。雖由天命,亦在人謀,豈不偉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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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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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定宗至今三十有八年,其間,洪祚之不絶亦定宗之力也。定宗旣以連枝得繼,夙夜孜孜,銳情求理,或燃燭而引見朝士,或旰食而聽斷萬幾。故卽位之初,人皆相慶。及乎誤信圖讖,決議遷都,又天性剛毅,固執不移,暴徵作役,勞動人夫。怨讟由是而興,災應速於影響。未及西遷,永辭南面,誠可痛也。光宗受定宗顧命,禮有加於接下,鑒不失於知人,不阿親貴而常抑豪强,無棄疎賤而惠鮮鰥寡,自卽位之年至于八載,政敎淸平,刑賞不濫。及雙冀投化以來,崇重文士,恩禮過隆。由是,非才濫進,不次驟遷,未浹歲時,便爲卿相。或連宵引見,或繼日延容,以此圖歡,怠於政事,讌遊靡絶。於是,南北庸人,皆接以殊禮,所以後生爭進,舊德漸衰,雖重華風,不取華之令典,雖禮華士,不得華之賢才。於百姓則益消膏血之資,於四方則剩得浮虛之譽。因此不復憂勤庶政而接見賓僚,故猜忌日深,都兪日阻,時政得失無敢言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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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 때부터 지금까지 삼십팔 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 홍조의 끊어지지 않은 것도 정종의 힘 덕분이었다. 정종은 이미 연지에게 계승을 얻어, 밤낮으로 부지런히 노력하며 이치를 구했고, 때로는 촛불을 밝혀 조정 신하들을 만나거나, 때로는 밤낮으로 먹고 살면서 만 가지 일을 결정했다. 그리하여 즉위 초기에 사람들은 모두 축하했다. 그러나 잘못된 점괘를 믿고 도읍을 옮기기로 결정했고, 또 타고난 강직함이 변하지 않아, 갑자기 역을 부려 백성들을 고생시켰다. 원망과 불평이 이로 인해 일어나고, 재앙이 영향보다 빨리 따랐다. 서쪽으로 옮기기도 전에 남쪽을 떠나니,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었다. 광종은 정종의 명을 받아, 예법에 있어 후대보다 더하였고, 사람을 아는 데 부족함이 없었으며, 친한 사람이나 귀한 사람에게 치우치지 않고 항상 호걸들을 제지했으며,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을 버리지 않고 굶주린 사람과 과부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즉위한 해부터 팔 년 동안 정사와 교육이 평화로웠고, 형벌과 상은 남용하지 않았다. 쌍기(雙冀)가 귀순한 이후로는 문신들을 높이 여기고 은혜를 지나치게 베풀었다. 이로 인해 재능이 없는 자가 나아오거나, 갑자기 높은 벼슬로 옮겨가거나, 세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여, 곧바로 경상(卿相)이 되었다. 때로는 밤새도록 만나거나, 때로는 날이 다하도록 용모를 꾸미며, 이로써 즐거움을 얻으려다 정사에 게을러져서, 사치스럽고 낭비했다. 그리하여 남북의 평범한 사람들은 모두 특별한 예우를 받았기 때문에, 후배들이 나아가려 하고, 옛 덕망은 점차 쇠퇴했다. 비록 화려한 풍조가 있었으나, 화려함의 법도나 재능을 얻지 못했다. 백성들에게는 살림의 자원을 더 많이 잃게 했고, 사방에는 헛된 명성만 남겼다. 이로 인해 더 이상 근심하며 백성들의 정사를 돌보거나 손님과 신하들을 만나지 않게 되자, 의심은 날로 깊어지고, 조정의 일은 날로 막히어, 시국에 대한 득실을 감히 말하는 이가 없었다.
卷二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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加以酷信佛事,常行之齋設旣多,別願之焚修不少,專求福壽,但作禱祈,窮有涯之財力,造無限之因緣,自輕至尊,好作小善。又於出入宴遊,莫不窮奢極侈。以其目前無事,將謂法力使然,凡所作爲,不欲悛改。宮室必踰於制度,服食須極於珍纖,土木之功不以時,伎巧之作無休日,略計常時一歲之費,足爲太祖十年之費。又及末年,多殺無辜。臣愚以爲,若使光宗恒思恭儉節用,勤政如初,豈其祿命不永,纔得享年五十而已哉。況自庚申至乙亥十六年間,姦兇競進,讒毀大興,君子無所容,小人得其志,遂至子逆父母,奴論其主,上下離心,群臣解體,舊臣宿將相次誅夷,骨肉親姻亦皆翦滅,而況惠宗之克全兄弟,定宗之能保邦家,若論恩義,可謂重也,兩朝皆唯有一子,亦不使保其性命。又至末年,於己一子亦生疑忌,故景宗方在東宮,每不自安,幸而得嗣其位。嗟乎,何其善於前而早得令名,不善於後乃至斯乎,深可痛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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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불교의 일을 지나치게 믿어, 늘 지내는 재(齋)를 짓고 여러 가지 기원하는 것이 적지 않으며, 특별히 복과 장수를 구하느라 기도만 할 뿐, 끝없는 재력으로 무한한 인연을 만들려 하니, 스스로 존귀한 것을 좋아하고 작은 선행을 하는 것을 즐겼다. 또한 출입하거나 연회에 나갈 때마다 사치스럽고 극진했다. 현재 별다른 일이 없으니 이를 법력이 만든 것이라 여기어, 행하는 모든 일에서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다. 궁실은 반드시 제도(制度)를 넘어서고, 의복과 음식은 지극히 진귀하고 섬세했으며, 토목 공사는 때를 가리지 않았고, 기교적인 활동에는 휴일이 없었다. 대략 계산해 보면 평소 한 해의 비용만으로도 태조가 십 년 동안 쓸 비용에 달했다. 게다가 말년에는 무고한 사람을 많이 죽였다. 신은 생각하기에, 만약 광종과 현종이 공경하고 검소하며 절제하는 마음을 가지며, 처음처럼 정사를 돌본다면 어찌 그 녹봉과 목숨이 오래가지 않겠는가? 겨우 오십 세를 누릴 뿐이다. 하물며 경신년부터 을해년까지 열여 년 동안 간사한 무리들이 서로 경쟁하고, 모함과 비방이 크게 일어나서 군자는 설 자리가 없고, 소인배들은 뜻을 이루어 부모에게 거역하고, 노비가 주인을 논하며, 위아래에 마음이 흩어져 신하들이 체계를 잃고, 옛 신하들과 장수들까지 차례로 죽임을 당했으며, 혈육과 친척마저 모두 끊어졌는데, 하물며 혜종이 형제들을 온전히 지키고 정종이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은혜와 의리가 크다고 할 만하며, 두 왕조 모두 오직 한 아들만 있었음에도 그 목숨을 지켜주지 못했다. 또 말년에 자신에게도 의심과 꺼림이 생겨서, 경종이 아직 동궁에 있을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아 다행히 그 자리를 이을 사람을 얻었다. 아아, 어찌하여 앞에서는 얼마나 잘하여 일찍 명성을 얻었는지 몰라도, 뒤로는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깊이 슬퍼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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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宗生於深宮之中,長於婦人之手,門外之事,不曾見知,但以天性聰明,能免悔尤,得嗣天位。焚積年讒毀之書,放累歲無辜之獄,冤憤,悉除。朝野稱慶。然不諳政體,專任權豪,害及宗親。咎徵先見,後雖覺悟,責無所歸。自此,邪正不分,賞刑不一,未及于理,復倦于勤,遂至色荒,喜觀鄕樂,繼以博奕,終日無厭,左右唯中官內豎而已。由是,君子之言無自而入,小人之語有時而從。早有美名,而晩無令德,所謂『靡不有初,鮮克有終。』忠臣義士誰不痛之。此乃聖上親所見知者也。然景宗亦有足稱美者焉。蓋其當初遘疾,未及危篤,遂於臥內,引見聖上,執手與言,付囑軍國,不唯社稷之福,亦是人民之幸也。唯惠景二宗嗣位皆自春宮,人無異望,至於堂從兄弟,非有分明付托,則爭端必起。惠宗兩年寢疾而終,有子曰興化郞君,而雖或年少,以無明囑,故事歸於諸弟。定宗自被群臣翊戴,以纂大業,臨終亦早傳位於光宗,以安宗社。定景二王之遺命可謂明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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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曾見惠定光三王相繼之初,百事未寧之際,兩京文武半已殺傷。況屬光宗末年,世亂讒興,凡繫刑章,多是非辜,歷世勳臣宿將,皆未免誅鋤而盡。及景宗踐祚,舊臣之存者四十餘人耳。其年,亦有遇害者多,皆是後生讒賊,誠不足惜。唯天安鎭州二郞君本皇家之枝葉也,光宗猶自寬容,竟不置之於法,至景宗朝,足爲藩屛,却被權臣之賊害,寧不痛惜。伏惟,殿下以上聖之德遇中興之期,因先君遜讓之恩纂烈聖厖鴻之業,無一物不樂其生,無一夫不獲其所。內外同歡,人神相慶,所謂『天授人與』者也。聖上若克遵太祖之遺風,何異玄宗追慕文皇之故事耶。聖上又能取捨四朝之近事,則惠宗有保全骨肉之功,可謂友于之義也。定宗先知亂萌,克定蕭墻之難,而再安宗社,傳授至今,可謂智謀之明也。光宗八年之理可方三代,又朝廷儀制頗有可觀,所謂『善否之均』也。景宗放先朝冤獄數千,燒積年讒毀之文,所謂『寬仁之至』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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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四朝爲政之跡大略如是,聖上宜取其善者而行之,見其不善而誡之,除不急之務,罷無益之勞,但要君安於上,民悅於下。因善始之心,慮克終之美,日愼一日,雖休勿休,雖貴爲君主,而不自尊大,富有才德,而不自驕矜,則福不求而自至,災不禳而自消,聖君胡不萬年,王業豈唯百世而已哉。臣又錄時務二十八條,隨狀別封以進。一,我國家統三以來四十七年,士卒未得安枕,糧餉未免糜費者,以西北隣於戎狄而防戍之所多也,願聖上以此爲念。以馬歇灘爲界,太祖之志也,鴨江邊石城爲界,大朝之所定也。乞擇要害,以定疆域,選土人能射御者,充其防戍。又選其中二三偏將,以統領之,則京軍免更戍之勞,芻粟省飛輓之費。一,竊聞,聖上爲設功德齋,或親碾茶,或親磨麥,臣愚,深惜聖體之勤勞也。此弊始於光宗崇信讒邪,多殺無辜,惑於浮屠果報之說,欲除罪業,浚民膏血,多作佛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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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네 나라가 정치했던 흔적은 대략 이러하니, 성상께서는 그 좋은 점을 취하여 행하시고, 좋지 않은 점은 경계하시며, 급하지 않은 일은 없애고 쓸데없는 수고는 그만두시어, 다만 임금이 위에서 편안하고 백성이 아래에서 즐거워하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리하여 시작할 때의 마음을 잘 삼고 끝까지 아름다움을 생각하며, 날마다 삼가고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으며, 비록 높은 군주라 할지라도 스스로를 높이 여기지 않고, 재능과 덕이 있어도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으면, 복은 구하지 않아도 저절로 오고, 재앙은 막지 않아도 저절로 사라지니, 성군이 어찌 만년이 아니겠으며, 왕업이 어찌 오직 백세에만 머무르겠습니까. 신은 또한 때에 따른 업무 스물여덟 조항을 기록하여 상과 별도로 올립니다. 첫째, 우리 나라가 건국된 이래로 사십칠 년이 되었으나, 사병들이 편히 잠자리를 얻지 못했으며, 군량미가 면하지 못하고 소모되는 것이 있습니다. 서북쪽으로 융적(戎狄)과 인접하여 방어하고 지키는 곳이 많기 때문이니, 성상께서는 이를 염려하시기를 바랍니다. 마歇灘을 경계로 삼는 것이 태조의 뜻이며, 아가강변의 석성은 대조가 정한 것입니다. 요지(要害)를 가려서 국경을 정하고, 토착민 중 활쏘기를 잘하는 자를 뽑아 그 방어와 지키는 곳에 배치해야 합니다. 또한 그중 두세 명의 편장(偏將)을 뽑아 지휘하게 하면, 경군(京軍)은 별도로 지키는 수고를 덜고, 땔감과 곡식은 비단 수레의 비용을 아낄 수 있습니다. 첫째, 제가 듣기로는, 성상께서 공덕재를 짓거나, 직접 차를 빻거나, 직접 쌀을 빻으신다고 합니다. 신은 깊이 성상의 근심과 수고를 염려합니다. 이러한 폐단은 광종 때부터 흥신(崇信)의 간사함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을 많이 죽이고, 불교의 과보설에 속아 죄업을 없애고 백성의 피땀을 빨아들이며, 불교 행사를 많이 하신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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或設毗盧遮那懺悔法,或齋僧於毬庭,或設無遮水陸會於歸法寺,每値佛齋日,必供乞食僧,或以內道場餠果,出施丐者,或以新池穴口與摩利山等處魚梁爲放生所,一歲四遣使,就其界寺院,開演佛經。又禁殺生,御廚肉膳,不使宰夫屠殺,市買以獻,至令大小臣民悉皆懺悔,擔負米豆柴炭馬料,施與中外道路者不可勝紀。然以旣信讒愬,視人如草莽,誅殺者堆積如山,常竭百姓膏血,以供齋設,佛如有靈,豈肯應供。當是時,子背父母,奴婢背主,諸犯罪者變形爲僧,及遊行丐乞之徒來,與諸僧,相雜赴齋者亦多,有何利益。又使僧善會,主其施與,其僧以餠米妄費於他。緣此不得壽終,曝尸道傍,時議譏之。願聖上正君王之體,不爲無益之事。一,我朝侍衛軍卒在太祖時但充宿衛宮城,其數不多。及光宗信讒,誅責將相,自生疑惑,簡選州郡有風彩者入侍,時議以爲繁而無益。至景宗朝,雖稍減削,洎于今時,其數尙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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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비로자나 참회법을 세우거나, 혹은 마당에서 스님들을 공양하고, 혹은 귀법사에서 무차(無遮)의 물가 모임을 열기도 하였다. 매번 부처님의 공양일이 되면 반드시 음식을 구걸하는 스님들에게 베풀거나, 내도장에서 떡과 과일을 마련하여 나누어 주는 사람들에게 베풀었다. 혹은 새 연못 입구나 마리산 등지에서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지낼 곳을 만들어 주고, 일 년에 네 번 사신을 보내 그 지역의 사찰에 가서 부처님의 경전을 펼치게 하였다. 또한 생명을 해치는 것을 금하고, 주방의 고기 음식은 요리사들에게 도살하게 하거나 시장에서 사와 바치는 것을 막았으며, 심지어 크고 작은 신하들까지 모두 참회하여 쌀과 콩, 땔감, 숯, 말 먹이 등을 지니게 하여 중외의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미 거짓으로 고소하고 사람을 풀뿌리처럼 여기며 죽이는 자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늘 백성들의 피와 살을 빨아 공양을 마련하게 하니, 부처님께 신령한 것이 있다면 어찌 응하여 주시겠는가. 이때는 아버지를 등지고 어머니를 등지며, 노비가 주인에게 등을 돌리고, 온갖 죄를 지은 자들이 변신하여 스님이 되고, 거닐며 구걸하는 무리들이 오니, 여러 스님들과 함께 공양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아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또 승려들을 잘 모여 그들에게 베풀게 하였으나, 그 스님들은 떡과 쌀을 함부로 다른 곳에 낭비하였다. 이 때문에 오래 살지 못하고 시신이 길가에 방치되니, 이때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원컨대 성스러운 임금의 본래 모습을 지켜서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첫째, 우리 조정의 시위군 졸병들은 태조 때에는 다만 숙위궁성에서 근무할 뿐 그 수가 많지 않았다. 광종이 신하들의 거짓 고발로 장군과 재상들을 죄책하며 의심을 품자, 주(州)와 군(郡)에 풍채가 있는 사람들을 뽑아 시위에 두었는데, 이때 비웃음거리가 되어 번성하지만 쓸모없다고 여겼다. 경종 때에는 비록 조금 줄었으나 지금까지도 그 수가 아직 많다.
卷二번역 대기
원문
伏望,遵太祖之法,但留驍勇者,餘悉罷遣,則人無嗟怨,國有儲積。一,聖上以漿酒豉羹,施與行路。臣竊謂,聖上欲效光宗消除罪業普施結緣之意,此所謂『小惠未遍』也。若明其賞罰,懲惡勸善,足以致福。如此碎事,非人君爲政之體,乞罷之。一,我太祖情專事大,然猶數年一遣行李,以修聘禮而已。今,非但聘使,且因貿易,使价煩夥,恐爲中國之所賤。且因往來敗船殞命者多矣。請自今因其聘使兼行貿易,其餘非時買賣,一皆禁斷。一,佛寶錢穀,諸寺僧人各於州郡差人勾當,逐年長利,勞擾百姓,請皆禁之。以其錢穀移置寺院田莊,若其主典有田丁者幷取之,以屬于寺院莊所,則民弊稍減矣。一,王者之理民,非家至而日見之。故分遣守令,往察百姓利害。我祖聖統合之後,欲置外官,蓋因草創事煩未遑。今,竊見鄕豪,每假公務,侵暴百姓,民不堪命,請置外官。雖不得一時盡遣,先於十數州縣幷置一官,官各設兩三員,以委撫字。一,伏見,聖上遣使迎屈山僧如哲,入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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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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臣愚以爲哲果能福人者,其所居水土亦是聖上之有,朝夕飮食亦是聖上之賜,必有圖報之心,每以祝釐爲事,何煩迎致然後,敢施福耶。曩者,有善會者,規避徭役,出家居山,光宗致敬盡禮,卒之善會暴死道傍,曝露其尸。如彼凡僧身且取禍,何暇福人。請放哲還山,免致善會之譏。一,新羅之時,公卿百僚庶人衣服鞋襪各有品色,公卿百僚朝會,則著公襴,具穿執,退朝,則逐便服之,庶人百姓不得服文彩,所以別貴賤辨尊卑也。由是,公襴雖非土產,百僚自足用之。我朝自太祖以來,勿論貴賤,任意服著,官雖高而家貧,則不能備公襴,雖無職而家富,則用綾羅錦繡。我國土宜好物少而麤物多,文彩之物皆非土產,而人人得服,則恐於他國使臣迎接之時,百官禮服不得如法,以取恥焉。乞令百僚,朝會一依中國及新羅之制,具公襴穿執,奏事之時,著襪靴絲鞋革履,庶人不得著文彩紗縠,但用紬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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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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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臣聞,僧人往來郡縣,止宿館驛,鞭撻吏民,責其迎候供億之緩,吏民疑其銜命,畏不敢言,弊莫大焉。自今,禁僧徒止宿館驛,以除其弊。一,華夏之制不可不遵,然四方俗習各隨土性,似難盡變。其禮樂詩書之敎,君臣父子之道,宜法中華,以革卑陋,其餘車馬衣服制度可因土風,使奢儉得中,不必苟同。一,諸島居民以其先世之罪,生長海中,活計甚難,又光祿寺徵求無時,日至窮困。請從州郡之例,平其貢役。一,我國春設燃燈,冬開八關,廣徵人衆,勞役甚煩。願加減省,以紓民力。又造種種偶人,工費甚多,一進之後,便加毀破,亦甚無謂也。且偶人非凶禮不用,西朝使臣嘗來見之,以爲不祥,掩面而過,願自今勿許用之。一,易曰:『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語曰:『無爲而治者其舜也,夫何爲哉,恭己正南面而已。』聖人所以感動天人者,以其有純一之德,無私之心也。若聖上執心撝謙,常存敬畏,禮遇臣下,則孰不磬竭心力,進告謨猷,退思匡贊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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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하가 듣기로, 승려들이 군현을 돌아다니며 관역에 머물면서 관리와 백성들을 채찍질하여, 그들이 맞이하고 대접하는 것이 느슨한 것을 꾸짖으니, 관리와 백성들은 그가 명을 받은 것인지 의심하고 감히 말하지 못하여, 그 폐단이 매우 크다. 이제부터 승려들이 관역에 머무는 것을 금하여 그 폐단을 없애고자 한다. 하나, 화하의 제도는 따르지 않을 수 없으나, 사방의 풍속은 각기 토성에 따르므로 다 바꾸기는 어려울 듯하다. 예악과 시서의 가르침과 군신 부자 간의 도리는 중화의 법을 따르어 비루함을 고치되, 그 외 수레와 말, 의복 제도 등은 토속 풍습에 따라 하여 사치와 검소함이 적절한 중간을 이루게 하되, 억지로 같을 필요는 없다. 하나, 여러 섬 주민들은 그들의 선조의 죄로 바다에 살아가면서 생계를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고, 게다가 광록사에서 거두어 가는 것이 때를 가리지 않아, 어려움에 처할 때까지 이른다. 주군(州郡)의 예를 따라 그 공역을 평준화해 주시기를 청한다. 하나, 우리 나라는 봄에 등불을 밝히고 겨울에 팔관을 열어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노역을 시키는 것이 매우 번거롭다. 가감하여 덜어 주시어 백성의 힘을 덜어 주기를 바란다. 또 온갖 가짜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공비가 매우 많이 들고, 한번 진행된 후에는 또 부수어 없애니, 또한 매우 무의미하다. 게다가 가짜 사람들은 흉례가 아니면 쓰지 않는데, 서조 사신들이 전에 와서 보고는 불길하다고 하여 얼굴을 가리고 지나갔으니, 이제부터는 쓰지 못하게 해 주시기를 바란다. 하나, 역에 이르기를 '성인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하여 천하가 평화롭다'고 하고, 말씀에 이르기를 '무위자치하는 이는 순(舜)이었으니, 무엇을 하겠는가? 그저 자신을 공경하고 남쪽을 바로 세우는 것뿐이다'라고 한다. 성인이 하늘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그가 순수하고 한결같은 덕과 사사로운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성상께서 마음을 다하여 겸손하고, 항상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신하들을 예우하신다면, 누가 힘을 다하여 나아가고 계책을 아뢰며, 물러나 생각하고 보좌하지 않겠는가.
卷二자동번역 · 검수 대기
원문
此所謂『君使臣以禮,臣事君以忠』者也。願聖上日愼一日,不自驕滿,接下思恭,儻或有罪者,輕重竝論如法,則大平之業可立待也。一,太祖除內屬奴婢,在宮供役外,出居外郊,耕田納稅,廏馬當御者外,分遣外廏喂養,以節國用。至光宗,多作佛事,役使日繁,乃徵在外奴婢,以充役使,內宮之分不足支給,幷費倉米,今,內廏養馬數多,糜費甚廣,民受其害,如有邊患,糧餉不周。願聖上一依太祖之制,酌定宮中奴婢廏馬之數,餘悉分遣於外。一,世俗以種善爲名,各隨所願,營造佛宇,其數甚多。又有中外僧徒競行營造,普勸州郡長吏,徵民役使,急於公役,民甚苦之。願嚴加禁斷,以除勞役。一,禮云:『天子堂九尺,諸侯堂七尺,』自有定制。近來,人無尊卑,苟有財力,則皆以營室爲先。由是,諸州郡縣及亭驛津渡豪右競構大屋,踰越制度,非但盡一家之力,實勞百姓,其弊甚多。伏望,命禮官,酌定尊卑家舍制度,令中外遵守,其已營造踰制者,亦令毀撤,以戒後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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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군주는 신하에게 예로써, 신하는 군주에게 충성으로써'라는 것이다. 성상께서 날마다 삼가 마음을 하시고 스스로 교만하거나 만족하지 않으시며, 아래의 생각에 공경심을 가지시어 혹 죄를 지은 이가 있다면 경중을 함께 법도대로 논하시면 큰 평화의 업적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태조께서 내부에 속한 노비 중 궁궐에서 봉사하는 일을 제외하고 외곽으로 나가 밭을 갈아 세금을 바치게 하고, 마구간에 있는 말들 중 군마가 아닌 것은 따로 보내 먹이게 하여 국가의 비용을 절약하였다. 광종 때에는 불교 행사에 많이 힘쓰시어 노동력이 늘어나자 밖에 있던 노비들을 불러와 노동력으로 삼았고, 내궁에서 필요한 만큼만 지급하여 곡식과 쌀을 쓰게 하니, 지금은 내 마구간에 말이 너무 많아 쓰는 비용이 매우 크고 백성들이 그 해를 받으니 만약 변방의 어려움이 생기면 군량미가 부족하다. 성상께서는 태조의 제도를 따라 궁중 노비와 마구간 말의 수를 적절히 정하시고, 나머지는 모두 외지로 보내주시기를 청한다. 둘째로, 세속에서는 선을 짓는 것을 명분으로 각자 원하는 대로 불교 사찰을 짓는데 그 수가 매우 많다. 게다가 중외의 승려들이 경쟁적으로 지어 짓고 있고, 지방 관청의 장관들에게까지 민간 노동력을 동원하게 하여 공적인 일에 급급하니 백성들이 매우 괴로워한다. 엄격히 금지하여 노역을 없애주시기를 청한다. 셋째로, 예법에는 '천자당은 아홉 자요, 제후의 당은 일곱 자'라 하니 본래 정해진 규정이 있다. 근래에 사람들은 존비(尊卑)를 가리지 않고 재력이 있는 곳이라면 모두 집을 짓는 것을 우선시한다. 이로 인해 여러 주와 군현 및 역참과 나루터의 부유한 사람들이 제도를 넘어서 큰 집들을 짓고 있어, 한 가문의 힘만 다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실질적인 고통을 주고 그 폐해가 매우 많다. 간곡히 바라건대, 예관에서 존비에 따른 가옥의 제도(制度)를 정하시어 중외가 따르게 하시고, 이미 제도를 넘어서 지은 곳은 또한 허물게 하여 후대에 경계심을 주시기를 바란다.
卷二번역 대기
원문
一,寫經塑像,只要傳久,何用珍寶爲飾,以啓盜賊之心。古者,經皆黃紙,且以旃檀木爲軸,其肖像不用金銀銅鐵,但用石土木,故無竊毀者。新羅之季,經像皆用金銀,奢侈過度,終底滅亡,使商賈竊毀佛像,轉相賣買,以營生產,近代,餘風未殄。願嚴加禁斷,以革其弊。一,昔,晉德衰而欒郤胥原狐續慶伯降在皁隷。我三韓功臣子孫每蒙宥旨,必云褒錄,而未有受爵,混於皁隷,新進之輩多肆陵侮,怨咨以興。且光宗末年,誅黜廷臣,世家子孫未得承家。請從累次恩宥,隨其功臣等第,錄其子孫。又庚子年田科及三韓後入仕者亦量授階職,則冤屈得伸而災害不生矣。一,崇信佛法,雖非不善,然帝王士庶之爲功德,事實不同。若庶民,所勞者自身之力,所費者自己之財,害不及他,猶之可也,帝王則勞民之力,費民之財。昔,梁武帝以天子之尊修匹夫之善,人以爲非者以此。是以帝王深慮其然,事皆酌中,弊不及於臣民。臣聞,人之禍福貴賤,皆稟於有生之初,當順受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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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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況崇佛敎者只種來生因果,鮮有益於見報,理國之要恐不在此。且三敎各有所業而行之者,不可混而一之也。行釋敎者修身之本,行儒敎者理國之源,修身是來生之資,理國乃今日之務。今日至近,來生至遠,舍近求遠,不亦謬乎。人君惟當一心無私,普濟萬物,何用役不願之人,費倉庫之儲,以求必無之利乎。昔,德宗妃父王景先駙馬高恬爲聖壽延長鑄金銅佛像,獻之,德宗曰:『朕以有爲功德,謂無功德,』還其佛像於二人。是其情雖不實,然欲令臣民不得作無利事者如此。我朝冬夏講會,及先王先后忌齋,其來已久,不可取舍,其他可減者,請減之。一,語曰:『非其鬼而祭之,諂也,』傳曰:『鬼神非其族類不享,』所謂『淫祀無福。』我朝宗廟社稷之祀尙多未如法者,其山嶽之祭星宿之醮煩黷過度,所謂『祭不欲數,數則煩,煩則不敬。』雖聖上齋心致敬,固無所怠,然其享官視爲尋常事,厭倦而不致敬,則神其肯享之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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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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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漢文帝凡祭祀使有司,敬而不祈,其見超然,可謂盛德也。如使神明無知,則安能降福,若其有知,私己求媚,君子尙難悅之,況神明乎。祭祀之費皆出於民之膏血與其力役。臣愚以爲,若息民力,而得歡心,則其福必過於所祈之福。願聖上除別例祈祭,常存恭己責躬之心,以格上天,則災害自去,福祿自來。一,本朝良賤之法其來尙矣,我聖祖創業之初,其群臣除本有奴婢者外其他本無者,或從軍得俘,或貨買奴之。聖祖嘗欲放俘爲良,而慮動功臣之意,許從便宜,至于六十餘年,無有控訴者。逮至光宗,始令按驗奴婢,辨其是非,於是,功臣等莫不嗟怨,而無諫者,大穆王后切諫,不聽。賤隷得志,陵轢尊貴,競構虛僞,謀陷本主者,不可勝紀。光宗自作禍胎,不克遏絶,至於末年,枉殺甚多,失德大矣。昔侯景圍梁臺城,近臣朱异家奴踰城投景,景授儀同。其奴乘馬披錦袍,臨城呼曰:『朱异仕宦五十年,方得中領軍,我始仕侯王,已爲儀同。』於是,城中僮奴競出投景,臺城遂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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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 문제께서 제사 지내는 사관(司官)을 두어 공경할 뿐 기원하지 않으셨는데, 그 모습이 초월하여 성덕이라 할 만하다. 만약 신명(神明)이 무지하다면 어찌 복을 내릴 수 있겠으며, 만약 지혜가 있다면 사사로이 자신을 꾸미어 아첨하려 할 것이니, 군자조차 기쁘게 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신명일까. 제사에 드는 비용은 모두 백성의 피와 힘노동에서 나온다. 신이 생각하기에, 백성의 힘을 쉬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면, 그 복은 기원하는 복보다 반드시 클 것이다. 원컨대 성상께서는 별도의 기원 제사를 없애시고, 항상 스스로를 경계하는 마음을 지니시어 하늘을 이롭게 하시면, 재앙은 저절로 사라지고 복록은 저절로 오를 것이다. 첫째, 본래 나라의 양민과 천민의 법도가 이미 훌륭했다. 우리 성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초기에, 신하들 중 본래 노비가 아닌 자들은 다른 이들이 본래 없었으나, 군대에 참여하여 포로로 잡히거나 물건으로 노비를 사들였다. 성조께서는 포로들을 양민으로 풀어주려 하셨으나, 공신들의 뜻이 움직일까 염려하여 허락하였고, 이로써 육십여 년 동안 고소하는 자가 없었다. 마침내 광종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노비들을 조사하여 그 옳고 그름을 가려내게 하니, 이에 공신들은 모두 탄식하며 원망하였으나 간하는 자가 없었다. 대목왕후께서 간했으나 듣지 않았다. 천한 신분이 뜻을 얻어 높은 분들을 함부로 대하고, 헛된 것을 꾸미며 본래 주인들을 함정에 빠뜨리려 하니, 이 법도를 거스를 수 없다. 광종 스스로 화를 불러들여 막지 못하였고, 말년에는 억울하게 죽인 사람이 너무 많아 덕을 잃었다. 옛날 후경이 양대성(梁臺城)을 포위했을 때, 가까운 신하 주이의 집 노비가 성을 넘어 경(景)에게 투항하였고, 경은 그에게 의동(儀同)의 벼슬을 주었다. 그 노비가 말에 올라 비단옷을 입고 성 앞에 서서 외치기를, "주이가 벼슬을 한지 오십 년 만에 겨우 중령군에 이르렀는데, 나는 처음부터 후왕을 섬겨 의동에 이르렀다." 하니, 이에 성 안의 모든 노비들이 뛰쳐나와 경에게 투항하였고, 태성(臺城)은 마침내 함락되었다.
卷二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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願聖上深鑑前事,勿使以賤陵貴,於奴主之分,執中處之。大抵官高者識理,鮮有非法,官卑者苟非智足以飾非,安能以良作賤乎。惟宮院及公卿雖或有以威勢作非者,而今政鏡無私,安能肆乎。幽厲失道,不掩宣平之德,呂后不德,不累文景之賢。唯當今判決,務要詳明,俾無後悔,前代所決不須追究,以啓紛紜。」承老見王有志而可與有爲,乃進此書,餘六條逸於庚戌兵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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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께서 지난 일을 깊이 헤아리시어, 천한 것을 귀하게 여기거나 신하의 분수를 따지시는 일이 없도록 하시고, 중용의 자리를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대개 벼슬이 높은 이는 도리를 알기에 법에 어긋나는 일이 드물고, 벼슬이 낮은 이가 만약 지혜가 부족하여 그렇지 않은 것을 꾸미는 것이라면, 어찌 좋은 것을 천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궁궐이나 공경(公卿)들이 때로 위세로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이제 정치는 사사롭지 못하니 어찌 마음대로 할 수 있겠습니까. 유려(幽厲)는 도를 잃었으나 선평(宣平)의 덕을 가리지 않으며, 여후(呂后)는 덕이 없어 문경(文景)의 현명함을 거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지금 판결은 반드시 자세하고 명확하여 후회하는 일이 없게 하시고, 이전 시대에 결정한 일은 더 이상 따지지 마시어 혼란스러움을 잠재우시기 바랍니다. 노인께서는 왕께서 뜻이 있고 함께 할 만하다고 보아 이 글을 올리며, 나머지 여섯 조항은 경술년의 병난에서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