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高麗AD 918 – AD 1392문헌 원문 ·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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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절요 卷二十五
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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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申五年元至正四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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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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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正月。元以柳濯爲合浦萬戶。前萬戶僉議商議楊之秀不肯受代,久而乃出,遊于道內,莫有問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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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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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宰相會百官及國老于旻天寺,欲署名呈省書,國老多不至,事竟未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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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과 백관 및 국로들이 민천사에서 모여 이름을 적어 성서에 올리려 하였으나, 국로들이 많이 오지 않아 일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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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傳車疾驅,艱楚萬狀,未至揭陽,丙子,薨于岳陽縣。或云遇鴆,或云食橘而殂。國人聞之,莫有悲之者。小民至有欣躍,以爲復見更生之日,其民不見德,如此。初宮中及道路歌曰:「阿也麻古之那,從今去,何時來。」至是,人解之曰:「岳陽亡故之難,今日去,何時還。」史臣曰:「忠惠王以英銳之才用之於不善,昵比惡小,荒淫縱恣,內則見責於父王,上則得罪於天子,身爲羈囚,死於道路,宜矣。雖有一老臣李兆年,言之剴切,其如不我聽,何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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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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二月。元子昕在元,年甫八歲。高龍普抱以見帝,帝問曰:「汝學父乎,抑學母乎。」對曰:「願學母。」帝嘆其天性好善惡惡,遂令襲位。王下敎,戒國內臣僚,一革弊政,慰恤百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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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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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閏月。王命政丞蔡河中司空姜好禮政堂文學鄭乙輔同知密直金上琦薛玄固密直提學張沆參議國政,以咸陽君朴忠佐陽川君許伯判田民都監事,竄韓范張松沈奴介田豆乞不花等十五人于島,鄭天起蘇敬夫趙成柱等放歸田里,皆先王嬖幸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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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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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監察司悉收先王時惡小輩告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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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사에서 선왕 때의 악한 무리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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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月。雞林郡公王煦前典法判書崔文度如元,賀聖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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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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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遣使來,求苧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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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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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四月。以祺爲江陵府院大君,玹爲益興府院君,蔡河中爲右政丞,韓宗愈爲左政丞,李齊賢判三司事,金倫權謙朴忠佐爲贊成事,羅益禧孫守卿爲參理,金承嗣金上琦爲三司右左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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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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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酉。王至自元。翼日,元使桑哥頒詔曰:「昔,我祖宗奄有萬方,外薄四海。于時,高麗慕義效順,用建東國,傳之子孫,世守藩輔。不謂近者高麗國王寶塔實里肆爲無道,荼毒境內,民不堪命,來訴京師。今,正厥罰,遷之嶺表。然念自其先世事我列聖,罔有二心,一朝後嗣不克繼承,遂失世爵,在朕奚忍。又念海隅蒼生皆朕赤子,久罹塗炭,良切予懷。乃命其子八禿麻朶兒只仍襲征東行省左丞相高麗國王,布朕德澤,輯寧吾民。其寶塔實里所行虐政竝從釐革,人民逃避山林,亟令有司,剋日招撫,勸農興學。凡合整治事宜悉遵成制,俾爾有衆各保生業。」是日王宴桑哥,用女樂,百官侍座,皆簪花,名曰君臣慶會宴。史臣元松壽曰:「三年之喪,自天子達於庶人,先王岳陽之喪未返於國,而至用女樂,使百官揷花,如禮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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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유일이다. 왕지(王至)가 원나라에서 왔다. 날개를 펼치니, 원나라 사신 상개(桑哥)가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옛날 우리 선조들은 만방에 널리 퍼져 있었고, 바깥으로는 사해에 걸쳐 있었다. 이때 고구려가 의리를 본받아 순나라의 방식을 따라 동국을 세우고, 그 자손들에게 전하여 대대로 나라를 지키며 왕과 신하를 보좌하였다. 가까운 곳에서 고구려 국왕 보탑실리(寶塔實里)가 도리에 어긋나게 경내에 독기를 퍼뜨리고 백성들이 견디지 못하여 수도에 원성을 호소했다. 이제 마땅히 벌을 내려 그곳을 변방으로 옮겼다. 그러나 그 이전 세대의 일을 생각하니, 우리 열 성인들 중 두 마음을 가진 이가 없었거늘, 한 번 후사가 이어지지 못하여 세자(世爵)를 잃게 되었으니, 나로서 어찌 차마 할 수 있겠는가. 또한 바닷가에 사는 백성들이 모두 나의 자식들이니, 오랫동안 고통받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이에 그의 아들 팔독마타아(八禿麻朶兒)를 여전히 징정동행성 좌승상 고구려 국왕으로 삼아, 나의 덕택을 베풀고 백성을 안정시키기를 명하였다. 그 보탑실리에서 행한 학대 정치는 모두 바로잡고 개혁하였으며, 백성들은 산림으로 피신했으니, 급히 관리를 시켜 날짜를 정하여 달래고 농업과 학문을 장려하게 하였다. 모든 정리할 일은 모두 법도에 따르게 하여 너희들이 각자 생업을 지키게 하라." 이날 왕이 상개와 연회를 베풀었고, 여자 악기를 사용했으며, 백관들은 자리에 앉아 모두 꽃을 꽂았는데, 그 이름이 군신경회연이었다. 사신 원송수(元松壽)가 말하기를, "삼 년의 상복은 하늘의 임금에게서부터 보통 사람에게까지 이르렀거늘, 이전 왕국의 악양(岳陽)의 상을 치르고 돌아오지 않았는데, 어찌 여자 악기를 사용하고 백관들에게 꽃을 꽂게 하는 것이 예에 맞는가."
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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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洛君金永暾詣闕庭,辛裔盧英瑞穿紫靴戴椶帽,踞胡床于門內,下視不爲禮。永暾招之前曰:「僕聞主上襲位東還,復正三韓,蹈舞不已,來謁殿下。公等何不革前代惡小奢靡冠服。此豈移風易俗之道乎。」英瑞等慚而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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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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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月。賜宦者高龍普功臣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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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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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元遣李庥秦瑾等來,冊王爲開府儀同三司征東行中書省左丞相上柱國高麗國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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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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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海君李齊賢上書都堂曰:「今,我國王以古者元子入學之年承天子明命,紹祖宗重業,而當前王顚覆之後,可不小心翼翼以敬以愼。敬愼之實莫如修德,修德之要莫如嚮學。今,祭酒田淑蒙,已名爲師,更擇賢儒二人,與淑蒙講孝經語孟大學中庸以習格物致知誠意正心之道。而選衣冠子弟正直謹厚好學愛禮者十輩,爲侍學,左右輔導。四書旣熟,六經以次講明。驕奢淫泆聲色狗馬,不使接于耳目,習與性成,德造罔覺,此當務之莫急者也。君臣義同一體,元首股肱不親附可乎。今,宰相非宴會不相接,非特召不得進,此何理乎。當請日坐便殿,每與宰相論議政事,或可分日進對,雖無事,不廢此禮。不然則大臣日疏,宦寺日親,生民休戚宗社安危,恐莫得而上聞也。政房之名起于權臣之世,非古制也。當革政房,歸之典理軍簿,置考功司,標其功過,論其才否,每年六月十二月受都目,考政案,用以黜陟,永爲恒規,則可以絶請謁之徒,杜僥倖之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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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해군 이제가 도당에 상서하기를, "지금 우리 나라 왕은 옛날 원자(元子)가 학문에 들어간 해부터 하늘의 명을 이어받아 조상들의 큰 업적을 잇고 있다. 그런데 지금 왕실이 뒤엎어진 후에는 더욱 조심하고 삼가야 한다. 공경하고 삼가는 실질은 덕을 닦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덕을 닦는 데 있어 요긴한 것은 학문을 가까이하는 것이다. 지금 제주(祭酒) 전숙몽은 이미 스승의 이름을 얻었으니, 또 현명한 선비 두 사람을 더 뽑아 숙몽과 함께 효경과 맹자의 대학, 중용을 강론하며 격물치지신의 도리를 익히게 하였다. 그리고 옷차림이 단정하고 겸손하며 학문을 좋아하고 예의를 사랑하는 열 명의 자제들을 뽑아 시습(侍學)으로 삼고 좌우에서 보필하게 하였다. 사서가 익숙해지면 육경을 차례로 강론하여 밝히게 한다. 교만하고 사치스러우며 음란한 소리나 색채, 개와 말 같은 것들은 귀와 눈에 닿지 않도록 하고, 본성과 함께 익혀 덕이 만들어져 깨닫지 못하는 것이 이 시기에 가장 힘써야 할 일이다. 군신 간의 의리가 한 몸과 같거늘, 으뜸가는 자가 부림과 친하게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 재상이 연회 때가 아니면 서로 만나지 않고, 특별히 부름을 받지 않으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치인가. 마땅히 날마다 편전(便殿)에 앉아 매번 재상들과 정사를 논의하여, 혹은 날마다 대면할 수 있게 하거나, 일이 없더라도 이 예를 폐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신들은 날마다 소홀해지고 환관들은 날마다 친하게 지내어, 백성들의 근심과 나라의 안위가 혹 위대하신 분께 상달되지 못할까 두렵다. 정방(政房)이라는 이름은 권신들이 있던 시대부터 생긴 것이지 옛 제도와는 아니다. 마땅히 정방을 개혁하여 전례 군부로 돌리고, 고공사(考功司)를 두어 그들의 공과를 시험하고 재능의 옳고 그름을 논하며, 매년 6월과 12월에 도목을 받아 정사를 살피고, 이를 바탕으로 승진과 좌천에 사용하게 하여 영원한 규범으로 삼는다면, 그리하여 아첨하는 무리들을 끊고 요행을 얻으려는 문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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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若因循,不復古制,深恐將來梁將祖倫朴仁壽高謙之輩蜂起,而黑冊之謗不可遏也。鷹坊內乘毒民尤甚者,前已下令革罷,後復遷延,中外失望,至使龍普馳出見責,可不愧于心乎。德寧寶興等庫凡非古制者,一切釐革,庶永不負聖旨勤恤之意。刺史守令得其人,則民受其福,不得其人,則民遭其害。官高而降爲者偃肆不遵法,年邁而求得者昏懦不任事,或以請謁起壟畝垂金魚者,又不足言也。請如古制朝士之未入參者必經監務縣令,至于四品,例爲牧守,而監察司按廉使必行褒貶,爲之賞罰。所謂官高者年邁者用請謁起壟畝者,如不得已,寧授京官,勿與親民之任。行之二十年,流亡不復貢賦不足,未之有也。金銀錦繡不產我國,前輩公卿被服只用素段若紬布,器皿只用鍮銅瓷瓦。德陵作一衣,問直則重,輟而不爲,毅陵嘗責前王:『蹙金之衣揷羽之笠非吾祖舊法。』有以見國家四百餘年能保社稷徒以儉德也。近來,風俗窮極奢侈,民生困而國用匱,職此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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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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請宰相今後不以錦繡爲服金玉爲器,又不使袨服乘馬者擁其後。各務儉約,諷上而化下,風俗可以歸厚也。前者,迫徵暴斂之布,便合歸於納者。然恐官吏夤緣爲姦,細民未蒙實惠,故宜分付諸司,以充來歲雜貢,令其得免先納借㒃之弊。行省旣有文移,當早施行。三食邑旣立之後,百僚俸祿不備,夫以一國之主取群臣養廉之資以實私藏,豈不貽譏後世。請聞諸兩宮,罷食邑,還屬廣興倉,充其俸祿。京畿土田,除祖業口分,餘皆折給爲祿科田,行之近五十年。邇者,權豪之門奪占略盡,中間屢議釐革,輒以危言脅欺上聽,卒莫能行,此大臣不固執之所致也。果能釐革,悅者甚衆,不悅者權豪數十輩而已,何憚而不果爲哉。州郡遠年貢賦之逋欠者,有司百計迫徵,十分莫得其一,祗是斂怨而已。望下令,自至正三年已前逋欠貢賦,一切蠲免。前此數年,窮民有因暴斂典賣男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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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번역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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請令諸道存撫按廉使出牓,許其來京自告,因以官財量給贖還,其買者亦令自首,若不自首,不與其直,勒還父母,甚者治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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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二十五자동번역 · 검수 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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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判典校寺事李穀在元致書宰相曰:「惟吾三韓國之不國亦已久矣。風俗敗毀,刑政紊亂,民不聊生,如在塗炭。幸今國王受命之國,民之望之若大旱之望甘澍。然國王以春秋之富謙恭沖默,一國之政聽於諸公,則其社稷安危人民利病士君子之進退皆出於諸公。夫進君子,則社稷安,退君子,則人民病,此古今之常理也。然則用人又爲政之本也。蓋用人則易,知人則難。不問邪正,不論高下,惟貨是視,惟勢是依,附我者雖姦諂而進之,異己者雖廉謹而退之,則其用人不旣易乎。用人易,故政日亂,政日亂,故國家隨以危亡,此不待遠求諸古,實目前之明鑑也。古之人知其然,於一進退人之際,而必察其所行所從來,惟恐黷于貨而奪于勢也。然猶朱紫相奪,玉石相混,其知人不旣難乎。卽今本國之俗以有財爲有能,有勢爲有知,至以朝衣儒冠爲倡優雜劇之戲,直言正論爲閭里狂妄之談,宜乎,國之不國也。穀之所以離親戚去鄕國久客於輦轂之下者正爲此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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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전교사(判典校寺事) 이곡이 원나라에 부치는 글에서 재상에게 말하였다. "우리 삼한의 나라가 망한 지 오래되었다. 풍속은 쇠퇴하고, 형정과 법도가 어지러우며, 백성들은 살기 어려워 마치 진흙탕 속에 있는 것과 같다. 다행히 지금 국왕이 명을 받아 세운 나라는 백성들이 큰 가뭄 끝에 단비를 기다리는 마음과 같다. 그러나 국왕께서 봄날의 풍요로움 속에서 겸손하고 조용하시며, 한 나라의 정사가 여러 공신들에게 달려 있으니, 그 사직의 안위와 백성의 이익, 병든 자와 군자의 진퇴까지 모두 여러 공신들에게 달렸다. 진군자(進君子)하면 사직이 안정되고, 퇴군자(退君子)하면 백성이 병들게 되니, 이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변치 않는 이치이다. 그러나 사람을 쓰는 것이 또 정사(政事)의 근본이다. 사람을 쓰는 것은 쉬우나, 사람을 아는 것은 어렵다. 사악함과 바름함을 따지지 않고, 높고 낮음을 논하지 않으며, 오직 재물만을 보고, 오직 세력만을 의지하여, 나에게 붙는 자는 비록 간사하고 아첨할지라도 그를 쓰고, 나와 다른 이들은 비록 청렴하고 신중하더라도 그를 내쫓으니, 이는 사람을 쓰는 것이 이미 쉬운 것인가. 사람을 쓰기가 쉬우니 정사가 날마다 어지럽고, 정사가 날마다 어지러우니 국가가 따라서 위태로워 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멀리 옛날에서 찾을 필요 없이, 바로 눈앞의 분명한 거울이다. 예전 사람들은 그 이치를 알고, 사람이 나아가거나 물러나는 경계에 이르러 반드시 그가 행하는 바와 따르는 바를 살폈으며, 오직 재물에 치우쳐 세력을 빼앗길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주나라와 자나라의 것이 서로 빼앗고, 옥과 돌이 뒤섞이는 것보다도, 사람을 아는 것이 이미 어렵지 않은가. 당장 우리 나라의 풍속은 재물이 있으면 능력이 있다고 여기고, 세력이 있으면 지혜가 있다고 여겨서, 심지어 조정의 옷이나 선비의 관까지도 창기나 잡극의 희극처럼 취급하고, 직설적으로 옳은 말을 하는 것을 마을 사람들의 광란한 이야기로 여긴다. 과연 나라가 제나라 같지 않은 것이 아닌가. 이곡이 친척을 떠나 고향 땅에 오래 머물며 수레바퀴 아래에 있는 것은 바로 이런 까닭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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比聞諸公所以輔政更化者與前日甚不相遠,名雖尙老,而少者實主其柄,名雖尙廉,而貪者實主其權,旣斥惡小,而大者不悛其惡,旣改舊臣,而新者反附其舊。知人不難,用人甚易,似非國王委任之意。朝廷聞之,得無不可乎。或曰:『不必寓書諸公。徒見其怒而無所益也。』穀應之曰:『社稷苟安,人民苟利,將具本末,言之朝廷,達之天子,豈以諸公之怒而便含默耶。』是用敢貢狂瞽之言,惟諸公察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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